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 응답하라 1997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지은(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80년대를 추억하는 세대들이 점점 사회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90년대를 기억하는 2030세대가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금의 20대와 30대, 이들은 최루탄에 대한 기억도, 가난에 배곯아 본 경험도 없다. 그들에게 복고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아니라 H.O.T.의 캔디이며 나팔바지가 아니라 힙합바지다. 가까운 과거, 90년대의 방대한 문화 아이콘들, 우린 모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 우리가 누렸고 즐겼고 미쳤었던 우리들의 90년대 이야기. 이들의 90년대는 더 없이 찬란했다. 현재 33세, 1980년생 평범한 직장인 성시원, 그녀를 통해 우린, 화려했던 우리들의 90년대로 귀환한다. 들리나 90년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응답하라 1997’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 중에서
CJ E&M이 선보인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올 하반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6월 첫 방송 이후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지속적으로 올랐고 9주 연속 케이블 TV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9월18일 마지막 회는 평균 시청률 7.55%, 최고 시청률은 9.47%(TNmS 리서치 조사)로 역대 케이블 TV 드라마 중 최고를 기록했다.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H.O.T. 광팬, 일명 ‘1세대 빠순이’ 성시원, ‘시원바라기’ 윤윤제를 비롯해 개성 있는 고등학생 여섯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2년 33살이 된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모이게 되고 이 중 한 커플이 결혼 발표를 하면서 추억 속에 묻어뒀던 1997년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6명 주인공 중 결혼에 골인하게 된 한 커플은 누구일까?’라는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에 매회 에피소드 중심의 구성으로 재미를 더했다. 탄탄한 이야기 외에 1990년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섬세한 복고 재현,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예능적 요소들이 드라마의 인기를 높였다.
9월 종영된 ‘응답하라 1997’의 여운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응답하라’라는 구절은 많은 곳에서 패러디되고 있고 90년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문화, 경제 분야 등 사회 곳곳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기획, 연출, 편집까지 도맡으며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을 이끈 신원호 PD를 만나 올해 큰 이슈를 불러일으킨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들어봤다.
산 넘어 산이었던 캐스팅 과정
‘응답하라 1997’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주인공 역을 맡은 정은지, 서인국의 감칠맛 나는 연기였다. 이 둘은 연기 경험이 거의 없고 인지도도 그다지 높지 않은 신인이었다.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많은 언론들은 신인 배우를 기용한 신원호 PD의 ‘선견지명’을 칭송했다. 그러나 사실 신 PD 입장에서는 큰 결심을 필요로 한 캐스팅이었다.
신 PD도 처음에는 주인공인 성시원과 윤윤제 역할에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특급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 PD 출신도 아닌 예능 프로그램만 해온 PD, 그것도 공중파도 아닌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에 출연하려고 하는 특급 배우들은 없었다. 좀 더 눈을 낮춰 그 아래 인지도와 인기를 가진 배우들을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미팅이나 해봅시다” “리딩이나 해봅시다”라고 연락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결국 신 PD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에 부합하다고 판단된 서인국과 정은지였다. 신 PD는 당시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PD들은 누구나 ‘이 대본을 가장 잘 소화해줄 친구’와 ‘이 대본을 가장 잘 흥행시켜줄 친구’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오디션을 본 후 시원과 윤제를 정확히 읽는 친구는 은지와 인국이밖에 없었지만 욕심이 나서 이 둘보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계속 접촉했어요. 우리도 결국 시청률로 장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재미있게 만들어도 안 보면 그만이죠. KBS에서 CJ E&M으로 이직해서 처음 하는 작품인데, 그것도 예능이 아닌 드라마를 하려니 약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캐스팅에 욕심을 조금 부렸는 데 안 됐죠. 애매한 배우를 쓰기보다는 차라리 아주 참신한 신인들을 내세우기로 전략을 세웠어요. ‘쟨 또 뭐냐’보다는 ‘쟤네 뭐지’라는 반응이 나을 것 같았어요. 진부함보다는 호기심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고요. 오디션 결과 인국이와 은지에게 확신도 있었어요. 물론 100%의 확신이 아니라 ‘이게 낫겠지’ 하면서 내린 선택이었지만 내가 결정한 전략이 더 나을 것이란 판단이 있었어요.”
이러한 신 PD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제작진은 캐스팅의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완벽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를 봤는데 여주인공인 정은지는 부산 토박이, 남주인공 서인국은 경상도 울산 출신이었다. 눈에 익숙한 배우가 아니었지만 두 신인 배우의 걸쭉한 부산 사투리와 톡톡 튀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매료됐다.
드라마를 처음 해보는 PD의 새로운 시도
‘응답하라 1997’을 처음 보는 시청자들은 다른 드라마와 다른 스타일의 이 드라마가 약간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 같은 장면, 뮤직비디오도 아닌데 자주 깔리는 음악, 시트콤은 아닌 것 같은데 간간 터져주는 웃음 코드. 생소하지만 한번 보면 자꾸 보게 만드는 매력 있는 드라마의 탄생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드라마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제작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신원호 PD는 ‘응답하라 1997’ 이전에 드라마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2001년 KBS에 공채 PD로 입사해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등 예능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어왔다. 극본을 담당한 이우정 작가 역시 신 PD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예능 작가였다. 그녀는 ‘해피선데이: 1박2일’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 등을 썼다.
예능 PD로 활동해왔지만 신 PD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 1년 전부터 ‘응답하라 1997’을 기획했다. 신 PD는 만드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자격’을 만들 때도 찍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참신한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거추장스러운 ENG 카메라를 빼고 6㎜ 카메라를 투입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처음인 신 PD는 우선 드라마 선후배, 작가에게 전화했고 실제로 방법론에 대한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드라마를 어떻게 짜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구할 수 없었다. 본인 역시 누군가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드나요’라고 물으면 정답을 이야기해줄 수 없고 답을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하던 대로 하자’였다. 전체 시놉시스, 콘셉트, 대본 등 모든 것을 작가와 함께했고 매회 촬영이 끝나면 다음 촬영 예정인 대본을 앞에 두고 재미있는 대사 한 줄을 넣기 위해 밤샘 회의를 했다. 기존 드라마의 경우 초반 시놉시스 공유 후 작가가 글을 써서 넘기면 PD는 대본을 받아 찍어서 방송으로 만든다. 어느 정도 분업화가 돼 있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에 비해 ‘응답하라 1997’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을 상당 부분 가져왔다. 신 PD, 이 작가 등 주요 제작진 5∼6명은 밤샘 회의를 하느라 올해 2월부터는 거의 집에 못 들어갔다.
예능 PD로서의 경험은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 장점이 됐다. 예능에서 빠른 호흡으로 밀도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던 경험이 드라마 연출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7’에 시청자가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기존 드라마에 비해 웃음 포인트가 많고 매회 ‘반전 엔딩’이 있어서 끝까지 보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여주인공 시원의 남편이 누굴까’로 시작했던 첫 회는 마지막 회 결정적 순간에 그 답이 공개되며 끝난다. 2주 차에는 준희가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친구인 윤제라는 것과 서울에서 전학 온 ‘에로지존’ 학찬이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부끄럼쟁이라는 사실이, 3주 차에서는 2012년 현재 결혼을 발표한 커플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윤제와 시원이 아닌 학찬과 유정이라는 반전 등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했다.
신 PD는 “치밀하게 플롯을 짜서 화장실도 못 가게 만드는 재미있는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다. 예능 프로는 잠깐 놓치면 웃음 포인트가 두세 개 휙 지나가버려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한다. ‘응답하라 1997’은 코믹한 상황이 주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시청자들에게 보다 큰 즐거움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디테일의 힘, 원칙에 충실하다
‘응답하라 1997’을 보고 있으면 걸쭉한 부산 사투리는 기본이고 출연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 쓰고 있는 물건 등 당시 시대를 보여주는 많은 소품들이 매우 디테일하다는 것에 놀란다. 제작진은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칠판에 몇 가지 원칙들을 써놓고 이 원칙만은 우직하게 지키자고 합의했다. 치밀한 얼개, 확실한 사투리 등에 앞서 제일 위에 써놓은 원칙이 바로 ‘디테일의 힘’이었다.
DDR, 삐삐, 마이마이(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축배 사이다, 콤비 콜라, 유행통신, 다마고찌 등 당시 유행했던 소품들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제작진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소품팀에서 구하기 힘든 건 PD, 작가가 직접 나서거나 제작진의 소장품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H.O.T. 팬클럽의 우비, 현수막 등의 아이템들은 실제로 당시 팬클럽 활동을 했던 김란주 작가의 소장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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