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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눈앞의 현금 vs 확률 50% 로또

정재승 | 12호 (2008년 7월 Issue 1)
당신 앞에 두 가지 선택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는 1만 원짜리 지폐 1000장으로 이루어진 현금 1000만원, 다른 하나는 당첨 확률이 50%인 2500만 원짜리 로또 1장. 꽝이 나오면 아무것도 받지 못 하지만 당첨이 되면 2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당첨 확률은 무려 50%에 이른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 문제의 답을 수학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당연히 2500만 원짜리 로또 선택이 현명하다. 로또의 경우 기댓값이 무려 1250만 원(0.5×2500만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94%의 사람들은 이런 선택 상황에서 안전하게 현금 1000만원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로또 당첨금액이 3000만 원으로 오르기 전까지 사람들은 로또보다 현금을 훨씬 더 선호했다. 당첨금이 3000만 원을 넘기자 그때서야 현금 대신 로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현금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유는 확실했다. 로또가 당첨돼 2500만 원을 받게 됐을 때의 기쁨보다 꽝이 나와서 하나도 못 받을 때 느끼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금 1000만 원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본전으로 여겼기 때문에 꽝이 나오면 1000만 원을 손해 보는 상황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겐 로또 당첨의 기쁨보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을 받지 못한 손실의 고통이 더 컸다. 그래서 기댓값이 적더라도 현금 1000만 원을 선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이런 성향을 ‘손실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다니엘 카네만과 그의 동료 아모스 트베르스키가 발견한 현상이다. 어떤 물건을 획득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용보다 그 대상을 잃게 됨으로써 느끼는 비(非)효용이 훨씬 크다는 것을 말한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리처드 탈러 교수는 아래와 같은 상황을 사람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쉽게 이 현상의 존재를 증명했다. 여러분도 함께 풀어보시라.
 
당신이 어떤 병에 걸렸다고 가정해 보자. 이 병에 걸리면 비록 확률은 아주 낮지만(예를 들어 0.01%)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망률을 0%로 만들 수 있는 약이 나왔다면 당신은 이 약을 얼마에 구입하겠는가?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최고가격을 제시해 보라.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당신은 아주 건강하다. 어느 날 한 제약회사에서 신약 테스트에 참가할 피험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 이 약을 먹으면 확률은 매우 낮지만(예를 들어 0.01%)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를 보상받는다면 이 신약 테스트에 참가하겠는가? 당신이 원하는 최소가격을 제시해 보라.
 
두 질문에 대해 당신이 제시한 금액은 같았는가, 아니면 달랐는가? 첫 번째 질문은 당신에게 만의 하나 있을 수 있는 죽음의 가능성을 없애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당신에게 얼마를 보상해 주면 건강을 내놓고 만의 하나 있을 수 있는 죽음의 실험에 참가하겠는가를 묻고 있다. 이 두 질문은 모두 0.01%의 사망률에 대한 금전적 가치를 묻고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제시한 금액이 서로 같아야 하겠지만 설문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탈러 교수에 따르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몇 만원 정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몇 억원을 준다고 해도 신약 테스트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0.01%의 사망률이라는 똑같은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을 줄였을 때의 기쁨보다 증가시켰을 때의 고통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만화처럼 작위적이어서 비현실적인 답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상적인 문제로 바꿔 실험을 해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학자 비스쿠이시와 매갓, 그리고 후버는 1987년 매우 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이와 유사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조사했다. 이들은 쇼핑몰과 대형철물점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피험자로 삼았다. 피험자들에게 캔에 담긴 가짜 살충제를 보여주면서 그 사용법을 읽어보라고 했다. 캔에 표시된 살충제 가격은 10달러였다.
 
참가자들에게 ‘모든 살충제는 잘못 사용하면 호흡곤란이나 피부염 등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부염 대신 아이들에게 유독하다고 쓰인 주의사항을 읽게 했다. 위험도는 캔 1만 개당 15명의 피해사례가 보고되는 정도라고 일러줬다.
 
이제 참가자들에게 이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캔당 얼마의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이들이 제시한 금액의 평균은 약 3.78달러였다. 그러고는 반대로 각 위험 가능성이 1만 분의1 만큼 늘어난다면 가격이 얼마나 인하되어야 할지를 물었다. 결과는 앞의 질문에 대한 답과 전혀 달랐다. 응답자의 77%가 가격수준과 상관없이 위험 가능성이 1만 분의 1 만큼만 늘어나도 이 살충제를 절대 구입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위험을 없애기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가격과 위험이 증가하는 것을 용인하기 위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격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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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승

    정재승jsjeong@kaist.ac.kr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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