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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줄리엣 카이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대비가 낭비? ‘준비의 역설’을 깨야

류종기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침수, 압사 등 대한민국에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재난은 그 충격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추어내기도 한다. 무고한 희생이 있었다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해야 한다. 재난은 충분히 대응해도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준비의 역설’에 빠지지 말고 재난 예방에 힘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큰 피해가 있을지를 따져봐야 한다. 조직의 리더들은 사고 지휘 체계(ICS)를 익히고 보안 담당자들과 수시로 직접 소통해야 한다.



7월 15일 충청 지역에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미호천교의 제방이 무너졌다. 인근 지하도에 급격히 물이 들어찼다. 지나던 차들은 빠져나갈 새도 없이 물과 함께 어둠 속에 갇혔다. 7월 18일 기준 14명이 사망했고, 9명이 다쳤으며, 수색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3년 전인 2020년 충북도는 행정안전부에 이 지하차도는 침수 위험이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오송 지하도 침수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달 반 전인 5월 31일에는 새벽부터 경계경보가 울려 서울 시민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유와 대처 방법이 빠진 경계경보는 실효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의 엇갈린 재난 문자는 혼란을 가중했다. 작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사고의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재난 대응에 속수무책인 모습들이다.

재난이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발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전염병, 테러, 사이버 공격도 시기를 모를 뿐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재난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 그런데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왜 여전히 대응에 서툴고 더듬거리는 걸까.

하버드케네디스쿨의 줄리엣 카이엠 교수는 “위기 자체는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대신 “피해를 최소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차관보를 지냈고 매사추세츠 주지사 국토안보보좌관, 법무부 장관 법률 고문 등을 역임하는 등 미국 국가 안보, 재난 대응, 위험 관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최근에는 신간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를 출간하며 재난 대응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 카이엠 교수로부터 상시화된 재난에 개인, 기업,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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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여러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난이 주의를 끄는 건 사회에 미치는 충격과 피해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와 제도의 허점을 비추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난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무시해 온 제도적 문제들, 체계의 태만, 무사안일한 태도 등을 들춰낸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최악의 쓰나미와 원전 사고는 과거 핵 공격을 겪은 나라임에도 고위험 산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계기가 됐다. 멕시코만에서 벌어진 최악의 기름 유출은 이 지역에 집중된 원유 시추에 얼마나 많은 산업이 의존하고 있는지, 해묵은 문제를 드러내며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기회가 됐다. 전 세계의 모든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킨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 사회에서 공중 보건 시스템의 불평등을 더 이상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들이 몹시 안타깝다. 특히 작년 핼러윈 당시, 이태원에서 벌어진 비극은 분명 피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기술 선진국이며 안정적인 정부 체계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모든 재난에는 역사가 있다. 재난은 일순간 터지는 사고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뤄진 정책과 의사결정이 켜켜이 축적된 결과다. 비극들로부터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재난이 바람, 물, 불을 데려와 우리 체계의 태만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행복한 무지 속에서 계속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난을 단순한 일탈이나 놀라움이라고 믿으면 제도적 허점, 불공평 등을 애초에 조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악마, 즉 재난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빨리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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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복되는 재난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할까.

재난에 충분히 대비한다면 그 피해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폭우, 화재 등 재난이 올 가능성이 크다며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설레발을 쳤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단 것은 성공적으로 재난에 대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을 ‘준비의 역설(Preparedness Paradox)’이라 한다. 사전 조치가 효과적이면 오히려 성공적인 조치들이 시간 낭비나 투자의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대비를 위한 행동들과 그 효과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큰 비용을 들여 준비해야 한다 말해도 다른 누군가는 이를 낭비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재난이 발생했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재난을 살펴보면 준비의 역설도 나름 일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더 정확한 평가는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더라면 재난이 더 심각했을 것인가 하는 여부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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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재난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재난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두 순간으로 나눠 보는 경향이 있다. 재난의 왼쪽(Left of Boom)과 오른쪽(Right of Boom), 즉 재난 발생 전과 후이다. 재난의 왼쪽 시점에서는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재난의 오른쪽 시점에서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 수습을 다룬다. 재난의 왼쪽에 안정적으로 서 있다면 성공한 것이고, 재난의 오른쪽으로 나아갔다면 실패한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다. 재난의 왼쪽에서는 기관, 기업, 정부, 개인이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하고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는 재난을 예방하고 그 피해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나 탄소 배출 감축 계획과 같은 프로젝트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도로나 건물의 침수를 막기 위해 빗물 배수구를 청소해 물의 역류를 막는 것같이 일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행동들도 포함된다.

아무리 철저히 예방에 힘써도 막을 수 없는 재난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난의 오른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든 형태의 재난이 현실화되는 것에 대비하며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전(全)위험 대응 계획(all-hazard planning)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하나의 특정 위험이 아니라 모든 위험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위험의 형태에 따라 전문화된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재 대응은 사이버 공격 대응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8가지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예방은 실패할 수 있다. 재난은 항상 발생할 수 있다고 가정하라.

2. 재난이 진행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라. 관련 정보의 수집 및 전달 체계를 구축하라.

3. 위기 대응 노력을 결집하라.

4. 다양한 실패 시나리오와 대응책을 단계별로 준비하라. 최후의 수단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5. 위기가 발생하면 당장의 피해를 줄이는 데 집중하라.

6. 과거를 답습하지 마라. 위기 상황은 항상 변한다.

7. 피해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8. 비극적인 재난으로 발생한 죽음을 기억하고 학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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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발생하면 결국 리더들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리더들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재난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재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운영 사항을 이해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공공과 민간 모두가 적용할 수 있는 긴급 대응 활동 지침은 어느 정도 정립돼 있다. 대표적으로 사고 지휘 체계(ICS, Incident Command System)가 있다. 1970년 미국 소방청에서 대규모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채택한 개념으로 위기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나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대응 절차를 필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우리 모두가 현장 대응 요원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을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관련 지식을 충분히 익혀 둬야 한다는 것이다.

ICS는 위기에 대한 대규모 대응을 위해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나타내는 조직 시스템이다. 리더들은 사고 지휘관과 함께 물자(장비)전담반, 대응계획수립반 및 재정 담당반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 모델의 장점은 각 반의 체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 어느 현장에서든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몇 시간 정도만 집중하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관리자, 언론인, 정치인을 위한 온라인 과정도 있다.

조직에서 위기관리 및 보안 담당자들은 늘 충분한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고 호소한다.

9.11 이후 많은 기업에서 CSO(최고보안책임자), 사이버 공격이 급증한 이후에는 CISO(최고정보보안책임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컨설팅 현장에서 CEO들을 만나면 임원들과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물어본다. 리더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만나고, CFO(최고재무책임자)나 사내 변호사는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CSO, CISO를 그렇게 자주 만난다는 대답은 드물다. CEO가 회사의 재정적 또는 법적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다면 위기 대응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안전 또는 보안 책임자가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책임자로 일했다. 대통령의 직속 보고 라인은 아니었지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제가 대통령님을 뵐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이 언제든 찾아뵐 수 있도록 조치해주십시오.” 대통령은 즉각 이 말에 동의했고 그의 보좌관들에게도 그와 같이 명령했다. 아무도 안전에 관심이 없다는 불편한 현실을 깨기 위한 조치였는데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대통령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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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담당자는 회사 위기 정책의 모든 측면을 감독하고, 최고경영진의 지원을 통해 예산과 인력 배치의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보안 조직을 회사 조직도에서 숨기거나 이 일을 외부 전문가에게 위임해선 안 된다.

또한 보안 담당자가 회사 차원의 훈련이나 보안 교육에 참석하도록 요청할 때 비즈니스 리더들이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 마주하는 위험은 계속 변화한다. 정례 브리핑을 통해 비즈니스 리더들이 그들의 핵심 임무와 보안, 안전 이슈를 함께 논의하는 일에 대해 편하게 느끼고 친숙해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방, 대비, 대응, 복구라는 위기관리 단계에서 대응, 복구만큼이나 재난 예방 및 대비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관심과 실천이다. 재난이 일어난 직후에만 들끓다가 금방 식는 열정보다는 상황을 상상하고 대응 체계를 정비하며 그것을 끈기 있게 유지하는 문화가 많은 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일 수 있다.
  • 류종기 류종기 | 리스크관리협회 한국대표

    필자는 리스크관리협회 한국대표이자 EY한영 컨설팅본부 ESG, Enterprise Risk 담당 상무. IBM 리질리언스 서비스 리더, 딜로이트 안진 기업리스크자문본부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겸임교수로 기후재난, 탄소중립, ESG를 연구 및 강의했다.
    resilienc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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