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Science 2.0
편집자주 경영 현장에 수많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은 전략, 기획, 운영,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 수학·과학 이론을 접목시켜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경영 과학은 첨단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 기술로 기업의 두뇌 역할을 하면서 경영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있습니다. <경영학 콘서트>의 저자인 장영재 교수가 경영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합니다.
고래 대폭파 작전
미국 오리건주 플로랑스. 북태평양 인근의 조그마한 마을에 주민들이 해변가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에워싼 것은 거대한 고래. 길이 14m에 무게 8t이 넘었다. 이 고래는 바다에서 생을 마친 뒤 조류에 휩쓸려 플로랑스 해변으로 떠밀려왔다. 주민들은 마을 바로 옆 해변 위에 널브러진 이 죽은 고래를 어떻게 치울까 고민에 빠졌다. 거대한 고래를 옮기려면 크레인과 같은 대형 중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좁은 마을 길을 통과해 중장비를 동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고래를 몇 조각으로 나눠 폐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간단치 않았다. 거대한 고래를 조각 내려면 시간이 많이 들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고깃덩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싶지 않은 주민들은 최대한 빠른 방법으로 처리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해결책이 나왔다. 마을 고속도로 건설과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주 고속도로 관리국에서 건설용으로 사용되는 다이너마이트로 고래를 폭파해 산산조각 내자는 아이디어였다. 쉽고 단시간에 조각 내기에는 이만한 아이디어가 없다며 주민들은 찬성했다. 폭발로 잘게 나눠진 고래 조각들이 해변에 남더라도 갈매기들이 죄다 먹게 될 것이므로 따로 치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사후 처리가 효율적이라는 점도 이 제안에 흥미를 더했다. 단시간의 분해와 친환경적 폐기처리란 아이디어는 단숨에 주민과 관의 동의를 얻었다. 이 ‘민관 합동 고래 폭파작전’은 곧 실행으로 옮겨졌다.
고래를 폭파한다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구경하러 작전 당일 일찍부터 구경꾼들이 해변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자와 중계차를 동원한TV방송국이 생중계를 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썩은 고기 덩이를 폭파해 본 경험은 없지만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주 고속도로 관리국 직원들의 인터뷰는 슈퍼볼 결승을 앞두고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미식축구 선수와 다를 바 없었다.
다량의 건설용 다이너마이트가 매립됐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후 마침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성공적인 폭파가 이뤄졌다. 주민들은 우주 왕복선의 성공적인 발사를 보고 환호하듯 거대한 폭발 연기에 ‘브라보’를 외쳤다. 그러나 이 환호의 순간이 몇 초 흐른 후 싸늘한 정적과 함께 사방에서 ‘Oh My God!’이란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작은 조각으로 잘게 나눠지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거대한 토막을 이룬 고래 조각들이 사방으로 퍼져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무거운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고래 조각은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돼버렸다. 고래 조각의 포격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해변가는 아수라장이 됐다. 생중계 하던 카메라맨조차 카메라를 접고 피신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변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방불케 했다. 거대한 생산조각에 포격을 당한 주차장의 차들은 거의 박살이 났다. 이후 사방 몇 마일에 걸쳐 널브러진 고래 조각들을 처리하느라 인력과 돈이 낭비됐다. 후대에 영원한 조롱거리로 남은 이 일화는 1970년 벌어진 실화다.1
경영에서 고래 폭파하기
이는 비록 40년 전 먼 미국의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최고의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선진국이었다. 또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킨 과학기술 선도국가였다. 오리건의 플로랑스 주민들도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관광산업이 발달한 오리건 주에서 선진 국민의 혜택을 풍요롭게 받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들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은 교육의 부재나 지식의 부족 탓은 결코 아니다. 그럼 왜 이런 황당한 결정을 내렸을까?
인간의 두뇌는 빠른 순간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직관적 사고는 발달돼 있다. 하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데에는 그리 적절치 않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를 다루려면 적절한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복잡한 문제일수록 사람의 눈에 포착되는 표면적 현상에 현혹돼 본질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는 사고와 실험이 필요하다. 고래를 폭파하기 전에 작은 생선 토막이라도 폭파하는 모의 실험을 했더라도, 그리고 폭파 물체에 따른 파편의 역학관례를 신중히 고려했더라도 해변에 떠내려온 고래를 치우기 위해 폭파를 감행하는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쉽게도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단순한 표면적인 관찰이나 수박 겉핥기 학습으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사례는 플로랑스 해변가뿐 아니라 경영 현장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글로벌 기업인 HP의 공장 설계 오류다.
공장의 비효율 재고 제거작전
세계적인 IT업체이자 세계 프린터 시장을 장악하는 HP사는 1996년 신규 잉크젯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처음 선보인 데스크젯 프린터로 시장을 개척한 HP는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HP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더욱더 벌리기 위해 전략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단숨에 시장을 석권하는 게 목표였으므로 조립도 첨단 자동화 시설을 갖춘 신규 라인에서 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HP는 이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클립스(Eclips)’라는 신규 라인을 건설했다. 이클립스는 모든 조립공정이 조립 로봇으로 이뤄진 자동화 시설이었고, 생산 재고가 거의 없는 ‘린(Lean)’ 방식으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기존 라인과 차별화됐다.
HP의 새로운 희망으로 전 임직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태어난 이클립스 라인이 가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경악할 사태가 벌어졌다. 생산 물량이 목표치의 50%도 나오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라인을 가동한 지 몇 주가 지나 본격적으로 목표 생산량에 도달해야 하는 시점이 됐는데도 문제의 근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처음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바로 자동화 시설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시동하는 100% 자동화 공장이라 운영이 다소 미흡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사 결과 미흡한 점은 있지만 전체 생산량에 타격을 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 지목된 것이 각 공정을 맡은 조립 기계 설비였다. 세계 최초로 생산되는 프린터이므로 생산 시설도 최신 장비가 도입됐다. 아무래도 처음 설계된 장비들이라 다소 시행착오가 있었고 이로 인해 잦은 잔고장이 발생했다. 하지만 고장률을 비교해 본 결과 기존 생산라인의 기계들과 비교해서 단 5%만 높았을 뿐이었다. 5% 높은 고장률이 생산율의 급격한 하락의 원인이라 지목하기에는 뭔가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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