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中有訓

“내가 술을 빚을 때 그대는 누룩이 돼주오”

126호 (2013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꼭 필요한 사람

임금의 사자가 초상화 한 폭을 펼쳐 보이며 말한다. “당신이 바로 이 초상화 속 인물이십니다!” 초상화의 주인공 부열(傅說)은 축대 쌓던 일을 멈추고 물끄러미 초상화를 바라보고 섰다. 사자는 방방곡곡 초상화의 주인공을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부열을 찾아냈다. 이 그림은 이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림 제목은부열축암(傅說築巖)’이다. ‘부열은 바위를 쌓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군주가 인재를 구하느라 애쓴 이야기는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주나라 군주가 강태공을 데려오려고 낚시터로 찾아갔고 강태공의 힘으로 주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삼국시대 유비는 제갈공명을 쓰려고 세 번이나 그의 초막에 왕림했다. 인재를 모셔 온 국가경영자들의 안목과 노고가 뚜렷한 사례들이다. ‘부열축암도 그러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노동일을 하고 있는 인재를 발굴해 낸 군주의 노력이 주제로 드러난다. 부열의 이야기는 주나라 이전의 상()나라 때 일이며 상나라는 기원전 16세기부터 11세기에 지속된 국가로 중국 역사시대의 최고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부열축암’은 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된 교육용 그림책 <예원합진첩>의 한 폭이다. 부열의 이야기는 고려와 조선의 학자들에게 군신관계의 귀감으로 일컬어졌다. 그림을 그린 이는 화원화가 진재해(秦再奚, 1691∼1769).

 

군주의공묵’()

<예원합진첩>의 한 면을 펼치면 오른 페이지에 그림부열축암이 있고 왼쪽 페이지에 그림의 사연이 글로 적혀 있다. 부열을 구해오도록 한 군주의 이야기다.

 

임금이 글을 지어 고하여 말하기를나로 하여금 천하를 다스리게 하였으나 나의 덕이 옛 성군들에 미치지 못하므로 두려움에 말을 못하고 공경하며 묵묵하게 가야할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꿈에 하늘은 나를 보필할 사람을 보였으니, 그가 나를 대신하여 말하리라.” -<서경>

 

옛 성군의 업적에 못 미칠까 두려워 침묵하였노라 고백하는 이 군주는 거대한 상나라를 부흥시킨 고종(高宗)이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앞서 깊이 명상했다. 마음을 고요히 두어 하늘의 뜻을 듣고자 함이다. 그의 겸손과 정성에 하늘이 감동해 꿈에 인물을 보여주었으며 그것이 곧 부열의 얼굴이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군주의공묵이다. 공경하여 묵묵함이다. ‘공묵은 국가경영의 기본자세로 존중돼 옛 궁전의 건물에공묵각’ ‘공묵재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고종은 공묵으로 부열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었다. 고종이 상나라를 부흥시킨 방법이었다.

 

위에 인용된 고종과 부열의 이야기는 <서경(書經)>에 출전을 둔다. <서경>이란 중국 고대 네 왕조(, , , )의 제왕들이 나라를 경영한 철학과 원리, 그리고 생각해볼 에피소드들이 기록된 고전이다. 조선의 국왕들은 이 책을 곁에 두고 정치적 지침의 교과서로 삼았다.

 

지인지감

고종이 꿈에 사람을 보았다는 것은 하늘의 감화를 뜻하는 비유다. 고종이 부열을 지목한 것은 그의 지인지감이었다. 지인지감이란 대개 사람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보고 미래까지 예견하는 감각이다. 옛 문서를 보면 높은 벼슬을 받은 이가 임금에게 소감을 적어 올릴 때명철하신 성상의 지인지감에 누를 끼칠까 두렵습니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세상을 경영하는 자에게 지인지감은 절실하다. 큰일을 실현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맹자>에서도 일의 승패에는 천시(天時, 하늘의 때)가 지리(地利, 땅의 이득)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 사람의 만남)만 못하다고 했다.

 

군주는 지인지감을 어떻게 얻고 인재를 구할 것인가. ‘부열축암곁에 실린 <서경>의 인용문은공묵의 명상법을 최고로 제시했다. <서경>을 더 읽어보면 부열이 고종에게 와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벼슬은 개인적으로 친근한 사람에게 주지 마시고 오로지 능력에 따라 주십시오라고. 부열은 또한 덧붙여 아뢴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인맥이나 학맥보다 실력을 위주로 하자는 원칙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음은 동서고금에 마찬가지인가 보다.

 

고굉지신

‘고굉’(股肱)이란 넓적다리와 팔뚝이다. 팔다리의 근육에서도 힘을 쓰는 부분이다. 사람에게 생각이 있으되 팔다리가 없다면 생각을 펼칠 길이 없다. 군주의 생각을 헤아려 충성스럽게 움직이는 신하를 일러고굉지신이라 한다. 고굉지신이 없다면 군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고종은 부열에게 자신의고굉이 돼 줄 것을 요청했다. 고종이 부열에게 요청한 표현들은 하나하나 역사 속 명언으로 남아 있다. 예컨대내가 술이나 단술을 빚을 때 그대는 누룩이 돼 주오.” “내가 양념으로 국을 끓일 때 그대는 소금과 매실이 돼 주오.”

 

부열을 붙들어 세운 고종의 표현은 이보다 지극할 수 없다. 군주의 이 말에, 부열이 어떻게 그의 모든 정성을 쏟고 붓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성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성을 위해 단장을 하고, 남성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고굉지신의 충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물길

고종이 부열에게 간청하는 여러 가지 표현 중 시적 비유로 감동이 지극한 구절이 있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 짐의 마음을 적시어 주시오.” 고종은 부열의 마음 깊숙이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길을 보았으리라. 고종의 능력이며 지인지감이다. 고종은 부열에게 그 물길에 자신을 적시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현대시의 시구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마종기, <우화의 강> 첫 구절) 사람과 사람 사이 물길이 흘러야 사랑이 되고 우정이 된다. 옛 군신(君臣) 사이의 관계도 그러했고 회사의 상사와 직원의 사이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짐의 마음을 적시어 주시오라는 한 고종의 표현은 부열의 뜻과 지혜를 온전하게 받아 배우기를 바라는 요구이며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겸손함이다. 부열이 고집해 키워 낸 마음속 맑고 푸른 물길이 군주의 마음으로 흐르게 하려면 군주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야 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고종은 입을 잠잠히 하고 마음을 낮춘 군주였다. 혹은 상나라를 중흥시킨 성군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그의 인격이 그러했으리라고 사람들이 믿었다.

 

그림을 다시 보자. 부열을 찾아낸 순간이다. 이로부터 중국 역사의 한 장이 열린다. 고종의 겸손한 신뢰와 부열의 성실한 충성으로 일구어 갈 역사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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