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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혁-신동엽 교수의 Debate+

예술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김선혁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21
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

 

오늘은 최근 기업경영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기업들, 대중 모두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CEO와 경영자들이 음악, 미술, 무용 등 문화예술을 공부하는 강좌나 프로그램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 생겨나는 문화예술 관련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들의 수는 입이 벌어질 정도입니다. 각 대학에서도 경영과 예술을 접목하는 전공들을 서둘러 개설하거나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의 핵심 내용으로 문화예술 특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영이나 경제, 시사 등이 CEO 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왜 이렇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경영과 예술을 연결하려는 최근의 경향이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는지, 경영과 예술이 만나 창출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이 생각납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기업 경영자들을 비롯해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및 관련 교육이 급증하게 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만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최근 문화예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배경으로한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류열풍이 아시아 지역을 넘어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류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초기에는 한류를 단순히 드라마나 음악, 일부 인기 연예인에 국한된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한류가 경쟁력을 갖는 범위도 일본이나 중국, 기껏해야 동남아 등 우리나라와 문화적 유사성을 가진 지역 정도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로 확산되고 소수 연예인이 아닌 우리나라 대중문화계 전체가 한류의 주인공으로 인식되면서 한류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습니다. 또 한류의 확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가적 이미지가 개선되고 브랜드 파워가 높아지면서 기업들도 한류 마케팅의 수혜자가 되고 있습니다. 즉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위상이 급변했다고 봅니다.

 

 

한류 열풍이 주로 K-Pop으로 불리는 가요나 TV 드라마, 영화 등을 중심으로 일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이 특정 분야나 장르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가요, TV 드라마,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분야에서 클래식 음악, 미술, 무용 등 순수예술의 각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으니까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대한 정부나 기업들의 지원 및 투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보여주기식의 단발성 지원이 아닌 인프라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장기적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안들이 다양한 창구를 통해 나오고 있는데요, 문화예술의 발전을 고민하는 전 사회적 논의의 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학문적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는 과거에도 활발했지만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문화예술은 미학이나 예술이론, 인문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경영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경영학에서 문화예술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일부 경영학자들의 개인적 관심에서 극소수 연구가 간헐적으로 진행됐을 뿐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영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 학자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앞다퉈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 토론의 주제를 도출했으면 합니다. 최근 전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학적 이슈고 매우 광범위합니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제들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본 칼럼의 목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경영과 예술 간 관계에 한정해 오늘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문화예술은 전통적으로 기업 경영 실무나 경영학적 연구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돼 온 영역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하셨듯 최근 기업의 실무 경영자들뿐 아니라 경영학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같은 최근의 관심을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경영과 예술의 만남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갑자기 경영자들과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의 문을 두드리나?

 

의미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시대를 맞아 경영 실무계와 학계가 반드시 짚어 봐야 할 이슈입니다. 먼저 경영과 경영학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부터 살펴봤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한류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추세가 다른 나라들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한류붐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영자들과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1세기 창조사회로의 전환인 것 같습니다. 획일화된 상품을 효율적으로 대량생산-대량소비하는 것을 핵심 원리로 하던 20세기 산업사회와 달리 21세기 창조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기술, 고객가치 등을 창출하는 창조적 혁신이 중심이 되는 사회입니다. 따라서 20세기 산업사회적 가치 생산의 핵심 요소인 하드웨어를 대신해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콘텐츠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인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산업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 경영의 모든 단계에서 창조적 혁신이 핵심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창조적 혁신 역량이 절실히 필요하게 됐고 이런 역량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던 문화예술 분야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게 됐습니다. 21세기 창조사회로의 변화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준 것입니다.

 

 

결국 21세기의 시대적 변화가 문화예술의 가치를 산업, 경영, 경제적 관점에서도 평가 받을 수 있게 한 셈이네요. 쉽게 말하면 경영자들이나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도 가치 창출이나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분야 내부에서도 경영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인데요,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문화예술 역시 치열한 시장경쟁 환경에 노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경영 마인드를 받아들이게 된 거죠. 최근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조직들에 대기업 CEO 출신이 대표로 임명되거나 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마케팅 및 홍보 전략을 도입하는 조직이 많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공인예술경영역시 경영학의 기존 논의들을 기반으로 예술을 경영한다는 것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국 시대적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텄고 그 과정에서 경영자나 경영학계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문화예술의 경영원리 접목에 대한 필요성이 함께 커졌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애초에 경영자나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 단지 성과창출의 새로운 장으로만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최근 급증한 CEO 대상 문화예술 강좌나 프로그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문화예술 현상을 분석하려는 경영학계의 움직임을 단지 기업경영의 원리를 문화예술에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로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경영자와 경영학자들이 문화예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 본질적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의 독특한 본질과 구조가 기업 조직에 주는 풍부한 통찰력이 그것입니다. 문화예술은 상시 창조적 혁신이 핵심 화두인 21세기 창조사회형 경영의 핵심 원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배움의 장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모든 제품은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서 나온다고 말했듯 21세기는 예술과 경영이 만나 만들어내는 창조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1세기 경영은 문화예술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언급해주셨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무척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신성장 동력으로서 문화예술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에 주로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시대적 변화 속에서 과거에는 간과됐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예술을 이해하면서 얻는 통찰력이 21세기 경영환경에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21세기 경영이 문화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일단 창조성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키워드1: 창조성과 혁신

 

좋습니다. 창조성과 혁신만큼 문화예술 분야를 설명하는 키워드도 없을 것입니다. 문화예술의 핵심은 기존 예술가나 작품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표현일 텐데요,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의 작품성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준 역시 창조성과 혁신입니다. 아무리 완벽하고 정교한 기술을 사용한 작품이라도 예술가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과 색깔이 없다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과학,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들 중 창조성과 혁신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는 당연히 문화예술일 것입니다. 저는 창조와 혁신이 문화예술 분야의 핵심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변화한 21세기 경영환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 역시 창조성과 혁신입니다. 21세기 기업조직의 핵심 경쟁우위는 전통적인 재무적, 물리적 자원보다는 창조성, 지식, 아이디어와 같은 무형 자원들인데요, 이러한 무형 자원이 지속적인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 기업들은 자신의 자원과 역량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기업 경쟁력을 위해 혁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실제로 21세기 진입 이후 단숨에 정상에 오른 기업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 사업영역, 가치를 최초로 창출해내는 혁신에 강한 기업들입니다.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과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는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21세기 경영환경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창조성이라고 하면 천재적인 예술가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 않은가요? 영화 제작 같은 공동의 프로젝트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대부분 문화예술 산출물들은 개인 예술가의 독자적 활동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문화예술 분야의 창조성 연구를 일반 기업 조직의 창조성 이슈에 적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창조성과 관련한 중요한 이슈 하나를 제기해 주셨네요. 사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창조성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핵심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창조성을 개별 예술가의 예술적 영감과 천재성으로부터 나오는 신비스러운 그 무엇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 산출물을 효과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게 하는 사회 제도나 조직 시스템의 산출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의 기존 연구들에서도 창조성의 원천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왔는데 최근 연구들에서는 오히려 후자의 측면, 즉 문화예술의 창조성이라는 것이 서로의 창조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들로 구성된 사회시스템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대표적으로 예술계(art world)’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예술이 어떻게 창조하고 분배되는지를 분석한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는 예술이 예술가 개인이 아닌 예술계 내 다양한 사람들과 조직들에 영향을 받아 창조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베커의 주장은 예술이 예술가 개인의 창조성에서 나온다는 전통적 관점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14∼15세기의 피렌체나 20세기 초반의 파리처럼 예술사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발전을 이룬 특정 시기의 특정 지역을 살펴보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교류하거나 협력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해보면 예술가 개인의 창조적 산물로 보이는 예술 작품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 예술가 집단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적 역량이나 창조성을 타고난 개인들이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고르게 분포한다고 전제하면 결국 관건은 타고난 예술적 창조성을 어떻게 창작으로 연결할 것이냐 하는 제도, 시스템, 문화 등 사회적 조건들입니다. 또 이런 조건들을 조직 내에 유사하게 형성할 수 있다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경영자들을 문화예술에 관심 갖게 하는 이유이고요.

 

 

그러니까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성의 원천에도 개인 예술가의 천재성과 영감 같은 독자적 창조성뿐만 아니라 전체 필드 수준에서 직간접적인 협력 작업의 산출물로서의 창조성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다면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창조성 연구가 기업조직의 창조성을 이해하는 데도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습니다. 창조성과 관련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항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앞에서도 토론했듯 창조성과 혁신은 문화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돼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문화예술 분야의 역사를 보면 과연 창조성과 혁신성이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당대에 인정받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예술계 관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혁신적이고 창조적이더라도 당시 예술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면이단자또는시대를 앞선 천재정도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후에 새롭게 평가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고요.

 

 

. 분명 예술가들은 당시 예술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에게 창조성을 위한 혁신은 간과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술가의 작품이 혁신과 관행 사이에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필드에서 받아들여질 정도의 혁신이 선호됐던 것이죠. 저는 혁신과 관행 사이에서의 균형이 오늘날 기업들에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줄 것으로 봅니다.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적 상품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유사한 원리죠. 지난 번 토론에서 이야기했듯 혁신과 혁신 회피의 위험이 공존하는 상황에서균형은 언제나 중요한 고민거리입니다. 혁신과 관행 사이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치열한 노력은 혁신의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에 의미 있는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분야의 역사에서 예술계 전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킨 혁신적 예술가나 예술 작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 사조가 탄생해 발전한 흐름을 이해한다면 기업들도 필드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과감한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승자 독식 구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현재 경영환경하에서는 필드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새로 규정하고 주도하는 소수의 승리자들이 해당 시장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보편적 관행을 거스르는이단아적 혁신 역시 고려돼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죠.

 

키워드2: 불확실성 대응 전략

 

다음 이슈로 넘어가 볼까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문화예술 분야의 연구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초경쟁환경으로 불리는 21세기 경영환경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초경쟁환경의 핵심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불확실성과 역동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화예술은 본질적으로 극도의 불확실성과 역동성을 핵심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21세기 경영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 경영자들이 문화예술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바로 이 고도의 불호가실성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문화예술의 불확실성이라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전 단계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언급할 수 있겠고 소비자 수요 예측이 그 어느 분야보다 어렵다는 점을 불확실성 증대의 핵심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흥행 영화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 스타 감독과 배우들을 기용한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 사례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극소수만 대박을 터뜨리고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전형적인 승자독식 구조 역시 문화예술 분야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요인입니다. 마치 글로벌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애플, 구글, 삼성전자,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경쟁을 보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예술 분야의 행위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노스웨스턴 경영대학의 허쉬(Hirsch) 교수는 불확실성하에서 문화예술이 취하는 대응 전략들을 정리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품목의 성공으로 나머지 실패를 보완하려는과잉생산 전략’, 기존 성공 공식을 따라 히트작을 재생산하려는베끼기 전략’, 제한된 광고 예산을 가장 성공할 만한 작품 홍보에 쏟아붓는선택적 홍보 전략등입니다. 물론 이 같은 전략들이 효과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전략의 효과 역시 각 분야와 사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불확실성 다루기가 문화예술 분야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대다수 기업 조직들이 최근에서야 직면하게 된 환경 불확실성의 이슈를 문화예술 분야의 개인과 조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주 직접적으로 다뤄왔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문화예술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독특한 생산과정과 조직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이 이슈를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키워드3: 독특한 조직화 방식

 

저 역시 문화예술 분야만의 독특한 생산과정이나 조직화 방식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대표적인 경영 트렌드 중 하나는 경계에 국한되지 않는(boundaryless) 자유로운 조직 간 협력과 개인들의 경력 패턴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전략적 제휴나 합작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기업 간 협력을 보면 전통적인 기업 간 경계의 의미가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정 조직에 대한 몰입과 충성에 기반하기보다는 조직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키고 조직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몰입해 다양한 경력을 추구하는 개인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명확한 경계 중심의 전통적인 조직경영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경영학계에서는 20세기의 정태적 조직 개념을 넘어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역동적인 조직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어서는 역동적이면서도 유연한 조직화와 생산 방식이 활발하게 사용됐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영화산업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산업에서는 다양한 조직과 개인들이헤쳐 모여를 반복하는 프로젝트 조직으로 영화를 제작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특정 스튜디오에 소속된 배우, 감독, 스태프들이 반복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또 해당 스튜디오가 배급과 상영까지 도맡아 하는 수직통합된 방식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1949년 반독과점법의 시행, TV의 대중화 등으로 영화산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이에 대응해 배우, 감독, 스태프들이 영화라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단기 계약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할리우드를 비롯한 대다수 국가의 영화 제작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연산업 분야에서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조직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식 혹은 비공식 네트워크를 통해 일시적으로 모여서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또 흩어지는 역동적인 조직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협력 패턴은 최근 우리나라 K-Pop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 아이돌 그룹의 가수들은 특정 소속사에 속해 있지만 때로는 타 소속사 가수의 음반 작업에 피처링이나 듀엣과 같은 형식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또한 몇 개 아이돌 그룹의 일부 멤버들이 모여 프로젝트 팀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이 모든 예들은 문화예술 분야의 독특한 조직화 방식이 현재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독특한 조직화 방식이 21세기 경영에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경계에 국한되지 않는 개인 및 조직 간 자유로운 협력 패턴이 21세기 경영의 핵심 화두이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여전히 경계 중심적인 사고에 고착돼 있습니다. 야심 차게 계획된 기업 간 협력의 상당수가 실패로 끝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조직화 방식에서 노하우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21세기 창조사회, 예술과 경영이 만나다!

 

창조성과 혁신, 높은 불확실성, 독특한 조직화 방식, 이 모든 것은 문화예술 분야를 규정짓는 핵심 특성이었고 문화예술 분야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들에서 활발히 논의돼 온 주제들입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이 같은 핵심 특성들이 21세기 경영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기업조직의 전통적인 운영 원리가 문화예술 분야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리 오히려 문화예술을 정확히 이해해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현대 기업들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사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경영 마인드의 접목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토론을 통해 저는 21세기는 오히려문화예술 마인드의 접목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경영자와 경영학자 모두 더욱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와의 만남을 시도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21세기는 예술과 경영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창조사회라고 볼 수 있겠네요.

 

 

 

김선혁 고려대 경상대학 bandit75@korea.ac.kr

필자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경상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조직설계와 변화, 조직행동, 인적자원관리, 전략경영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CEO 리더십, 변화와 혁신, 문화예술경영, 여성리더십 등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 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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