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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Drucker Is Still Alive

준비된 즉흥연주, 재즈의 역동성을 배우자

허연 | 127호 (2013년 4월 Issue 2)

 

 

오케스트라 조직

 

피터 드러커는 지식사회에서 요구되는 조직의 모습을 설명하며 오케스트라를 예로 든 바 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심포니(symphony)같이라는 의미의 ‘sym’소리라는 의미의 ‘phony’가 합쳐진 단어다. 오케스트라의 생명은 상호의존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성을 통해 집단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힘겨운 창조의 과정이며 정교하게 이뤄지는 협업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예외 없이 적용될 명확한 책임, 높은 수준의 효율을 이끌어 내는 합리적 규칙이 요구된다. 따라서 드러커는 오케스트라 조직의 핵심 개념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했다.

 

1)어떻게 구성원 간에 민첩하고 경제적인 협력이 이뤄지도록 하며 응집력 높은 통일체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

2)구성원들을 공통의 목표와 계획에 연결시키기 위해서 어떤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가.

 

오케스트라 단원 중 지휘자는 유일하게 직접 소리를 내지 않는 연주자다. 지휘자의 역할은 각각의 연주자가 만들어 낸 음악으로 하모니를 창조하는 것이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수직적 지휘체계에 의해 움직이며 연주자는 지휘자에 의해 허락된 범위 내에서 또는 지시된 방식으로 악보를 연주한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주어지고, 권한의 크기에 따라 조직화되며, 엄격한 규칙과 통제를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오케스트라는 관료주의적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리처드 해크먼(Richard Hackman)은 미국 등 4개 국의 78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조사했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오랜 기간 훈련을 통해 높은 수준의 전문적 역량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역량을 이용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직업만족도가 연방교도소 경비원이나 수술실 간호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드러커는 이러한 관료적인 오케스트라 조직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개인의 강점을 활용하면서 협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 음악의 오케스트라보다는 재즈를 연주하는 소규모 밴드의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재즈밴드 조직

 

오케스트라 연주가해석된 것을 실행에 옮기는 작업으로 본다면 재즈에서의 연주는 해석하면서 진행한다고 할 수 있다. 재즈에서 연주자는 악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곡을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해 직관을 연주로 표현한다. 오케스트라가 악보에 충실한 정형화된 질서를 특징으로 한다면 재즈는 악보의 틀을 벗어난 탈형식성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프랭크 바렛(Frank Barrett) 등 몇몇 학자들은불확실성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기업환경에서는 기존의 관행과 질서를 벗어난 예기치 않는 신속한 행동이 요구된다고 하며 새로운 경영의 패러다임으로 재즈밴드 조직을 제시한 바 있다.

 

오케스트라를 경영의 메타포로 활용할 때 초점은 지휘자에 맞춰진다. 그런데 재즈밴드에서는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1920∼30년대 스윙재즈, 일명 빅밴드 시절이라 불리던 당시에는 재즈 밴드에서 지휘자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4∼5명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전형적인 재즈밴드에서는 서로 다른 악기를 조율하고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재즈밴드에서는 모두가 리더이며 동시에 모두가 리더가 아닐 수 있다. 재즈 즉흥 연주에서 연주자들은 번갈아 가면서 솔로 연주를 펼친다. ‘트레이드라고 불리는 이러한 연주 방식은 모든 연주자가 솔로잉과 서포팅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가 솔로연주를 할 때 다른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 소리는 톤 다운을 시키며 서포팅 역할을 수행하면서 피아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잠시 후 솔로잉의 역할을 맡았던 피아노는 그 역할을 다른 연주자에게 넘기고 자신은 기꺼이 서포팅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연주자들끼리 보여주는 역동적 상호작용(dynamic interplay)의 개념은 기업 환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떤 과업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항상 위계상에서도 가장 높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과업의 특성이나 처해진 환경에 따라 팀장이 될 수 있고 대리가 될 수도 있다. 그가 누구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솔로잉의 역할을 수행하고 주위의 동료들은 그런 환경이 가능하도록 서포팅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재즈에서는 모두가 리더이기도 하며 동시에 모두가 리더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 팀제를 도입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최소의 구조화로 최대의 유연성(minimum structure with maximum flexibility)’을 내기 위해서다. 이러한 경영 가치는 재즈밴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즈 연주자들은 연주 시 지켜야 할 규칙을 최소화함으로써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자율성과 상호 의존 간의 역동적 균형을 이뤄낸다.

 

혁신은 옥시모론(Oxymoron)

 

그렇다면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 리더들이 지향해야 할 조직의 모습은 무엇일까? 드러커는 이미 40년 전부터 혁신은 야누스적 사고를 요구하는 옥시모론(Oxymoron)의 개념임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근본적 긴장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는 것과 현상을 유지하는 것의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바람직한 경영자의 과업은 쓰여진 곡을 단지 해석하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재즈를 특징짓는 즉흥연주가 연주자의 직관을 통해 악보에 없는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즉 작곡과 연주가 공존하는 것임을 볼 때 드러커가 말한 바람직한 경영자의 모습은 재즈밴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존 카오(John Kao) 전 하버드대 교수 또한 재즈의 즉흥성을 경영의 메시지로 풀어 쓴 책 에서 상충하는 가치 속에서스윗 스폿(sweet spot)’을 찾는 작업이 혁신에 이르는 길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기업의 리더들은 직면한 과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노하우가 기록된 악보를 들여다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는 즉흥성의 스킬이 중시된다. 이 세상은 재즈클럽과 흡사하다. 간단히 말해 예술적 영감이 요구되는 시대다. 리더의 역할은 시스템적이고 분석적인 활동과 개인의 창의성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활동, 이 두 가지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윗 스폿을 찾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재즈밴드 특징의 역설적 결합은 마치두 마리의 말 타기(riding two horses)’와 같다. 두 마리의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상충하는 가치 속에서역동적 균형(dynamic balance)’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혁신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즉흥연주와 체계적 폐기

 

즉흥성은 재즈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재즈 연주자는 어제와 다르게,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악보에 없는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도전적 상황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재즈 본능은 즉흥연주에서 비롯된다. 재즈에서의 즉흥연주가 연주의 한 형태가 아닌 본질로서 인식되는 것은 재즈의 태생적 배경에 기인한다. 교회에서 출발해 오선지 위에서 형식미를 갖추며 발전해온 클래식과 달리 뉴올리언스 유흥가에서 시작된 재즈는 당시 연주자들이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해 탈형식적인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연주의 주된 방법론으로서 즉흥성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즉흥성이라는 단어가 갖는 가벼움이 즉흥연주자의 연주에 대한 진지함을 왜곡시키거나 희석시킨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즉흥연주의 본질에 대해 재즈평론가 김현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재즈에서 즉흥연주의 중요성은 지대하지만 그 자체를 하나의 본질로 파악했을 때 오히려 재즈의 매력은 급감한다. 연주자의 솔로 부분이 유난히 돋보일 때 우리가 얻는 감동의 원천은 작곡을 훌륭히 소화해좋은솔로 연주를 펼쳤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지 그토록 좋은 솔로 연주를즉흥적으로 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작곡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것은 훌륭한 즉흥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 연주자의 뛰어난 직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연주자의 관점에서 즉흥성을 관장하고 있는 재즈 연주의 본질은직관이며 이러한 직관은 이미 행해졌던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자신만의 음악을 위한 오랜 기간의 창조적 행위를 수반한다. 즉흥성이 재즈를 통해 나타난 주된 방법론이라면 직관은 그 즉흥성을 관장하고 있는 재즈 연주의 본질이다. 재즈는 연주뿐 아니라 감상에 있어서도농익은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며, 연주자에게는아는 만큼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고 감상자에게는아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다.”

 

, 즉흥연주는 이미 행해졌던 음악에 대한 연주자의 깊이 있는 성찰이 전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동안 체득된 것들을 버리는 행위를 전제하고 있다. 드러커에 따르면 버리는 작업은 용기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며 조직 내 체계적인 방법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는 체계적 폐기(Systematic Abandonment)를 조직 내 제도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는기업은 기존 사업들 중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지를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끊임없이 평가해야 하고, 그것도 매 년, 매 분기별, 혹은 매 월 다시 검토해야 한다라고 그 방법을 제시했다.

 

체계적 폐기는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단계다. 많은 조직에서 오래된 제품들과 오래된 기업경영 방식에 대한 과도한 선호 때문에 혁신을 향한 노력이 좌절 당하곤 한다. 사업이 번창할 때일수록우리의 사업은 무엇이며 무엇이 돼야 하는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폐기를 위한 본질적인 질문이 더 필요하다고 드러커는 주장한다. 그러나잘 달리고 있는 자전거를 뒤에서 흔드는 것이라는 드러커의 표현처럼 성공가도를 달릴 때 사업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폐기의 작업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재즈연주자 역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연주를 창조해야 하는 부담감이나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이미 썼던 연주 방식을 다시 쓰고자 하는 유혹에 늘 노출돼 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해 이들은 어제의 연주와 다르게, 다른 연주자와 다르게 연주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의 과정을 반복한다. 1950년대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의 자기 고백을 통해 이와 같은 재즈연주자의 고집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나는 이제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 즐겨 듣던 버드 파월(bud Powell)과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레코드를 모두 창고에 넣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몰두하던 어느 날, 비로소 나의 연주는 더 이상 버드 파월이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재즈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언젠가 허비 핸콕(Herbie Hancock)에게 한 말 또한 재즈의 혁신성을 대변해 준다.

 

“내가 왜 발라드를 더 이상 연주하지 않는지 자네는 아는가? 그것은 발라드 연주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네.”

 

<메가트렌드>의 저자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덜어낼 수 없으면 더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4000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그는 새로운 책을 추가할 때마다 그의 목록에서 같은 수의 책을 덜어 낸다고 한다. 취한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은 다른 이름의 같은 행위라 할 수 있으며 결국 혁신의 행위는취하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폐기의 과정으로 말할 수 있다.

 

재즈음악가들은 한 소절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땀과 열정, 무수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농익은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즉흥연주가 힘겨운 창조의 산물인 것처럼 경영의 혁신 또한 우연하게 번뜩이는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적인 훈련이며 지루하고 힘든 작업임을 깨달아야 한다.

 

허연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yhur0216@hanmail.net

필자는 ㈜버텍코리아 총괄 사장이며 한국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와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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