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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② – 최덕주 감독

“스스로에게 지지마라’고 했을 뿐이죠”

이방실 | 75호 (2011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위형석(27, 한양대 역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최덕주 감독(51). 그는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U-16) 여자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언론에선 최 감독을덕장(德將)’이라 칭송했고, 과거 고압적인 축구 지도 관행과 궤를 달리하는온화한 리더십’ ‘아버지 리더십의 승리라고 추켜세웠다.

 

푸근하고 넉넉한 이미지로 한없이 너그러울 것 같은 그였지만, 실제 만나 본 최 감독은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독종이었다. 어렸을 땐 다리 근육 운동을 너무 많이 해 키가 자라지 않았을 정도였고, 부상 후유증으로 무릎에 물이 차올라도 주사기로 물을 뽑아내고 바로 경기장에 나가곤 했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결국 프로 생활은 몇 년 제대로 해 보지도 못했고 지도자로서도 오랜 기간 변방에서 보내야 했다.

 

40여 년의 축구 외길 인생 동안 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최 감독은 방향성을 잃지 않고 지도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불타는 승부욕은 타인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승화시켜 끊임없이 자신을 연단하는 계기로 삼았다. 권위주의적인 한국 축구 풍토와는 사뭇 다른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며,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세워 강압적으로 선수들을 짓누르는 건 옳지 않다는 가치관도 확립했다. 그 결과 그는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선수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율권을 줌으로써 스스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진정성 있는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DBR은 철저한 자기 인식과 성찰을 바탕으로 핵심 가치와 목적의식을 조직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온 최 감독이 진정성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준다고 판단, 그를 만나 리더의 역할과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대표팀 선수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했습니까?

 

우리나라 고등부 여자 선수는 전부 해 봐야 375명에 불과합니다. 그 중 U-16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절반에 불과하죠. 선발 인원 풀 자체가 18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선, 공격수와 수비수 간 칸막이를 쳐 놓고 선발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포지션에 상관없이 무조건 축구를잘 하는아이들 위주로 뽑았습니다.

 

공격이든 수비든, 색안경을 쓰지 않고 일단 기본기가 잘 갖춰진 아이들 위주로 선발하다보니 전체의 3분의 2가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뛰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원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에 상관없이 체격이나 기술면에서 수비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에게 수비를 맡겼죠. 어쩔 수 없이 소속팀에선 공격수인 아이들이 대표팀에선 수비수로 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월드컵전을 분석해보면 아시겠지만, 총 여섯 경기 중 상대팀에 세 골 이상을 허용한 경기가 세 개입니다. 상대팀에 다섯 골을 먹은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다섯 골을 먹고도 결국 여섯 골을 넣어 이겼습니다. 수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역습에 강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수비가 약해도 금세 공격으로 전환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회복력과 탄성이 좋은 팀을 구축한다는 전략은 우리나라처럼 축구 저변이 넓지 않은 상황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어줬고, 그 덕택에 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모두 선수들의 공입니다. 선제골을 내주고도 빠르게 만회해 역전골을 넣어 준 선수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사춘기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주변에서 난데없이 밖에서 굴러온 돌이 대표팀 감독을 꿰찼다고 말들이 많았죠. 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지도자로서의 제 자질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특별히 여자 선수들을 맡게 된다고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세 딸아이의 아버지로서 여자들의 심리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고, 여자 선수들도 선수이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다르다는 건 느꼈습니다. 가장 큰 차이가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보다 시기 질투가 심하다는 겁니다. 나이가 어려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선수들 간 경쟁 심리가 대단했어요. 특히 여민지 선수를 시기하는 선수들이 많았어요.

 

제 지도 원칙 중 하나는칭찬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한다입니다. 하루 연습이 끝나면 아이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 플레이는 이런 면에서 좋았고 저 플레이는 저런 면에서 좋았다고 구체적으로 말을 해 주지요. 좋은 점은 서로 서로 배워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민지에 대한 칭찬이 많았습니다. 워낙 출중하니까요. 11명이 경기하는 게 축구고 한 선수 한 선수 모두 다 중요하지만, 경기를 운영하다 보면 그 어떤 사람하고도 바꿀 수 없는, 말 그대로 팀의 중심이며 기둥이 되는 선수가 있습니다. 민지가 바로 그런 선수죠.

 

그런데 또 이런 선수들의 존재 자체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더군요. 제가 민지의 플레이를 칭찬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하고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 이거죠.

 

그래도 특정 선수에 대한 칭찬을 지속했나요?

 

방법은 두 가지겠죠. 제가 공개적으로 특정 선수를 칭찬하는 걸 멈추거나, 아니면 모든 선수들이 출중한 동료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만들어 주거나 입니다.

 

첫 번째는 정답이 아닙니다. 당연히 칭찬해야 할 일을 다른 팀원들의 기분을 생각해 인정하지 않는 건 지도자로서 배임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칭찬할 일은 공개적으로 칭찬한다는 제 스타일을 바꿀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좋은 점은 공유할수록 도움이 된다는 게 제 신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축구는 팀 스포츠고, 민지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의 플레이도 더 빛이 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지요. 민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건 너에게 공을 패스해 주고 도움을 준 수많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 와중에 민지가 부상으로 월드컵 전 훈련에 제대로 합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국내에선 재활 훈련만 하다 떠났고, 미국 전지훈련을 가서도 계속 재활 훈련만 하다가 트리니다드토바고로 들어가기 하루 전 캐나다와의 연습 경기 때 비로소 20분 뛰었죠.

 

다행히 민지의 오랜 부상 기간이 오히려 아이들에겐 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민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경기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른 아이들이 직접 느끼게 된 거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선수들 모두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소양이 돼 있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팀워크를 북돋워주기 위해 어떤 일을 했습니까?

 

특별한 건 없습니다. 늘 긍정적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했다는 정도랄까요? 월드컵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부상 선수 때문에 단 한번도 베스트 멤버로 엔트리를 짠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팀 전체가 절름발이 수준이었죠. 그때마다흔들리는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라든가 “100%의 몸 상태로 뛰는 선수보다 80%인 상태로 뛰는 선수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등의 말로 아이들을 격려했지요. 자신의 몸이 온전치 않다고 생각하면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100%의 몸 상태로 뛰는 사람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다독였습니다.

 

음악도 매개체로 많이 사용했어요. 아무래도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 여자 아이들이어서 말로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경기 전엔 선수들이 이동하는 차 안에선나를 외치다’ ‘거위의 꿈처럼 긍정적 가사가 담긴 음악들을 계속 틀어줬지요. 선수들의 집중력도 높여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불어넣어 주려고요. 재작년에 아시아 선수권 대회를 우승하면서는 그 당시 훈련 과정부터 우승까지의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We are the champion’ 음악도 배경에 넣고요. 동영상 편집하느라고 비디오 담당 경기분석관이 꽤 고생을 했지요.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선 대표팀에 소속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들과 틈나는 대로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각자 자질을 인정받아 이 자리에 왔다. 너희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올 때는 소속팀의 문제는 접어두고 좋은 뜻만 가지고 와라.” 뭐 이런 이야기들을 늘 했죠. 그리고 주장인 김아름 선수는 팀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절대 혼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대로 지켰습니다.

 

주장을 혼내지 않는 게 팀워크랑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나라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폭언, 구타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감독이나 코치가 주장에게 책임을 물어 본보기로 혼내는 게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주장을 본보기로 삼으면 나머지는 주장이 알아서 아이들을 혼내죠. 지도자 입장에선 아이들을 관리하는 데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폭력은 계속 증폭, 확산됩니다.

 

대표팀이라는 게 각각 다른 팀에 소속된 아이들이 일정 기간 한 데 모여 뛰는 겁니다. 목적이 같아 모이긴 했지만 원래 소속팀이 제각각이다보니 가뜩이나 예민한 사춘기 여자아이들끼리 미묘한 경쟁 심리가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장이 폭력적 성향을 보이면 그야말로 팀 화합은 물 건너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팀 내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절대 주장에게 책임을 묻거나 혼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훈련기간 중 크고 작은 사건들이 좀 있었습니다. 대표팀 합숙훈련 중에 담을 넘어 도망친 선수도 있었지요. 이럴 때 대부분 감독들은 주장부터 혼내곤 하는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주장을 붙들고 있어봤자 문제가 해결되진 않잖습니까. 직접 당사자와 이야기를 해야지요.

 

여하튼 무슨 문제가 벌어져도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핑계로 주장을 혼내지 않으니까 오히려 아이들 스스로 부담감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자율적으로 잘 알아서 하더군요. 왜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인격적으로 먼저 존중해주니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을 믿고 사생활 간섭 전혀 없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생활하도록 했더니 되레 책임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더군요. 훈련 기간과 대회를 치르면서 아이들이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 기뻤습니다.

 

 

 

감독님은 푸근하고 온화한덕장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가요, 아니면 오랜 지도자 생활의 결과물인가요?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원래 성격상 소리 지르는 걸 싫어합니다. 큰 소리를 내는 편도 아니고요. 본질적으로 그런 게 성격에 안 맞아요. 체벌은 절대 반대죠. 무조건 욕부터 하고 쥐어 팬다고 선수들이 더 잘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오랜 지도자 생활 경험이 없었다면, 저도 폭력적이지는 않더라도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모모야마 대학에서 코치로 처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감독이 선수에게 뭔가를 지적했는데 그 선수가 감독에게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면서 대들더군요. 거기에 또 일일이 감독이 대꾸를 해 주고 있고요. 전 그때만 해도아니 하늘같은 선배한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군!”하는 생각에 그 친구를 따로 불러 호통을 쳤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도, 감독도 모두 황당해 하더군요. 당연히 대화할 필요가 있어서 대화를 한 건데 왜 중간에서 난리를 치냐는 거죠.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처럼 강압적이고 고압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축구 문화 환경에서 자란 저로선 매우 생소한, 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단순히 코치,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세워 선수들을 강압적으로 짓누르는 건 옳지 않다는 사실을요.

 

문제가 있다면, 우선 맥락에 대해 설명하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해 서로의 의견을 묻고, 설득을 하고 또 설득을 당하는 게 바람직한 해결책이죠. 무조건 윽박질러 지도자의 생각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선수들이 코치나 감독이 주의를 줬는데도 계속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뭔가 고집을 부린다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라고 한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선수들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선수들과 교감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선수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때 진정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

 

 

 

분명히 말하지만, 고압적으로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11명이 한꺼번에 뛰는 축구는 그야말로 창의적인 팀 플레이가 필요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은 장시간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상대와 우리 팀의 상황을 파악하고, 동료들과의 콤비네이션이나 움직임을 고려해 그 때 그 때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축구에는 공식도 정답도 없어서, 똑같은 위기가 닥쳐도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위기가 닥치면 순간적으로 판단해 재치 있는 플레이로 위기를 모면해야 합니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감독을 뒤에 두고 뛰는 선수들에게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감독 눈치를 보느라 주눅이 들어서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고 위기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겠어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창의적이고 영리한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우리 편 동료, 감독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책임회피성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그래도 잘못한 점을 지적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문제를 지적할 때도 윽박지르지 않고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 폼이 안 좋다 싶으면, “너 폼이 왜 그 따위야? 제대로 못해?”라고 말하기보다 “OO, 잘하는 애들은 폼도 예쁘다. 너도 그거 알지?”라고 말할 수 있죠. 좀 꾀를 부린다 싶으면, 너 왜 굼벵이처럼 기어 다녀? 더 빨리 안 뛰어?”라고 다그치기보다 “OO, 너한테 지면 안돼! 더 뛸 수 있어! 스스로한테 지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제 경험상 윽박지른다고 절대 못하던 선수가 잘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북돋워주고 격려해주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긍정적인 말로 부드럽게 대하면서도 선수들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도록 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아이가 진정으로 발전하고 즐겁게 축구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희열과 만족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비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심각한 부상으로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에도 사연이 많았죠. 통영동중학교 3학년 때 축구 명문인 동래중학교 축구부에서 테스트를 받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꿈만 같았지요. 그 전까지만 해도 공은 너무 차고 싶은데 학교에 축구부가 없어서 근처 공설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하는 어른들 아니면 동네 초등학교 축구부원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운동을 했으니까요. 동래중 테스트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그런데기술은 좋은데 키가 너무 작다고 하더군요. 결국 한 학년을 낮춰 2학년으로 전학을 가야 했습니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해서인지 기량이 날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키는 자라질 않더군요. 동래중 3학년(실제 나이로는 고등학교 1학년) 말 당시 제 키가 149㎝였습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150㎝도 안 되는 학생을 받아 줄 고등학교는 없더군요. 결국 1년을 또 재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니 3㎝가 더 자라서 152㎝가 됐고, 겨우 고등학교(동래고)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이제야 맘껏 기량을 펼치나 했는데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강이뼈가 완전히 으스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같은 학교 축구부 학생들끼리 연습 경기를 하다가 벌어진 사고였지요. 그 사고로 6개월간 깁스를 하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깁스를 하고 있는 동안 키가 무려 20㎝나 자란 겁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제가 또래들보다 확연하게 키가 작았던 건 어떤 아이들보다도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키라는 게 원래 무릎 관절이 늘어나면서 크는 건데, 저는 워낙 운동을 많이 해서 다리 근육이 무릎 관절을 꽉 붙들고 늘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거죠. 그 때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어린 마음에키가 작다는 단점을 만회하려면 어떻게든 스피드를 키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등교하기 전에 매일 1∼2시간씩 동네 산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뛰어다니던 애가 부상으로 6개월을 쉬다 보니 다리 근육이 다 풀리게 됐고, 그러면서 그동안 안 컸던 키가 한꺼번에 큰 거죠.

 

축구 선수로서 키가 커진 건 다행이었지만, 너무 짧은 시간 급속도로 자라다보니 무릎 뼈와 뼈 사이의 틈이 너무 벌어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무릎 뼈가 들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 무릎에 물이 차올랐고 급기야 무릎 뼈가 깨지더군요.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무릎을 다 여는 수술을 했지요. 그 후에도 계속 몸을 혹사시켰죠. 어떤 때는 그냥 주사기로 무릎에서 물을 뽑아내고 바로 경기장에 나갔으니까요. 한마디로 너무 무식하게 운동을 한 거죠.

 

‘악바리’ 근성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지는 거 아주 싫어합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공격적 성향의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감독님은 예외인 듯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군요. 제가 지는 게 싫다는 건, 동료 선수와의 경쟁이나 상대팀과의 경기에서 지기 싫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45분간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멈춰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단 몇 초만이라도 슬렁슬렁 걷고 싶은 그런 순간 말입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다리 한 발짝을 옮겨놓는 것 자체가 고통인 순간이죠. 그 때 그냥 맥을 놓고 서 버리는 것, 그게 바로 나에게 지는 거죠.

 

경기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합니다. 때론 이길 수도 있고 때론 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경기 그 자체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진정한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어차피 축구를 하기로 한 이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통은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나의 부족한 기량을 개선했을 때, 정말 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극한 고통의 순간을 참아냈을 때, 그래서 비로소 내 자신을 넘어섰을 때 뒤따르는 희열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요. 그 순간이 바로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는 순간입니다. 경기의 승패는 그 뒤에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정당한 대가일 뿐입니다.

 

이기는 축구보다 즐기는 축구를 강조했는데요.

 

그렇습니다. 즐기는 축구를 하자는 게 승부욕을 없애자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승부욕으로 치면 단언컨대 저만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제 말은 축구 자체를 즐기고 온전히 축구에 몰입하는 것, 그 방법을 먼저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유소년 연령대 선수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축구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볼을 차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일본 호고쿠공업 감독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새로 창단하는 실업팀 감독으로 가게 됐습니다. 당연히 선수들을 모으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실업팀 선수들이 하루 종일 축구만 하는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일을 다 하고 퇴근 후에 약 2시간씩 따로 시간을 내 훈련을 하는 구조입니다. 이러다보니 선수들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왜 생고생을 하냐는 거지요. 결국 한 달 정도 책상에 앉아있다 선수들을 모집하려고 건설 현장으로 직접 나갔습니다. 호고쿠가 당시 지질 검사, 기초 공사를 주로 하는 회사여서 직원들 대부분이노가다(토목 막벌이)’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회사 직원들과 시멘트 부대를 같이 나르며포섭 작전에 들어갔지요. 술 한 잔 함께 걸치면서축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일단 한번만 해 보라며 사정을 했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하나 둘씩 모아나갔습니다.

 

축구가 원래부터 좋았던 저로선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저는 선수들에게 축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업팀 창단을 위해 선수들을 모집하면서, 하루 종일 업무에 지친 사람들에게 축구화를 신기고 따로 남아 공을 차도록 하려면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동기란 바로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이 어린 초등학교 선수들조차 축구를 재미있게 즐기기보다 승리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지도자들 역시 성적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러다보니 축구 지도 문화를 보더라도 욕설과 체벌이 난무할 때가 많습니다. 욕설이나 체벌은 플러스 효과보다 마이너스 효과가 훨씬 큽니다.

 

사회 각계의 리더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조직 구성원 하나하나의 개성이 모두 다릅니다. 지도자들은 그러한 부분까지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자질을 알아보고 지도해 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조직원들과 인간적인 정서적 교감을 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려고 할 때,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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