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AI의 폭발적 진화, 글로벌 공급망 붕괴, 소비자 취향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과거 데이터와 확률 모델에 기반한 ‘예측과 적응’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극단적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시장 신호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현실을 창조하는 ‘양자 전략 경영(Quantum Strategy)’이 필요하다. CEO들이 실천할 양자 전략 경영의 요체(Playbook)는 다음과 같다.
1. 예측을 멈추고 파트너와 함께 현실을 강제하라(Stop Forecasting, Start Forcing):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지 마라. 이해관계자인 핵심 파트너들과 미래의 궤적을 선제적으로 합의하고 시장이 자사의 비전을 따르도록 확고한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2. 최적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의도적 비효율을 무기화하라(Fund the Superposition): 단일 최적 경로를 찾는 최적화는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치명적 도박이 될 수 있다. 막대한 중복 투자와 낭비를 감수하더라도 다중 대안에 동시 베팅해 돌파구를 찾아 나가야 한다.
3. 매뉴얼을 버리고 감정적 에너지를 설계하라(Engineer Engagement): 중첩 전략이 낳는 거대한 마찰과 관료제적 지연은 공식적인 조직 개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실존적 위기감’이나 ‘집단적 환희’와 같은 고각성의 정서적 에너지로 조직과 생태계를 동기화해야 한다.
편집자주 | DBR이 한국이해관계자경영학회와 함께하는 ‘이해관계자 경영 인사이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내 경영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참여해 양자 전략 경영, 공급망 재설계, 기업지배구조 혁신 등 다양한 주제를 이해관계자 경영의 관점에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이해관계자 경영이 만들어낼 새로운 기업 혁신의 가능성과 실천 방안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극단적 불확실성의 시대
적응(Adaptation)의 환상을 버려라: 전통적인 전략경영 이론은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실천 방안을 제시해 왔다.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가 뉴턴의 고전역학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업이 마주한 현실은 다르다. AI의 폭발적 진화,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하루아침에 바뀌는 소비자 취향 등으로 과거의 데이터와 확률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극단적 불확실성(Radical Uncertainty)’의 시대가 도래했다. 감지할 데이터조차 존재하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 앞에서 기업은 더 이상 과거처럼 미래를 예측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만으로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애초에 신호가 없는 상황에서 CEO는 무엇을 근거로 수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고, 무엇에 적응해야 하는가.
이러한 미지의 영역을 정면으로 돌파해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와 SM엔터테인먼트가 선구자로 활약한 K팝이다. 자본 집약적 첨단 제조업과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문화산업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산업은 모두 시장의 신호가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시장이 그 질서를 따르도록 현실을 만들어냈다. 이는 기존의 ‘예측과 적응’이라는 전략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퍼스트 무버들의 성공 공식을 ‘양자 전략 경영(Quantum Strategy)’으로 정의한다. 뉴턴의 물리학처럼 하나의 정답을 찾고 단일 경로를 최적화하는 전략은 극단적 불확실성 앞에서는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반면 양자 전략 경영은 양자역학의 개념을 경영적 은유로 활용해 여러 대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적 중첩(Superposition), 조직과 생태계를 강하게 결속하는 양자 얽힘(Entanglement), 리더의 비전으로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를 통해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접근이다.
양자 전략 경영은 기존 전략이론을 대체하려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와 시장 신호가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발전해 온 기존 전략이론이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극단적 불확실성’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의 틀이다. 기존 전략이론이 주어진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면 양자 전략 경영은 시장 자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거나 미래의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어떻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극단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끌어갈 퍼스트 무버는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뉴턴의 사과 vs. 슈뢰딩거의 고양이 우리는 오랫동안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지배하는 세계관 속에서 경영을 배워왔다.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 자원을 집중하는 ‘린(Lean)’ 전략은 오랫동안 성공 공식으로 여겨졌다. 이런 전통적 전략경영은 외부 환경의 신호를 먼저 감지하고 이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것을 경쟁우위의 핵심으로 봤으며 시장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시대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AI의 급속한 발전과 지정학적 충돌, 소비자 취향의 급변으로 과거 데이터와 확률 모델이 더 이상 충분한 길잡이가 되지 않는 극단적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감지할 신호조차 없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 Unknowns)’에서는 예측과 최적화만으로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이제 CEO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보다 불확실성 자체를 관리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대표적 사고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려 보자. 상자 안의 고양이는 관찰하기 전까지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이라는 두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Superposition) 상태에 있다. 그리고 상자를 여는 순간 수많은 가능성은 하나의 현실로 확정된다. 양자역학의 이 원리는 극단적 불확실성 시대를 이해하는 유용한 경영의 은유가 될 수 있다.
시장의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양자 전략가는 하나의 시나리오에 성급히 베팅하지 않는다. 여러 대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적 중첩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비전과 의지로 원하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간다. 다시 말해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새로운 질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계 최첨단 노광장비 시장을 이끄는 ASML, 메모리 반도체의 삼성전자, K팝을 세계적 산업으로 성장시킨 SM엔터테인먼트는 산업은 서로 다르지만 이런 전략을 실천한 대표적 퍼스트 무버들이다. 이들은 불확실성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과연 이들은 불확실성의 진공 상태에서 어떻게 모순된 대안들을 겹쳐놓고(중첩), 거대한 관료제를 하나로 얽어매어(얽힘), 자신들의 비전을 시장의 현실로 붕괴(제정)시켰을까? 지금부터 반도체와 K팝이라는 전혀 다른 두 산업을 관통하는 세 가지 숨겨진 생존 법칙을 분석해보자.
양자 전략 경영의 3대 생존 법칙:
반도체와 K팝의 숨겨진 평행이론
과거의 데이터가 무의미해진 극단적 불확실성의 진공 상태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두 퍼스트 무버인 삼성전자와 SM엔터테인먼트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빼닮은 혁신을 전개했다. 자본 집약적 첨단 제조업인 반도체와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성을 다루는 K팝은 전혀 다른 산업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기존의 ‘예측과 적응’이라는 경영 상식을 깨고 동일한 3대 생존 법칙을 통해 세계 시장을 제패했다고 볼 수 있다.
법칙 1. [관찰자 효과] 예측을 멈추고 현실을 ‘강제’하라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무한한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누군가 관찰하는 순간, 즉 적극적인 행위 주체가 투자나 생태계 구축 등의 특정 계기를 만드는 순간, 단 하나의 확정된 현실로 붕괴한다. 이를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부른다. 극단적 불확실성이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시장은 정해진 실체가 없는 무한한 확률 상태와 유사하다. 이때 성공하는 CEO는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며 기회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수동적 전략가가 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신의 확고한 비전과 강력한 의지를 시장에 투영하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거나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스스로 시장의 질서를 부여하고,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경제적 현실로 시장을 창조해야 한다. 미래를 보는 기본 시각과 전략적 의사결정이 고전역학보다는 양자역학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의 스택(Stack) 방식 강행이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후반 4M D램 개발 당시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거대한 기술적 분기점에 섰다. 반도체 셀 구조를 아래로 파고 내려갈 것인가(트렌치) 아니면 위로 층층이 쌓아 올릴 것인가(스택)를 결정해야 했지만 어느 쪽이 승리할지 알려주는 과거의 데이터나 확률 모델은 전무했다. 당시 IBM과 도시바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불충분한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주로 트렌치(Trench) 방식에 베팅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은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거나 시장의 합의가 형성되길 기다리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 주저하면서 시간을 끄는 대신 ‘스택 구조가 생산 과정에서 결함을 확인하고 수정하기가 더 쉽다’는 운영상의 간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스택 방식을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리더의 굳건한 의지로 자원을 쏟아부어 자신들이 선택한 방식을 글로벌 산업의 표준으로 강제해버린 사전적 현실 제정(Prospective Enactment)의 전형적 사례가 됐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재정의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와 불법 복제로 인해 한국의 음반 시장은 처참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고전적 경영 논리라면 쇠퇴하는 시장에서 숨겨진 CD 수요를 찾거나 원가를 절감하려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인 이수만 프로듀서는 관망하거나 기존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상품의 본질 자체를 완전히 재정의해버렸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과거 미국 유학 중 MTV 개막으로 음악 산업의 중심이 라디오에서 영상으로 이동함에 충격을 받았고 뮤직비디오 산업의 등장을 목도했다. 그는 1995년 SM기획을 법인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돌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K팝 1호 제품이라 할 수 있는 H.O.T를 데뷔시켰다. 즉 ‘듣는 음악’에서 ‘보는 아이돌(Visual, performing entity)’이라는 시각적이고 복합적인 퍼포먼스 상품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 기술(Culture Technology, CT)이라는 체계적인 매뉴얼을 도입해 아이돌을 육성했다.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아이돌 데뷔 과정을 암묵적 지식에서 명시적 지식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우수한 품질의 다양한 아이돌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그 결과, 쇠퇴하는 국내 음악 시장을 뛰어넘어 K팝이라는 전례 없던 새로운 글로벌 시장 현실을 무에서 유로 창조해냈다.
법칙 2. [양자 중첩] 최적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비효율’을 무기화하라 고전적 경영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낭비와 비효율이다. 가장 유망한 경로를 찾아 자원을 집중(Seizing)하는 린 방식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길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는 최적화 자체가 치명적인 맹점이 될 수 있다. 데이터가 없을 때 하나에 올인하는 것은 전략이 아닌 도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전략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호 모순되는 다중 대안을 동시에 가동하는 전략적 중첩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지한다. 막대한 낭비와 뼈아픈 매몰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수의 경로에 동시에 베팅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돌파하고 성공을 강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극단적인 자본 집약도와 살인적으로 짧은 기술 수명 주기를 가진 메모리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시간이라는 한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적 중첩(Temporal Superposition)을 가동했다. 기존의 선형적 방식, 즉 R&D 완료 후 양산 공장을 건설하는 방식으로는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수조 원이 드는 대규모 양산 공장 건설을 동시에 시작해버리는 동시 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을 도입했다. 만약 설계가 실패하면 공장 전체가 고철 덩어리가 되는 막대한 비효율과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또한 1M D램 개발 시기에는 선진국과의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 위해 R&D 조직을 한국의 국내 개발팀과 미국 실리콘밸리의 현지 팀으로 쪼개 동일한 과제를 두고 두 팀이 출혈 경쟁을 벌이게 하는 병행 팀 개발(Parallel team development)을 진행했다. 중복 투자의 낭비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혁신의 시간을 압축해버린 것이다.
한편 SM엔터테인먼트는 변덕스럽고 파편화된 글로벌 대중의 취향이라는 ‘감정적 불확실성’을 지배하기 위해 확률적 구조화(Probabilistic Structuring)와 ‘포트폴리오 중첩’을 무기화했다. 어떤 노래와 콘셉트가 히트할지 예측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SM은 문화 기술(CT) 시스템을 통해 어느 그룹이든 시장에서 요구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하도록 통계적 기본기(Baseline probability)를 극대화했다. 즉 누가 성공할지 예측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음악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우수한 인재를 캐스팅한 후 트레이닝과 프로듀싱,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시스템화해 여러 우수 대안을 출시함으로써 예측 불허의 까다로운 소비자로부터 채택돼 히트할 수 있는 확률적 가능성 자체를 높였다. 이 토대 위에서 SM은 팀 중첩 전략을 전개했다. 첫 시도로 슈퍼주니어 팀에 중국 멤버를 두고 슈퍼주니어-M(만다린)을 꾸린 후 중국에 진출하려 했으나 중국 팀 구성에 실패했다. 바로 이어서 엑소 그룹을 엑소-K와 엑소-M(만다린)으로 중첩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 중국 멤버들의 이탈로 실패했다. 이후 SM은 NCT 팀을 통해 인원수 확장과 영입이 자유롭고 전 세계 여러 도시(서울의 NCT 127, 중국의 WayV 등)에서 하위 유닛을 동시에 가동하는 다국적 모델을 전개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는 물론 프로젝트별 또는 연령별 모듈형 아이돌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예를 들어 NCT Dream은 차세대 청소년 멤버로 구성됐으며, NCT U는 가장 실험적 모델로서 곡에 따라 멤버 조합을 바꿀 수 있게 구성했다. 이렇게 활동한 NCT는 2021~2023년 유닛별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 NCT 팀 전체 CD 판매의 총합이 수천만 장을 넘어섰다. 결론적으로 단 하나의 메가 히트작을 예측하려 도박하는 대신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투입해 다양한 아이돌 포트폴리오를 동시다발적으로 시장에 던져 글로벌 히트가 터질 확률 밀도를 인위적으로 팽창시켰다고 할 수 있다.
법칙 3. [양자 얽힘] 관료제를 우회해 집단적 ‘감정’으로 얽어매라 전략적 중첩은 필연적으로 조직 내부에 거대한 마찰과 혼란, 막대한 매몰 비용을 유발한다. 이렇게 극도로 긴장된 상태를 공식적인 조직도나 합리적인 승인 절차(관료제)로 통제하려는 것은 너무 느리고 경직되기 때문에 조직을 혼란에 빠뜨린다. 거리를 초월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양자 얽힘현상처럼 거대한 조직과 생태계를 한순간에 얽어매려면 논리와 이성을 초월하는 고각성의 집단적 정동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공식적 위계를 건너뛰고 구성원들을 강력한 감정의 끈으로 동기화시켜야만 중첩 전략의 마찰을 뚫고 다양한 행위 주체 간 협력과 즉각적인 실행을 이끌어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수조 원이 낭비될 수 있는 겹치기 투자와 극단적인 속도전 속에서 거대 관료제의 병폐를 막기 위해 위기 조장이라는 강력한 실존적 절박함을 주입했다. 대표적으로 1995년, 품질 불량 문제가 발생하자 경영진은 약 500억 원 규모의 애니콜 휴대폰 15만 대를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태우는 극단적인 화형식을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조직 내에 영구적이고 실존적인 공포와 위기감을 인위적으로 조장한 것이었다. 이 강렬한 감정 에너지는 수만 명의 엔지니어와 조직원을 순식간에 동기화시켜 부서 간 이기주의와 관료적 지연을 한순간에 파괴했고 신속한 대량 양산을 달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삼성(Single Samsung)’을 구현했다.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또 다른 감정 에너지인 ‘신바람(집단적 환희, Collective Joy)’을 통해 거대한 외부 생태계를 얽어맸다. 파편화된 다중 포트폴리오를 글로벌 시장에 뿌리기 위해 기존의 느리고 경직된 매스미디어 게이트키퍼(방송국 등)를 과감히 우회했다. 유튜브와 SNS 같은 직접적인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팬덤이 시공간을 초월해 자신의 우상과 교감하며 ‘신바람’이라는 고각성의 감정적 에너지를 폭발시키도록 유도했다.
집단적 환희의 첫 번째 사례는 2010년 8월 소녀시대가 일본 쇼케이스를 위해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사건이다. 사전 광고나 홍보가 없었음에도 SNS를 통해 수천 명 규모의 팬이 자발적으로 집결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K팝 팬덤은 함께 응원하고 스트리밍하면서 감동을 체험한다. 일종의 정서 공동체로 발전해 현지화를 위한 자막 제작 및 가사 번역 등 마케팅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알고리즘 증폭과 밈이나 리액션 영상 등 2차 콘텐츠를 생산함으로써 운명 공동체처럼 작동한다. 이 강력한 정서적 얽힘은 흩어져 있던 수천만 명의 팬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능동적 군단으로 동기화시켰고 이들이 주도하는 스트리밍과 입소문에 힘입어 미국의 빌보드 차트 현실을 강제해내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해외 양자전략가 성공 사례: ASML 전인미답의 미지 세계를 개척해 온 글로벌 퍼스트 무버 기업들은 많은 경우 이런 양자 전략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제조의 가장 큰 병목이자 필수 장비인 노광 장비(Lithography)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ASML은 이 전략경영의 정수를 보여준다. ASML은 현재 시가총액이 약 2500억 유로(약 370조 원)에 달하며 애플의 아이폰이나 엔비디아의 AI 칩 생산이 전적으로 이들 장비에 의존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초일류 기업이다.
1984년 네덜란드의 작은 벤처 기업으로 출발한 ASML은 초기에는 캐논이나 니콘 같은 일본 기업들에 밀려 고전했다. 하지만 물리적 한계로 여겨졌던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 개발을 위해 ASML은 2012년 핵심 고객사인 인텔로부터 무려 40억 달러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등 전례 없는 생태계 연합을 구축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마침내 EUV 장비 양산에 성공하며 현재는 전 세계 최첨단 노광 장비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ASML은 물리 법칙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예측과 효율’ 중심 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세 가지 양자 생존 법칙을 구사했다. 첫째, 고객 예지(Customer Foresight)에 기반해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현실을 ‘강제’했다. ASML은 무어의 법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수동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대신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엘리트 칩메이커인 고객들과 10년 후의 기술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합의하고 이들이 자사의 궤적을 따르도록 했다.
둘째, 물리학적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어느 경로가 정답인지 모를 때 ASML은 단일 경로에 집중하지 않았다. 동일한 핵심 모듈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 개의 독립된 엔지니어링 팀을 동시에 투입하는 공간적 중첩(Spatial Superposition) 상태를 유지했다. 이는 비용 면에서는 막대한 낭비지만 한 팀이 실패해도 다른 팀이 성공해 전체 개발 속도가 절대 멈추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셋째, 거대 자본을 묶어 ‘운명 공동체’를 만들었다. ASML은 수조 원이 드는 중첩 개발의 리스크를 혼자 짊어지지 않았다. 핵심 파트너들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를 단행해 깊은 재무적·인지적 얽힘을 구축하는 의지의 연합을 형성했다. 고객사와 장비사가 공동의 실존적 리스크를 공유하는 순간, 관료제적 마찰은 사라지고 생태계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동기화되는 효과를 냈다. 결국 ASML의 사례는 데이터가 사라진 진공 상태에서 리더가 어떻게 이해관계자인 파트너들과 손잡고 스스로 시장의 표준을 강제해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양자 전략 경영의 함정 과거의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 극단적 불확실성의 진공 상태를 돌파하게 해주는 양자 전략 경영은 생성적 주체성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치명적인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현실을 강제하려는 리더의 큰 의지가 생태계의 현실과 재무적 체력을 무시하고 폭주할 때 기업은 여지없이 시스템 붕괴를 맞이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주체성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독이 되므로 양자 전략 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비전이 독단으로 변질되는 다음의 3대 치명적 함정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첫째, 인지적 함정인 ‘이카로스 패러독스(Icarus Paradox)’다. 불확실성을 돌파하기 위해 리더의 강력한 의지는 필수적이지만 과거의 성공에 도취돼 시장의 명백한 거부 신호마저 체계적으로 무시할 때 비전은 독단적 오만으로 변질되고 조직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둘째, 자원 함정인 ‘재무적 붕괴와 성급한 확장’이다. 여러 대안에 동시에 베팅하는 전략적 중첩은 린 방식과 정반대되며 필연적으로 막대한 매몰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이를 버텨낼 장기적 재무 체력(아키텍처) 없이 선점 효과만 노리고 성급하게 규모 확장을 시도하면 비전이 현실화되기도 전에 재무적 파산을 맞게 될 수 있다.
셋째, 생태계 함정인 ‘시기적·제도적 불일치’다. 개별 기업의 의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반드시 생태계와의 동기화가 수반돼야 한다. 리더의 비전이 옳더라도 협력사나 고객 등 ‘생태계의 준비도’가 무르익기 전에 현실 제정을 너무 일찍 밀어붙이거나 정부 규제 등 거시적 제도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심각한 마찰과 조율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이해관계자경영 시대의 양자 전략 경영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비에르고딕(Non-ergodic)의 세계, 즉 뉴노멀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 경영의 근본적인 목적 함수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기업 경영을 지배해온 핵심 논리 중 하나는 단연 대리인 이론이었다. 이는 경영자(대리인)가 주주(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유일한 선(善)으로 삼는 단일 목적의 프레임이다. 주주의 이익과 단기적인 재무적 효율성을 좇는 린 방식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예측 가능한 시장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데이터가 사라진 극단적 불확실성의 진공 상태에서 오직 주주의 이익만을 좇는 단기적 최적화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스스로 현실을 제정하고 여러 대안에 막대한 자원을 동시 다발적으로 베팅하는 양자 전략을 구사하려면 기업 홀로 거대한 위험과 매몰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퍼스트 무버로 성공하기 위한 양자 전략 경영을 실천하려면 주주 중심주의를 넘어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신이해관계자 이론(NST)의 관점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자경영이 아직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흔히 이를 시혜적인 사회공헌(CSR)이나 막연한 윤리 경영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최신 전략 경영의 관점에서 이해관계자 이론은 철저한 생존 및 혁신 전략이다. 기존의 자원기반관점(RBV)이 기업의 핵심 자원 확보를 통한 경쟁 우위를 강조했다면 신이해관계자 이론은 ‘핵심 자원을 기업에 결속시키고 가치 창출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바로 협력사, 고객, 지역사회, 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과거의 경영 패러다임이 이윤을 먼저 계산하고 타인을 ‘거래에 의한 설득’의 대상으로 봤다면 극단적 불확실성 시대의 양자 전략가들은 이해관계자를 대등한 동반자로 대우하며 성공을 나누는 성공 공유 경제를 지향한다. 일찍부터 이해관계자경영을 핵심 이념으로 실천해온 교보생명이나 최근 기업의 이념을 ‘이윤 극대화’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행복) 추구’로 전환한 SK그룹의 사례는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초일류 기업들은 극단적 불확실성 속에서 이해관계자와 어떻게 가치 공동 창출(Value Co-creation)을 이뤄냈을까? 기술과 문화라는 서로 다른 극한의 경계에서 활약한 ASML과 K팝 사례는 양자 전략과 이해관계자 경영이 결합될 때 얼마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지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극단적 불확실성의 진공 상태에서 양자 전략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립된 섬이 돼서는 안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파트너와 로드맵을 합의해 현실을 인위적으로 강제하고 비효율적인 다중 베팅의 막대한 마찰을 버텨내려면 반드시 생태계 전체의 지지와 자원 동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