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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innovation

베일 속 보물 하동, 창 열고 세상을 담다

김민주 | 88호 (2011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경상남도의 서쪽에는 섬진강과 지리산, 남해안을 끼고 있는 하동군이 있다. 이를 일컬어 하동을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동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역사 자원이 적지 않다. 대중가요 소재로도 등장한 화개장터,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의 토지문학관, 지리산 청학동 등이 하동군에 있다. 하동은 우리나라 녹차 시배지다. 녹차의 품질이 뛰어나 ‘왕의 녹차’라고 불린 하동 녹차와 대봉감과 같은 특산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슬로시티’라는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국 여행관광지를 포괄적으로 다룬 책들을 한번 보자. <대한민국 여행 사전-아름다운 우리나라 가고 싶은 1000곳(유연태 외 10인 지음, 터치아트, 2009년)>은 축제로는 하동야생차 축제, 자연으로는 하동 송림, 사진 찍기에 좋은 곳으로는 악양 평사리를 포함해 총 3군데를 명소로 선정했다. 또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최정규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0년)>에는 하동십리 벚꽃길, 쌍계사, 하동송림, 최참판댁, 지리산국립공원 등 5군데가 포함됐다. 역시 자연 경관과 문화 기반 관광지가 하동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동이 자랑할 만한 것은 훨씬 많다. 하동 사람들은 잘 알지만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천혜의 자원이 적지 않다. 자연자원으로는 불일폭포, 금오산, 덕천강, 고소성, 동정호,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문화자원으로는 칠불사, 삼성궁, 이병주 문학관, 백련리 도요지, 금오산 봉수대, 동편제, 아자방이 있다. 악양 대봉감 축제, 코스모스메밀 축제, 형제봉 철쭉제, 전어 축제, 참숭어 축제, 토지문학제와 이병주 국제 문학제 등 다양한 축제도 열린다. 이 밖에 재첩국, 매실, 솔잎 한우, 배다구, 은어, 참게, 대통밥 등의 특산품과 하동시장, 진교시장, 옥종시장 등의 전통시장이 유명하다. 하동화력을 비롯해 갈사만 조선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등 산업시설도 곧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외지인들이 하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하동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 역사자원과 하동을 연결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섬진강이나 지리산 등의 자연 경관 정도만 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경북 안동시와 혼동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하동을 보는 안팎의 시각 차이
하동 내부인이 보는 하동과 외부인이 보는 하동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이는 하동의 지역 브랜드 정체성이 외부에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동 사람이 자랑하고 싶은 것을 외지인이 몰라줘서 안타까울 때도 있고, 하동 사람은 무심코 보는데 외부인이 열광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자신도 잘 모르는 ‘자신’이 있고 자신만이 아는 ‘자신’도 있다.
하동은 사실 지리산 남쪽에 위치해 따뜻한 자연환경에서 다양한 농작물을 경작하고 섬진강, 덕천강, 횡천강, 악양천 등 물길을 통해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남해바다와도 인접해 있어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늦지 않았다. 하동은 지리산으로 대표되는 정적이고 은둔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는 섬진강으로 대표되는 다양성, 개방성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는 남해바다로 대표되는 동적 이미지로 점차 변해갈 것이다. 따라서 외부인이 인지하는 하동과 실제 하동의 속성 간의 거리감(gap)을 줄이고 실제 하동의 모습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필자의 연구팀은 하동 외부인과 내부인의 하동에 대한 인식 차이를 비교 조사했다. 하동 내부인 대상의 조사를 위해 13개 하동군 읍면장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서울, 경기 지역과 인접 지자체의 외부인 127명과 하동 주민 77명에 대해서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두 조사대상자 간의 인식 차이가 크게 나타난 부분은 조용한-활기찬, 심플한-다양한, 폐쇄적-개방적이라는 부분이었다. 외부인에 비해 내부인은 자신들이 활기차고 다양하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하동다움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표 1)

하동다움 강조해 ‘인식 격차’를 줄여라
지역도 모름지기 ‘다워야’ 한다. ‘답지’ 않으면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하며 가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일이야 말로 사람이나 지역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정체성을 알리는 일 또한 불가능하다. 자신도 잘 모르는 정체성을 타인이 제대로 알 리도 없다. 지역 정체성을 제대로 살린 지역 브랜드와 마케팅은 그만큼 어렵다.
 
하동은 어떤 노력을 통해 ‘하동다움’이라는 정체성을 지속 발전시키고 이를 널리 알릴 수 있을까. 문화, 경제, 관광, 홍보, 인력 등 다섯 가지 분야별로 하동다움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①문화 프로젝트
사진 페스티벌 :하동은 풍광이 뛰어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게다가 최근 고급 카메라의 보급과 고령화 등으로 사진 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추세를 이용해 하동에서 사진 페스티벌을 연다면 국내외 사진작가들은 물론 아마추어 사진 동호인들에게 하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동을 찍은 사진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확산되므로 하동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프랑스의 아를(Arle)은 로마 유적지와 화가인 고흐로 유명하지만 아를 사진 페스티벌로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랜드아트 :아트 장르 중에 랜드아트(Land Art)가 있다. 그 지역에서 나는 흙을 가지고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일정 기간 예술 작품으로 서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게 랜드아트의 특징이다. 국내 작가뿐 아니라 전 세계 작가들을 초빙해 작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하동서체 개발 :컴퓨터가 일반화되면서 서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고 있다. 스위스는 군더더기가 없고 스위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헬베티카(Helvetica) 서체로 유명하다. 서울시도 고딕 계열의 서울남산체와 명조 계열의 서울한강체를 만들어 서울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국내외에 하동의 고유 정체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 성공한다면 다른 어떤 홍보 수단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②관광 분야
자발적 유배 사업:최근 관광 트렌드 중 하나는 ‘자발적 유배’다. 산을 오르는 등산이 자연을 즐기는 트레킹으로 바뀌고 요즘은 종교적 성향을 띠는 순례도 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문화적 유배’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강압적 유배와는 달리 이제는 바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을 정리하고 글 쓰기, 그림 그리기, 도자기 만들기 등 평소에 하고 싶었던 예술 활동을 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절한 ‘유배공간’을 찾고자 하지만 마땅한 곳이 많지 않다. 너무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에 적합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큰 인기를 끌 것이다.
 
작은 배 체험:섬진강은 하동의 중요한 자연자원이지만 단지 감상의 대상일 뿐 레저스포츠 공간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섬진강은 바닥이 깊지 않다. 상류는 배가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하동포구로 대표되던 과거를 되살려 하동 나루터를 만들고 전 세계의 작은 배들을 섬진강에 유치해 전시하고 체험토록 한다면 흥미로운 관광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카약, 카누, 강바닥이 얕은 곳에서도 운행이 가능한 보트, 바이킹 배도 대상이 될 수 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강 연변에 잔교(pier)를 설치하면 사람들이 산책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③경제 분야
전원형 연구개발 단지:하동에 중화학공업 기업을 지나치게 유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친환경적인 하동다움에 큰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지식산업의 첨병인 연구개발 조직을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와는 달리 전원형 연구단지가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 지중해 변에 위치한 소피아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는 전원형 과학 비즈니스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하동은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바이오, 특히 그린 바이오테크(green biotech) 연구단지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농산물 공동브랜드:하동에는 많은 농작물 브랜드가 있다. 하동 녹차와 악양 대봉감을 비롯하여 딸기, 배, 매실, 밤, 재첩, 쌀, 한우 등 많다. 하옹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도 있지만 하옹촌은 농작물뿐만 아니라 축제나 이벤트 같은 다른 경우에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농작물 브랜드를 만들어 엄격한 기준하에 통과된 농작물에 대해서만 새 브랜드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 브랜드 이름으로는 하동춘추, 하동드림이면 어떨까.
 
④홍보 분야

홈커밍데이 행사:
하동 출신으로 외지에서 사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어느 하루 하동에 오도록 하는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 행사를 열 필요가 있다. 하동의 변한 모습과 하동의 미래 비전을 보여줌으로써 소속감을 부여하고 이들이 외부에서 하동 홍보대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하동에 기부를 할 수도 있고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는 홈커밍데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 하동의 메디치(Medici)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관련 지자체와의 교류:하동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알리는 방법으로 하동과 관련 있는 지자체와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성은 차 재배 관점에서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동반자이기도 하다. 또 최근 들어 강릉은 커피 도시로 급부상했는데 커피나무 재배는 물론 원두커피 전문점도 200개나 된다. 퇴계 이황이 주도하는 안동 유교는 남명 조식이 주도하는 하동 유교와는 또 다르다. 하동은 보성, 강릉, 안동과 정기적인 세미나, 인적 교류를 통해 하동다움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⑤인력 분야
주민 교육 프로그램:하동다움을 가꾸고 외부인에게 알리려면 하동다움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물론이고 이를 강화시켜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하동다움을 스스로 만드는 주체인 하동 사람 자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동군민이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외부인에게 어떤 서비스를 해주는지에 따라 하동다움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몸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웨트웨어(wetware)다. 형식적인 획일화된 교육이 아니라 문화, 환경, 공연, 음식 같은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군민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보헤미안(bohemian)지수라는 말이 있다. 특정 지역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데 보헤미안지수가 높을수록 그 지역의 창조성이 높고 그로 인해 그 지역이 활성화된다. 하동은 문화가 강한 지역이 되기 위해 ‘문화강군’을 추구하고 있다. 2009년에는 슬로시티 인증도 받았다. IT 혁명으로 대변되는 속도혁명의 반작용으로 슬로운동이 확산되는 시기, 웰빙 추세에 힘입어 슬로운동은 단순한 반작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거대한 추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점에서 하동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다. 

하동주민들의 여유롭고 행복한 삶의 가치 및 이를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의 발전은 앞으로 많은 외지인을 하동으로 불러모을 것이다. 또 갈사만 등 산업 측면의 발전을 도모하는 좋은 기회들은 하동이 ‘작고’ ‘조용한’ 도시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면면히 흐르는 하동의 문화전통과 라이프스타일이 스며든 자랑스러운 문화를 끄집어내고 주민의 삶에 체화된 하동다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하리의 창으로 본 경남 하동군 
자신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 외부인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으로 나누어 세상을 설명하는 프레임이 있다. 이른바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자아가 어떤 상태인지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이다. 조하리의 창 이론은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엄(Harry Ingham)이라는 두 심리학자가 개발했는데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조하리 이름이 지어졌다. 조하리의 창은 크게 4가지의 창으로 이뤄진다.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아는 ‘열린 창’, 자신은 모르지만 타인은 아는 ‘보이지 않는 창’, 자신은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숨겨진 창’, 자신도 타인도 모르는 ‘미지의 창’이다. 이 조하리의 창을 하동에 적용해볼 수 있다.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아는 부분인 A 영역에는 산, 강, 들판, 바다 같은 좋은 자연환경, 슬로 생활이 있다. 자신은 모르고 타인은 아는 B 영역에는 하동이 전통도시라는 점이 포함될 수 있다. 하동은 유교 분위기가 그다지 강한 곳이 아닌데 외부인은 안동 같은 전통 유교도시로 많이 알고 있다. 하동을 잘 모르는 수도권 지역 주민은 하동과 안동을 많이 혼동하고 있었다. 경제적 부가가치로 보면 하동은 상업, 관광업 등 서비스 비중이 높은데 외부인들은 하동을 농업에 치중하는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자신은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C 영역에는 다양성과 개방성이 있다. 하동 주민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각은 다르다. 하동 주민들이 폐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하리 창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다.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아는 부분인 A 영역이 넓을수록 좋다. 긍정적인 요소는 지속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확장하고 부정적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하동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신은 알지만 타인이 모르는 부분인 C 영역을 줄이는 일이다. 자신만 아는 비밀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지자체 브랜드 발전에는 독()이 되는 일이다. 여러 홍보채널을 통해 이 부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 김민주 김민주 |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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