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편집자주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주도하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DBR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합니다.
내 자동차를 남들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다면 어떨까? 더 나아가 우리 집에서 남들을 재우고 돈을 받으면 어떨까? 일단 ‘내 소중한 것’을 남들에게 빌려준다는 점에서 꺼림칙하고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부감을 넘어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나타나 화제다.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릴레이라이즈(Relayrides)와 에어비앤비(Airbnb)라는 회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릴레이라이즈(Relayrides)는 자동차를 대여해주는 렌터카 회사다. 정상적인 렌터카 회사라면 당연히 에이비스(Avis), 허츠(Herz)처럼 회사가 자동차를 소유해서 시간당 일정 요금을 받으면서 고객에게 차를 빌려줘야 한다. 하지만 릴레이라이즈는 자동차를 한 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이 회사는 개인들이 소유한 자동차를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릴레이라이즈는 비싼 돈을 주고 산 자동차가 주차장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해답은 간단했다. 내가 안 쓰는 시간에는 남들한테 빌려주는 것이다. 릴레이라이즈의 회원이 되면 주변 다른 회원들의 차를 빌려 쓸 수 있다. 릴레이라이즈 홈페이지에서 내가 있는 위치와 가까운 곳에 있는 공유 가능한 자동차의 위치와 렌트비를 확인할 수 있고 예약만 하면 바로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다. 자동차 렌트 과정이 간단할 뿐만 아니라 요금도 1시간에 6000∼2만 원(5∼15달러) 수준으로 기존 렌터카 회사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차를 빌려주는 사람은 처음에 등록비를 내야 하지만 노는 차를 이용해 짭짤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 릴레이라이즈에 의하면 한 달에 약 70만 원(620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 이러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릴레이라이즈가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나의 애마를 어떻게 남들한테 빌려줘” “부인, 돈, 자동차는 누구에게도 빌려주는 게 아니야”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릴레이라이즈 회원으로 가입했고 주변 사람들의 자동차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GM과 구글로부터 전략적인 투자를 받기도 했다.
릴레이라이즈의 ‘Borrow My Car(내 차를 빌려드립니다)’ 광고.
한편 에어비앤비(Airbnb)라는 회사는 자동차가 아닌 집을 남들에게 빌려줄 수 있게 한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남는 방이 있는 사람, 혹은 출장이나 다른 이유로 당분간 집을 비우게 된 사람은 에어비앤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어비앤비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집을 공유할 수도 있고 다른 회원들의 집을 잠시 이용할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공유된 집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행자들이다. 이들은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사람의 실제 거주지에서 체류해보는 색다른 경험을 만끽할 수도 있다. 집을 공유하는 사람은 마치 호텔처럼 집을 운용하며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서 공유된 집을 검색해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자기 집까지 공유하려 할까?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에어비앤비의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자신의 집을 소개하며 이를 공유하겠다는 글로 넘쳐난다. 공유하려는 집에는 일반적인 집에서부터 요트, 고성, 나무 위에 집은 집, 이글루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미 190개 국에
1만9000여 개 도시에서 56만 개 이상의 집이 매일 예약 가능한 곳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이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년에는 힐튼호텔보다도 예약 가능한 ‘객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위의 사례들과 같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남들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공유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 혹은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 모델이라고 부른다. <위제너레이션(원제, What mine is yours)>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위와 같은 사례들이 이제 겨우 서막이라고 말하며 공유를 통한 소비가 향후 미래의 새로운 소비 형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래의 새로운 소비 형태, 협력적 소비
과거에는 물리적 한계 및 높은 거래비용, 타인에 대한 신뢰성 문제 등으로 릴레이라이즈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개인 간 거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누가 내 집에서 머물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정보 네트워크의 발전 덕분에 이러한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내 주위에서 누가 차를 빌려주고 싶어하는지, 누가 내 집에서 잠시 머물고 싶어하는지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누구나 손쉽게 원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기인한 모바일 네트워크의 발달은 이러한 거래비용을 더욱 획기적으로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점점 공유와 소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때마침 불어온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며 실질적인 경비 절감 노력을 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기보다는 필요한 때에 빌려 써서 지출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자산을 남들과 공유함으로써 제2의 소득을 버는 것에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실제로 거래에 나섰다.
그리고 점점 높아지는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불필요한 소유로 인해 몇 번 사용하지도 않고 버려지는 수많은 물건이 쓰레기로 쌓여왔다. 협력적 소비는 공유를 통한 제품의 재분배(redistribution)를 가능케 해 제품의 실질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 가령 미국의 ‘스와프닷컴(Swap.com)’이라는 회사는 각종 서적, 비디오 및 CD 등을 사람들끼리 공유할 수 있게 했다. 한 번 사용하고 낡은 서랍장 안에 방치될 수 있을 법한 수많은 물품들이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SWAP.com에서는 미국 전역의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을 교환할 수 있다.
공유와 소유의 경계를 잇는 비즈니스 모델
공유와 소유를 잇는 협력적 소비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 자산의 공유’ 형태다. 위의 에어비앤비나 릴레이라이즈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개인은 개인 간 거래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개인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만 제공한다. 즉, 자동차와 집이라는 개인 자산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며 받는 수수료에 기반한 수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협력적 소비가 더욱 확산될 경우 집과 자동차만이 아니라 개인이 소유한 모든 자산이 공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개인이 적극적인 매입, 판매활동을 하는 ‘2차 시장(secondhand market)’의 형태다. 과거의 중고 시장과 유사한 형태이지만 대상 제품의 폭이 크게 확장됐다. 미국 GNN의 공동 창업자인 리사 갠스키는 이러한 비즈니스를 ‘메시(mesh)’라고 불렀는데 예술작품을 대여(Art Rent & Lease)하거나 책을 교환(BookMooch)하는 곳은 물론 예전 애인으로부터 받은 보석을 교환하는 중개사이트(Ex-Boyfriend Jewelry)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중개인들이 등장하며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향후 협력적 소비 모델에 기초한 비즈니스는 속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 것을 남들과 공유하는 소비 행태에 대해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비즈니스가 널리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있다.
우선 사람들의 가치관 즉,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남들 것을 같이 쓰거나 빌려 쓰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설령 내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소유하는 물건들이 적지 않다.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경각심과 공유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인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 것을 남들과 공유하고 남들이 쓰던 것을 같이 쓰자’는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또 하나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신뢰’의 문제다. 공유에 기반한 비즈니스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박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가 묵는 숙소의 주인이 괴팍한 사람은 아닌지 불안해 할 수 있다. 반대로 집 주인은 이상한 손님이 와서 우리 집을 훼손하진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사용 후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신뢰(trust)가 신용화(credit)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불안은 결국 공유 경제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소유의 종말(Age of access)>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과 와이어드(wired)의 창립자인 케빈 캘리는 “소유(ownership)는 접속(access)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불어온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사람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며 공유 비즈니스의 확산에 훈풍을 불어주고 있다. 이른바 ‘과소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소비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주변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공유를 통한 소비. 과연 지난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소비 문화가 대체될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한순간의 유행에 그칠 것인지 그 아찔한 경계선에 놓인 비즈니스에 주목해야 할 때다.
이동우 비즈트렌드 연구회 martian1@naver.com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SK텔레콤 경영기획실 투자관리팀에서 신규 사업 투자 및 M&A 업무를 맡고 있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