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삼성전자 월례사 분석

“영원한 1등은 없습니다…” 호실적에도 멈추지 않은 ‘위기의 삼단논법’

부형권 | 127호 (2013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글은 핀란드 알토대와 서울과학종합대의 경영전문석사(MBA) 과정 중 작성된비즈니스프로젝트 DBR에 맞게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는 2007 1월부터 2009 7월까지 27개월간 대한민국 대표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을 출입하며 다양한 취재를 한 경험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 1997년부터 삼성전자의 지휘봉을 잡은 윤종용 부회장(현 국가지식재산위원장)1 이었다. 윤 전 부회장은 매월 사내(社內) 임직원을 대상으로 월례사를 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 CEO의 월례사는 국내외 산업계나 사회 전반에 주는 의미와 파장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삼성 출입기자들이 늘 관심 있게 취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월례사는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외부에 공개되기 적절치 않다. 공개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유로 전문(全文) 공개를 허용치 않았다.

 

그래서 흔히대한민국 1등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의 CEO는 임직원에게 어떤 경영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본 연구자의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 남아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정말 우연한 기회에윤종용 부회장 월례사 모음이란 하드카피 자료를 얻게 됐다. 윤 전 부회장이 2008 CEO 자리에서 퇴진하면서 일종의 기념 보관용으로 만들어진 자료였다.

 

윤 전 부회장의 월례사를 정독하며 연구한 시간은 삼성전자의 12(1997∼2008) 역사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12년 동안의 월례사 전문은 246537, 200자 원고지 1234장 분량이었다. 보통 장편소설이 원고지 700장인 것을 감안하면 장편소설 2권 분량이다. 월례사를 형태소 분석 프로그램으로 일반명사의 빈도를 분석해 보니 △1997 11 △1998 11 △1999 11 △2000 10 △2001 9 △2002 11 △2003 9 △2004 10 △2005 10 △2006 9 △2007 9 △2008 4개 등 총 114개다. 특별담화나 창립기념사, 종무사 등은 포함시키지 않은 반면 1월 초 발표하는 신년사는 1월 월례사의 성격을 겸한다고 판단해 분석 대상에 포함시켰다.

 

윤 전 부회장의 전체 월례사에서 사용된 일반명사의 빈도를 분석한 것은 관심 있게 추적할 주요 단어를 찾아내려는 의도에서다. 가장 많이 사용된 회사(1, 625)나 임직원(5, 535)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CEO의 의지를 표현할 때회사가,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쓰이고친애하는 삼성전자 임직원 여러분이라고 호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단어들은 제품(2, 618), 혁신(4, 539), 시장(6, 400), 고객(9, 325), 일류(10, 318), 기술(11, 301), 변화(13, 264), 프로세스(14, 253), 경쟁력(15, 250), 노력(16, 242), 디지털(17, 222), 위기(18, 211) 등이다. 이들 단어 역시 CEO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강조했느냐는 사내 임직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월례사를 분석하면서 중점을 뒀던 부분은경영실적이 좋을 때와 나쁠 때 CEO의 메시지는 어떤 다른 특징이 있을까하는 궁금증이었다.

 

 

 

삼성전자로부터 제공받은 경영실적 자료(그림 1)를 보면 2002년처럼 전년(2001)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상승했을 때는 분명 호실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2007년처럼 매출은 전년 대비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떨어진 경우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또 세계적 경제위기나 반도체 같은 주력 업종의 불황 때문에 수치상 실적은 높지 않지만 경쟁사 대비 상대적 성과가 매우 큰 경우도 있다.

 

결국 삼성전자의 호실적과 저실적의 구분은 CEO인 윤 전 부회장의 판단에 따르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 전 부회장은 늘 신년사(1월 월례사)에서 전년도의 성과를 평가하는 발언을 했는데 모든 면에서 호평을 한 경우에만호실적 연도로 분류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저실적 연도 그룹에 넣었다. 이에 따라 1999, 2000, 2002, 2003, 2004년이 호실적 연도로, 1997, 1998, 2001, 2005, 2006, 2007년이 저실적 연도로 구분됐다. 윤 전 부회장이 CEO에서 물러난 2008년은 제외했다.

 

호실적 때도주마가편(走馬加鞭)식 위기의식강조

 

호실적 5년 기간 주요 단어의 사용 빈도와 연도별 순위는 아래와 같다. 주요 단어들의 연도별 사용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연간 20회 이상 언급된 단어를 정리해 순위를 매겨봤다.

 

앞서 주목한 주요 단어의 연도별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혁신의 경우 1999 38(공동 8), 2000 44(6), 2002 49(1), 2003 47(3), 2004 45(4)를 기록했다. 호실적 5년간혁신은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됐다.

 

제품 혁신이나 제품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제품 1999 47(4), 2000 33(8), 2002 39(6), 2003 49(2), 2004 33(5) 등 고루 상위권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 중 하나라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프로세스’는 1999년과 2000년에는 상위권(20회 이상 언급)에 들지 못했으나 2002 35(7), 2003 29(9), 2004 29(7) 등 상위 랭크됐다. 이는 갈수록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중요시하는 전반적인 트렌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호실적 기간임에도위기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 1999 20(19), 2000 24(12), 2003 33(7) 5년 기간 중 3(60%)이나 20회 이상 사용됐다.

 

2003 3월 월례사에서는 2월 발생한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를 예로 들며 위기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하철 방화로 4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였습니다. 평소 조금이라도 비상시를 대비하고 위기상황에서 좀 더 신속히 대응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기본을 소홀히 하면 조그만 사고라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최근 회사도 경영여건이 매우 불안하여 언제 무슨 위기가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윤종용 메시지의 위기의식 강조는 성과가 좋을 때도 더욱 분발을 촉구하는주마가편(走馬加鞭)식 주문이 많다. 이는 삼성전자 특유의위기 경영과 직결된다. 주로 다음과 같은 3단 논법을 많이 사용했다.

 

1.임직원의 노고 덕분에 좋은 성과를 냈다.

2.그러나 영원한 1등은 없고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3.따라서 잘나갈 때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05 1월 신년사를 보자.

 

“지난해(2004)에 우리 회사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력의 향상, 글로벌 전략 강화, 미래 사업 준비 등 초일류 핵심 역량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세계 각지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임직원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중략) 앞으로의 몇 년은 우리 회사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에 있어 기회와 위협이 상존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성과는 우리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쟁사의 부진, 시황, 환율 등의 외부 요인에도 힘 입은 바 컸습니다. 더욱이 경쟁사들이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중국 업체의 부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들의 외국 업체 인수는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의 격랑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은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역량을 총동원해 초일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한 해가 돼야 하겠습니다.(중략) 시장에서 영원한 1등은 없습니다.”

 

삼성전자의 체질화된위기의식은 이처럼 CEO의 지속적인 위기의식 강조가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적과 관계 없이 일관된 핵심 키워드는 ‘제품 혁신혁신 제품

 

윤 부회장이 상대적으로 실적이 저조하다고 평가한 해는 1997, 1998, 2001, 2005, 2006, 2007년이다. 이 중에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경쟁사보다 선전한 연도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저실적 연도는 삼성전자의 호실적 연도에 비해 매출과 영업이익 성과가 다소 떨어지는 때를 의미한다. CEO의 주관적 평가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혁신’은 1997 85(2), 1998 38(6), 2001 25(공동 8), 2005 75(3), 2006 33(공동 8), 2007 39(7) 등 늘 10위 안에 들었다.

 

‘제품’도 1997 42(6), 1998 31(공동 10), 2001 25(공동 8), 2005 91(1), 2006 75(1), 2007 112(1) 등 역시 늘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2005∼2007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제품과 가장 연관성이 깊은 단어는시장고객이었다. ‘제품 1위를 차지한 3년간시장고객도 함께 도약했다. ‘시장 2005 44(7), 2006 64(3), 2007 47(6)였다. ‘고객 2005 36(공동 10), 2006 27(11), 2007 70(2)였다.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연도이기 때문에위기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궁금해진다. ‘위기 1998 37(7), 2001 35(2) 6개 연도 중 2차례(33%) 20회 이상 언급됐다. 호실적 5년 중 3(60%), 저실적 6년 중 2(33%)위기단어 사용 빈도(20회 이상)가 많았다. 호실적 때보다 저실적 때위기의식을 더 많이 고취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다른 결과인 셈이다.

 

윤 전 부회장의 월례사 주요 단어 빈도와 삼성전자의 경영실적(CEO의 평가에 근거한) 간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가장 큰 특징은제품 혁신’ ‘혁신 제품에 대한 끊임없는, 일관된 강조이다. ‘혁신제품의 중요성은 경영실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꾸준히 강조돼왔다는 것이다. 필자의 관찰대상이 된 유의미한 주요 단어 중 유일하게 이 두 단어만 1997∼2007 11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연도별 톱 10에 들었다. 윤 전 부회장이 퇴진해 이 연도별 연구 대상에서는 제외한 2008년에도제품’(41, 공동2)혁신’(21, 9)은 여전히 톱 10 안에 들었다. 경영 전 과정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혁신, 그런 혁신을 토대로 만들어진혁신 제품윤종용 메시지의 일관된 강조점임이 확인된 셈이다. 삼성전자의 꾸준한 성장과 발전은 제품 혁신과 그를 통해 만들어진혁신 제품을 통해 이뤄져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차별화된 혁신제품을 발굴해 강력한 제품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4월에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가 업계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소니의 워크맨, 애플의 iPod과 같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혁신 제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회사가 업계의 리더로서 소비자의 마음속에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들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2006 6월 월례사)

 

부형권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의회경제 전공), 핀란드 알토대와 서울과학종합대에서 경영전문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95년에 동아일보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 경제부, 산업부 기자와 경영전략실 역량강화팀장을 지냈다.

 

 

가입하면 무료

인기기사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