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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챔피언’의 유연함, 불황보다 세다

DBR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바더, 3B 사이언티픽, 인터내셔널SOS, 테트라…. 이 기업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처음 들어본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업들은 생선 가공장비, 해부학 수업 용품, 응급처치 서비스, 관상용 물고기 사료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회사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은 기업 규모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틈새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올랐으며, 현재도 눈에 띄는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경영 석학 헤르만 지몬 교수는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이처럼 눈에 띄지 않고 이름 없이 숨어 있는 1등 강소(强小) 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이라고 주장한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초우량 기업이지만 소비자는 물론 학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기에 히든 챔피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지몬 교수는 20년 동안 전 세계의 히든 챔피언 기업 2000여 개를 조사, 그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13위를 차지하거나 해당 대륙에서 1위인 기업이면서 매출액이 40억 달러 이하이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히든 챔피언의 요건으로 정의했다.
 
2005년 기준으로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은 4억3000만 달러.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기업의 3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난 10년 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8.8%, 세전 투자수익률(ROI)은 13.6%에 이른다. 2006년 포천 500대 기업의 세전 투자수익률 56%와 비교해도 엄청난 차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15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로 최근 방한한 지몬 교수와 이 책의 번역을 감수한 성균관대 GSB(SKK Graduate School of Business) 유필화 부학장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지몬 교수는 세계 최대 수출대국인 독일 경제의 최대 버팀목이 히든 챔피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해 대기업이 적은 이유가 수출의 대부분을 강소기업,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초일류 중소기업들이 거의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이 같은 히든 챔피언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필화 교수)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이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이 같은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가.
 
(헤르만 지몬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형적인 경제 위기이지만 히든 챔피언 기업에게 경제위기보다 더 위험한 것은 본질적 위기(funder -mental crisis)다. 히든 챔피언이 됐다가 도태한 기업은 경영권 상속 문제와 기술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라는 두 가지 본질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히든 챔피언의 대다수는 가족 기업이다. 창업주들은 이익보다 비전을 우선시하고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가족 기업을 일군 창업주의 90%가 자신의 자녀나 가족이 회사를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세계화로 경영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능력 있는 경영인을 가족 안에서 찾기는 매우 힘들어지고 있다. 가족이 회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금속절삭기 분야의 최고봉이던 독일 트룸프는 1980년대 말 레이저 기술 도입으로 시장지배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민첩하게 받아들여 곧 회생했다. 확대경 생산업체인 이탈리아의 두르스트는 자사의 기술을 잉크젯 프린터에 적용해 기술 변화에 대처했다. 반면에 환등기 생산업체 레플렉타는 디지털기술 개발에 소홀해 살아남지 못했다.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어떤 기업이든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상황이 나쁠 때 우수한 성과를 내는 기업은 드물다. 히든 챔피언 기업 중 40%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히든 챔피언의 존재 자체가 위기 극복의 증거라는 의미도 된다.
 
히든 챔피언은 위기를 이겨냈을 뿐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이익을 냈다. 재무자원이 풍부하고 자기자본비율과 이익마진비율이 높다. 재무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금융위기 때 약해진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는 능력도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기관리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히든 챔피언의 위기 대응 능력이 대기업보다 전반적으로 낫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경영의 유연성이 대기업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불황이 닥치면 많은 기업은 해고를 고려한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무를 28시간으로 줄이면 사람을 자르지 않고도 그 위기를 견뎌낼 수 있다. 덩치가 크고 관료주의 문화가 강한 대기업에서는 이런 식의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중소기업 중 조직 문화 자체는 대기업과 비슷한 기업이 많다.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최고경영자(CEO)의 말에 우선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글로벌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히든 챔피언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의 특징이 있는가.
 
히든 챔피언 기업의 기업 문화나 CEO들의 라이프스타일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하다. 기업 규모나 회사 수입에 비해 CEO들의 연봉도 많지 않다. CEO 때문에 소박한 기업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는 것은 그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도 위험을 주지만 직원들의 역할 모델을 할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큰 위험 요소다. 직원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가 어떻게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히든 챔피언처럼 시장을 좁게 정의하고, 그 속에서 6070%의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가지라는 것은 결국 자사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나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면 신성장 동력 발굴 기회를 놓칠 수 있지 않나.
 
빠른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물품은 의외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단추가 없으면 옷을 만들지 못한다. 100년 전에도 지금도 단추 기능은 똑같다. 미래 사회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의자나 책상, 컵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신의 핵심을 무시하는 것이 신성장 동력 발굴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탕을 보자. 과거에는 설탕으로 단맛을 냈지만 이제는 설탕을 넣지 않고도 단맛을 낸다. 자신의 사업에 집중하면 무설탕 사탕을 만들 기회를 발굴할 수 있지만 사탕을 포기하고 껌 시장을 기웃거렸다면 무설탕 사탕을 만들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동안 분석해 온 히든 챔피언 기업 중 인상적인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 그 이유는.
 
풍력 터빈 제조업체인 독일 에네르콘이다. 1984년에 설립된 에네르콘은 세계 풍력 발전기 특허의 42%를 소유해 풍력 에너지 시장의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린다. 회전 속도가 빠르고, 고장이 적게 나며, 마모 위험도 적은 무(無)기어 발전 설비를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에네르콘은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85% 이상의 부품을 자체 생산하며, 운반도 회사 소유 선박으로 직접 한다. 서비스 정신도 투철하다. 판매 제품에 대해서는 12년 동안 점검, 수리 및 모든 돌발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해 주는 보증 제도를 운영한다.
 
위계질서와 상하 구분이 엄격한 한국식 문화가 한국 내 히든 챔피언 기업이 적은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한국이 우수한 전통 문화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지 못하는 것에 더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천재 수학자 가우스가 오랫동안 교수로 활동하며 생활한 독일 괴팅겐에는 가우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측정 기술을 보유한 측량회사가 40여 개에 이른다. 괴팅겐은 매우 작은 도시지만 뛰어난 기술만 있으면 세계적인 기업을 여럿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의한다. 내 생각에는 한국의 도자기 기술을 발전시키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것 같다. 한국의 도자기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 때 일본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도자기 명인들을 일본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과 전남 강진은 풍광도 수려하고 역사와 전통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요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의 업체들이 힘을 합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면 세계적인 도자기 업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이 채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 MBA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채용 문제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로 고민이 많다. 이번 금융위기가 MBA 스쿨에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위기 상황일수록 학생들의 기업가정신을 고취시켜야 한다. 많은 MBA 스쿨의 창업 관련 과목은 지나치게 이론에만 치중하고 있다. 미시간대의 경우 창업 관련 과목을 개설한 후 강의를 완전히 없애고 벤처기업가와 학생들을 함께 일하게 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을 실전 현장에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결과는 대단히 좋았다. 기업가, 학교, 학생 모두 만족했다. 50명의 수강 학생 중 반만 실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디인가. 2년 동안 MBA 스쿨을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배웠을 것이다.

헤르만 지몬 교수 독일이 낳은 초일류 경영학자로 유럽의 ‘피터 드러커’라 불린다. 전략, 마케팅, 가격결정 분야의 권위자이며 독일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를 선정할 때마다 드러커와 함께 늘 수위를 다툰다. 1979년 독일 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5년까지 빌레펠트대와 마인츠대에서 마케팅 및 경영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6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강소 중소기업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저서 ‘히든 챔피언’은 출간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경영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경영학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히든 챔피언’ 외에도 ‘이익 창조의 기술’ ‘가격 경쟁 전략’ ‘생각하라!’ 등 그의 저서들은 유럽에서 탄생해 경영학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수출된 뛰어난 경영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몬 교수는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1985년 자신의 컨설팅 회사 지몬-쿠허&파트너스를 설립한 뒤 이 회사를 지난 10년 동안 매년 21%의 성장을 거듭하는 초고속 성장 회사로 키웠다. 2007년 현재 직원 403명으로 매출 8000만 유로를 올렸다. 알리안츠, 아우디, BASF 등 독일 유수의 대기업과 노키아, 3M,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11개국에 13개의 해외 사무실을 두고 있는 지몬-쿠허&파트너스는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곧 도쿄와 홍콩에도 사무실을 개설할 예정이다.
 
유필화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빌레펠트대,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 GSB 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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