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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가격책정

가격과 제품가치의 정당성 찾아라

신성미 | 44호 (2009년 11월 Issue 1)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경제위기의 그림자와 날로 똑똑해지고 협상력이 늘어가는 소비자, 비이성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경쟁사….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10월 중순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모니터그룹의 송기홍 아시아퍼시픽 대표를 만나 가격 전략 수립 및 실행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송 대표는 오랫동안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왔으며, 특히 가격 전략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6년 가격 전략의 전문가들과 함께 <프라이싱 전략: 수익성을 가져다주는 가격 결정 가이드>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송 대표는 기업은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정밀한 세분화(segmentation)에 기반을 둔 가격 전략을 펼쳐야 하며, 가격 하락 압력에 대응해 ‘가격과 제품 가치의 정당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밖에도 ‘전사적 가격 전략’과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법 등에 대해 다양한 조언을 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격 전략을 짤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정밀한 세분화에 기반을 둔 가격 전략이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황 때는 모든 소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불황 때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제품군이 있고 소비를 늘리는 소비자층도 있습니다. 무조건 가격을 내리면 이런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지요. 기업은 불황기의 수요 특성에 맞춰 공급과 가격을 조정해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불황기에는 수요곡선의 모양이 달라져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게 형성됩니다. 하지만 특정 제품군에 있어서는 가격 하락이 소비자 잉여(소비자가 지불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최대 가격에서 실제 가격을 뺀 차액)만 늘리게 됩니다. 소비자 잉여가 큰 제품군의 고객들은 실제로는 기존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도 해당 제품을 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가격이 낮게 형성되면 기대보다 매우 싼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지요. 이것은 물론 소비자에게는 좋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수익성이 낮은 시기에 불필요한 손해를 입는 셈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에겐 제품의 사양을 높이고 고급화를 해서라도 비싸게 팔아 소비자 잉여를 줄여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다양한 고객군의 특성에 맞춰 접근을 달리 하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그림1)
 
 

 
그렇다면 고객군이나 제품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고객군이 원하는 ‘가치(va-lue)’를 기준으로 세분화를 하면 됩니다. 불황에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프라이싱의 효용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고객들이 특정 제품·서비스의 가격이 자신이 얻는 가치에 합당한지에 민감해지기 때문입니다. 가치 측정은 기업이 고객군 별로 다른 가격 체계를 적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큰 가치를 제공받는 고객에겐 가격을 비싸게, 적은 가치를 제공받는 고객에겐 싸게 매길 수 있으니까요.”
 
 

 
경쟁사들이 무리하게 가격을 내릴 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가격 인하의 원인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경쟁사의 가격 인하가 제품이나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원가 절감 때문인지, 그야말로 파산 직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극약처방인지는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경쟁사가 후자의 요인 때문에 가격을 낮췄다면 굳이 무리한 대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자의 이유라면 보다 전략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지요.”(DBR TIP ‘불황기 가격 전략의 모범 사례’ 참조)
[DBR TIP]불황기 가격 전략의 모범 사례
송기홍 대표는 미국의 한 정보기술(IT) 제품 유통사(A사)를 사례로 들었다. 이 회사는 연 매출이 40조∼50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인데, 그동안 고객에 상관없이 원가에 15∼20%의 마진을 붙여 가격을 매겨왔다. 그런데 불황이 닥치자 예전엔 15%의 마진을 남기던 경쟁사들이 출혈 경쟁을 펼쳐 마진을 5%까지 내려버렸다.
 
A사는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에 주목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A사 고객 중에는 단순히 제품 구입만을 원하는 고객도 있었고, 추가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A사는 고객군 별로 서비스 수준을 다르게 설정하고, 이들에게 차별화된 가격을 설정했다. 배송기간 단축 등 많은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25%의 마진을 설정하고, 부가서비스를 따로 받지 않고 인터넷 주문으로 비용을 줄여주는 고객에겐 마진을 7%만 남기는 식이었다. 고객군을 세분화해 마진을 다르게 책정하니 불황기임에도 전체 판매량은 줄지 않았고, 총 마진도 과거와 같이 평균 20%로 유지됐다.
 
마진을 줄이면서까지 일제히 가격을 내려 경쟁했던 경쟁사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결국 A사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이는 불황기에 성공적인 프라이싱으로 기회를 창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치라는 기준을 기업 간 거래(B2B)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특히 경기가 어려울 때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구매 가격을 하향조정하려 합니다. 이럴 때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기업만이 가격인하 압력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이러이러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느냐’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구매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물건을 최대한 싸게 살 수 있을까를 꾸준히 연구해왔지만, 판매 측면에서 탄탄한 가격 논리를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경우는 아직도 드뭅니다.
 
삼성전자가 TV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선 데에는 B2B 시장에서의 가격 협상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전자의 TV를 구매하는 기업 거래 고객은 미국의 베스트바이나 한국의 하이마트 같은 가전 유통업체들입니다.
 
삼성전자는 거래 조건인 서비스 측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전자는 공급망관리(SCM)에 큰 강점이 있습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시간에 제품을 창고에 배송해준다면 고객사 입장에서는 마진을 1, 2% 더 줘서라도 삼성전자와 거래할 의향이 생깁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브랜드 관리에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고객들이 어느 정도의 가격 프리미엄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불황기에 일본 가전업체들 중에 TV 사업을 접는 회사들이 나오면서,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졌습니다.”
 
앞서 “소비자 잉여를 최소화해야 기업의 수익성이 향상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기업이 소비자 잉여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시장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가는 ‘선도적 가격 전략’을 쓰면 됩니다. 주먹구구식 가격 결정과 전략적 가격 결정의 차이는 시장 상황에 반응하느냐, 아니면 사전에 시장을 관리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가전 산업을 예로 들어봅시다. 이 분야에서는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제품 가격이 급격히 내려갑니다. 제조사가 70만 원에 내놓은 휴대전화는 시판한 지 두어 달만 지나면 처음 가격을 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가격이 내려갈수록 수요는 늘어나지요.
 
이론적으로 제조사는 처음에는 신제품에 기꺼이 70만 원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들을 공략해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지불 의향이 높은 소비자층의 수요가 충족된 후에는 가격을 좀 더 내려 다른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전략을 쓰려면 지불 의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비자가 다른 제품을 사지 않고, 계속 기다려준다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을 선보이기 전에 재고를 다 없앨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렇게 하려면 경쟁사보다 더 큰 가치를 주는 제품을 더 빨리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TV처럼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에서는 먼저 최신기술로 시장을 공략한 뒤 경쟁사가 비슷한 제품을 선보일 때쯤 가격을 끌어내려야 경쟁사의 안정적인 시장 진입을 막고, 더 나아가 시장 점유율까지 빼앗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선도적 가격 전략이 가능하려면 기업 내부의 전략과 연구개발(R&D), 생산, SCM 역량이 두루 뒷받침돼야 합니다.”
대표님의 저서인 <프라이싱 전략>에는 “마케팅 부서에만 가격 설정을 맡기지 말고, 전사적으로 가격 전략을 짜야 한다”는 대목이 있더군요. 어떤 의미입니까?
“사실 프라이싱은 전사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팀에 가격 결정을 일임해 종종 문제가 생깁니다. 한 회사 내에서도 부서별로 가격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거든요.
 
영업 부서는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니까 가격 올리기를 싫어합니다. 재무 부서는 투자비용과 원가, 수익을 모두 따져 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하지요. R&D 부서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크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가격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략적 가격결정에서는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격을 설정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마케팅과 영업, 재무 등 각 부서의 의사결정이 조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머리만 맞댄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구심점이 있어야 하지요. 실제로는 마케팅 부서가 여러 부서의 입장을 조율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마케팅 부서는 구체적으로 부서 간 협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요?
“마케팅 부서가 제품 개발 전에 목표 판매량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 가격을 미리 설정하고, 각 부서에 통보한 후 의견을 취합하는 방법이 가장 모범적일 듯 합니다. R&D 부서는 그 가격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재무 부서에선 그 가격에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고정비와 변동비를 어떻게 운영할지 가이드를 제시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지요. 영업 부서는 소비자 조사를 실시해 소비자들의 지불 의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YF쏘나타’를 시판하면서 이전 모델인 ‘NF 쏘나타 트랜스폼’에 비해 가격을 200만 원 정도(약 10%) 올렸습니다. YF쏘나타 최고급 모델의 풀옵션 가격은 3000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차인 도요타 캠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3490만 원)에 캠리를 내놓았고, 혼다는 어코드 등 주력 차종의 가격을 10% 정도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현대차가 20% 이상이 아닌 10% 정도로 인상폭을 정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접근으로 보입니다. 자동차 같은 고관여 제품에서 20% 이상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가격 비교의 기준으로 삼는 ‘준거가격(reference price)’ 문제는 한번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소비자들은 ‘국산차 가격=동급 수입차 가격-일정 금액’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쏘나타 가격이 올라갔는데, (배기량 등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슷한 급의 수입차 가격이 낮아졌다는 점이 문제이지요. 현대차가 내놓은 가격 인상 이유에 대해 소비자들이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종합적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가격 허들’과 관련한 현대차의 부담이 가볍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 발달로 소비자들의 정보력이 월등해지면서 특정 상품에 대한 준거가격이 점차 명확화·구체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똑똑해질수록 과거에 비해 훨씬 정교한 가격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현대차가 소비자의 준거가격 인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거가격은 소비자 인식(perception)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많은 소비자들은 도요타가 만든 자동차가 현대가 만든 차보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잔고장이 안 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10년 동안 들어갈 수리비용이나 감가상각비를 고려할 때 도요타 차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혹은 수입차를 타는 자신을 남들이 한 번 더 쳐다봐주는 대가로 500만 원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차는 일단 소비자들의 지불 의향을 다시 한 번 파악해보고, 자사의 장점은 물론, 단점으로 인식되는 것들에 대한 대항논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들이 도요타에 대해 갖고 있는 ‘내구성 프리미엄’이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일부 수입차 브랜드들은 자동차 가격을 내리면서 기존 고객들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예전 가격이 거품이 아니냐’는 비난이지요. 이미 책정한 가격을 고객들의 반발 없이 내리는 방법이 있을까요?
“기업은 가격을 올릴 때는 물론 내릴 때도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격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장기적으로 ‘신뢰’를 주는 것입니다. 신뢰는 일관성과 가치에 기반을 둔 가격 설정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꼭 가격을 내려야 한다면, 단순한 가격 인하보다는 충성도 할인(loyalty discount)이나 소모품 무료 교환, 주유 상품권 증정 등의 다른 방법을 통해 기존 고객의 반발을 막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소비재는 불황기에 생산원가가 올라 어쩔 수 없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할 때가 생깁니다. 이럴 때도 소비자들의 반발이 매우 심한데요. 기업에게는 무척 곤혹스런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평소 소비자들에게 가격 책정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고, 자사 제품·서비스의 가치를 정확히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정제유 가격은 원유 가격이 아니라 국제 정제유 가격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국제 시장에서는 정제유 가격이 원유 가격과 상관없이 형성됩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내렸는데도 왜 이렇게 기름값이 비싸냐’고 항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름값을 올릴 때는 재빠르게 행동하면서, 내릴 때는 머뭇거리는 정유사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요.
 
결국 가격 설정은 고객과의 보이지 않는 ‘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B2B와 관련해 말했듯이 기업은 자사가 내놓은 가격이 왜 적절한지, 또는 왜 자사가 경쟁사에 비해 비싼 가격을 받아야 하는지 등을 고객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의 가치와 가격의 정당성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기업이 고객의 지불 의향을 키우기 위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온라인 자동차보험사는 보험설계사가 가져가는 중간 유통마진을 거둬냄으로써 일반 자동차보험과 보장은 똑같이 해주면서도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홍보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사의 가격 책정 구조를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야 소비자들의 오해를 줄일 수 있지요.” (DBR TIP ‘원숭이도 불공정한 가격에 분노한다’ 참조)
 
[DBR TIP]원숭이도 불공정한 가격에 분노한다
사람은 물론 원숭이도 불공정한 거래에 불만을 나타낸다. 마케팅 전문가인 사라 맥스웰 미국 포담대 교수는 저서 <가격차별의 경제학(The Price is Wrong)>에서 미국의 한 연구팀이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을 소개했다.
 
연구팀은 우선 암컷 거미원숭이들에게 장난감 돈의 사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가격의 공정성에 대한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원숭이는 장난감 돈을 내지 않고도 맛있는 포도를 받았지만, 두 번째 원숭이는 장난감 돈을 내고서도 맛없는 오이만을 받았다.
 
그러자 두 번째 원숭이는 장난감 돈은 물론 오이까지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원숭이가 돈도 내지 않고 더 맛있는 포도를 받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연구팀은 ‘공정성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맥스웰 교수는 이와 관련해 “사람들은 ‘불공정한 가격’에 본능적으로 격분한다”며 “불공정하게 가격을 책정하는 회사는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볼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문 닫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나아가 “불공정한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분노가 판매자에 대한 ‘응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맥스웰 교수는 4개의 실험그룹을 구성해 ‘불공정한 가격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심화되는 경로’를 연구했다. 참가자들은 “판매자가 똑같은 상품을 전과 같은 서비스로 제공하면서 가격만 올리면 뭔가 속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은 “회사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 끝장을 내버리겠다”와 같이 응징을 위한 준비를 했다. 맥스웰 교수는 “기업이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고 가격만 인상한다면 사회적으로 불공정한 것으로 간주돼 소비자들의 분노를 산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정한 가격’이란 과연 무엇일까? 맥스웰 교수는 “공정한 가격이란 소비자들이 감정적으로 만족하는 가격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또 “불공정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판매자에 대한 ‘신뢰’에 달려 있다”며 “소비자들이 판매자와 판매 시스템을 신뢰하면 가격이 합당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신뢰를 쌓으려면 가격결정의 절차가 투명해야 하고, 판매자가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 <가격차별의 경제학>(사라 맥스웰, 밀리언하우스, 2009)
 
마지막으로 불황기 이후에 유용한 프라이싱 도구(tool)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불황 직후에는 산업의 지도가 바뀌고 기업들의 순위도 뒤바뀌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전략이 기업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격 전략 도구와 관련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것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가격 전략과 관련해 아주 기본적인 초기 절차도 거치지 않는 회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전략의 요체는 ‘기본’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기업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세밀하게 쪼개서 수익성을 분석하는 방법론입니다. 가격을 제품, 고객군, 재고관리단위(SKU) 별로 쪼개 각각의 수익성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지요.
많은 고객사에서 분석 결과의 의외성에 놀라더군요. 가격이 높은 제품이라도 수익성이 낮게 나타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사례도 흔하니까요. 실제로 할인율과 판매량의 관계를 그래프에 점으로 찍어보면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산탄총 표적지’ 같은 모양이 나옵니다. 이를 살펴본 최고경영자(CEO)들은 ‘우리 회사가 이렇게 정신없이 가격을 운영해왔다니’라며 놀라지요. 일단 이런 분석을 거쳐야 회사가 수익성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그림2)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품의 수익성 파악을 사업부나 지역 단위로만 합니다. 제품의 수가 많은 대기업일수록 더 하지요. 하지만 저는 반드시 개별 제품 단위의 분석을 실시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또 일선 부서들이 문책이 두려워 상세한 수익성 비교를 회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가격에 따른 수익성 분석을 최고경영진이 직접 이끌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송기홍 모니터그룹 아시아퍼시픽 대표는 연세대에서 경제학 및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맥킨지 시카고 오피스에서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으며, 1999년 모니터그룹에 입사한 뒤 2001년 파트너로 선임됐다. 현재 모니터그룹 내 아시아인 최고위 임원으로서 한국과 중국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경쟁과 글로벌화, 마케팅 전략 분야의 전문가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선도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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