Polics among Companies

국제정치와 비슷한 경제생태계, 베트남처럼 '싸움룰' 바꾸면 약자가 이긴다

146호 (2014년 2월 Issue 1)

 

 

1. 국제정치의 본질과 비즈니스 월드

 

국제정치의 주인공은 국가다. 국가들로 구성된 오늘날의 세계는 인간들로 구성된 인간사회와도 흡사하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사회를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법칙이 적용되는 소위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everyone against everyone)’로 묘사했다. 홉스는 이러한 상황을자연 상태(state of nature)’라고 명명했으며 자연 상태는 절대적 지배자의 부재를 의미한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무정부상태에서 비롯된다. 서부 개척시대에 보안관이 없는 텍사스의 어느 마을, 그리고 인종청소가 진행됐던 1990년대 중반의 유고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의 혼란 상태를 상상해 보라. 이러한 암울한 세상에서 국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생존(survival)이다. 살아남아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주변 국가들과 경쟁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위한 다양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 극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개별 국가가 가진 능력과 생존전략이 상이하기에 국가들 간의 능력의 차이, 이른바 국력은 불균등하게 분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혼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제 생태계 또한 국제정치의 본질과 유사하다. 국제정치의 주인공이 주권국가인 것처럼 경제생태계의 주된 행위자는 기업이다. 정치는 권력의 추구가 최종 목표이고 국제정치는 국가이익으로 포장되는 권력획득을 통해 생존과 번영을 도모한다. 기업 또한 이윤의 획득을 통해 기업의 생존을 도모하고 이윤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의 번영을 추구한다. 한정된 자원과 이익을 둘러싸고 기업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동종 업계의 기업들과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승리와 좌절의 냉엄한 심판이 내려지며 그 결과로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국제정치에서 권력의 불균등한 분포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기업 간에도 불균등한 성장과 지위의 부여는 필연적이다. 다만 국제정치와 기업생태계의 차이는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상위의 권위체가 부재하지만 기업의 활동에는정부규제라는 강제적인 상위기관과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가 간 이해다툼에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권능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시장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정부의 간섭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2. 강대국의 정치학과 대기업의 정치학

 

국제정치의 주된 행위자는 국가이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강대국이다. 국제정치는 바로 강대국들의 역사다. 대기업과 초거대 기업(글로벌 기업)이 국가경제, 심지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국제정치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는 강대국들의 생존 및 발전 전략에 따라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처럼 강대국들도 국가 이익의 추구를 통해 절대적 지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크게 2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첫째는 강대국의 지위를 넘어서는 패권(hegemony)국가의 등장과 질서의 유지다. 둘째는 강대국들 간 협조 체제를 통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각국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비즈니스에 적용해 설명하면 대기업 중에서도 전체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한 초거대기업(글로벌 기업)이 있고 그 기업의 행태가 전체적인 세계 비즈니스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강대국 간 협조 체제란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전국경제인연합 같은 협력 체제를 말한다.

 

                                 

 

먼저 패권국가 체제부터 살펴보자. 국가는 압도적 국력의 우위를 통해 국제정치의 안정에 필요한 공공재를 보급한다. 패권국가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면 다른 국가들은 패권국가가 창출한 질서에 무임승차(free-riding)해 경제발전을 이루고 군사력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패권국가는 점점 쇠퇴하고 다른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가의 국력을 능가하게 되면서 기존 패권질서에 변화가 생긴다. 전자산업에서 소니와 삼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러한 변화가 전쟁을 통해 일어날 때 그 전쟁을 국제정치에서는패권전쟁(hegemonic war)’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 사이의 패권의 이양처럼 평화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글로벌 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기존 1등 기업과 도전 기업 간에 특허전쟁을 비롯한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과 애플과의 특허전쟁은 비즈니스에서의 패권경쟁이라 부를 수 있다. 패권국가는 경쟁국가의 부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소위예방전쟁’을 수행하기도 하고 부상하는 국가 입장에서는(2등 기업) 패권국가와의 국력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약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감행하기도 한다.

 

패권국가에 대한 부상국가의 도전(1등 기업이 되기 위한 대기업 간의 경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전형적인 예는 바로 기원전 5세기에 벌어졌던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던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마치 현재의 국제정치의 모습처럼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포함해 약 160개의 국가(폴리스)들이 있었다. 당시 최강의 해양 국가였던 아테네 제국을 대륙의 강대국인 스파르타가 먼저 공격함으로써 27년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 당시 누가 봐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왜 패권국가였던 아테네에게 도전했을까?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그 이유를아테네의 국력 증가와 그것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마치 2등 기업이 능력의 열세를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등 기업의 승자 독식이 발생하기 이전에 과감한 도전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사세의 격차가 더 벌어진 이후에 경쟁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도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즉 승리 가능성이 높을 때)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 구조를 설명하는 두 번째는 강대국들이 협조 체제를 구축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제국이나 19세기 영국, 현재의 미국처럼 초강대국인 패권국가가 월등한 능력으로 국제정치 질서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패권국가의 국력이 쇠퇴할 때 기존 강대국들이 협조 체제를 구축해 지역 및 국제질서를 유지한 사례도 있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패권경쟁에서 사라진 후 승전국들인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과 패전국인(하지만 여전히 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중심이 돼 형성했던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가 대표적이다. 다수 강대국 중심의 유럽협조체제를 통해 유럽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약 100년 동안 강대국들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통해 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이어갔다.

 

이는 대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경제단체를 만들어 대기업 중심의 질서를 창출·강화하는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혹은 대기업들이 가격 담합을 통해 시장 질서를 자의적으로 교란하거나 유리하게 재편하는 것과도 공통점이 있다. 국제정치는 패권국가가 만들어놓는 질서와 이에 도전하는 강대국 간의 경쟁, 그리고 각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파워를 지속시키기 위해 만드는 각종 협조체제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빚어내는 일종의 파워게임이다.

 

3.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 갑을의 숙명

 

국제정치가 강대국들 간의 역사지만 그 역사의 현장에는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절대다수의 국가들, 소위 중견국들과 약소국들도 존재했다. 역사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초강대국이었던 아테네와 조그만 도시국가였던 밀로스와의 관계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앞두고 주변 약소 도시국가들의 충성과 복종을 요구했는데 밀로스 섬의 정치가들은 아테네의 요구를 거절했고 밀로스 인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밀로스 인들에게 강대국과 약소국의 숙명과 같은 관계를 대변하는 교훈을 전한다. 아테네인들은국가 간 관계에서 정의는 동등한 힘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름일 뿐이다.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는,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동등한 힘이 필요하며 이러한 힘이 없을 때 정의는 한낱 아름다운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강대국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뿐이고, 약소국은 그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The strong do what they can,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그렇다면 강대국과 약소국 간 전쟁에서 약소국의 패배는 필연적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 전쟁이다.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약소국이었던 북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국제정치 역사에서 예외적인 일탈사례다. 미국은 10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60만 명이 넘는 군인과 18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투입하고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철군함으로써 사실상 패배했다. 미군의 사망자는 58000명을 넘었으며 미군이 사용한 폭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사용했던 양의 두 배를 넘었다. 그렇다면 강대국인 미국이 승리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당시 국제질서에 대한 오판이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수한 프랑스의 공백을 자신들이 메우지 못하면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가 공산화될 수 있다는 소위도미노 이론을 너무 맹신했다. 둘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베트남인들의 절박함과 민족주의에 대해 과소평가했다. 셋째, 국제사회의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군사적 행동을 감행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 반전여론이 생각보다 강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패인을 하나 더 생각해볼 수 있는데 바로 베트남군의 유격전이다. 덩치가 큰 미군이 들어갈 수 없는 땅굴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땅에서 갑자가 튀어나와 총을 쏘는 베트남 군인들은 마치 유령과 같았다. 미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치 큰 덩치에 완전무장까지 하고 육박전을 준비하던 골리앗에게 전혀 다른게임의 룰돌팔매로 대항해 이긴 다윗을 연상시킨다.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인 동티모르 역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대기업과 중소기업(혹은 갑과 을)의 사례에 적용하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대기업들이 자신들만의 능력을 과신해 경제생태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과도하게 개입하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둘째, 대기업들은 이윤을 위해 싸우지만 중소기업()생존을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경쟁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동기와 가치의 속성이 다르다. 즉 생존이라는 사활적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중소기업의 능력은 산술적 합을 능가한다. 셋째, 대기업이 비록 합법적인 제도의 틀 내에서 중소기업과 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초래될 결과에 대해 추상적인정의에 호소하며 여론을 자극한다. 이때 대기업은 애초 자신들이 계획했던 승리의 전리품을 챙기지 못할 수 있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논쟁들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량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크지만 막상 경쟁이 붙었을 때 대기업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의 극히 일부분만 동원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총동원한다. 여기에 시민사회나 노조 혹은 정치권과 연대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면 실제 동원하는 능력(mobilized power) 측면에서 사세의 차이를 메울 수도 있다. 글로벌 기업 간의 이른바패권전쟁에서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여론과 반응, 각 국가의 지원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 또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베트남처럼 아예게임의 방식을 바꾼다면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도 준다.

 

부강샘스라는 작은 기업이 대기업과 벌인청소기 전쟁은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만하다.1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다 한때 MP3플레이어 제조까지 뛰어들었던 부강샘스는 가전 OEM 사업 역시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5건강가전사업부를 신설해 자체 브랜드로 가전 시장에 뛰어들어 기존 절대강자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부강샘스가 삼성전자나 LG전자를 비롯한 대기업과 전쟁을 벌인 건 바로청소기부문이었다. 부강샘스는 마치 베트남이 그랬던 것처럼 대기업과는 다른절박함을 갖고 있었다. 2008∼2009년 아이팟 위주로 재편됐던 전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은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MP3플레이어 자체가 몰락하는 상황이었다. 처음 이 회사가 청소기를 출시했을 때 이들이 시장의 강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카펫이나 마루바닥 청소는 가능했지만 침구나 매트리스에는 쓸 수 없었던 기존 청소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강샘스는 침구 살균 청소기레이캅을 만들었다. ‘레이캅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기존 청소기시장까지 위험해질 것이라고 여긴 대기업이 곧바로 침구 살균 청소기를 내놨지만 작고 약해보이던 부강샘스라는 기업을 좀처럼 이기긴 쉽지 않았다. 부강샘스는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펼친 반면 대기업은 청소기 시장 전체의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면서 방어적으로 뛰어든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침구 살균 기능 청소기 시장은 부강샘스가 만들어낸 시장이었다. 그들이 만든 싸움터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특허를 새로 획득하면서 싸우는 부강샘스는 오히려 강자였고 승자가 됐다. 또 베트남전에서 전 세계적 반전여론이 베트남의 승리를 도운 것처럼 때마침 한국 사회에 불어오기 시작한상생강풍과 여론도 부강샘스에 힘을 실어줬다.

 

4. 약소국의 생존전략과 그 함의

 

국제정치에서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항상 패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전쟁에서 강대국의 승리는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전쟁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 대결에서 종국의 형태로 발발하는 것이며 통상 전쟁 발발 이전에 강대국과 약소국은 국가이익을 둘러싸고 치열한 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그 게임은 종종협상(bargaining)’의 형태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항상 불리한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 1:1 게임이다. 두 번째는 다수의 강대국들과 약소국 간 다자:1의 게임이다.

 

1) 1:1 협상

 

협상게임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로 1968년 발생한푸에블로호 사건(Pueblo Incident)’을 들 수 있다. 1968 123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경, 미국의 정보 수집함인 푸에블로호(The USS Pueblo)가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 해군에게 나포됐다. 미 해군에게 이 사건은 1807년 미국의 체사피크(The USS Chesapeake)호가 영국 해군에게 나포된 이래 근 160년 만에 발생한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승무원 1명을 사살했고 나머지 82명을 억류했다. 이에 대항해 미국은 한반도 동해안에 대대적인 무력증강에 나섰고 한국과 일본에도 공군력과 해군력을 강화하는 등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 15년 만에 제2의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면서 심각한 안보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의 존슨 행정부는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동북아시아에서 자국의 안보이익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했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미국의 세계 전략과 국익 확보에 대한 중요한 테스트로 간주했다.

 

이에 미국은 1월 말 북한과의 비공개 직접협상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사건발발 10일 만인 22일 판문점에서 양국 간 직접협상이 시작됐다. 협상 초기 북한은 미국이 푸에블로호의 간첩행위를 시인하고 영해침범을 사과함과 동시에 향후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를 보장한다면 승무원들의 송환을 검토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푸에블로호의 북한 영해 침범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인도주의적 견지와 소련함정 정보수집 활동의 유사사례를 근거로 함정과 승무원들의 조기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협상이 장기국면으로 접어들자 미국은 적절한 유감을 표명할 수 있다는 다소 유화된 제안을 했으나 북한은 초기의 요구사항들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27차례 진행하면서 북한 측이 애초 제안한 요구사항들을 모두 수용했고 사건발발 11개월이 경과된 1968 1224일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판문점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미국 측에 인도됐다.

 

당시 미국과 북한 간 협상게임에서 약소국인 북한이 강대국인 미국에 굴복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친 협상 결과 자신의 요구사항을 대폭 관철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당시 베트남전에 군사적 전원을 집중하고 있었던 미국 존슨 행정부는 북한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극단적인 대북 강압을 펼칠 수 없었다. 즉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미국의 능력이 부족했고 전쟁의 궁극적 승리도 보장할 수 없었다. 북한과의 전쟁은 소련과 중국의 개입을 야기해 자칫 세계 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에 강압전략(coercive strategy)으로 나가다가 대안을 제시하는 상황이 되자 결국 협상과정에서 북한을 제대로 위협하지 못했다.

 

둘째, 약소국이었던 북한은 미국이 소중하게 생각하는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82명의 미군의 생명을 담보로 장기간 벼랑 끝 전략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미국 존슨 대통령은 포로들의 생환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이를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대안들도 효과와 성공 가능성을 떠나 반대하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 여론이 점차 비우호적으로 전개됐던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나포 사건 직후 미국 여론은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경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북한이 포로들의 열악한 모습을 세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전 방위적인 공세를 펼치자 미국 여론이 점차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포로들의 생환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SK텔레콤이 1999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와 코오롱이 대주주로 있던 신세기통신을 전략적 제휴를 거쳐 합병까지 해낸 사례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SK텔레콤은 당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에 임했고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세계적 철강업체 포항제철과의 협상이 쉬운 건 아니었다. SK텔레콤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서 어떤 시장에서나 영역에서나실패했다는 인식을 만들기 싫었던 포항제철의가치를 파악하고 레버리지를 쥐었다. 또 이미 세계 시장에서 다른 강자들과철강 전쟁을 벌이고 있는 포항제철 입장에서국내 통신시장 지분을 놓고 벌이는 협상을 오래 끌어 좋을 것 없다는 상황도 적절히 활용했다. 마치 북한에 잡혀 있던 포로들이 미 국민들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포항제철 역시명예로운 철수를 할 수 있었고 SK텔레콤은 이득을 얻었다.

 



2) 1:() 협상

 

약소국이 다수의 강대국 그룹과의 협상게임에서 장기간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실리를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이다. 6자 회담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2003 8월 말 결성된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직접적 이해당사국인 남북한이 참여한 다자적 협의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6자 회담 협상 과정에서 종종 합의를 한 후 이에 대한 대가를 챙긴 종국에는 배신하는 협상전략을 채택해 왔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인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북한의 벼랑 끝 전략과 살라미 전술이 효과적으로 작동한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강대국들 간 다자적 연대인 6자 회담 자체의 역할에 근본적 한계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대국들의 다자간 연대인 6자 회담은 그간 북한의 비핵화 목표 달성에 실효적 도구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북한의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북한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도 없었으며, 특히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추진을 사전에 차단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주어진 경제지원을 향유하면서 핵무기 및 운반순단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버는 데 방조한 측면마저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낮은 실효성이 단지 전술상의 실책이나 방법론상의 문제가 아닌근본적이며 구조적인한계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참여국 간 공동의 목표에 대한 동기의 강약 정도가 상이했다는 말이다. 또 공식적인 제도(institution)가 아닌 약한 차원의 레짐(regime)이기 때문에 5국 간 배신국가나 북한의 기만행위에 엄격한 제재를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가할 수 없었다.

 

6자 회담 실패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수의 거대 기업이 연대해 중소기업()의 굴복을 강제하더라도 대기업들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나 게임 참여의 동기가 상이할 경우, 의외로 대기업들 권력의 총합은 산술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보다는 내부 갈등과 입장의 조율로 인해 예기치 않은 부정적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둘째, 대기업들 중 게임에 참여하는 중소기업과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음지에서 지원하는 소위흑기사(black knight)’가 존재할 수도 있다. UN 주도의 대북제재에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이에 대한 국제정치적 설명이다. 즉 중소기업()이 자신의 기술적 수준이나 특장점을 필요로 하는 특정 대기업과 상호의존성을 높임으로써 기업의 생존능력과 가치를 제고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국력의 총량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지만핵무기라는 비대칭 무기라는 전력을 활용해 강대국들과 협상을 하는 것처럼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손실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특별한 비대칭 능력을 확보한 경우에도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카카오톡이 국내 3대 통신사와 벌인 게임은 이 같은 전략을 적절히 활용한 좋은 사례다. 카카오톡이 이동통신사 수익의 중요한 축이었던문자메시지시장을 잠식해오자 3공룡은 카카오톡을 상대로 다양한 방식의 압박에 나선다. ‘4자 회담에서 이통 3사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카카오톡은 음성메시지 서비스까지 만들어낸다. 이동통신사는 심지어 카카오톡과 전쟁을 불사하기 위해조인이라는 3사 통합 문자메시지 앱까지 만들었지만 이 역시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당시 이동통신사 3사는 비록 카카오톡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었지만 서로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고 그동안 카카오톡은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이통 3사 이용자 모두를 끌어들인 엄청난 수의 가입자, 비대칭적 전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 같은 비대칭적 전력이 어느 순간 확보되자 협상테이블에서 카카오톡의 힘은 더욱 커지게 됐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다 복잡한 대기업 의사결정구조로 인해 최초의 3사 통합 메시지 앱조차도 출시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 반면 일사분란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카카오는 사안이 진전될 때마다 자신의 이득을 얻어낼 수 있었다. 카카오톡과 이통 3사 간 싸움에서는 숨은 플레이어가 하나 있다. 얼핏 보면 4자 회담의 구성이지만 사실은 5자 회담에 가까운 구조였다. 바로 꽤 오랜 시간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던 ㈜카카오에 800억 원대의 큰 투자를 한 중국의 대표 IT기업 텐센트사였다. 투자를 했다는 건 곧 카카오톡과 이해관계가 같다는 뜻이다. 6자 회담에서 중국이 북한의 흑기사 역할을 했던 것처럼 카카오톡은 큰 세력(텐센트)에게 상호의존성을 높이면서 기업의 생존능력 향상과 가치제고를 할 수 있었다. 텐센트가 카카오톡의 흑기사 역할을 한 셈이다.

 

정성윤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yooni0411@korea.ac.kr

정성윤 교수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아메리칸대 동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겸 연구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다. 각 국가의 위기 시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북한의 외교전략,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협상전략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