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천재를 천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만 명이다. 만 명이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먹여 살릴 수 없다. 만 명과 동떨어진 한 사람만의 생각으로 세상의 이치를 밝히거나, 윤리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시장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만약 어떤 사람이 남들보다 더 좋은 글을 쓰거나 더 좋은 설교를 하거나 혹은 조금 더 개량된 쥐덫 하나라도 만들어낸다면, 사람들은 그의 집이 아무리 울창한 숲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문 앞에까지 길을 내고 찾아 갈 것이다”는 말을 했다. 이 말로 인해 ‘더 좋은 쥐덫(a better mousetrap)’은 좋은 제품을 나타내는 관용어구로 굳어졌다.
그러나 비즈니스 용어로 널리 사용되는 이 말은 사실은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더 뛰어난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실제로 미국 울월스(Woolworth) 사장 체스터 울워스는 오랜 연구 끝에 아주 뛰어난 쥐덫을 만들어냈다. 한 번 잡힌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쁜 색깔의 플라스틱 제품인 이 쥐덫은 깨끗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에 위생적이며 값도 기존 제품에 비해 약간만 더 높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더 좋은 쥐덫’은 처음에는 잘 팔리는 듯하다가 금세 매출액이 떨어지더니 결국 실패한 제품이 되고 말았다. 이유를 분석해보니 고객들은 쥐가 잡혀있는 쥐덫을 처리하기 어려워 쥐와 함께 쥐덫째로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좋은 쥐덫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쥐가 죽은 후 꺼내서 쥐덫을 깨끗이 씻은 후 다시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징그럽고 불쾌해서 사람들은 구식 쥐덫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더 좋은 쥐덫’도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울워스 사장은 “에머슨이 철학자였기에 망정이지 기업의 사장이었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감수성
우리나라 경영학의 대가인 윤석철 교수는 그의 책 <경영학의 진리체계>에서 “고객의 필요, 아픔, 기호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경영자의 인식능력을 감수성(Sensitivity)”이라고 정의할 것을 제안하면서 켈로그의 탄생 배경을 소개했다.
켈로그의 창립자 윌 키스 켈로그(Will Keith Kellogg)는 초등학교 교육 밖에 받지 못한 채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배틀 크릭(Battle Creek)에 있는 한 내과병원에서 25년간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입원환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던 그는 소화기 계통 환자들로부터 빵을 먹으면 속이 편치 않다는 푸념을 듣게 됐다. 이때 그는 환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연민을 느꼈다. 병원의 급식메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곡물들로 만든 빵이었다. 그런데 그는 빵 속에 남게 되는 이스트의 부작용으로 환자들의 속이 불편해진다고 생각하고, 이스트가 없는 곡물음식을 만들려고 했다. 그는 곡물을 삶아서 눌러내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친 끝에 결국 시리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리얼은 섬유질이 많은 밀껍질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어서 영양가도 빵보다 높고 소화기 건강에 도움이 됐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켈로그에게 계속 우편으로 시리얼을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시리얼은 환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아침식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켈로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이면에도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가진 연민의 정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해석한다. 말이 있어도 글이 없어 뜻하는 바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백성들의 불편, 특히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백성들에게 제대로 농사짓는 법을 가르칠 책 농사직설(農事直說)이 한문으로 돼 있는 현실에 세종대왕은 아픔을 느꼈다. 그 감수성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로 평가 받는 한글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것은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같다. “미천한 백성이 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군왕과 귀족의 오만, 소화기 환자들의 속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강한 자의 오만에 머물고 말았다면 한글과 시리얼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층건물 속의 호화로운 사무실, 고급 승용차의 검은 유리창 속에서 가진 자의 오만 속에 사는 사람은 일반 소비대중의 필요, 아픔, 정서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경영자의 감수성은 고객이 존재하는 현장에서 그들과 직접 접촉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나아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업 성공의 비결이고 핵심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