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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발빠른 ‘IT무장’의 힘

김수욱 | 39호 (2009년 8월 Issue 2)
2004년 3월 한진해운 정보전략팀은 신바람이 났다. 2003년 회계연도 결산 결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7배나 늘어난 4320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실적 호조의 일등 공신으로는 한진해운의 통합 정보 관리 시스템인 NIS가 꼽혔다. 부서나 지사별로 각각 다르게 운영됐던 기존 업무 지원 시스템을 통합한 NIS는 재무, 기획, 영업 지원, 고객 지원, 법무, 물류, 비용 관리, 운항 관리, 장비 관리 등 해운에 관한 거의 모든 업무를 지원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1994년부터 600억 원을 들여 프로그램 개발에 나선 한진해운은 1998년부터 현장에 이를 도입했다.
 
해운 산업의 글로벌 경쟁
 
세계 해운 산업은 한진해운, 덴마크 머스크, 스위스 MSC, 프랑스 CMA-CGM 등 상위 10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한 해운업의 특성상 한진해운을 비롯한 한국 업체들은 중국 경제 성장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의 교역이 세계 해운 산업의 성장세를 견인했다면, 현재 대부분의 물동량은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 나온다.
 
이런 해운 시장에서 기업들의 경쟁 전략은 크게 저원가 전략과 차별화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저원가 전략은 대형 선박 위주로 운영해 고객이 부담하는 운송비를 최대한 낮춰주는 전략을 말한다. 세계 최대 벌크선 운영 업체인 중국원양(COSCO)이나,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운 해운회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M&A, 전략적 제휴, 대형 선박 구입으로 이어지는 저원가 경쟁은 세계 해운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중요한 사안이다.
 
반면 한진해운은 IT 기술을 활용해 차별적 고객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핵심 고객을 유지하고 있다. 대규모 선행 IT 투자를 통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e-SCM 서비스다. 한진해운이 e-서비스 포털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신규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의 신뢰를 높여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객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혁신적 해운 물류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업이 시장의 강자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초기 IT 시스템
 
세계 해운 산업은 그 오랜 역사만큼 국가별 특징도 다양하다. 각 국가별로 서류 양식이나 업무 프로세스가 다르게 발달해왔고,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다 보니 정보 공유도 쉽지 않았다. 해운 산업의 표준화를 저해하는 이런 특징은 업무의 표준화를 바탕으로 하는 IT 시스템의 도입도 방해해왔다. 현재 대부분의 해운회사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주문 정보나 결제 정보 등의 필요 데이터만 본사가 취합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업무가 중복되고 주문 정보를 즉각 파악하지 못했으며, 운항 스케줄도 효율적으로 작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 여기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다. 다른 산업보다 업무 표준화 속도가 느린 만큼, 다른 어떤 산업보다 IT를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기회도 컸다. 가격 경쟁이 심해질수록 IT 시스템의 우수성이 해운업체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뜻이다.
 
한진해운이 선진 정보기술 시스템을 확립한 원년은 고 조수호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1994년이다. 한진해운은 이때 사내 전체에 PC를 랜(LAN)으로 연결하면서 시스템 통합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대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600억 원을 투입해 NIS 시스템을 마련했다. NIS 도입 전에는 미국, 독일, 한국에 위치한 3개 전산 센터에서 서로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고 주문, 결산 등의 기본 정보만 한국의 주 전산 센터로 전송했었다. 그러나 NIS를 도입한 후 미국, 독일, 한국에 위치한 3개의 전산 센터에서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함으로써 각국의 정보를 취합,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NIS는 현재도 한진해운의 전체 IT 시스템의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NIS의 핵심은 고객 지원 서비스다. 고객은 NIS를 통해 한진해운의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쉽게 가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직원들의 저항으로 사용률이 낮았고, 운영자들도 이 시스템이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가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1997년에 닥친 외환위기는 한진해운에 2배의 타격을 안겨주었다. IT에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는 바람에 외환위기에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한파가 지나자 어려운 시절에 단행했던 대규모 투자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동안 줄어들었던 물동량이 급증했던 2000년대 초반, 한진해운의 경쟁사들은 갑자기 늘어난 물동량을 감당하기 위해 인력과 조직을 확대해야 했다. 반면 한진해운은 미리 투자했던 IT 시스템 덕분에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매출을 상당히 늘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정보기술 수준이 급격히 높아진 고객 회사들이 화물 처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이때 업무의 대부분을 수기 방식으로 처리하던 경쟁사들과 달리 한진해운은 손쉽게 고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객 회사와 전자문서 교환(EDI)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빨라야 1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경쟁사보다 먼저 고객과 ED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고객과 장기적인 제휴 관계를 맺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한진해운이 국내 1위, 세계 5위 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e-SCM 시대를 위한 고객 지원 강화
 
과거 해운회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했던 정보는 고객들의 화물이 터미널에 도착하고 떠나는 걸 정해진 시간에 EDI로 송출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IT 기술 발달로 고객들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진해운은 IT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반 컨테이너 시장은 업계 평균 수익률이 3, 4%에 불과하다. 이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일은 무모하기도 하거니와, 승리한다 해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없다.
 
NIS는 클라이언트/서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설계가 간단하고 적은 비용으로 대용량 고성능 서버를 대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다. 이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사용자 교육이 필요하며, 시스템의 확장성과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기업 외부 사용자들이 시스템에 접속해야만 하는 e-SCM 환경에서는 개방성이 뛰어난 웹 기반 시스템의 경쟁력이 더욱 크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은 일반 컨테이너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출혈 경쟁을 벌이기보다 냉장 운송, 3PL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즉 경쟁사가 제공하지 않는 고객 지원 정보를 제공하는 식으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이를 위해 한진해운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해운 산업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화물 정보의 70% 이상을 터미널 운영업체, 공동으로 운항하는 다른 해운회사, 내륙 운송업체와 같은 협력 업체에 의지해야 한다. 때문에 해운회사의 정보 제공 수준을 높이려면 단순히 자사의 IT 시스템만 개선해선 안 되며, 이들과 협업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에 한진해운은 영세한 규모 때문에 독자 IT 시스템이 없었던 협력 업체들까지 끌어들여 이들의 업무를 자사의 시스템과 연동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①협력 업체와의 협업 IT 시스템 구축 한진해운은 제휴 업체가 보내주는 정보를 단순히 자사 시스템에 입력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 정보를 자동으로 국제 표준 전자문서 형식으로 변환시켰다. 이를 자사의 관리 시스템으로 직접 전송하자 정보 수집에 따르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었다. 협력 업체와의 신뢰도도 높아졌고, 협력 업체들의 업무 경쟁력도 강화됐다.
 
②해운 포털 GT-Nexus 설립 한진해운은 2001년 글로벌 해운기업 13개 회사, 화주, 운송 주선인 등과 공동으로 해운 포털 GT-Nexus(www.gtnexus.com)를 개설했다. 일반 포털이나 개별 해운회사의 웹사이트와 달리 GT-Nexus에서는 화주가 수송 지역, 수송 시간 등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면 여러 해운회사 중 가장 적합한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운임 협상, 예약, 증명서 발급, 화물 추적 등 모든 업무가 온라인상에서도 가능하다. 아직 뚜렷한 국제 표준이 없는 세계 해운 산업에 업무 표준화의 기반을 조성했다는 면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③e-서비스 시스템 e-서비스는 고객이 한진해운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직접 선적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진해운의 NIS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어 최신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한다. 독립 e-SCM 시스템이 없는 소형 화주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④EDI 서비스 개선 고유의 IT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대형 화주들은 한진해운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얻기보다는 자사의 시스템에 데이터를 자동으로 입력할 수 있는 EDI를 선호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으로 해운사의 전산 시스템에서 송출되는 EDI 방식의 특성상 실제 정보와 시간 차이가 생긴다. 한진해운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객 회사가 원하면 EDI의 송출 간격을 줄여주고 있다. 실시간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인 셈이다.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IT 인프라 재구축
 
한진해운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IT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7년 말 전략적 경영 관리(SEM), 전사 자원 관리(ERP), 고객 관계 관리(CRM), 마스터 데이터 관리(MDM), 전사 어플리케이션 인터페이스(EAI) 등을 갖춘 차세대 업무 시스템(e-NIS)을 구축했다. 이어 2008년에는 2010년 완료를 목표로 ‘NIS 2010’이라는 2단계 프로젝트도 출범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클라이언트/서버 환경 시스템을 모두 웹 기반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끝내면 사용자 편리성, 고객 만족도, 시스템 안정성이 크게 높아져 한진해운의 성과 창출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다.


김수욱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산 전략, 경영 정보(MIS), 공급 사슬 관리(SCM), 서비스 운영 관리가 주 연구 분야다.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부교수 및 한국 SCM학회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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