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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원

“고급호텔과 레스토랑은 우리의 스승” 지방병원서 최고의 롤모델로 도약

이방실 | 139호 (2013년 10월 Issue 1)

 

 

 

“선병원이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은 정말 놀랍습니다. 방문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갑니다. 국제적으로 계속 승승장구해 나가는 모습을 기원합니다.”

 - 입 킷 링 싱가포르 쿠텐팟병원 매니저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 수준 높은 의료진, 친절한 간호사, 최첨단 의료시설, 게다가 훌륭한 통역서비스까지!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선병원에 대단히 만족합니다.”

- 아바나센거 블라디미르 러시아 중앙은행 사할린 지점장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혹은 유수의 대학병원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인 선병원을 향해 쏟아진 찬사다. 의료법인 영훈의료재단 선병원의 모태는 1966년 대전의 한 시골 동네에서 개원한선정형외과 의원이다. 가정집이 즐비해 있던 동네의 2층짜리 건물에서 20개 병상을 놓고 시작한 선병원은 현재 대전선병원(중구 목동), 유성선병원(유성구 지족동), 선치과병원(중구 중촌동), 선병원국제검진센터(유성구 지족동) 등 총 4개 병원으로 커졌다. 총병상 수 900개에 일일 외래 환자 수만 2500여 명에 달할 정도다.

 

선병원을 찾는 건 비단 환자들만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중앙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등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선병원을 찾은 국내 종합병원만 지금까지 100곳이 넘는다. 국내 병원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 몽골 등 해외 의료기관들도 병원 경영에 대해 한 수 배우러 선병원을 찾고 있다. 아바나센거 블라디미르 지점장처럼 해외에서 원정을 와 건강검진에 수술까지 받는 외국인 환자들도 상당수다. 실제 지난해 선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만 2500여 명이 넘는다. 대학병원도 아니고 게다가 수도권 지역에 있지도 않은 일개 지방병원이 내로라하는 국내외 병원들의 롤모델로 성장하게 된 비결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

 

 

 

형제가 운영하는 선병원

선병원은 47년 전 선정형외과 의원을 세운 고() 선호영 영훈의료재단 초대 이사장의 아들 3형제가 운영하는 종합병원이다. 가톨릭의대 정형외과 교수 출신인 둘째 아들(선두훈)이 선친의 뒤를 이어 현재 의료재단 2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시티은행 자금부장 출신의 전직 금융인인 셋째(선승훈)가 의료원장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부한 치과 전문의인 넷째(선경훈)가 치과병원장을 각각 맡고 있다. 이름 없는 지방의 작은 병원에 불과했던 선병원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선승훈 의료원장(1992), 선경훈 치과병원장(1997), 선두훈 이사장(2001) 3형제가 선병원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3형제 중 가장 먼저 선병원으로 내려온 건 경영학을 공부한 선승훈 의료원장이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선승훈 원장은 7년간 일하던 시티은행을 그만두고 1992년 대전으로 내려왔다. “병원이 갈수록 커져 힘드니 도와달라는 선친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선병원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우선, 선병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정형외과에서 종합병원으로 확대했고 중부권 최초의 종합검진센터를 설치했으며 의료법인 영훈의료재단까지 설립해 유성에도 선병원을 개원했다. 급기야 1990년엔 대전 선병원을 현재 위치인 목동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진료 과목 수 19, 병상 규모는 295개로 크게 늘렸다

 

병원 규모는 이렇게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운영 시스템은 따라주지 않았다. 체계적 내부 시스템 개선 없이 덩치만 커져서는 장차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선호영 박사의 생각이었다. 병원에도 제대로 된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그가 여러 아들 가운데 맨 처음 도움을 요청한 대상이 의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 온 선승훈 원장이었다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선호영 박사의 부름을 받고 처음엔의학엔 문외한인 내가 과연 병원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는 선승훈 의료원장은내가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와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에 설득돼 미련 없이 예전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고객인 환자 관점에서 병원 리모델링 추진

대전에 내려와 의사가 아닌 고객, 즉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을 살펴보니 개선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경영학을 전공한데다 대표적인 서비스업인 금융업에 몸담으면서 선승훈 의료원장(당시 경영총괄 이사)에겐 무슨 일을 하든 고객을 첫 번째로 생각하고, 고객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내려와 보니 모든 게 공급자인 의사들 위주로 돼 있었다. 병원은 단순히 의료인들이 진료를 하기 위한 기능적 공간일 뿐 고객인 환자들을 위한 관점에서의 공간 설계는 너무나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일단 병원 로비부터가 문제였다. 기본적인 안내 표지판만 있을 뿐 여러 진료과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진료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 시스템이 없었다. 이 때문에 처음 병원을 찾은 이들은 아파서 경황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표지판만 보고알아서 잘찾아가야 했다. 진찰실 앞에 와서도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조그마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벽 너머에 있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하염없이 대기해야 했다. 선병원의 모태인 정형외과 환자들의 경우 신경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각 진료과가 서로 다른 층에 있다 보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층간 이동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외래 환자들만 불편함을 겪는 게 아니었다. 입원 환자들의 경우 세면대 높이가 너무 낮고 샤워실 입구도 좁아서 세수 한번 하거나 간단히 머리 감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선승훈 원장이 부임 후 병원 리모델링 작업에부터 손을 댄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진료 공간을 의사가 아닌 환자의 관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그는 우선 병원 로비에 종합 안내데스크를 만들어 처음 선병원을 찾은 이들이 쉽게 원하는 진료과를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병원 바깥 입구에는 발레 파킹을 해주는 직원을 상시 배치,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편의를 도왔다. 진찰실의 경우 환자와 간호사를 격리시켰던 벽을 허물어 간호사가 개방된 상태에서 외래 환자들을 응대하도록 했다. 특히 각기 다른 층에 있던 정형외과, 척추센터, 신경외과를 동일한 층으로 모아 한데 배치한 후 수납 등록부터 약 처방까지 한군데에서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뼈와 신경을 함께 보는 협진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입원 환자들을 위해 화장실 세면대를 1m15㎝로 높여 휠체어가 한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고 샤워실 입구도 침대 카트 너비에 맞춰 넓히는 공사를 했다. 병실마다 이음턱도 모조리 없애 환자들이 이동할 때 자칫 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이 밖에 물리치료실의 경우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창문과 창문을 분리시키는 벽들을 다 허물어 한 개의 창이 벽 전면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대형 공사도 실시했다.

 

응급실 구조도 개선했다. 앰뷸런스가 드나드는 통로를 일반 출입구와 따로 만들어 환자들을 신속하게 옮길 수 있도록 했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눈이 부시지 않도록 조명도 간접 조명으로 바꾸었다. 응급환자 전용 CT X-Ray 촬영실을 별도로 마련한 것은 물론 다른 층에 있던 MRI와 심혈관 촬영장비 역시 응급실과 같은 층(1)으로 옮겨 응급환자들의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응급실 한편에는 119 구조대원들의 쉼터 공간을 마련해 놓고 구조대원들이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커피, 컵라면, 음료수 등도 비치해 놓았다.

 

물론 이 같은 리모델링을 한꺼번에 시작할 수는 없었다. 부임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1992년 선병원 부임 당시 선승훈 원장의 나이는 불과 서른셋에 불과했다. 의료진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 경영총괄이사가 나타나서는 난데없이 호텔에서나 어울릴발레 파킹을 한다고 하질 않나, 창문이 없는 것도 아닌데 햇볕 조금 더 들어오게 한다고 벽을 허물지 않나, 심지어 각 층에서 멀쩡히 잘 진료하고 있는데 어느 날 다른 과들과 같이 모여 한 개 층을 나눠 쓰라며 이사까지 종용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관점 차이로 선승훈 원장과 의료진 간에는 때때로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과 갈등에 부딪힐 때마다 선승훈 의료원장은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는 이규은 행정원장(당시 기획실장)과 함께 의료진 한 사람 한 사람을 11로 만나서 왜 이런 리모델링이 필요한지에 대해 장시간 설득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 소재의 유명 병원은 물론이고 미국 메이요클리닉 등 해외 병원에까지 벤치마킹 출장을 다녀 온 결과물을 제시하며 반신반의하는 의료진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꾸준히 힘썼다.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선승훈 의료원장의 설득 작업, 리모델링을 할 때마다 높아지는 고객 만족도 등에 힘입어 의료진도 점점 선승훈 의료원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공감해 나갔다.

 

 

의사들에게까지 예절 교육 실시

선승훈 의료원장은 또한 조직원 대상의 인사 예절 및 각종 서비스 교육에도 집중했다. 따뜻한 인사는 서비스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병원 같은 지방의 소형 병원이 유수의 수도권 병원들과도 비교해 경쟁력을 갖추려면 수술 잘하는 건 기본이고 친절하기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선승훈 의료원장은 간호팀, 원무팀, 시설팀 등 각 부서에서 가장 모범적인 최정예 직원 20여 명을 선발해 집중 교육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 객실연수원에서 23일간 합숙 훈련을 받거나 신라호텔 객실담당 교육관을 대전으로 초빙해 집중 교육을 받는 식이었다. 의료행위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조직원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선 각 부서에서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key influencers)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 수간호사, 시설팀장 등 각 부서장들이 새로운 변화 움직임에 동조하기 시작하면 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의사들에겐 접근을 달리했다. 진료과마다 머리에 해당하는 과장급 의사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부서와 달리 의사들은 모두가 전문가로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하다. 따라서 의사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과장 한 사람만 변화시키는 건 소용이 없고 의사들 개개인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나 예절 교육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다른 부서보다 훨씬 큰 상황이었다. 당시 대부분 의사들은의사가 진료만 잘하면 됐지 왜 다른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인사 예절 교육할 시간에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보는 게 낫다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예절을 포함한 각종 서비스 교육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선승훈 원장은 의사들을 2명씩 짝지어 놓고 환자와 의사 역할을 번갈아 해보게 한 후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들의 응대 태도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역할극(role-playing)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처음엔 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던 의사들도 자신들의 영상을 보고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비디오로 촬영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평소 실제 환자들을 대할 때보다 훨씬 신경을 써서 상대방을 대했는데도 진료를 하면서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환자의 질문에 성의 없이 건성으로 대답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자정말 저게 내 모습이 맞냐며 여기저기서 반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의사들에게도 서비스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형성된 건 물론이다. 이규은 행정원장은이젠 선병원 의사들은 누구나 예절과 서비스 교육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전문의가 보기엔 아무리 사소한 증상일지라도 의학 지식이 많지 않은 환자들은 당장 죽을 병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친절하게 차근차근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말했다.

 

선병원의 서비스 교육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스탭과장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의 경우 환자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발성법은 물론 신뢰감을 더해주는 눈빛 교육까지 시킬 정도다. 2003년부터는 해마다 선승훈 의료원장 인솔하에 전공의와 수간호사는 물론 위생팀, 영양팀 등 각 부서의 핵심 인력들을 데리고 해외 유명 의료 기관을 비롯해 호텔, 유명 식당 등 좋은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벤치마킹 여행도 다닌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직접 다 경험해보면서 배울 점을 찾아 병원 경영에 도입하자는 취지다. 선승훈 원장은 직원들과 똑같이 이코노미석 비행기를 타고 가 함께 밥을 먹고 유관 기관을 방문하며 일정을 소화한다. 그는고급 호텔과 유명 레스토랑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스승이자 배움터라며매번 가는 여행이지만 동행하는 이들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서로 느끼는 바가 달라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오곤 한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자율권 및 책임 강화

고객 최접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권한을 대폭 늘린 것도 선병원만의 독특한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환자가 위급하다고 생각되면 말단 간호사일지라도 담당 전문의에게 한밤중에라도 직접 전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전문의에게 전화할 수 있는 건 의사들밖에 없었다. 그것도 1년 차 레지던트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2년 차 레지던트에게 연락하고, 2년 차도 해결하지 못하면 3년 차를 호출하고, 이것도 안 되면 전문의에게 연락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위계적 시스템이 나름의 장점도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볼 땐 매우 경직적인 구조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단 1초라도 빨리 해결방법을 찾아 목숨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불필요하게 층층시하로 짜인 연락망을 따르다가는 정작 의사가 도착할 때까지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봤다. 이규은 행정원장은상징적이긴 했지만 환자를 최접점에서 돌보는 간호사들의 판단 능력을 인정해 준 조치였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사기가 많이 올라갔다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를 뿐 환자를 대하는 일에 관해서는 의사나 간호사 모두가 동등한파트너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여러 단계 복잡한 결재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수간호사의 판단하에 곧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고객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서비스의 개선이 이뤄지려면 이들과 가장 많이 접하는 간호사들의 재량권부터 높여야 한다고 본 경영진의 결정이었다. 예를 들어 병실이 건조하다는 이야기를 환자로부터 들었다면 실제 습도를 체크하고 가습기 상태를 점검해 본 후 가습기를 즉시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환자들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지출들을 결재 대기 때문에 오랫동안 끌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렇게 간호사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책임 또한 늘렸다. 수간호사 회진이 대표적인 예다. 보통 의사들만 회진하는 여느 병원과 달리 선병원에서는 수간호사들도 병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회진을 한다. 진료를 보는 건 아니지만 환자들이 입원해 생활하면서 겪는 애로점, 담당의 회진 때 미처 전하지 못한 질병의 징후 등을 환자 및 보호자들로부터 받아 종합한다. 수간호사들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환자들의 불만사항을 꼼꼼하게 메모한다. 예를 들어 ‘OOO 환자는 높은 베개를 싫어함’ ‘XXX 환자는 음식을 짜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가 있음등 시시콜콜한 사항부터인공관절 수술 때문에 입원한 △△△ 환자는 혈당이 높으므로 당뇨를 체크할 필요가 있음처럼 환자가 갖고 있는 잠재질환에 대한 내용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는다. 그 후 이 내용들을 컴퓨터에 입력해 다른 간호사는 물론 의사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간호사 개개인이 모은 서비스를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치다. 이규은 행정원장은이렇게 환자에 대한 정보를 DB로 구축해 놓으면 환자가 다시 선병원을 찾았을 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고객처럼 환자에게 최상의맞춤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선병원은 충남대전권 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환자 만족도최우수 A등급을 받는 성과(2008년 보건복지부 조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환자만족도 조사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병원은 전국 500병상 이상인 86개 의료기관 중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려대병원 등 9개 병원뿐이었다.

 

최첨단 국제검진센터 개원

2012 7월 선병원은 유성에 연면적 12561(지상 5, 지하 1) 규모의 국제검진센터를 개원했다. 국제검진센터 1층 로비 중앙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다.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테리어도 고급스럽다. 실내 정원은 물론 고급 숙박 시설과 피부관리실까지 마련돼 있다. 인테리어만 화려한 게 아니다. 국제검진센터 바로 옆에 암센터가 붙어 있어 검진과 암센터 간 협진은 물론 질환 발견부터 치료까지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한다. 특히 암센터에는 대당 수십억 원에 달하는 최첨단 암 수술 장비인래피드 아크까지 구비해 놓아 서울의 여느 대형 병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췄다. 실제로 선병원 국제검진센터는 지난 4월 건강검진센터로는 세계 처음으로 국제의료기관 평가위원회 인증(JCI)을 받았다. 무려 1200개에 달하는 평가 항목을 모두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는 인증이다.

 

선병원이 이토록 호화로운 최첨단 검진센터를 세운 이유는 지방 병원이라는 핸디캡을의료 관광콘셉트와 접목해 장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서울과 달리 대전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려는 환자들의 숫자는 제한적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선병원은 비록 소수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단순한 검진 서비스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걸 목표로 삼았다. ,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에 휴양 개념으로 방문해 하루 이틀 푹 쉬면서 기본 검사는 물론 암 검진, 나아가 심장과 뇌 분야까지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선병원은 국제검진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국, 몽골,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부유층 고객들을 핵심 타깃으로 삼아 해외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몽골 현지 의사 출신 고급 인력들을 직원으로 고용해 국제진료팀을 꾸렸다. 러시아와 몽골인 직원의 경우 한국으로 시집온 고급 여성 인력을 채용했고, 중국인의 경우 한국 의사면허도 갖고 있어 중국에서 환자가 올 경우 코디네이터 역할과 함께 실제 진료까지 할 수 있다.

 

국제진료팀원들은 해외 환자가 입국해 병원을 떠날 때까지 해당 고객을 위한 11 전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 환자가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마중 나가 대전까지 모셔오는 것은 물론 체류 기간 내내 환자를 지근거리에서 살피며 통역을 제공하고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체크해준다. 먼 타국에서 동포의 도움을 받는 것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일 텐데 고국에서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살뜰하게 살펴주니 당연히 외국인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중국 모 기업의 경우 자사 임원들을 선병원 국제검진센터에 부부동반 형태로 단체 검진을 보낼 정도다. 박희숙 선병원 국제검진센터 부장은부부동반 중국인 단체 검진객들의 경우 대부분 오후에 도착해 병원 특실에 짐을 풀고 푹 쉬었다가 아침 일찍 공복에 검진을 받고 퇴원한다일류 호텔 못지 않은 시설에 검진센터 안에 고급 피부관리실까지 있어 남편을 따라 온 부인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선병원, 의료 한류의 메카로 키운다

47년 역사의 선병원은 현재 중부권 최대 규모의 메디컬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25만 명에 달하는 연간 입원 환자 중 약 30%는 충청권 이외 지역에서 온다. 특히 대전 선병원 내 위치한 척추관절센터 수술환자의 경우 10명 중 1.5명이 수도권 거주 환자들이다. 국제검진센터의 경우 일 평균 방문 고객 250여 명 중 5%가 수도권 지역 거주자다. 국제검진센터와 암센터를 연계한 협진 시스템 덕택에 암 등록환자(암 확진을 받은 환자) 수는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118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89)에 비해 2.4배나 늘었다. 암 확진을 받은 후 선병원 암센터에서 치료까지 받은 환자 수도 174명에 달한다.

 

지난해 선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20여 개 국 총 2514. 전년도(854)에 비해 무려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2500여 명의 해외 방문 고객 중 건강검진 차 선병원을 다녀간 환자 수만 813(2012)에 달한다. 국제검진센터 개원 시기가 작년 7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반년 만에 전년도 전체 외국인 방문객 수에 버금가는 성과를 올린 셈이다. 이 같은 성과는 선승훈 의료원장과 이규은 행정원장 등 경영진이 중국, 몽골, 베트남,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해외 환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덕택이다. 올 상반기까지 선병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은 2600여 명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외국인 환자 수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4000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들이 내원할 것이라는 게 병원 측 추산이다.

 

또한 선병원은 2010 10월엔 몽골 울란바토르 제3국립병원 내에 몽골 최초의 해외 병원 사무소를 개소하고 2012년부터는 향후 5년간 몽골 의사와 직원들을 선병원으로 파견받아 6개월씩 연수를 시켜주는 등 민간 차원의 국제 교류도 활성화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엔 정부의글로벌 헬스케어 유공 포상에서 서울대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이어 동상격인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선승훈 의료원장은국제검진센터와 암센터를 발판으로 삼아 선병원을의료 한류의 메카로 키운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선병원 성공 요인

①‘킹핀 전략(kingpin strategy)’으로 조직 내친절 DNA’ 확산 경영학에킹핀 전략(kingpin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얻으려면 10개의 핀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5번 핀(이른바킹핀’)을 노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영역이나 사람에 집중해야 조직 전체로 변화의 흐름을 확산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킹핀 전략의 핵심 논리다. 선승훈 의료원장이 부임 후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예절 및 서비스 교육을 강행할 때 실시한 것도 바로 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30대 젊은 나이에 의사도 아닌 선승훈 의료원장이 의료진을 대상으로병원도 서비스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본인 힘으로 모든 조직원들을 일일이 설득하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그는 간호팀, 시설팀, 원무팀, 환경팀 등 각 부서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에 공감할 만한 모범 직원들만 추려 집중적으로 의식 개조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 객실연수원에서 직원들과 함께 합숙 훈련도 마다하지 않으며 친절한 서비스가 병원 경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해마다 해외 유수의 병원은 물론 유명 호텔이나 식당 등을 돌아보는 벤치마킹 투어 역시 조직 내 킹핀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렇게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해외에 나가 선진 서비스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온 직원들은 각 부서로 돌아가 경영진을 대신한 변화 주도자(change-agent)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선병원 조직 전체에친절 DNA’가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토양이 됐다.

 

② 시각화(visualization)를 통한 효과적 커뮤니케이션 선승훈 의료원장은 지금까지 여러 혁신 노력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기존 병원 구성원들에게 고객 중심으로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득하는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변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조직원들의 반발이 컸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반발은 의사들에게 친절 교육을 강행할 때였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의사들에게 본연의 업무인 진료 외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노릇인데, 난데없이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하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선승훈 의료원장은 의사들의 행동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말로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직접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백 마디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의사들이 자신들이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태도를 바꿨다. 자기가 어떤 태도, 어떤 말투로 상대방을 대하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화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들은 스스로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다. 결국 이는 선승훈 의료원장의 경영 철학에 가장 반발이 높았던 조직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얻는 계기가 됐다.

 

③ 간호사에 대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 통해 고객 만족도 제고 의사와 간호사를 일반 기업 조직 구성원으로 빗대 보면 의사는 R&D나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간호사는 고객 최접점에서 일하는 영업사원으로 각각 비유해 볼 수 있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에선 엔지니어가 시장이나 수요자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수요자인 고객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그만큼 영업사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병원 경영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의료 기술과 의료 장비가 발달할수록 진료, 수술 등 병원 본연의 기능 측면에서 차별화를 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진료와 수술은 기본이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더해져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를 간파한 선병원은 고객 최접점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했다. 결재 단계를 간소화해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은 재량껏 즉시 구입할 수 있도록 했고, 위급한 상황에는 담당 과장에게도 직접 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줬다. 특히 수간호사 회진 등을 통해 고객의 불만과 각종 애로점을 취합한 후 이를 조직 전체와 공유함으로써 개별 환자마다 최적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즉각적인 서비스 개선과 함께 친절한 마인드로 무장한 선병원 영업사원(간호사)들의 수고 덕택에 고객(환자)들의 만족도는 자연히 높아졌고, 그 결과 선병원은 충남대전권 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환자 만족도최우수 A등급을 받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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