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소비 트렌드로서의 멀티 페르소나

기업 내 직무 평가서도 ‘김튜버’‘이플루언서’ 장려하라
부캐 현상이 비즈니스 판 흔들어

307호 (2020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전통적 브랜드 관리 이론에 따르면 어느 한 기업 또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체성은 최대한 단순화시켜 일관되게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깨지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을 멀티화하는 이른바 ‘멀티 브랜드 페르소나’가 필요한 시대다. 최근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에 나서거나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브랜드들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현상은 브랜딩 역시 멀티 페르소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브랜드도 민첩하고 유연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부캐는 대중문화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다. 부캐 열풍의 대표 주자는 개그맨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유르페우스(유재석+오르페우스)’ ‘유고스타(유재석+링고 스타)’ 등 여러 개의 부캐를 선보이며 부캐 열풍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가수 이효리, 비와 함께 ‘싹쓰리’라는 그룹을 만들어 ‘유두래곤’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비단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일반인 부캐도 등장했다. 특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의 대중화는 보통 사람들도 부캐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낮에는 변호사, 약사, 직장인인 일반인들이 저녁에는 SNS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런가 하면 소비 시장에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편백족의 등장과 다양한 굿즈의 인기 등을 들 수 있다. 편백족은 필수적인 생활에 들어가는 예산을 절약해서 명품이나 값비싼 물건을 사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과거에는 최저가에 대한 수요가 있는 서민층과 고가의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상류층을 소득 수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익숙했지만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는 단순히 소득 기준으로 소비 유형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소비 양극화 대신 소비 양면화가 대중화된 것으로 멀티 페르소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나 굿즈의 인기 역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로 나타난 현상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덕질’에 몰입하거나 다양한 취미를 갖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다양한 캐릭터와 굿즈의 인기다. 취미 정체성이 중요해지면서 자신의 다면적 정체성을 소비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부캐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취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더이상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브랜드나 기업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개인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기업 스스로의 정체성을 ‘멀티’화하는 멀티 페르소나 마케팅에 앞 다퉈 참여하고 있다.

원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직접 참여케 하는 시대, 본업보다는 부업이 주목받고, 본캐릭터보다는 부캐릭터가 뜨는 시대를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리만족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부캐를 만들어 참여하고 멀티 페르소나를 트렌디하게 끌고 가는 개인과 기업들, 그 이면에는 현대사회의 변화상과 그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좀 더 내면적으로 파고 들어 이런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개인이나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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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를 이끄는 환경 변화

우선, 인간 본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해간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맞춰 바꾸고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본모습이다.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다양한 상황에 맞춰 다양한 자아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자아를 가진 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이다. 그런데 사회가 커지고 발달하면서 제도, 통제 등의 시스템이 인간 본성을 거스르도록 강요한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이 가진 개인적 특성 대신 회사가 정한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일관성, 반복성, 표준성 등을 강요하는 것인데, 최근까지도 많은 기업이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직원들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화된 한 가지 방식만을 표방하도록 직원들을 몰아갔다. 인간의 다중적 모습을 문제시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물론 병증 상태로 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슈다. 사회에 포용되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자아 표출은 인간의 본성 표현이다. 멀티 페르소나는 인간의 기본 성향인데 그동안 사회 제도하에 억눌려 온 것이다. ‘변덕이 심하다’ ‘이랬다저랬다 한다’라는 걸 꼭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시대에는 멀티 페르소나 현상을 역발상적으로 긍정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멀티 페르소나 행위에는 개인차가 있다. 심리학에 다양성 추구 경향, 전환행동 경향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인간이라면 앞서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있는 본성이다. 하지만 개인차가 있어서 이런 경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멀티 페르소나 행위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즐기고 좋아하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더 들어가 보면 멀티 페르소나는 자기애와 연관성이 있다. 흔히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리는 자기애는 자신의 자아 표출에 대한 강한 애착을 의미한다. 다양한 자아를 찾고 사랑하고 그것을 상황에 따라 변형해가면서 즐기기에 평소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일수록 멀티 페르소나 행위가 좀 더 자유로울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있던 인간의 본성적 기제가 왜 요즘 와서 주목을 받게 됐을까? 최근 급속도로 다양해지는 인간, 사회 환경 변화가 여러 측면에서 멀티 페르소나를 촉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우선, 시대 가치의 변화가 멀티 페르소나를 조장한다. 준칙의 시대에서 자유의 시대로 가고 있다. 과거에는 법을 만들고 통제하면서 지키려는 것이 국가 및 사회의 속성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자유, 개성에 좀 더 느슨한 ‘면허’를 주면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다양하게 찾고 실현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도 멀티 페르소나 환경 조성에 한몫한다. 첨단 기술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이 다면화되도록 만든다. 인터넷, 모바일이 만든 멀티태스킹 사회는 이동과 전환이 자유롭고 수시로 여러 세계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멀티 페르소나가 쉽게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낸다. 흔히 가상공간이라 불리는 또 다른 세상의 존재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여러 계정을 넘나들면서 제2, 제3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런 멀티 페르소나 환경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치화하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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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명이 늘어난 것도 멀티 페르소나에 영향을 미친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지금의 5060, 7080은 예전 세대와 다르다. 젊게 살아가려 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다양한 자기 개성을 펼칠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식당 사장님에서 유튜브 스타를 거쳐 멀티 크리에이터로 거듭나고 있는 박막례 할머니가 좋은 예다. 오랜 기간 살아가면서 한 모습으로 지속되는 것은 싫다. 지겹고 무료한 삶 속에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펼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대다. 예전에는 오래 사는, 즉 생존 그 자체가 중요한 목표였다면 지금은 생존보다는 자신의 가치 실현이 중요해지고 있다. 무병장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생존이라는 필수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인생 가치를 찾으려는 선택 조건이 부각되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변화를 또 다른 맥락으로도 설명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소형화, 파편화 사회와 멀티 페르소나다. 작아지면서 더 잘게 쪼개지는 역설적 사회 변화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페르소나의 멀티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작아지면 잘 뭉치고 커지면 잘 쪼개질 것이라 본다. 반대일 수도 있다. 작아지는 과정에서 응집성이 약해져 더 잘 쪼개지고, 작기 때문에 더 미세하게 파편화되기 쉽다. 커지는 과정에서는 세를 키우기 위해 더 뭉치려 하고 설령 갈라지더라도 큰 덩어리로 나눠질 것이다. 분화가 일어나더라도 통제를 위한 인위적 분화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사회는 인구 감소와 더불어 소형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더 마이크로하게 파편화되고 있다. 그 작은 파편들이 인위적이지 않아 부담 없고 더 좋다. 그래서 더 파편화, 미니화가 가속된다. 멀티 페르소나는 이런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트렌드의 출현이다. 자신을 발견하는 데 지금만 한 환경도 없다. 온•오프라인 여러 세상과 조우하면서 타인의 삶을 쉽게 엿보고 그 속에서 내 삶을 좀 더 다면적으로 보게 된다.

두 번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탈출, 그리고 멀티 페르소나다. 점점 각박해지고 팍팍한 현실은 이상과 점점 멀어져 간다. 탈출이 필요하다. 탈출은 반전을 꿈꾸는 것인데 그 반전은 스토리에 오롯이 담겨 있다. 스토리를 찾아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 소비행위가 나타난다. 남의 멀티 페르소나를 보면서 반전 스토리를 대리 체험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그 재미는 ‘좋아요’를 누르고 남에게 얘기하고 지갑을 열게 한다. 일상 탈출을 위해 스스로 반전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흥미가 생기고 점점 더 다양한 페르소나가 자신과 함께하게 된다.

갈수록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커진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이상과 다른 현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한다. 현실과 다른 자아의 모습을 남을 통해 체험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만들기도 한다. SNS상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저마다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또 다른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일상 탈출 욕구가 멀티 페르소나를 만들어낸다. 본업 현실에서의 결핍 때문에, 본캐릭터에 대한 스스로의 식상함, 불만, 한계 인식이 서브 캐릭터를 만들고 데뷔시킨다. 인스타를 포함한 SNS 행위는 일종의 마스킹, 가면 행위다. 현재의 본업 자아에서 탈출해 더 나은 자아에 대한 열망이 표출되는 행위다. 현실과 다른 열망적 캐릭터에 자아를 주입해 동일시하는 게임 행위도 일종의 마스킹이다. 현실보다 더 힘센, 강한 자아를 갈구하며 그의 마스크를 쓰고 게임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을 떠나 다양한 자아를 찾아볼 수 있게 하는 대표적 콘텐츠인 웹툰, 게임이 요즘 대세인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도 멀티 페르소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유튜브가 일종의 탈출 창이 된다. 본업에서 탈출해 부업으로, 본캐릭터에서 벗어나 부캐릭터를 데뷔시키는 채널이다. 유산슬, 싹스리 같은 연예인 부캐뿐만 아니라 평소 아는 사람의 유튜브나 틱톡에서 전혀 다른 모습의 끼를 볼 수 있다. 현재 인기를 끄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 중에는 부캐로 스타덤에 오른 경우도 많다. 히든싱어라는 연예 프로그램도 생업의 본캐 뒤에 가수라는 부캐를 보여준다. 복면가왕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모습 그 자체가 멀티 페르소나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방송사의 각종 경연 프로그램은 평범함 일반인이 부캐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다는 측면에서 멀티 페르소나 경연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현재의 제약이 많을수록 반발적 자유 추구로 다양성을 많이 보여준다고 한다. 현대인의 높아진 안목, 기대 수준이 역설적으로 현실을 더 답답하게 느끼게 하는 자기 덫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반발적으로 이것저것 짧게 스위칭하며 자신의 페르소나를 여럿 만들어내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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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페르소나의 설득 메커니즘

그렇다면 멀티 페르소나는 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멀티 페르소나에 매료되고 설득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객체적 관점이든, 주체적 관점이든 ‘반전과 재미’로 축약할 수 있다. 연예인이나 다른 사람, 또는 어떤 상품이나 브랜드, 기업의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페르소나)를 볼 때 설득되는 이유는 반전과 그로 인한 흥미로움이다. 자신이 스스로 멀티 페르소나 행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반전의 스토리를 만들며 흥미를 느끼면서 스스로에게 매료되는 자기 설득 메커니즘이 발현되는 것이다. 여기에 빠져들면 어느 새 천의 얼굴을 만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반전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스토리에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들어가 있다. 또 그 반전이 재미, 흥미를 이끌기에 사람들은 또 다른 기대를 하며 제2, 제3의 스토리에 지속적으로 빠져든다. 내러티브 또는 스토리텔링은 ‘기승전결’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표현되는 순서를 따라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轉)’ ‘위기, 절정’ 단계다. 평범했던 일상이 뒤집혀야 거기에 빠져들고 박수를 치면서 스토리가 완성된다. 욕을 하면서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반전의 극적 스토리를 꿈꾼다. 인생을 소설에 비유한다. 소설은 스토리다. 즉, 인생에 다양한 자기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를 통해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설득 메커니즘이다. 남에게 주목받고 싶고 스스로 주목하고 싶다면 소설처럼, 드라마처럼, 웹툰처럼, 게임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계속 스토리를 써 나가야 한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 모은 영화 ‘극한직업’에서는 준엄한 형사 페르소나에 느닷없이 치킨집 직원 페르소나가 오버랩된다. 참관자 시점에서 보면 멀티 페르소나는 반전을 통해 평범한 기대와 뻔한 예상을 깨고 흥미와 몰입을 유발한다.

행위자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멀티 페르소나 행위는 스스로 반전을 느끼며 재미있어야 된다. 그저 단순히 무료한 일상 탈출 행위이면 오래 가지 못한다. 멀티 페르소나 행위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케 한다. 고갈이 나타난다. 마치 어느 한 배역에 깊숙이 빠져들었다가 헤어 나오지 못해 고생하는 배우를 연상케 한다. 에너지 고갈을 막는 것은 재미밖에 없다. 스스로 재미를 느껴야 그 고비를 극복한다. 따라서 멀티 페르소나 행위가 오래가고 그것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출하려면 반드시 그 행위 자체를 흥미롭게 느껴야 한다. 무늬만 멀티 페르소나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멀티 페르소나 이해와 대응

1. 굿즈와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통한 멀티 포지셔닝

전통적인 브랜드 관리 이론에 따르면, 어느 한 기업 또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체성은 최대한 단순화시켜 일관되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브랜드 포지셔닝을 할 때 가급적 하나의 방향으로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브랜드 슬로건도 보통 한두 단어로 단순화한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시대가 저물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을 멀티화하는, 즉 ‘브랜드의 멀티 페르소나’가 필요한 시대다.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멀티화해야 한다.

브랜드 포지셔닝이라는 용어가 브랜드 멀티포지셔닝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멀티 포지셔닝이 기본이 되고, 싱글 포지셔닝이 예외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MZ세대에게 인기를 끄는 오래된 브랜드가 있다. 뉴트로 브랜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곰표밀가루다. 모회사인 대한제분은 70년이 넘는 역사 깊은 기업이다. 최근 곰표 밀가루의 마케팅은 전형적인 멀티 페르소나 브랜드 마케팅이다. 밀가루 아이덴티티를 벗어나 전혀 예상 밖의 부캐들이 등장한다. 부모님 세대의 올드한 곰표밀가루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멀티 페르소나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곰표 패딩을 입고, 곰표 팝콘과 함께 곰표 맥주를 마시고, 곰표 베이커리를 들르는 전혀 뜻밖의 문화가 나타났다. 밀가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를 겨냥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브랜드가 젊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나이 든 브랜드가 오래된 마스크를 벗고 다양한 새로운 마스크를 갈아 끼면서 미래 브랜딩 방향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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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의점을 가보면 멀티 페르소나의 경연장 같다. 올드한 브랜드들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갈아치우기 바쁘다. 이번 달은 이런 모습으로, 다음 달은 또 다른 모습으로 마스크를 갈아 끼우고 있다. 편의점은 현재 가장 핫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다. 우리 주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채널이다. 매번 다른 것이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번개처럼 번쩍이는 ‘팝업형 채널’이다. MZ세대를 품은 가장 젊고, 빠르고, 가볍고, 다양한 채널이다. 그러다 보니 젊어지고자 하는 브랜드에는 자신의 멀티 페르소나를 선보일 데뷔 무대 같다. 종가집 김치는 김치찌개 컵라면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죠리퐁은 카페라떼 캔의 모습으로, 동원참치는 참치버거의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변화를 주었다. 편의점 밖으로 범위를 넓히면 좀 더 다양한 사례가 있다. 불닭볶음면은 불닭립밤, 불닭치약, 불닭방향제로, 참이슬 소주는 백팩으로, 진로이즈백 소주는 티셔츠, 가방, 모자, 핸드폰 케이스로, 대선소주는 대선슬리퍼로, 바나나맛우유는 립밤, 화장품으로, 새우깡이 티셔츠로, 메로나가 칫솔, 운동화로, 팔도왕뚜껑이 모자로, 비락식혜가 아이스크림으로 자신의 모습을 달리했다. 신세계도 백화점, 마트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멀티 페르소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스타필드, 호텔로 이어지면서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소비자에게 보여줄지 기다려진다.

2. 이모지 등 캐릭터를 통한 자아 표현

유튜브보다 더 짧고 다이내믹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틱톡’은 멀티 페르소나 행위를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틱톡 스티커’의 활용이다. ‘이모트막춤챌린지, 근육맨챌린지, 복제인간, 만화에빠지다’와 같은 스티커나 필터를 활용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또 다른 부캐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고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나를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가 크다. 최근 ‘사생활’이라는 드라마는 아예 포스터에 출연진의 본캐와 부캐를 밝히면서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스토리를 끌고 가며 시청자를 몰입케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멀티 페르소나의 전형적 설득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에 몰입하는 이유는 페르소나의 전환, 즉 반전 때문이다. ‘이게 뭐지?’ 이제 내 브랜드도 소비자에게 이런 반전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반전 브랜드’ ‘대반전 브랜드’가 되는 것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미래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강력한 브랜드 마케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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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

멀티 페르소나는 앞으로 비즈니스 세계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성공 브랜드를 이끄는 혁신 키워드가 될 것이다. 개인과 기업 모두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선, 개인의 경우 멀티 페르소나를 소재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보다 쉽게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다양한 반전 페르소나를 개발하고 업데이트하며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가치 실현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반전 흥미를 유발하면서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로 발전될 수 있다. 다만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많은 유튜버, 블로그 인플루언서, 인스타 크리에이터 속에서 어떤 차별화가 가능할지는 숙제가 될 것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저 한 번의 흥미로,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해 자신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그것이 뜨거운 반응으로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반전을 거듭하며 스토리를 이어가는 것은 스스로 흥미를 느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흥에 빠져야 지속이 되고 지속가능해야만 업이 되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가 분명 좋은 콘텐츠 소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기업 측면에서 멀티 페르소나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데 우선 마케팅 차원에서 신제품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신제품 개발은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서 차별화하는 데 초점이 많이 맞춰졌다. 그러나 멀티 페르소나는 경쟁사와의 비교 관점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해가는 관점에서 신제품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구닥다리 퇴물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진화해가야 한다. 다른 기업보다 조금 더 낫다가 아니라 스스로 늘 새롭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사람에게만 꼰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도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 머무른다면 ‘꼰대 브랜드’가 된다. 멀티 페르소나 주입 관점에서 신제품 개발을 지속해간다면 아무리 오래된 브랜드라도 스스로 젊음을 찾게 되는 ‘브랜드 회춘(brand rejuvenation)’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는 미래 브랜드 관리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브랜드 철학이라 하면 오래된 격언처럼 느껴지는 한두 단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오래된 문구가 다가올 미래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까? 또 다가오는 변화무쌍한 미래에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첩한 브랜드가 돼야 한다. 페르소나를 민첩하게 전환해가는 브랜드가 살아남을 것이다. 예전에는 거창한 문장과 함께 백년기업을 목표 삼았지만 미래의 백년기업에 딱딱하게 굳은 철학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브랜드 철학 칸을 비우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굳이 브랜드 철학 칸을 채운다면 상황에 맞춰 천의 얼굴을 하는 멀티 페르소나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팝업 브랜딩. 브랜드의 얼굴도 여러 가지일 필요가 있다. 시간, 장소, 상황에 맞춰 다양한 마스크를 보여주는 브랜드 관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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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페르소나는 기업의 조직 관리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조직 내부에 부캐문화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MZ세대 젊은 직원들에게 다양한 자아를 표출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제도하에, 시스템하에 동조화하도록 강요하는 문화는 MZ세대 직원들을 불편하게 한다. 자기 취향, 자기애, 자기 가치 지향이 강한 세대인 만큼 다양한 자신의 모습, 자아 표출을 장려하고 이를 직무에 녹여내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서브 캐릭터를 많이 만들고 이를 표출하는 플랫폼을 기업 내부 온•오프라인에 만들 필요가 있다.

성과지표에도 부캐를 개발하고, 활용하고, 이를 직무에 적용하는 것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제고할 필요가 있다. 즉, 상품 또는 시스템 개발 등 본인의 현업은 물론 사내 공모전 등 기업 내 업무를 통해서도 구성원이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도록 장려한다면 반전의 신선함이 조직에 활력을 줄 수 있다. 김 대리, 박 과장, 이 부장이 김튜버(김대리+유튜버), 박에이터(박과장+크리에이터), 이플루언서(이부장+인플루언서)로 전혀 다른 모습의 반전을 보이면 구성원들도 그 재미에 환호할 것이다. 또한 자기 스스로도 흥에 빠져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살아남는 기업의 문화에는 멀티 페르소나가 분명 자리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 내부에서 구성원들 스스로 반전 스토리를 만들고 스스로 흥에 겹도록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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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빙그레의 경우 MZ세대 소비자를 겨냥해 그들에게 친숙한 카툰, B급 콘텐츠와 캐릭터를 다양하게 개발해 소통하고 있다. 소비자로 하여금 빙그레의 본래 모습과 사뭇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빙그레 내의 전통 브랜드를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 만나는 즐거움과 재미는 시니어 세대들은 공감하기 힘들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케팅 개발 담당자는 MZ세대다. MZ세대는 MZ세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MZ세대가 주역이 되는 미래 시대를 겨냥한다면 MZ세대 부캐 문화를 기업 내부에 탑재하고 소비자를 상대해야만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내부에 흥을 돋우고 빠른 시대변화에 대처하며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스스로 멀티 페르소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 스스로 빠져든 멀티 페르소나 행위에 그것을 지켜보는 소비자는 대리만족하고 그 기업의 팬덤이 된다. BTS처럼 스스로 흥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강력한 팬덤이 생겨난다.

유연한 관점으로 대응하라

요즘 주변에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간다’ ‘자고 일어나면 금방 다른 세상이 된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기술 발전에 따른 고도화가 사회에 가속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빨리’ ‘더 빨리’라는 말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 시간의 노예가 된 ‘가속사회(accelerated society)’가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고, 이런 모습은 앞으로 더욱 진전될 것이다. 이런 가속사회가 만들어내는 중요한 현상이 있다. 바로 ‘짧아지는 유효기간’이다. 무엇이든 그 가치의 유효기간이 단축되고 있다. 무엇 하나가 나오면 100년을 기대하고 지긋이, 일관되게, 주야장천으로 갈 것을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모바일이 만들어낸 초연결은 어느 한 모습의 지속성을 무너뜨린다. 지속성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며 사람들 또한 그런 세상에 맞춰 진화해가고 있다. 지루한, 고리타분한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보여주는 사람, 브랜드,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가치의 단명화, 유효기간의 단축은 역설적으로 생산의 기회를 증가시킨다. 빨리 전환을 하는 만큼 새로운 생산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기존 것의 유효기간이 짧아져 빨리 폐기되는 만큼 대체하는 새로운 가치의 출현이 빨라지고 잦아지는 것이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만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가 이런 걱정을 덜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구는 많지만 생애에 소비하는 가치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이 과거의 모습일 것이다. 어느 하나를 오랫동안 쓰면서 동반노화가 되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 있었다. 생산 가치의 총량을 인구수와 가치의 가짓수로 곱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인구와 적은 가짓수, 적은 인구와 많은 가짓수 간에 등가가 생길 것이다. 인구는 줄어들지만 가치의 단명화와 함께 생애에 소비하는 가치의 수가 많아지면 경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 이제 기업들도 이런 관점에서 미래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페르소나에 대한 유연한 관점이 필요하다. 탄력적 성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를 하나의 모습으로 굳어 있는 딱딱한 ‘고체적’ 관점이 아니라 ‘액체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릇이나 컵, 담기는 용기 모양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액체적 관점이 요구된다. ‘천의 얼굴’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얼굴, 다중적 모습에 대한 관점 대전환이 필요하다. 하나의 모습으로 가다가는 끝나는 세상이다. 보다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가야 살아남는다. 멀티 페르소나는 미래 시대 생존 키워드다. 본래 모습에 대한 파괴와 과감한 모습으로 계속 바꿔가며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오래 가는 비결이다. 시간, 장소, 상황을 달리해가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해야 한다.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다. 존재에 대한 경험을 다면적으로 가져가는 멀티 페르소나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람, 브랜드, 기업이라도 아침, 오후에는 이성적으로, 저녁시간 이후에는 감성적으로 만나는 반전 경험이 MZ세대를 중심으로 다가오는 미래인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한 존재에 대해 지겹지 않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멀티 페르소나 시대가 이미 성큼 다가왔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 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현재 서비스마케팅학회 11대 회장을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7호 부캐의 역습 2020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