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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리드’하는 것

김호 | 27호 (2009년 2월 Issue 2)
위기는 리드(lead)할 수 있는 대상인가. ‘위기를 당하다’ 또는 ‘위기를 관리하다’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위기를 리드하다’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위기관리 분야의 대표적인 경영학자인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 이안 미트로프 교수는 2003년에 펴낸 저서 ‘위기리더십(Crisis leadership)’을 통해 위기관리에서 위기리더십으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위기관리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after)에 작동하며, 수동적 반응이다. 반면에 위기리더십은 더 큰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before)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나간다. 미트로프는 위기리더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위기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까지 주장한다.
 
위기를 리드한 오바마
미국의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위기를 어떻게 ‘리드’했는지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후임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는 거래를 통해 매직(賣職)을 시도했다.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켜 자칫 사건의 불똥이 오바마에게 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오바마 당선자는 사건을 무조건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더 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파문이 터진 다음날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임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내부 조사 계획을 밝혔으며, 그 다음 주에는 실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바마의 이러한 일련의 대응은 위기사건을 언론이 리드하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폴리티코는 풀이했다. 블라고예비치 주지사는 결국 탄핵을 받아 1월 29일 주지사직을 박탈당하고, 이 스캔들은 더 이상 오바마에게 큰 위기로 발전하지 않았다.
 
실패한 위기관리 사례에서는 소비자나 언론과 같은 제3자가 자신의 사태를 이끌고 가도록 방치한다. 반면에 성공한 위기관리 사례에서는 해당 기업이나 개인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리드해 간다. 그렇다면 위기는 어떻게 리드할 수 있을까.
 
1. 위기가 아닌 ‘이슈’를 관리하라
1월 30일자 동아일보 1면 톱기사는 ‘의료계 양심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내용이었다. 내과 의사를 중심으로 논문의 이중 게재를 스스로 밝히고 게재를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상을 보도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울대병원 내과 송인성 교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3월 내과학회지에 자신을 포함한 16명의 이름으로 논문을 이중 게재한 사실을 자백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논문의 이중 게재는 교수 평가 업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의 관행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매년 600여 건 또는 그 이상의 논문이 이중게재로 의심된다고 한다. 아직 처벌 규정은 없는 상태지만 몇몇 의사들을 중심으로 잘못된 관행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례는 기업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위기관리에서는 이슈(issue)와 위기(crisis)를 구분한다. 이슈는 위기라는 실제 사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 상태다. 그래서 ‘스마트한 기업은 위기가 아니라 (잠재된) 이슈를 관리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문제(이슈)를 무시하는 것은 위기를 초대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잘못된 관행이 실제 위기 사건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먼저 탈피하는 것은 대표적인 이슈 관리 방법이다. 이슈를 관리하려면 우선 이슈의 발견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내놓은 위기관리 가이드에서는 이안 미트로프와 무랏 알파슬란이 제시한 ‘내부 테러리스트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원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회사에 대해 알고 있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회사를 ‘테러하는’ 입장에서 자사에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이슈를 찾아내 공격하도록 하는 게임이다. 필자 역시 임원 대상의 위기관리 워크숍에서 활용하고 있는 이 게임은 공개적으로 회사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논의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훌륭한 도구다. 이러한 게임은 의도적으로 부정적 사고를 유도하여 무심코 지나쳐온 잘못된 관행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도출된 잠재적인 부정적 이슈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로 이슈관리다.
 
2. 부정적 뉴스(bad news)는 먼저 터뜨려라
앞의 케이스가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 이슈를 관리하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조직 내부에서 이미 발생한 사건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 사건이 외부에 공개되기 이전에 위기를 리드한 사례를 살펴보자.
 
2008년 2월 KAIST는 지난 2005년 생명공학과의 한 교수가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인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이 조작되었음을 밝히고,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 처리를 포함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 부정이라는 개교 이래 최대 위기 중 하나인 이 사건은 한창 대학 개혁의 선두에 섰던 KAIST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은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시작됐다. 학교 측은 신속하게 생명과학과 연구진실성 위원회를 통해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명백한 잘못을 판정할 물증을 확보했다. 당시 미국에 머물고 있던 해당 교수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학교 측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발 빠르게 언론을 통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KAIST가 부끄러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덮으려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발표를 늦추다가 언론이나 제3자에 의해 먼저 카이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위기관리의 양상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KAIST는 문제의 출발점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문제 해결의 주도자로 포지셔닝해 가면서 위기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자기 기업에 부정적인 뉴스는 당사자가 발표할 때 부정성(negativity)을 가장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은 언론과 검찰 등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밝혀낼 때까지 부정과 함구로 일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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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hoh.kim@thelabh.com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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