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화시대와 그 적들

74호 (2011년 2월 Issue 1)

 
2011년은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변화가 지난 10년간보다 더 클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여러 학문과 산업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융복합화 현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10년간의 변화를 이끈 키워드는 글로벌화, 디지털화, 네트워크화, 지식정보화 등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연속적이고 일차원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반해 융복합화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연변이를 만드는 비연속적·다차원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핵융합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융복합화는 개별 분야에서 축적된 변화의 에너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폭발시킨다. 기술 분야에서 시작된 융복합화는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끼리는 물론 제품과 서비스 간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산업 간 융복합화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가치사슬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융복합화 시대의 혁명적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지금껏 당연시하던 기본 전제를 뼈대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융복합화 시대에는 돈과 시간을 쓰는 소비자의 행태가 바뀌고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기업의 사업모델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종업원의 역할도, 일하는 방식도 과거와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는 조직의 모습과 경영의 방법까지 바꿔놓을 것이다.
 
융복합화 시대에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도 달라진다. 변화의 방향이나 크기가 예측 가능한 시대에는 대규모의 조직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의 이점을 이용하며 경쟁우위를 차지했다. 융복합화 시대에는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분야 간의 벽이 허물어진 융복합화 시대에 어느 기업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외부의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또한 새로운 경쟁과 협력의 룰이 나타날 것이다. 과거의 개별 기업 간 경쟁은 기업군 간 경쟁과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으로 바뀐다. 누가 더 협력시스템을 잘 구축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휴대전화 회사들은 단말기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지만, 이제는 경쟁의 장이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기업생태계 간의 경쟁과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협력의 기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는 기업생태계의 과제이자 학계나 연구계에도 새 화두다. 경영학은 다른 학문과 독립돼 존재하는 개별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인접 학문의 성과를 수용하고 다른 학문과 동반 성장하는 플랫폼 학문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융복합화의 시대에는 정부 정책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 정책은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달라져야 한다. 환경 변화를 사전에 예측해 규정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기본 방향과 원칙을 정하고 이 틀 내에서 책임자가 재량권을 갖고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제 어느 누구도 마스터마인드를 갖고 미래 산업을 설계할 수 없다. 개별 산업 중심의 정책도 큰 의미가 없다. 전통적인 기능별 부처는 통폐합돼야 하고 산업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과감히 벽을 허물어줘야 한다. 앞으로 정부의 기본적 역할은 다양한 기업이나 개인이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나 플랫폼을 구축해주거나 구축을 돕는 데 있어야 한다.
 
융복합화 시대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게임의 룰을 갖고 기존 강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산업의 경쟁력을 갖고 있고 이러한 개별 산업의 경쟁력을 융복합화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스스로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열린 마음만이 열린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다.
 
 
곽수근 한국경영학회장·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sukeun@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 예금보험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경영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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