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 가격 경쟁을 위한 4가지 열쇠

44호 (2009년 11월 Issue 1)

가격은 마케팅의 핵심 요소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단순히 원가에 적정 마진을 붙여 가격을 산정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강조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이번 호 스페셜리포트에서 가격 전략을 탐구했습니다. 가격을 결정할 때에는 적어도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측정해야 합니다. 특히 고객들이 생각하는 ‘준거가격(reference value)’이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격결정 방식과, 학계의 연구 동향, 최신 방법론 등을 전해드립니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 가운데 하나인 가격에 대해 고민하실 때마다 이번 스페셜리포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혼다는 1990년대 베트남 오토바이 시장에서 90%라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주력 제품은 혼다-드림(Honda-Dream)이었다. 가격은 대략 2100달러였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왔다. 중국 업체들이 혼다-드림 가격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550∼700달러짜리 초저가 제품들을 앞세워 베트남 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이 되자 중국 업체들의 연간 판매량은 100만 대에 이르렀다. 반면 혼다는 겨우 17만 대를 팔았다.
 
혼다가 치러야 했던 ‘가격 전쟁’은 예외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생산 능력 과잉과 제품 범용화, 시장 성장의 둔화, 과점적 산업 구조 같은 가격 전쟁의 촉발 요인은 이미 전 산업에 걸쳐 보편화돼 있다.(그림1)
 
 

 
더욱이 압도적 원가 우위를 무기로 한 신흥 국가들의 부상은 가격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기업은 이 같은 경영 환경하에서 어떤 가격 전략을 취해야 할까? 혼다의 사례에서처럼 후발 업체들이 가혹한 가격 공세를 해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또 중국 업체들처럼 선도 업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초저가 전략을 취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방안일까?
 
가격 경쟁의 전략적 대안
 
 

 
가격은 근본적으로 제품·서비스 가치의 반영이다. 따라서 기업은 성공적인 가격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그림2>와 같이 가격 변화에 따른 고객 가치(value-to-customer)와 사업 가치(profitability)의 변화를 계량적으로 시뮬레이션해봐야 한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가치에 대한 과학적 검토 없이 업계의 관행이나 관리자의 직관에 기초해 가격 결정을 내린다. 이는 가격이 고객의 구매 선택과 기업의 성과 창출에 미치는 예민하고도 막대한 영향을 감안할 때 위험천만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가격 경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선적으로 해당 조건하에서 고객이 특정 제품·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 가치인 지불 의향(willingness-to-pay)을 전문적인 조사 기법이나 통계 분석 등을 활용해 측정해야 한다. 이런 조사 및 분석에서는 가격과 판매량의 관계를 계량적으로 규명해주는 ‘가격 반응 함수’가 도출된다. 기업은 가격 반응 함수를 기반으로 사업 가치(매출과 이익)를 극대화하는 최적 가격이 무엇인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현재의 실제 판매 가격이 최적 가격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격 전략과 관련해 기업은 자신의 경쟁 입지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제품·서비스의 현재 가격에 대한 고객의 인식은 어떤지,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 실질 경쟁력이란 관점에서 기업이 보유한 현재 및 미래의 원가 구조도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은 기업이 주어진 경쟁 상황하에서 어떤 마케팅 방향성을 취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만약 충분한 자원과 역량이 있다면 게임의 룰을 재편하는 공세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급적 경쟁을 회피하고 평화롭게 현상을 수용 및 유지해나가야 한다.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가격 경쟁 전략은 <그림3>에 나타난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무시 전략:말 그대로 경쟁자의 가격 공세를 무시하며 현재의 가격 수준을 고수하는 방안이다. 이는 고객들이 제품·서비스에 대해 지니고 있는 지불 의향이 현재의 판매 가격에 부합하고, 섣부른 가격 조정이 잠재 이익의 손실을 초래하거나 불필요한 2차 가격 경쟁을 촉발할 개연성이 높을 경우 때 취해야 할 대안이다.
무시 전략은 불필요한 가격 경쟁을 회피하며 자신의 전략적 포지션을 견고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가 경쟁사보다 우월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화학제품 제조사 A사 사례
 
화학제품 제조 업체인 A사는 공장이나 매장 바닥에 사용하는 세척제 시장의 선두 주자였다. 하지만 한 중국 업체가 A사의 가격보다 50% 인하된 도매가로 시장을 공략해오자 고민에 빠졌다. 성숙기 제품의 특성상 단기간 내에 기술 혁신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A사는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가격 인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가격 조정에 따른 사업 성과를 계량적으로 분석해보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가격을 인하하면 여러 경쟁사들의 추가적 가격 경쟁이 촉발돼 매출이 크게 감소하는 반면, 가격을 유지하면 오히려 현재의 매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A사는 검토 결과에 따라 현재의 가격 수준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1년 정도가 지나자 이 같은 결정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가격에 극도로 민감한 극히 일부의 고객만이 중국산 제품을 구매했을 뿐 대다수의 고객은 훌륭한 품질과 신속한 배송을 보장하는 A사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했다.

 

질레트 면도기 사례
 
면도기 시장의 선두 주자인 질레트의 사례는 섣부른 가격 대응이 불필요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70년대 일회용 볼펜과 라이터로 큰 인기를 끈 빅(Bic) 사는 그간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회용 면도기 시장에 진출했다. 빅의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 당시 고객들은 질레트의 값비싼 카트리지형 면도기 대신 빅의 일회용 면도기를 더욱 선호하게 됐다.
 
질레트는 빅에게 잠식당한 시장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해 저가의 일회용 면도기인 ‘굿뉴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질레트를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저가 상품을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긴 했지만, 수익성이 극히 낮아져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브랜드 가치에 기반해 유지해온 프리미엄 포지션이 위협받게 됐고, 결과적으로 저가 면도기 카테고리를 고객에게 널리 알리는 결과도 초래됐다.
 
결국 질레트는 빅과의 저가 경쟁을 포기하고 뛰어난 품질과 브랜드 가치에 기반한 전통적 고가 전략을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에 따라 질레트는 1989년 이후 센서, 마하3, 퓨전 등의 혁신적인 신제품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면도날당 가격을 3배(298%) 가까이 올릴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높은 성장성과 수익성을 향유하게 됐다.

 
②최적화 전략:현재의 제품 특성과 원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사 제품의 가격을 고객의 지불 의향에 따라 전면 조정하는 방안(인상 또는 인하)이다. 중요한 것은 선도 업체이건 후발 업체이건 가격 인하만이 능사가 아니란 점이다. 기업은 고객의 지불 의사가 높다면 과감히 가격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의 지불 의향에 기초해 가격을 적절히 인하해야 할 필요도 있다.
 
P&G의 A.G. 래플리 최고경영자는 2000년 취임 후 최적 가격 책정을 최고의 전략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P&G는 고객들이 각각의 제품에 대해 느끼는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해 다수의 제품 가격을 조정했는데, 세탁 세제인 타이드는 가격을 8% 올린 반면 키친 타올인 바운티는 4.5% 내렸다. 이 같은 가격 최적화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성숙기 소비재 시장에서 P&G의 순이익을 무려 2%가량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적화 전략은 마케팅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제품·서비스의 가치에 합당한 가격을 책정한다는 점에서 모든 가격 전략의 기본이 된다. 문제는 <그림2>에서 나타난 것처럼 어떻게 고객의 지불 의향을 최대한 충족시키며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적 가격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낼 것인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가격을 최적화할 때 기업이 항상 ‘동태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사의 가격 조정에 따른 경쟁자의 가격 반응을 시나리오화하고 그에 따른 순차적 대응 방안을 사전적으로 수립해 빈틈없이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 반응 함수를 과학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면 자사와 경쟁자의 동태적 가격 변화에 따른 시장 점유율 및 이익의 변화를 사전에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다.
 
 
 
<그림4>는 수수료 인하 경쟁이 촉발된 시점에서 국내 선도 금융사인 B사가 실시했던 수수료 인하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경쟁사의 대응을 가정하지 않은 정태적 관점에서는 B사의 수수료 인하가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을 모두 개선시켜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후속적 가격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 동태적 관점에서는 시장 점유율의 개선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수익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B사는 이 같은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수수료를 전면 인하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글락소의 ‘잔탁’ 사례
 
1980년대 초 위궤양약 시장은 스미스클라인의 ‘타가메트’가 지배하고 있었다. 스미스클라인은 경쟁사인 글락소가 ‘잔탁’이라는 우수한 신약을 시판할 예정이란 정보에 기초해 타가메트 가격을 선제적으로 20%가량 인하했다.
 
글락소는 당연히 잔탁의 시판 가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일부 임원은 효과적인 시장 침투를 위해 잔탁의 가격을 타가메트보다 낮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폴 기롤라미 글락소 회장은 자사 제품의 탁월한 약효나 적은 부작용 등 우월한 가치를 가격에 반영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는 결국 잔탁을 타가메트보다 56% 높은 가격에 내놓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제품의 우수성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제휴사인 로슈와 함께 매우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방침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잔탁은 시장 진입 시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도 의사나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글락소는 한걸음 더 나아가 1986년 강력한 경쟁사인 머크나 릴리가 경쟁 제품을 내놓았을 때에도 제품 가격을 오히려 더 인상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의사나 환자들이 제품의 효능에 대해 느끼는 가치, 즉 지불 의향이 점점 더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잔탁이 시장에 나온 지 10년째 되는 해에는 가격이 첫 시판 때보다 50% 이상 높아졌지만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고객 가치 또는 지불 의향에 바탕을 둔 가격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③맞춤화 전략:단일 가격을 특정한 니즈나 구매 행태를 가진 여러 고객군의 지불 의향에 맞춰 전략적으로 다변화함으로써 게임의 룰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방안이다. 해당 제품 가격이 고객의 지불 의향을 충분히 충족하면 무시 전략을 취해도 되지만, 가격 경쟁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나아가 추가적인 매출과 이익 기회를 실현하고자 할 때는 맞춤화 전략이 유용하다. 이동 통신사들이 사업 초기의 일괄적 통화 시간당 요금제를 탈피해 청소년 요금제, 커플 요금제, 주말 요금제, 가족 요금제 등 이용 행태별 요금제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동 통신사들은 이런 전략을 통해 경쟁자 간 직접적 요금 비교에 따른 요금 인하 압박을 회피할 수 있었고, 고객 기반도 확대할 수 있었다.<그림5>는 맞춤화 전략의 원리를 보여준다. 고객의 지불 의향은 개인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양하게 형성된다. 따라서 기업이 단일 가격을 책정한 경우에는 항상 ‘가격이 너무 싸다’고 생각하는 고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방치한 이익’과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구매를 포기하는 고객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포기한 이익’이 발생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의 지불 의향에 따라 가격을 다변화하면 할수록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게 된다. 문제는 동일한 제품의 가격을 고객별로 차등화시킬 수 있는 정당한 논리와 방법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맞춤화 전략은 기업이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을 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전개될 수 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은 4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A.비선형 가격 전략:고객의 구매량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방법이다. 반스 앤 노블스는 연간 25달러를 내면 모든 구매에 대해 5∼10%를 할인해주는 유료회원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연간 250∼500달러 이상의 도서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선택적인 가격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고객이 서점 간의 도서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없게 하는 동시에 고객의 다량 구매를 유도하며, 높은 매출 기여도를 지닌 고객을 락인(lock-in)시키는 효과도 있다.
 
B.묶음 가격 전략:여러 제품을 하나로 묶어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다. 맥도날드는 1997년 당시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었던 티니비니 베이비 인형을 해피밀 세트와 묶어 판매했다. 물론 가격은 두 제품을 개별 구매하는 것보다 상당히 할인했다. 이 전략은 공전의 성공을 거뒀다. 해피밀 세트의 판매량은 거의 10배 가깝게 늘어났으며, 아이들 손에 이끌려온 부모들 덕분에 다른 메뉴의 매출도 상당히 증가했다. 이것은 단품 중심의 가격 경쟁을 회피하며, 추가적인 마케팅 성과를 창출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C.다차원 가격 전략:특정 제품의 가격을 보완재의 가격과 연동해 책정하는 방법이다. 소니가 2000년 플레이스테이션2를 시판했을 때의 권장 소비자 가격은 299달러였다. 하지만 제품에 대한 엄청난 수요로 공급이 부족해지자 플레이스테이션2는 경매사이트에서 무려 445∼950달러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하드웨어의 가격을 299달러로 유지해 마이크로스프트(MS)의 엑스박스나 닌텐도의 게임큐브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고, 시장 점유율을 늘려 보완재인 게임 소프트웨어의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이 같은 의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 프린터와 프린트용 잉크, 면도기와 면도날의 가격 책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D.구조화 가격 전략:고객이 특정 제품 가격을 지불하는 것과 관련해 다양한 금융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구매 장벽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GE는 몇 해 전 기존 항공기 엔진보다 추진력과 에너지 효율이 높은 GE90 항공기 엔진을 개발했다. 하지만 많은 항공기 제조 업체들은 검증이 되지 않은 신형 엔진을 도입하면 유지 보수비가 급증한다며 GE90의 우수성에 상응하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려 했다. GE는 이에 GE90 엔진의 비행 시간에 따라 엔진 사용료를 청구하는 창의적인 가격 체계를 개발했다. 엔진의 유지 보수 문제로 항공기를 운행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부담을 수용함으로써 고객의 불안감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다. 이 정책으로 GE90은 고객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GE는 GE90 엔진을 통해 향후 30년간 4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는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의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나 웅진코웨이의 페이프리 정책 또한 구조화 가격 전략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맞춤화 전략은 고객에게 가격 혜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업이 경쟁의 흐름을 주도하며 추가적인 매출과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이상적인 윈-윈 대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맞춤화 전략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객의 지불 의향이나 기업의 이익 창출 가능성을 계량적으로 분석해 적정 수준의 가격 혜택을 설계해야 한다. 자의적인 할인 정책의 시도는 긁어 부스럼이 돼 시장의 건전성과 기업의 이익 창출 가능성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
 
④파괴 전략:현재의 사업 모델이나 제품의 원가 구조를 획기적인 수준으로 혁신해 경쟁자가 도저히 수용 또는 모방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방안이다. 이는 수세적인 가격 최적화만으로는 시장을 방어하기 어려울 때 취해야 할 전략이다. 파괴 전략은 전사적인 관점에서 많은 자원과 역량을 투입해야 하고,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경쟁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다만 기업은 파괴 전략이 많은 기업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인 단순한 자기 파괴적 가격 인하와 다르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앞뒤를 재지 않은 단순한 가격 인하는 앞서 언급한 질레트의 사례처럼 경쟁에서의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업의 재무 자원을 막대하게 소진시킬 위험이 있다. 또 적정 시장 가격이나 브랜드 가치를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파괴 전략을 구사할 때 반드시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의 정당성에 대한 본질적인 검토를 먼저 수행해야 한다. 그러고 난 후 검토 결과에 따라 제품의 특성과 사업의 원가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라이언에어 사례
 
아일랜드의 항공사인 라이언에어는 1990년대 초 정부의 잇따른 규제완화 정책과 항공업계의 극심한 가격 경쟁으로 인해 승객수가 줄고 영업적자가 나는 위기에 직면했다. 라이언에어 경영진은 이 같은 가격 전쟁하에서는 사업의 수익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과감한 혁신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핵심에 집중한 저가 전략(no frills low cost)’가 바로 그것이다.
 
라이언에어는 우선 다양한 항공 서비스의 구성 요소들이 제공하는 고객 가치를 정밀하게 분석해봤다. 그 결과 고객들은 정시 운항이나 빠른 체크인 등과 같은 본질적인 서비스에 매우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반면 음료나 식사 등의 다양한 기내 서비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라이언에어는 이런 사실에 기초해 사업 모델과 원가 구조를 대대적으로 혁신했다. 우선 투입 비용 대비 고객 효용이 크지 않은 식음료 제공 등의 기내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아울러 탁월한 구매 전략을 통해 항공기의 저가 구매를 실현했다. 저가 구매를 위해서는 고객의 94%가 “크게 개여치 않는다”고 응답한 좌석을 뒤로 젖히는 기능도 제거했다. 이런 결정은 단순히 구매 단가를 절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항공기 운항 시 수리나 청소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라이언에어는 항공기 청소나 승객 수속 등 공항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업무들까지 아웃소싱해 비용을 절감했다. 이때 계약 업체들이 약속한 목표 시간 내에 해당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함으로써 정시 운항 목표를 철저히 추구했다. 직원 보상 체계를 비행 횟수나 업무 처리량 등에 연동시킨 것은 물론이다.
 
유통 구조 또한 혁신했다. 라이언에어는 여행사들에게 지급하는 각종 수수료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콜센터나 홈페이지를 통한 직영 유통 체계를 구축해 운영했다.
 
이렇게 ‘신속하고 정확한 운항’이란 본질적 서비스 요소를 강화하고, 그와 관계없는 모든 비용 요소를 배제하는 전략은 기차 요금과 비슷한 저가 운임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줬다. 라이언에어의 평균 운임은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던 이지젯보다도 30% 이상 저렴하게 책정됐다. 하지만 정시 운항률은 항상 업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런 파괴 전략은 라이언에어의 영업이익률을 경쟁사 대비 3배(약 20%)나 되는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10년간 승객수가 856%나 늘어나는 경이적인 결과를 낳았다.

최적화+파괴 전략 구사한 혼다
앞서 살펴본 무시 전략과 최적화 전략은 현재 마케팅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가격이란 변수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대응적, 전술적 접근 방법이다. 반면 맞춤화 전략과 파괴 전략은 보다 근원적 관점에서 마케팅 체계를 변환시키며 이를 가격이라는 전략 무기와 연계시키는 공세적, 전략적 접근법이다. 기업은 주어진 경영 환경과 내부 여건에 따라 여러 전략 중 하나를 유연하게 선택해야 하며, 때에 따라서 몇 가지 대안을 혼용해 쓸 수 있어야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혼다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 전쟁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혼다는 우선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대한 단기적 대응책으로 혼다-드림의 가격을 1300달러로 내렸다. 자사 제품의 가치에 기초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최적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혼다는 이어 중국 업체들을 제압하기 위해 파괴 전략을 구사했다. 고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본적 품질 요소에 집중해 불필요한 원가 요소를 배제하고, 혼다의 전 세계 구매망을 통해 양질의 저가 부품들을 구매했으며, 린(lean) 생산 방식에 따라 생산 비용을 현저하게 낮췄다. 그 결과 혼다-웨이브 알파라는 732달러짜리 새로운 저가 모델을 시판했다. 고객들은 혼다라는 브랜드와 해당 제품이 제공하는 높은 품질, 매력적인 가격에 호응해 중국 제품을 외면하게 됐다. 싸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가치를 제공해주지 못했던 수많은 중국 업체들은 2003∼2004년 동안 대부분 베트남 시장에서 철수했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가격이 고객과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척이나 심대하고 예민하다. 약간의 가격 조정으로도 성과의 변화는 물론 회사 존립 기반 자체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수치나 데이터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관적 생각이나 의견에 근거해 가격 결정을 내려 위기에 처한다. 따라서 기업은 가격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고객 가치 분석과 가격 반응 함수 측정을 섬세하게 수행해야 한다.
 
가격 경쟁에 있어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시그널링이다. 때로는 가격 변화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고객과 경쟁자에게 자사의 입장을 분명하고도 효과적으로 시그널링하는 것이 가격 자체의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종종 효과적인 시그널링만으로도 가격 전쟁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중국 경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SDS, KPMG, 아서앤더슨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마케팅 전문 전략 컨설팅 회사 마케팅인텔라이트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사업 전략, 혁신 전략, 마케팅 전략 분야의 전문가로 국내외 기업들의 성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