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이익은 중독성 강한 마약

38호 (2009년 8월 Issue 1)

유동성 해법, 위험 전문 회계, 경쟁력을 높이는 투명성….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인 앤드류 로는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가 전대미문의 기회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버블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 외에도 역사상 수없이 많은 버블이 나타났다. 지난 10년간만 해도 닷컴 버블이 무너졌고, 미국 주택 가격이 폭락했으며, 신용 경색으로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세계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금융위기가 남긴 잔해를 점검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경제가 유동성 부족에 빠지기 전에 미리 위기관리 시스템이 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각국 정부는 왜 사전 규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를 알아내려 골몰하고 있다. 재계 역시 금융위기가 기업 경영 방식에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나섰다. 그야말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금융위기 타개책을 찾고 있다.
 
그런데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놀라워하는 상황에서 앤드류 로만큼은 이번 금융위기에 매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다채로운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제학자이며,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해리스&해리스 기금 교수이자 MIT 금융공학 연구소장이다. 또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투자회사 알파심플렉스 그룹의 자문도 맡고 있다.
 
앤드류 로는 경제 관련 의사결정, 신경과학, 진화심리학 간의 상호 관계를 10년 넘게 연구했다. 특히 인간 행동이 금융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춰왔다. 현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미래의 대란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는 최근 그의 이론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금융위기는 현대 자본주의가 빚어낸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 하원의 금융감독 정부개혁 위원회에서 지난 35년간 신용위기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 또 신용위기는 당국의 개입 없이도 해소된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을 단행할 때는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위기를 잘못 평가할 때는 시장 혼란 및 이탈 현상이 극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행동의 맹점(behavioral blind spots)’이 버블 생성 및 붕괴처럼 극한 상황에서 맹위를 떨친다고 덧붙였다.
 
슬론매니지먼트리뷰(SMR)의 마이클 홉킨스 편집장과 브루스 포스너 기고편집인은 지난 1월 MIT 내의 연구실로 방문해 앤드류 로와 대화를 나눴다. 이번 금융위기가 어떠한 후폭풍을 일으킬 것이며, 경영자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주 내용이다. 이 글에 대한 의견 제시나 저자와의 연락은 smrfeedback@mit.edu로 가능하다.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번 금융위기가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의 현황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 대다수의 위험 노출도(risk exposure) 평가 및 관리도 형편없었다. 최신 경영 전략을 도입한 회사들까지도 1분기 만에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냈다.
 
3개월 동안 400억 달러를 날린 회사가 무슨 낯으로 ‘우리는 위험관리를 제대로 했지만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주장을 한단 말인가? 일부 기업들이 2008년 금융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검은 백조(black swan)’였다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검은 백조 탓을 하려면 하얀 백조 무리를 모조리 검은 백조로 만든 주범부터 찾아봐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 현명한 줄 알았던 사람들까지 사전에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현명하고 노련한 재계 거물들까지도 이번 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볼 때, 이번 금융위기를 소수의 탐욕스러운 최고경영자(CEO)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나는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경영진의 ‘어법(language)’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업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을 평가하고 분석할 만한 수단을 아직 찾지 못했다. 10년 전만 해도 시장 전반이 타격을 입고 연쇄적으로 신용 사건(credit events)까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변했다.
 
우리가 이번 금융위기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경영 전략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주주 가치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사고방식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 표준회계 관행으로는 위험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는 기업의 실현 손익을 보여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다. 그러나 기업에 내재하고 있는 위험은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신용등급 BBB인 제3자와 5년짜리 신용부도스와프(CDS)를 체결한다 치자. 여기에는 이 기업 시가총액의 5배에 맞먹는 금액이 걸려 있다. 그러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만 보면 이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 계약이 성사된 스와프는 자산도, 부채도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위험을 막으려면 회사의 위험 현황 시스템에 스와프 거래를 등록하고 쉴 새 없이 감시, 관리해야 한다.”
 
기업이 수많은 위험을 떠안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경영진이 눈앞의 위험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 때문인가? 위험은 파악했으나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인가?
 
“리먼 브라더스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 경영진이 떠안은 위험은 적절한 수준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금융위기 전 리먼은 전 자산을 고수익 사업 분야에 걸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리먼이 올인한 분야는 지난 12년간 리먼의 주주 가치를 20배 늘리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만약 2006년에 1994년 기업공개(IPO) 이후 리먼이 거둔 실적을 훑어봤다면 누구나 흔쾌히 리먼에 투자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리먼의 연평균 총 수익률은 26%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7년과 2008년이 다가오자 리먼의 호시절도 끝났다. 리먼이 파국을 피할 수 있었느냐 아니냐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그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한 사람은 누구인가?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긴 했는가? 해고 우려 없이 누군가가 이런 위험한 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었는가? 그럴 만큼 기업 지배구조가 올바로 갖춰져 있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에는 당시 리먼의 서열 2위 인사가 이미 2006년에 위험을 너무 많이 떠안았다고 경고했다가 곧바로 해고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가 답을 줄 것이다.”
 
리먼의 경영진은 시장 붕괴의 위험을 알면서도 고수익을 포기할 수 없어 위험을 묵인한 게 아닐까?
 
“CEO에게는 말 그대로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 만큼 그는 주주들에게 자신이 왜 이 투자를 결심했는지를 낱낱이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주주들의 뜻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신중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거듭 점검해야 한다.
 
파산 확률은 1%에 불과하며, 26% 수익을 낼 확률은 99%인 투자 안이 있다고 치자. 주주들이 이 안에 전원 찬성할 거라는 확신이 들어도 CEO는 반드시 주주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CEO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나는 의사결정권자인 CEO들이 이번 위기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던 게 파국의 원인이라고 본다. 즉 그들은 파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믿었던 거다.
 
리먼과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기업도 있다. 미국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는 2005, 2006년 급진적인 임원들의 주도로 주택담보부증권(MBS) 사업 진출을 검토했다. 그러나 ‘채권왕’으로 유명한 전설적 투자자 빌 그로스 CEO는 미국 부동산 시장이 과대평가 상태라며 반대했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 주로 참고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한번 오른 부동산 가격이 그만큼 떨어진 사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로스는 부동산 가격이 1년 동안 10% 폭등했으니 그만큼 폭락하는 데도 1년밖에 안 걸릴 거라고 전망했다. 그는 투자 욕구에 넘치는 동료들에게 즉석에서 간단한 전망을 해보라고 주문했다.
 
‘부동산 가격이 10% 떨어진다면 우리 회사가 입을 손실은 얼마일까? MBS 포트폴리오는 얼마만큼의 타격을 입을까?’ 그가 예상했던 대로 회사가 파산할 거라는 답이 나왔다. 이에 그로스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라고 응수했다.”
 
그렇다면 리처드 풀드 리먼 CEO와 빌 그로스는 과연 어떤 점에서 달랐나? 성격 차이인가, 정보력의 차이인가? 아니면 리먼과 핌코의 지배구조가 달랐나?
 
“기업들이 고수익 전망에 눈이 멀어 의문을 품지 않았기에 ‘부실 자산’을 대량으로 떠안았다는 게 내 추측이다. 하원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밝혔듯, 금융 이익(financial gain)은 중독성 강한 마약처럼 뇌를 자극한다. 누구나 술을 몇 잔 마신 후 근심과 불안에서 벗어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난 10년 내내 짜릿한 칵테일을 들이킨 끝에 그 어떤 위험에도 무덤덤해지고 말았다.”
 
기업 경영진이 향후 재편될 금융 환경을 기회로 활용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향후 1, 2년간 기업들은 유동성이 대폭 감소했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금리는 상승하고 투자 자금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며, 경영진도 당분간 지속될 어려운 시기를 각오해야 한다.
 
이 와중에 많은 연기금들은 새로운 투자 상품을 적극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나는 연기금이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사모펀드,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리라 예상한다. 그간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위험이 큰 상품에 투자할 사람들이 많다.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에 들어갔던 자금들도 다른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일수록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시장에 찾아올 새로운 기회란 무엇인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회인가?
 
“금융시장을 강타한 이탈 현상(dis-location)을 떠올려보라.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이 모기지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모기지는 이질적인 상품이라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이베이의 가격 검색 서비스를 모기지 상품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모기지와 같은 비유동성 상품의 정보를 입력하면 사용자가 즉석에서 손쉽게 해당 상품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베이처럼 이런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성을 얻는 업체가 있다면, 가치 평가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다.
 
모기지 관련 투자상품을 보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증권을 온라인에 올리고, 투자자들이 그 가격을 매길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거에 입찰자들이 매긴 가격까지 모두 웹사이트에 나타나도록 한다면, 4개월 전 어떤 모기지 상품이 특정 지역에서 얼마에 거래됐는지도 참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서비스는 다양한 정보와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모기지 포트폴리오를 파는 것은 가구를 판매하는 일처럼 쉽지 않다.
 
“현재 MBS과 같은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거두려면, 매수자를 일일이 찾아내 이 상품을 구입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MBS의 가치를 높이려면 MBS가 통념과 달리 불가사의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상대방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MBS는 돈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아니다. 충분한 가치를 지니며, 아직 가격 하락폭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MBS가 활성화되기만 한다면 주식시장을 능가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다.”
 
금융위기 발생으로 투명성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투명성 강화가 여러 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나?
 
“정보는 힘이다. 정보력을 갖추면 엄청난 시장 지배력을 얻을 수 있다. 경영진, 포트폴리오 매니저, 규제당국이 위험을 고려해 옳은 결정을 내리려면 올바른 정보부터 수집해야 한다. 또한 이 정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껏 대부분의 회계 법인은 분석 틀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회계사들이 위험이나 불일치라는 개념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하고 계산이 딱딱 들어맞는 숫자만 보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새로운 회계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대표적 예가 즈비 보디 보스턴대 교수와 밥 머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소개한 ‘위험 회계(risk accounting)’다. 즉 가치 평가 시 위험을 반영해 자산 가치를 조정하는 형식의 새로운 대차대조표를 사용해야 한다. 나는 위험 회계가 막대한 사업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위험 회계를 담당할 회계사로는 기존 회계사보다 엔지니어와 통계 전문가 출신이 적격이다. 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도 새로운 회계 처리 절차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실현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당신의 하원 증언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오바마 행정부는 투명성을 높이자는 내 의견을 반겼다. 의회감독단(the Congressional Oversight Panel)과 국가경제위원회(the National Economic Council)도 내 의견에 상당 부분 찬성했다. 그러나 우려를 나타내는 이해관계자도 있었다. 특히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투명성을 높이자는 제안 자체를 불편하게 받아들였다.
 
위험 회계에 대한 FASB의 시각이 어떤지도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현행 회계 체계의 허점을 메우기 위한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최첨단 회계 기법과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면 회계 법인에도 이익이다.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만큼 수수료도 더 많이 청구할 수 있으니까.”
 
그간 신봉됐던 경제 이론 중 금융위기 후 그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거나 의문시되는 게 있나?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이론이 도전받고 있다. 현재의 보상 체계는 주식시장의 가치 평가액만을 고려하도록 설계된 측면이 있다. 물론 주식시장이 항상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한없이 오르기만 한다면 경영진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주식시장의 가치 평가 방식은 완벽하지 않다. 경제 이론과 달리 금융시장과 기업이 환경 변화에 항상 이성적으로 대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부터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
 
나는 기업이 박테리아 집단과 같은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시장 참가자들과 경쟁 환경의 법칙을 생태계의 동식물과 비슷하다고 여기면, 우리는 사업 기회를 더욱 제대로 판별할 수 있다. 굳이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학자들부터 기존 경제학 이론을 철석같이 믿는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 감정과 논리적 사고력 사이에는 매우 복잡한 상호작용이 존재하며, 이를 간과한다면 파국으로 치닫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GP TIP]우리가 위험에 대해 가장 잘못 평가할 때는 언제인가?
 
답은 위험 평가가 가장 절실할 때다. 앤드류 로는 개인의 경제적 선택에 ‘행동의 맹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행동의 맹점이란 인간이 위험과 보상으로 인식하는 현상에 대해 진화적으로 획득한 반응 체계다. 특히 버블 생성 및 붕괴가 일어날 때처럼 경제가 극에서 극으로 치달을 때, 행동의 맹점이 인간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앤드류 로가 2002년 발표한 실험에 따르면, 매일 행동의 맹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 있었다. 로와 동료 드미트리 레핀은 매일 주식시장 개장 동안 증권 트레이더의 맥박, 피부의 전기 전도성(skin conductance), 체온 등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트레이더는 주가가 극단적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사고가 마비될 정도로 긴장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두려움과 불안이 겹치면 트레이더의 의사결정 능력 또한 크게 떨어졌다. 전문가는 반드시 냉정하고 이성적일 거라는 선입견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로에 따르면, 감정 마비 현상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서 비롯된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미 50년 전에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꼽았다.
 
물론 몇몇 유능한 트레이더들은 동료들과 달리 주가가 빠르게 요동칠 때처럼 가장 주의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트레이더들은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일이 가능한 프로 선수들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만 감정 반응을 나타냈다.
 
앤드류 로는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수록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며 시장의 힘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보완된 규제 인프라가 개입해야 한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정부는 공공건물 곳곳에 화재 예방 시설을 갖추도록 의무화한다. 마찬가지로 금융 규제 인프라도 보완이 시급하다. 로는 “화재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화재 예방 시설을 갖춰봤자 이미 때는 늦는다”고 강조했다.
 
로는 21세기 들어 금융시장에 일어난 사고들을 볼 때, 관련 규정과 절차를 재정비해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금융계 전반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인간이 자기 파괴적인 성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버블 붕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야말로 다음에 나타날 버블에 미리 대비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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