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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Innovation

버림받던 철강마을, 예술의 옷을 입다

김민주 | 91호 (2011년 10월 Issue 2)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핀란드는 숲과 호수, 디자인의 나라다. 핀란드 사람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건축가 알바 알토와 음악가 장 시벨리우스를 꼽는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나라 핀란드에 예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바로 피스카스(Fiskars). 피스카스는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차로 약 한 시간(100) 떨어진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 작은 시골마을이 어떻게 예술가의 마을이 될 수 있었을까?

 

철과 구리의 지역, 피스카스

피스카스의 성장을 살펴보려면 핀란드의 역사를 잠깐 들여다봐야 한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왕 에리크 9세의 군대가 핀란드에 쳐들어오면서 스웨덴의 핀란드 지배가 시작됐다. 이후 스웨덴의 역대 왕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핀란드에서 영토를 넓혀갔다. 1397년 포메라니아의 에리크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연합왕으로 즉위했고 이때 핀란드도 이 왕국에 편입됐다. 1523년 구스타프 바사가 스웨덴을 안정된 독립 왕국으로 만들면서 핀란드를 속국으로 포함시켰다. 이후 핀란드는 스웨덴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스웨덴은 17세기 중반 일어난 30년전쟁(1618∼1648)에서 승리를 거두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피스카스도 스웨덴의 영향권에 있었다. 피스카스라는 이름은 이곳 호수에서 물고기가 많이 나왔다고 해 붙여졌다. 피싱(Fishing)의 스웨덴식 표현에서 유래됐다. 스웨덴이 핀란드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핀란드의 작은 마을 피스카스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철강산업이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 스웨덴 왕은 스웨덴 주변의 섬에서 철광석을 캐내 이를 핀란드에서 가공하기 시작했다. 피스카스는 위치상 석탄을 손쉽게 공급할 수 있었다. 또 호수를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해 철강산업에 매우 유리했다. 게다가 호수를 통해 스웨덴과의 교역까지 활발해 철강산업이 발달하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둘째, 30년전쟁으로 스웨덴의 재정이 악화되자 스웨덴이 이 지역의 사업권을 네덜란드 사업가에게 넘겼다는 점이다. 30년전쟁이 끝난 직후인 1649년 사업 수완이 뛰어난 네덜란드 사업가 피터 토르뵈스테(Peter Thorwöste)가 피스카스 지역에 제련공장을 세웠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피스카스 마을과 피스카스 회사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당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대포를 만들지 않는 조건으로 사업허가를 내줬다.

 

피스카스가 철강산업만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제련공장이 쇠락의 길을 걷자 지역 경제 전반이 흔들리게 됐다. 이때 피스카스 지역에서 구리가 발견돼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구리는 무기 제조에 들어가는 필수 합금 재료여서 세계적인 수요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80년 동안 구리산업이 피스카스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오렌지색 가위로 더 유명한 곳, 피스카스

이후 1822년부터 1853년까지 약 30년간은 피스카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요한 야코브 율린(Johan Jacob Julin)이 핀란드 최초의 단조공장, 기계공장, 방적공장 등을 이 지역에 세우고 1832년에는 핀란드 최초의 증기기관 공장을 설립했다. 피스카스 지역은 크게 발전해 인구가 6배 이상으로 늘었다. 1883년 율린이 죽자 그의 후손 에밀 린지 폰 율린(Emil Lindsay von Julin)은 피스카스사를 주식회사로 등록했는데 이 회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피스카스사는 2009년 창립 360주년을 맞이한,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피스카스 지역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피스카스의 오렌지색 가위와 공구를 아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이 피스카스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가위. 피스카스사가 1976년 생산하기 시작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는 쇠 손잡이 가위의 불편함을 개선한 것으로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인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였다. 피스카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가위는 오늘날 가위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오렌지색 손잡이 가위로 피스카스 회사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일거리가 넘쳐나 이주민이 급격하게 늘었고 8∼10세 된 아이들마저 공장에서 일을 도우며 용돈을 벌었을 정도다. 하지만 피스카스사는 끝까지 이 지역을 지키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 지역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 피스카스 지역은 공동화 현상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로 변해갔다. 자신들의 기업의 뿌리를 버릴 수 없었던 그들은 피스카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스카스사

피스카스사는 작은 공구 하나하나의 디자인에도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를 담고 있다. 사용자의 관절의 움직임을 고려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공구 제품으로 핀란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집, 정원, 아웃도어 부문에서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보유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현재는 피스카스그룹(Fiskars Group, www.fiskarsgroup.com)으로 통합돼 피스카스(Fiskars), 이탈라(Iittala),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 해크먼(Hackman), 거버(Gerber), 실바(Silva), 버스터(Buster) 등의 유명 브랜드들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매출액 71600만 유로에 6000만 유로의 순익을 올렸다. 직원 수만 36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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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주

    김민주mjkim8966@hanmail.net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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