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리더십

미국의 역사 바꾼 신뢰의 리더십

26호 (2009년 2월 Issue 1)

오바마의 삶
혼혈아로서 정체성 혼란 겪은 청소년기
케냐 루오족 출신인 버락 오바마의 아버지는 23살에 미국 하와이대 역사상 첫 아프리카 출신 학생으로 입학했다. 서구 기술을 배워 현대 아프리카 건설에 기여하게 한다는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후원자들에게 선발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러시아어 강의를 듣던 18살의 미국 백인 소녀 앤을 만나 결혼해 1961년에 버락 오바마를 낳았다.
 
오바마의 부모가 결혼한 1960년 당시 미국의 전체 주 가운데 약 절반은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중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에 새로 편입된 하와이주가 인종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이어서 그들의 결혼은 가능했다. 오바마의 외조부모들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그들의 결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의 차별로부터 아들을 철저히 차단하고자 항상 흑인의 장점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오바마가 2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가 된 뒤에도 아들이 자신감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백인 외조부모 역시 오바마를 몹시 사랑했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어린 시절에 항상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인 새 아버지 롤로와 재혼해 여동생 마야를 낳았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오바마는 도서관에서 ‘라이프’ 잡지를 보다가 ‘검은 안경을 끼고 레인코트를 입은 남자가 텅 빈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의 사진을 접한다.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려고 화학수술을 받다가 얼굴이 망가진 사람의 사진이었다. 아홉 살 소년은 “피부색이 희면 행복이 보장된다는 광고를 믿고 화학수술을 받은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사진설명을 읽고 피부가 검다는 것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된다는 점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오바마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점차 인종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술과 담배에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차별 때문에 ‘백인 녀석들’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어머니와 외조부모 역시 백인이라는 점에서 정체성 혼란에 직면했다.
 
인종 차별과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옥시덴털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집회에서 ‘누군가 투쟁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1분짜리 연설을 했으며, 청중은 그의 연설에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그날을 계기로 오바마는 크게 깨달았다. 자신의 상처에만 골몰한 어리석음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도 발견했다.
 
더 높은 꿈과 이상을 향해
그때부터 오바마는 공부에 집중하는 모범생으로 변하고, 명문 컬럼비아대에 진학한다. 졸업 후 그는 컨설팅 회사에 취직해 짧은 기간에 간부로 승진했다. 그러나 좋은 직장과 대우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 쓸모 있는 일에 야망을 펼치기 위해 지역사회 활동가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 왜 그 좋은 자리를 포기하느냐는 주위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역사회 활동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버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데에만 삶을 집중하는 것은 야망의 빈곤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미국 사회의 견고한 권력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활동가라는 위치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한다. 그리고 ‘하버드 로 리뷰’ 역사상 최초로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됐다.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된 그는 신문에도 나고 저서 출간 제의도 받으며 학교에서 거물로 통했다. 그러나 항상 겸손하고 친화력이 좋았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헌법학 교수인 로렌스 트라이브는 그를 연구보조원으로 선택하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37년 동안 가르친 학생 가운데 가장 유능한 학생 2명을 꼽으라면 자네가 그 가운데 1명일세.”
 
1991년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오바마는 원하면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었다.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그에게 실제 수많은 러브 콜이 쏟아졌다. 그러나 고액 연봉과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모든 기회를 마다하고 그는 자신이 지역사회 활동가로 일하던 시카고로 돌아왔다. 그는 마이너 반힐앤드갤런드사의 인권변호사로 자리 잡은 뒤 출세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꿈과 이상을 향해 매진한다. 한층 성숙해진 오바마에게 이제 흑인의 열등감이나 자폐적인 자의식 따위는 없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미셸을 만나 결혼했고, 함께 시카고대 로스쿨의 헌법학 강의를 맡으며 교수 생활도 시작했다.
 
그는 더욱 정의로운 미국 사회로의 변화를 끊임없이 열망했다. 미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영향력 있는 위치가 필요했다. 이러한 절실함이 그를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 민주당 대통령 후보,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자리로 이끌었다.

오바마의 리더십
오바마의 리더십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여기서는 ①신뢰의 리더십 ②유연한 리더십 ③통합의 리더십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그의 리더십을 분석해 본다.
 
신뢰의 리더십
솔직함이 변화와 희망, 신뢰의 상징 만들어
오바마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리더십의 제1덕목인 ‘신뢰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 출마 이후의 연설에서 보수적인 워싱턴 정치권의 신뢰 회복과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오바마에게는 커다란 힘이었다.
 
그 힘은 어머니의 교육에서 비롯됐다. 그의 어머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덕목들을 항상 강조하고 가르쳤다. 그녀는 오바마에게 늘 “네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으면 소중하게 여겨야 할 덕목들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직해라, 정정당당해라, 솔직하게 말해라’ 등이다.
 
그녀는 오바마에게 항상 흑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유산과 특별한 운명의 해택을 받은 인종이며, 얼마든지 강인해서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짐을 졌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오바마가 흑인혼혈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만큼 더 훌륭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게 하고 싶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현재 오바마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는 정직하고 정정당당하고 솔직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도 어머니의 교육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좋은 점들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오바마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황금률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고교시절 마약 복용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으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 정정당당하다. 정치인에게 마약 복용은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그는 고교시절의 마약 복용 사실을 자서전에 기술했을 뿐 아니라 상대 후보나 언론에서 그 사실을 공격할 때 사실을 은폐하지 않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수십 년 전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거짓말의 유혹에 빠질 법한 데도 그는 항상 솔직했다.
 
이런 점 때문에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그를 보던 유권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 스스로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마약 복용 사실까지 털어놓는 것을 보니 오바마라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구나’라는 신뢰감을 준 것이다. 오바마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상대 후보가 마약 복용 사실에 대해 계속 공격하자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는 음주와 마약에 빠져 있는 불우한 환경의 많은 젊은이가 있다. 그들에게 고교 시절에 마약 복용을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면 미국의 연방 상원의원도 되고, 나아가 대통령 후보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바로 나 오바마다.”
 
오바마는 항상 변화와 희망을 강조했다. 그에게 변화와 희망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마약 복용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던 나도 변하니까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희망이란 점이다. 그는 스스로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의 상징’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이나 콤플렉스, 두려움 등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임에도 그의 솔직함에는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또한 그는 한순간의 인기와 표를 얻기 위해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한 공약을 남발하지 않았다. 상대 의원을 비난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능력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러한 정직과 겸손의 자세가 미국인들을 오바마의 편으로 만들었다. 오바마 신드롬은 이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행일치의 리더십
이렇게 신뢰받는 지도자만이 국민들에게 수용될 수 있다. 세기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바로 이러한 사례다. 간디가 영국 정부의 무시무시한 압제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비폭력과 불복종을 인도 국민들에게 당부했을 때 국민들은 평소 간디의 생활을 통해 그를 신뢰했기 때문에 간디의 방침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국 식민지 상황에서 인도를 독립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간디는 인품이 온화하여 독립운동뿐 아니라 개인적인 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도 많았다. 어느 날 한 중년 부인이 비만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체중 조절과 치아 보호를 위해 설탕을 먹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간디는 약간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한 달 뒤에 다시 오셨으면 합니다.”
 
중년 부인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나오면서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위대하고 자상한 지도자라기에 가정교육에 도움을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하찮은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분이 너무 바빠서 그런 걸까.’

한 달 뒤 중년 부인은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방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먼 길을 무릅쓰고 찾아왔다가 기분만 상했기에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말을 해주려는 것일까 궁금해서 재차 찾아온 것 뿐이었다. 그런데 간디는 중년 부인과 아이를 분명히 기억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꼭 잡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커서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설탕을 먹지 말거라. 그건 네 몸에 좋지 않단다.”
 
위대한 지도자 간디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은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중년 부인은 고마우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어 간디에게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왔을 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나요.” 간디는 부끄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 달 전에는 저도 설탕을 즐겨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즐겨 먹으면서 아이에게는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먼저 설탕을 끊고, 오늘 아이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만 하라는 것은 위선이다. 지도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구성원들은 지도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굳게 믿고 따르게 된다. 언행일치를 하는 리더야말로 국민들이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다.
 
유연한 리더십
다인종 가계에서 가치관의 다양성 길러
오바마에게는 다양한 인종의 가족들이 있다. 소위 다민족 가정이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에서 태어난 흑인이며, 어머니는 미국 캔자스 출생 백인이다.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와 결혼하기 이전 부인과의 사이에 로이라는 아들과 아우마라는 딸을 두었으며, 케냐로 돌아간 뒤 재혼한 부인(백인) 사이에서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어머니와 재혼한 인도네시아인 새 아버지 롤로 사이에서 태어난 마야까지 그에게는 형과 누나와 동생이 많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산 마야를 제외하고는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지내야 하는 세월이 대부분이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이름도 아버지의 부족인 루오족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어 지어진 특이한 이름이다. 오바마의 가계는 이슬람권 문화가 섞인 아프리카계와 아메리카계 및 아시아계가 혼재돼 있는 다인종이다.
 
그러나 인종을 넘나드는 가계로 인한 혼란은 이미 젊은 시절에 벗어 던졌다. 특이한 다인종 가계는 오히려 정치인 오바마에게 장점이 되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통해 차별받고 억압받는 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넓은 포용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바마의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머니와 백인 외조부모가 그랬고, 케냐에 사는 아버지 가족이 그랬다. 오바마가 아버지의 땅 케냐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족은 도처에 널려 있었으며, 난생 처음 보는 가족들의 환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결혼 후 그는 처가 쪽으로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생겼다. 아내 미셸의 식구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줄곧 자란 100%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또 매제와 조카는 중국계다. 이들까지 합해 오바마의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그야말로 ‘미니 유엔(UN)’이 된다.
 
이러한 다인종 가계 구성 속에서 오바마는 태생적으로 생각의 영역을 넓히며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배척하지 않으면서 포용하는 균형 잡힌 유연성을 기를 수 있었다. 오바마는 2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외할머니 슬하에서 보내면서 여성적인 성품을 갖게 됐다.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에 어느 언론에서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버락 오바마다.”
 
이처럼 오바마는 지극히 여성적이고 유연한 리더십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슈퍼 리더들의 자질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공통적인 자질이 유연성이었다. 훌륭한 리더가 되는 데 있어 유연성은 핵심 요소다.
 
삼국지’ 내용 가운데 조조가 유비에게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영웅이란 개념은 탁월한 리더를 일컫는다. 조조는 영웅을 용(龍)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하면서 용의 특성에 대해 능소능대(能小能大), 능승능은(能昇能隱)이라고 표현한다. 용은 자유자재로 작아지고 커지며, 자유자재로 위로 솟구쳤다가 숨기도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유연하게 상황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영웅은 큰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다가도 때로는 아주 왜소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기도 한다. 그러나 영웅은 이러한 변신 과정에 아주 자연스럽다. 커지고 작아짐에 무심하고 이를 예사롭게 여긴다. 여기서 커지고 위로 솟구친다는 것은 인생에서 성공과 영광의 순간을 말하며, 작아지고 숨는다는 것은 실패와 굴욕의 시기를 일컫는다.
 
우리의 삶은 성공과 실패, 영광과 굴욕의 끊임없는 연속과정이다. 한 번의 성공이나 영광, 한 번의 실패나 굴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에 수많은 중요한 결정이 놓여 있으므로 어느 순간의 성공과 실패에 교만해지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예사롭게 여기고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커지고 작아짐의 연속, 솟구침과 물러남의 연속, 성공과 실패의 연속, 영광과 굴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영웅인 것이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싶으면 성공과 실패, 영광과 굴욕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유연한 리더만이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통합의 리더십
링컨을 모델로 한 통합의 행보
오바마는 분열의 상태를 통합으로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일한 공화당원 마크 매키넌은 오바마를 가리켜 “사람들은 그를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인간 다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정치연설 가운데 미국의 통합을 강조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이 인상적이다. “흑인 아메리카와 백인 아메리카도, 라틴계 아메리카와 아시아계 아메리카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흑인을 위한 오바마, 백인을 위한 오바마, 황인을 위한 오바마, 여성을 위한 오바마, 남성을 위한 오바마, 동성애자를 위한 오바마도 아닙니다. 오로지 미국을 위한 오바마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미국의 통합을 부르짖는 연설을 듣고 오바마의 새로운 지지자가 되었다.
 
오바마는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무소속을 막론하고 선의의 미국인들이 모두 뭉쳐 변화를 일구어낼 다수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통합의 정치를 외친다. 오바마를 지나치게 온건주의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보수의 목소리로 진보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보수와 진보가 마음을 합해 발전적 통일을 이뤄나가는 것이 통합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통합의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오바마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지역이 링컨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이고, 출정식 또한 스프링필드 지역의 옛 의사당 앞에서 했다. 그곳은 1858년에 링컨이 “절반은 노예이고 절반은 자유인인 분열된 집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유명한 연설을 한 곳이다.
 
링컨이 그랬듯이 오바마도 경선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내정하는 등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대 입장에 선 인사들을 포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앞으로 오바마가 펼칠 다양한 정책이나 인사의 방향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포용의 리더십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에서 백미는 국방장관 에드윈 스탠턴이다. 정규 학력이 초등학교 3개월밖에 안 되는 링컨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됐지만 동료 변호사들은 그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스탠턴이라는 변호사는 링컨을 철저히 무시하고 언제나 비판적 입장에 섰다.
 
이처럼 변호사 시절부터 링컨을 무시하고 비난하던 스탠턴은 정치인이 되어서도 링컨에게 항상 대립각을 세웠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스탠턴은 공개적으로 링컨을 비난했다. 링컨 입장에서는 변호사 시절부터 한평생 자신을 비난하고 무시한 원망스러운 상대가 스탠턴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링컨은 스탠턴을 가장 요직인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노예해방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국방장관은 각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다. 따라서 대통령과 호흡이 맞는 측근이 임명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링컨의 측근들은 “스탠턴은 대통령의 한평생 원수이므로 없애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지 어떻게 그런 사람을 가장 요직인 국방장관에 임명할 수 있느냐. 절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측근들의 반발에 링컨은 이렇게 대응했다. “스탠턴은 나의 한평생 원수이므로 없애야 한다는 당신들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말로 스탠턴을 죽이거나(전시 상황이므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법으로 그를 없애서는 안 된다. 스탠턴이라는 원수를 친구로 만듦으로써 내 마음속의 적을 죽여야 한다.” 링컨은 이렇게 말하면서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함께 남북전쟁을 치렀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여 노예를 해방시키고 대통령에 재선되었지만 노예해방 반대론자의 총탄을 맞고 암살된다.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진 링컨을 부둥켜안은 스탠턴은 이렇게 외쳤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누워 계신다.” 링컨의 대범한 포용력이 자신을 가장 무시하던 스탠턴으로 하여금 링컨을 가장 존경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오바마는 링컨의 위대한 통합의 리더십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오바마의 이러한 리더십이 성공하면 미국 역사를 오바마 시대를 기준으로 BB(Before Barack Obama)와 AB(After Barack Obama)로 나누어야 한다는 논의가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필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캔자스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 객원교수, 이화여대·홍익대·동국대 강사 등을 지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와 행정자치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낙천주의를 연습하자> <콘디의 글로벌 리더십> <힐러리의 수퍼리더십> <오바마의 리더십 십계명>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