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일교수의 Leader’s Viewpoint
편집자주
리더들의 모습은 제각각입니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부터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는 리더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을 것처럼 보이는 리더들의 모습 속에서도 일관되게 흐르는 보편적 원리는 존재합니다. 리더십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온 정동일 연세대 교수가 다양한 리더들의 모습을 통해 경영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리더십의 근본 원리에 대해 많은 통찰을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필자가 DBR 102호에 리더십의 정의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리더십이란 긍정적 영향을 통해 부하들의 자발적 추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이 리더십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칼럼이 나간 후 많은 독자들이 필자에게 “아니, 부하들의 존경과 사랑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닙니까” 혹은 “이제까지 제가 생각했던 리더십이 사실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란 이야기를 했다.
물론 주위의 성공한 리더들을 보면 부하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진정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랑과 존경을 받고 부하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각인(영어로 하면 ‘being a nice guy’)되는 것만 가지고는 리더로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성 좋은 상사가 성공한 리더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원들의 사랑과 존경과 함께 무엇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리더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리더십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올바른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방향을 잡아 효율적인 자원 분배와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역량이다. 이를 리더십이 아닌 리더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일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는 리더십을 이해함에 있어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강한 실행력을 통해 성과를 창출해가는 능력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긍정적 영향과 자발적 추종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고 굳게 믿고 있다.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왜 성과가 좋지 않을까’ 하며 고민에 빠진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내가 부하들을 올바른 목표와 방향으로 가도록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 바란다. 성과가 잘 나오지 않을 경우 많은 리더들은 그 원인을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한눈팔고 딴짓하며 일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이 시간만 때우기 때문’이지 ‘자신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자기 고양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한다. 자기 고양적 편향이란 자신이 초래한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역할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만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주변 상황이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말한다.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면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를 체크해 보자
필자는 오랜 기간 동안 성과가 나빠진 많은 기업과 부서를 관찰해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직원들이 일을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리더가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거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리더가 방향설정을 잘못해서 부하들이 잘못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열심히 일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노키아와 코닥을 보자. 이들 기업이 몰락하게 된 이유는 직원들의 근무태만이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는 리더들이 올바른 방향설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이를 과감히 인정하는 리더보다는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든지 변화를 과감히 수용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종의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리더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리더십 강의를 하며 필자는 과거 어떤 TV 광고에 나온 우스갯소리를 인용해 “리더가 방향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부하들은 리더 잘못 만나서 ‘개고생’하는 꼴”이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 부하들이 나 때문에 ‘개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나쁜 실적을 부하 탓으로만 여기는 자기 고양적 편향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두 번의 칼럼을 통해 리더십의 두 번째 요소인 성과창출과 목표달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자.
올바른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게 더 중요해진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영환경하에서 성공한 기업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올바른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이 일이 현재 어느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폭과 정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심하다. BCG는 이러한 격변의 정도를 업계 내 순위의 변화(volatility in market position)와 기업 경영의 결과에 대한 예측 불가능이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업계 3위 안에서 밀려난 기업의 비중이 1960년대에는 불과 전체의 2%에 지나지 않았는데 2008년에 그 수치가 14%까지 높아졌다. 또한 경영환경을 분석해 경쟁기업과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실제로 기업 성과가 좋게 나타나리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다.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두 번째 이유이자 필자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원인은 시장이라는 개념이 점차 넓어지고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우리 회사가 속한 시장과 경쟁상대가 비교적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리더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경쟁상대보다 뛰어난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회사가 속한 시장의 범주와 그 속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플레이어들이 하루아침에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주회사에 가장 중요한 경쟁자는 타 소주회사임과 동시에 SBS, KBS와 같은 미디어 회사들이다. 에너지회사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였던 자동차회사가 그들의 존재기반을 뒤흔드는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가 돼버리는 지금의 경영환경에서는 그야말로 영원한 친구도 적도 존재하지 않고 잠재적 수익 창출의 기회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더로서 시각과 태도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심도 깊은 분석을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장기적인 계획에 의거해 실행해 나가는 역량보다는 시장과 고객, 기술의 변화패턴을 빠르게 감지해 이를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반영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실행에서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더 필요하다. 21세기 전략적 패러다임이 경쟁우위에서 적응우위(adaptive advantage)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컨설팅회사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변화와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히’가 아니라 ‘무엇을 열심히’해야 하는가란 고민이 더욱 중요해 진다. 리더로서 전략적 목표를 올바로 설정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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