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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Leadership

닌텐도의 파괴형 혁신과 산업 리더십

김한얼 | 26호 (2009년 2월 Issue 1)
2008
년 9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작은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닌텐도의 직원 1인당 이익 창출이 골드만삭스를 앞섰다’였다. 글로벌 신용위기 전만 해도 골드만삭스는 세계 투자은행(IB) 업계의 지존으로 군림했다. FT 조사에 따르면 2007년 골드만삭스 직원 한 사람이 창출한 이익이 무려 124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게임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닌텐도가 2007년에 창출한 직원 1인당 이익은 골드만삭스의 124만 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무려 160만 달러였다. 닌텐도의 시가 총액이 게임산업의 경쟁업체이자 세계적인 전자제품 기업인 소니의 4배라는 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닌텐도의 정상 복귀
닌텐도는 과연 어떤 회사인가. 닌텐도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의 교토 지역에서 화투 생산 회사로 시작해 1970년대 비디오 게임 산업에 진출했다. 1980년대에는 일본과 미국의 3가구 가운데 1가구가 닌텐도 게임기를 보유했을 정도로 게임 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지켰다. 그러나 이후 게임 산업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 360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닌텐도가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게임업계의 리더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닌텐도 DS와 닌텐도 위(Wii)라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제품의 성공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열등한’ 제품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세계 게임 산업의 역사는 경쟁사의 제품보다 더욱 성능이 좋은 하드웨어, 더욱 현실적인 그래픽, 더욱 복잡한 스토리의 게임을 한 발 앞서 출시한 기업들이 업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 온 과정이었다. 닌텐도 경쟁사의 제품 역시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그래픽프로세서, 엄청난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 대서사시와 같은 복잡한 구조의 게임을 영화 같은 화질로 제공함으로써 주요 고객인 10대들의 흥미를 자극해 왔다.
 
그러나 닌텐도의 최근 성공을 이끈 두 제품은 보기에 좀 엉성해 보이는 그래픽을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컬러도 아닌 흑백 화면을 이용하는 게임마저 있다. 게다가 닌텐도 DS는 두뇌 훈련을 위한 덧셈·뺄셈 게임과 같은 아주 단순한 게임을 제공한다. 닌텐도 위는 마치 10년 전 비디오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래픽으로 야구·볼링 등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게임기의 성능이나 게임의 복잡성 관점에서 볼 때 경쟁 제품보다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비(非) 소비자를 소비자로 끌어와
그렇다면 닌텐도는 경쟁 제품에 비해 기술적으로 열등한 제품으로 어떻게 큰 성공을 거두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닌텐도가 열등한 제품으로 기존 비(非)소비자를 소비자로 전환시킴으로서 시장을 엄청나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 게임업계의 화두는 어떻게 기존 핵심 고객인 10대의 만족도를 더욱 높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즉 기존 게임보다 더욱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게임을 만들고, 이를 더욱 현실적인 화면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고성능 게임기를 개발하고, 그 기기가 가진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복잡한 내용의 게임을 경쟁업체보다 빨리 개발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했다.
 
물론 더욱 현란한 그래픽과 복잡한 내용의 게임은 업계의 충성 고객인 10대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매력이 비(非) 소비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닌텐도의 경쟁업체들이 간과한 점은 새로운 게임이 성공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게임을 즐기지 않은 고객들이 게임업계의 새로운 고객이 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는 사실이다.
 
사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게임도 이미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렇게 복잡한 게임을 즐기려면 게임의 구조와 기기 작동법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 시간을 낼 수 없어 기존의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 출시된 더 복잡한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가 던진 질문은 지금껏 게임 산업을 지배한 ‘어떻게 하면 기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가 아니었다. 대신 ‘왜 전체 인구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게임을 즐기고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 질문에 관해 닌텐도가 도출한 통찰은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고객이 아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매우 단순하고 놀라울 것 없는 사실이다.
 
닌텐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 한정된 고객을 놓고 경쟁업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고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비 소비자를 새로운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복잡하고 더 현란한 게임이 아니라 간단하고 직관적인 게임이라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또 단순한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게임기기는 값비싼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고성능 기계일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간파했다.
 
이를 토대로 닌텐도는 닌텐도 DS(2004년)와 닌텐도 위(2006년)를 출시했다. 시판 당시 두 제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을 무색케 할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파괴형 혁신
리더십은 비단 사람의 품성이나 지도력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특정 산업에서 한 기업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는 때로 그 업계의 판도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닌텐도나 캐논의 예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닌텐도처럼 열등한 성능을 가진 제품을 통해 산업 구도의 재편을 주도함으로써 한 산업의 리더로 탄생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파괴형 혁신(disruptive innovation)’ 모형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이나 제품 성능의 발전 속도와 소비자가 이용하는 성능의 변화 속도는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경영자와 기업은 낮은 이윤보다 높은 이윤이 나는 기회를 선호한다.
 
산업 진화와 기업 경영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많은 경영자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한 기업을 경쟁기업들과 차별화하고자 하는 리더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두 가지 사실을 하나씩 살펴보자.
 
제품 성능의 발전 속도와 소비자가 이용 가능한 변화 속도 차이
파괴형 혁신 모형을 위의 <그림1>로 설명해 보자. X축은 시간, Y축은 성능의 변화를 각각 나타낸다. 여기서 성능은 한 산업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을 말한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차량의 최고 속도, 한 번의 주유로 갈 수 있는 거리,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닿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이 해당한다.
 
실선은 제품이 제공하는 성능의 변화, 즉 기술 발전을 나타낸다.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과학 기술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때문에 이처럼 빠른 성능 향상은 실선의 상대적으로 급한 기울기로 표현할 수 있다. 점선은 고객이 이용하고 있는 성능의 변화를 나타낸다. 주의할 것은 점선이 고객이 ‘원하는’ 성능이 아니라 고객이 ‘이용하고 있는’ 성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선의 기울기가 실선의 기울기보다 완만하다.
 
고객이 ‘이용하고 있는’ 성능이라는 개념을 자동차를 통해 살펴보자. 요즘 중형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220km 수준이지만 일반인 가운데 시속 200km 이상 달려 본 운전자는 거의 없다. 시내 주행 때 평균적인 차량 운행 속도는 시속 40∼60km, 고속도로 주행 때의 속도는 시속 100∼120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을 합해도 시속 80km 수준이다.
 
그렇다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한 제품의 성능을 100%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로여건·교통법규·교통체증 등의 제약 조건 탓에 대부분의 소비자가 차량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 성능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운전자들은 일반 대중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운전할 수도 있고 이미 기존 차량이 보유하고 있는 성능도 모자라서 차량 개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또 다른 소수의 운전자들은 일반 대중보다 훨씬 더 천천히 차량을 운전하기도 한다. 따라서 점선은 대다수 일반 소비자가 차량을 운행하는 평균적 속도를 나타낸다. 전체 시장은 점선을 중심으로 정규분포를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대다수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편의상 하나의 선을 사용하고 있다.
 
시간 개념을 도입해 현재 시속 80km 안팎인 평균 운행 속도가 1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10년 동안 차량의 성능이 많이 향상되고 도로 여건도 개선되었기에 그 당시의 차량 운행 속도가 현재보다 느렸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시에는 지금보다 전체 차량의 절대 숫자가 훨씬 적고 과속을 단속하는 무인 카메라도 거의 없었다. 때문에 차들이 지금보다 더 빨리 달렸을 수 있다. 이러한 요인과 운전자들의 운행 습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전과 현재의 평균 차량 운행 속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때문에 고객이 이용하고 있는 성능을 나타내는 점선의 기울기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것이다.
 
기술 발전과 고객이 이용하는 성능 변화를 함께 고려했다는 점은 파괴형 혁신 모형을 다른 기술 혁신 이론과 차별화한 결정적 요인이다. 그 동안 기술 혁신에 관한 대부분의 이론들은 기술이나 제품의 사용자, 특히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산업에서의 실증 연구를 통해 기술의 공급과 수요 변화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도출했다.
 
이렇듯 기술 발전의 속도와 일반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성능 변화의 차이 때문에 앞 장의 <그림 1>에는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2개의 지역이 존재한다. [A] 지역에서는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의 성능이 일반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의 성능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B] 지역에서는 판매되는 제품의 성능이 일반 소비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성능보다 훨씬 더 높다.
 
한 산업의 초창기에는 [A] 지역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상황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는 길은 경쟁업체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이 성숙기에 들어서 [B] 지역에 도달하면 경쟁업체보다 더 성능이 좋은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반드시 그 회사의 경쟁 우위를 보장하지 못한다.
 
일반 대중이 이미 기존 제품의 성능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성능의 향상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존 제품에 비해 열등한 제품이라도 일반 소비자가 보기에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수준이면 소비자들이 사용하지도 않는 과도한 고기능 제품을 압도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신제품이 기존의 제품을 몰아내고 성공을 거두면 우리는 흔히 신제품이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좋아서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혁신을 위한 노력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제품보다 더욱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그러나 파괴형 혁신 모형은 <그림 2>의 [나] 시점처럼 일반 소비자들이 우수한 제품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열등한 제품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단 닌텐도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복사기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린 제록스의 시장 점유율은 1980년대 들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록스의 쇠퇴를 가져온 것은 IBM이나 코닥과 같은 우량 대기업이 개발한 고성능 대형 복사기가 아니라 캐논이 내놓은 개인용 소형 복사기였다.
 
성능만 따지자면 캐논 소형 복사기는 제록스 대형 복사기에 비해 정말 형편없었다. 일단 문서 1장을 복사하는 데 2분 이상 걸렸다. 복사의 질도 매우 나빴고 확대, 축소, 회전복사, 자동 편집 기능도 전무했다.
 
이렇게 열등한 기능의 캐논 복사기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복사기가 필요한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사원들이 복사기를 쓰는 이유는 대부분 급하게 서류 1, 2장을 복사하기 위해서다.
 

대형 복사기는 대체로 회사 전체의 복사 업무를 담당하는 복사실에 비치돼 있었다. 대형 복사기는 복잡한 조작 방식 때문에 비숙련자가 조작할 경우 고장이 잦아, 복사실 담당 직원만 조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에 따라 겨우 복사 1장을 하는데도 다른 대량의 복사 업무 때문에 장시간을 기다리거나, 심지어는 문서를 맡겨 놓고 일정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문서를 수거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제록스의 대형 복사기는 회사원들의 일상적 활용 목적인 소량 단순 복사에 비해 과도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등한 기능이지만 소량의 문서를 간단하게 복사해 주는 캐논의 소형 복사기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캐논 복사기는 제록스의 대형 복사기가 너무 고가여서 이를 구입할 수 없는 소규모 개인 사업자들까지도 복사기 시장의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열등한 제품이 시장 규모의 확대를 가능케 한 것이다.
 
재미있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기술 2]의 초기 단계인 [가] 시점뿐 아니라 시장의 중심이 [기술 2]로 넘어오는 [나] 시점에서도 [기술 2]는 [기술 1]에 비해 성능 면에서 열등하다는 것이다. [기술 1]이 주도하고 있던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반드시 더욱 성능이 좋은 제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거듭 드러난다.
 
둘째, [기술 2]와 같은 파괴형 혁신이 항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기에 일반 소비자 시장이 [기술 2]로 넘어가려면 일정 조건이 필요하다. [가] 시점에서는 극소수의 소비자들이 열등한 [기술 2]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 소비자는 [기술 2]에 관심이 없다. 우월한 기술인 [기술 1]조차도 아직 일반 소비자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때문에 [기술 1]의 성능을 한 발 앞서 끌어올리는 제품들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일반 소비자가 [기술 2]로 넘어가는 ‘시장 파괴’가 일어나려면 [기술 1]이 시장의 요구 수준보다 현저히 높은 성능을 제공하고, 일반 소비자가 열등한 [기술 2]를 ‘충분히 좋은’ 제품으로 인식할 때만 가능하다.
 
셋째, [기술 1]을 보유한 기업이 왜 기술적으로 단순한 [기술 2]에 투자하지 않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해답은 시장 선도 기업의 기존 고객 중심 사고, 더 높은 이익률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사업으로 진출하려는 속성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의사결정방식 : 기존 고객 중심 사고와 높은 이윤 추구
경영의 기본 원칙 가운데 최근 많은 한국 기업들이 강조하고 있는 원칙이 바로 ‘고객 중심 경영’이다. 고객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불만 사항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지나친 고객 중심 경영 원칙이 때로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즉 고객 중심 경영에서 말하는 고객은 대체로 현재 우리 제품 또는 우리 제품과 경쟁하고 있는 타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을 의미한다. 게다가 많은 기업은 이 ‘기존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제품을 개선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닌텐도가 거둔 최근의 성공은 바로 기존 고객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존 고객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해 파괴형 혁신을 낳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했다 해도 현재와 같은 기업 운영 방식 아래에서는 파괴형 아이디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기 어렵다. 파괴형 혁신은 전통적 성능 지표상 열등한 성능을 지니고 있어 가격 포인트와 이익률이 기존 제품보다 낮다. 많은 경우 기존 시장이 아닌 새로운 시장을 통해서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대다수 경영자들이 가용 자원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최대화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파괴형 혁신처럼 기존 고객이 원하지 않고, 가격대와 마진율도 낮으며, 시장 발전 가능성 또한 불투명한 사업 기회에 좀처럼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1970∼1980년대 캐논의 소형 복사기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동안 제록스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는 기존 핵심 고객인 대기업들이 더욱 다양한 기능의 대형 복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투자 효율 관점에서 볼 때 대기업 고객은 높은 투자 수익률을 보장하는, 당연히 투자해야 할 대상이었다. 때문에 제록스는 기존 핵심 고객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한국형 ‘닌텐도 반란’을 기대하며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제품·서비스 가운데 상당수 역시 초창기에는 파괴형 혁신으로부터 시작됐다. 닌텐도와 캐논 소형 복사기 외에도 전보를 대체한 전화, 월마트와 같은 할인 판매점,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의 위치를 대체한 PC 등이 좋은 예다.
 
기존에 주도권을 쥐고 있던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열등한 파괴형 혁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혁신 문제를 기술 향상 관점에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 향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시장의 요구가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그간 산업이 발전해 온 방향으로 기술 개발에만 매진할 경우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파괴형 혁신 모형의 시사점이다. 많은 경영자는 예전 방식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리더로서 경영자의 역할은 조직 구성원들이 무작정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직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파괴형 혁신의 아이디어들이 종종 기존의 기업 운영 방식 때문에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고 이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는 것, 적절한 조직 구조 및 보상 제도 확립을 통해 혁신가들을 육성하는 통찰력이야말로 21세기 기업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한국에도 닌텐도와 같은 기업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기업 전략, 혁신, 기술 진화 등이다.
  • 김한얼 김한얼 | - (현)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교수
    hk3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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