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토즈 애니팡
편집자주
※이 기사의 작성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수(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윤경미(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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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4일, 국회의원이 스마트폰으로 ‘애니팡’ 게임을 하는 모습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네티즌들은 사진에 나온 넥타이와 시계줄 등을 가지고 그가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임을 밝혀냈다. 이틀 후 최 의원은 트위터로 사과했고 이게 다시 화제가 됐다. 비판도 있었지만 ‘애니팡 좀 하면 어떠냐’ ‘인간적인 국회의원’ 등 긍정적인 댓글도 달렸다. 최 의원의 팔로어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애니팡의 제작사인 선데이토즈의 이정웅 대표는 “정말 감사드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애니팡이 ‘국민게임’으로 등극했음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애니팡이 2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던 시점이었다.
스마트폰 메신저인 ‘카카오톡’ 사용자를 대상으로 2012년 7월30일 출시된 애니팡은 한 달 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두 달 만에 2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게임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이렇게 빠른 성장을 보인 사례는 흔치 않다. 물론 인기가 오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애니팡은 게임산업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임을 자주 즐기지 않았던 40대 이상의 중노년층과 여성들이 애니팡에 빠졌고 이병헌, 보아 등 인기 연예인들도 스스로 이 게임을 즐긴다고 밝혔다.
애니팡은 새로운 게임이 아니다. PC용으로 개발된 지 3년이나 지났고 시장에는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애니팡만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에 대해 게임산업 종사자들은 카카오톡 효과를 든다. 대표적인 스마트폰 메신저로 30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이 처음 내놓은 게임 중 하나가 애니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출시된 열 개의 게임 가운데 왜 애니팡이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또 국민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는지를 운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애니팡의 성공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소셜네트워크게임에 올인하다
애니팡은 우연한 대박이 아닌 철저한 기획상품이다. 제작사인 선데이토즈는 스마트폰 메신저를 이용한 소셜네트워크게임의 가능성에 남들보다 먼저 주목해왔다. 이 회사는 2009년 창업 때부터 싸이월드,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사이트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만을 개발했다. 이미 2010년에 ‘아쿠아스토리’라는 싸이월드1 게임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같은 해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코오롱으로부터 30억 원의 펀딩을 받았다. 업계 내부에서는 소셜네트워크게임 분야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었고 애니팡의 성공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선데이토즈는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00학번 동기인 이정웅, 임현수, 박찬석 세 명의 개발자가 2009년에 창업했다. 현재도 직원은 30여 명에 불과하고 그중 경영전략을 맡은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개발자인 전형적인 기술중심 IT벤처다. 창업 전, 이정웅 대표는 국내 최대 웹 보드게임 제작사인 한게임(NHN)에서 4년간 근무했고 임현수 기술이사와 박찬석 운영이사 역시 각각 대형 게임업체인 NC소프트와 T3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다. 이들은 싸이월드, 페이스북 같은 PC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했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주말에만 모일 수 있었다. 이때 즐겨 찾던 장소가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토즈’라는 카페였다. 그래서 2009년에 퇴직하고 창업하면서 ‘선데이토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표는 NHN 재직 당시 100개 가까운 웹게임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당시 우리의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ex)는 개발한 게임의 숫자였을 정도”라고 말한다. 웹게임은 인터넷브라우저상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어 흔히 캐쥬얼 게임(casual game)이라 불린다. 제작에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같은 대작과 달리 ‘테트리스’로 대표되는 캐쥬얼 게임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 또 처음 하는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게임 마니아들의 취향에 맞춰 작품성을 높이기보다는 쉽게, 그리고 가끔씩이라도 꾸준히 게임을 하도록 만든다.
이 대표와 동업자들은 특히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가장 적합한 캐쥬얼 게임을 개발하는 데 전력한다. 창업 후 몇 달간 시행착오를 거치고 첫 히트작인 싸이월드용 애니팡을 출시했고 2010년 싸이월드용 ‘아쿠아스토리’로 큰 성공을 거둔다. 싸이월드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게임이었다. 게임의 목적은 나만의 어항을 만들고 그 안에 물고기와 수초를 기르고 예쁘게 꾸며서 싸이월드 일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다. 게임 자체는 무료이지만 어항을 좀 더 잘 꾸미기 위해서는 현금을 주고 고급 아이템을 사도록 하는 ‘부분 유료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쿠아스토리는 출시 6개월 만에 싸이월드 1등 게임이 됐고 7개월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2년 후에는 24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컴즈의 관계자는 “선데이토즈는 소셜네트워크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획을 잘하는 회사였다”고 회상하며 “현재 애니팡의 성공은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잘 선택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종류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싸이월드에서 여러 형태의 게임을 서비스하며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학습한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매출위기를 조직슬림화와 방향전환의 기회로 이용하다
2010년 말, 싸이월드에서 서비스되는 아쿠아스토리의 선전 중에도 이정웅 대표는 회사의 미래성장동력은 PC가 아닌 모바일, 특히 스마트폰 기반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중에서도 전화번호부 기반의 소셜네트워크/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주목했다. 3살 위인 카카오(카카오톡 서비스사) 이제범 대표를 만나 게임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도 이때 즈음이다. 이들은 카카오톡을 게임 플랫폼으로 이용하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이정웅 대표는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사람들을 자동으로 친구로 등록시켜주는 카카오톡 소셜그래프가 가진 비즈니스 포텐셜을 게임을 통해 최대로 이끌어보겠다고 자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성보다는 소셜 측면이 강조되고 또 논게이머도 쉽게 할 수 있는 가벼운 게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이른 시점이었다. 당시는 국내 스마트폰 유저가 약 600만 명으로 현재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2011년 들어 아쿠아스토리 등 싸이월드 게임들의 사용자 증가세가 정체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접속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PC에서 모바일로의 유저 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PC 기반 게임업체들과 페이스북, 싸이월드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들은 PC와 스마트폰에서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연동형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과연 두 가지 플랫폼용을 모두 개발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아쿠아스토리 유저를 대상으로 한 시장조사는 이런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이 대표의 짐작에는 유저들이 집 밖에 있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물고기 밥을 주고 집에 들어오면 PC로 싸이월드에 접속해 어항을 확인할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에 와서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지 굳이 PC를 켜지는 않는다고 답한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다. 카카오톡과의 브레인스토밍도 모바일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당시 카카오톡 관계자들은 선데이토즈 측에 PC 버전의 카카오톡을 만들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PC플랫폼과 모바일 플랫폼은 서비스 방향과 관점이 서로 다르므로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보면 서로에 대한 족쇄가 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 개발에 전력하기 위해 편안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 캐시카우, 즉 싸이월드용 PC 기반 게임들을 버리자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직원들 중에 PC 플랫폼용 게임 개발에만 특화된 사람도 있어 그들의 입장과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2011년 7월 터진 싸이월드 해킹 사건이 전략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약 3500만 명 싸이월드 이용자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폰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후로 아쿠아스토리 유저들이 싸이월드를 통해 유료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을 꺼려 매출이 급감했다. 그동안 올려놓은 수익과 외부 투자자에게 받은 자금이 있었지만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자 이 대표는 PC 기반 게임개발을 그만두고 모바일로 완전히 이동하겠다고 선언했다. 25명의 직원 중 10명 정도가 회사를 떠났다. (그림2) “모바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직구조(hierarchy)가 더 복잡했더라면 오히려 실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장점이 빠른 결정력과 실행력이니 그런 면에서 조직이 슬림해진 것이 전략전환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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