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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버스(Foodiverse)

혀끝 넘어 경험경제 구축하는 ‘푸드 투어’

강보라 | 372호 (2023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음식을 주제로 여행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과 여행지에서의 미식을 자랑하는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음식이 여행의 핵심이 되며 ‘음식 관광’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음식 관광에서 관광객들이 누릴 수 있는 음식 경험의 영역은 맛과 친숙성을 축으로 구별 가능하지만 각 음식 경험은 한 가지 영역에 고정된 게 아니라 경험의 반복, 유행 등을 통해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경험경제의 관점에서 음식 관광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입체적인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 소비자 개인이 경험한 바가 모여 하나의 네트워크로 형성될 때 음식 경험이 주는 가치도 진화할 수 있다.



최근 음식 예능의 경향은 ‘세계 속의 한식’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은 프로그램에선 줄곧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는 모습을 비중 있게 다뤄왔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먹으며 여러 반응을 쏟아낸다. 이와 조금 다르게 2023년 봄에 방송을 시작한 ‘서진이네’ ‘한국인의 식판’ ‘장사천재 백사장’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외국 각지에 나가 한식을 선보인다. 현지의 제반 사항이나 특성이 한국과 다르다 보니 여러 변수가 발생하지만 결과적으로 한식이 외국에서 수용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음식을 소재로 국경을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길 위의 셰프들(Street Food)’은 아시아 및 중남미 각지와 미국 등의 길거리 음식을 찾아다니고, ‘더 셰프 쇼(The Chef Show)’와 ‘어글리 딜리셔스(Ugly Delicious)’에서는 전문 셰프들이 미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과 커뮤니티의 음식을 발굴한다. 지금까지 6번의 시리즈가 제작된 ‘필이 좋은 여행, 한 입만(Somebody Feed Phil)’은 방송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진행자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뒤섞여 음식을 맛본다. 이들 프로그램 모두 이곳저곳을 호기롭게 들여다보는 여행자의 시각을 유지한 채 모니터 너머에 있을 누군가의 허기를 자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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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러 떠나는 여행

음식의 문화적 월경(越境)은 비단 방송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여행 또는 관광에서 음식은 줄곧 중요한 요소로 기능해왔다.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문화와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매개이자 ‘먹는다’는 행위의 보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여행의 일부로서 음식이 아니라 음식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되는 ‘음식 관광(food tourism)’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적지나 박물관과 같은 관광 명소만큼이나 여행지의 음식과 식문화가 여행객들의 감각을 사로잡은 결과다.

실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여행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음식 관광과 같은 현대사회의 여행 형태가 과거에 비해 훨씬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행위로 이행했다고 본다. 그에 따라 관광에서 행동의 유형보다 경험의 질이 점차 중요해졌고 음식처럼 관광 경험의 깊이를 추구하는 문화적 대상이 함께 부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20세기 말부터 꾸준히 발달한 레저 산업, 소비자 문화, 기술적 혁신이 관광과 함께 맞물리면서 소비자 개개인이 관광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기 시작한 것도 음식 관광과 같은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 같은 흐름 내에서 세계음식여행협회(World Food Travel Association, 이하 WFTA)는 2001년 음식 관광에 대한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음식 관광을 “먼 곳 혹은 가까운 곳에서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음식 경험을 추구하고 즐기는 것”으로 정의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음식 관광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으나 음식을 관광의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 짓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WFTA는 2010년대 들어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되는 가운데 음식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확산하면서 음식 관광이 산업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음식과 관련된 전통, 재료, 조리법, 기술과 도구 등 음식을 즐기는 방식을 포함한 여행지의 음식 문화가 여러 채널의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는 설명이다. 그 여파로 최근 몇 년간 WFTA와 유사한 형태의 국제협회가 생겼고 각 지역의 음식 자원을 발굴하고 이 자원이 갖는 시장 가치와 잠재력을 가늠하는 시도 또한 함께 늘어났다.

음식 경험의 영역 넘나들기

여행에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음식 관광이라고 하면 미식가들이 값비싼 음식을 탐닉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근래에는 비단 고급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독특하고 가치 있는 기억을 안겨주는 음식 경험이라면 어떤 형태가 됐든 음식 관광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제음식관광협회(The International Culinary Tourism Association, 이하 ICTA)에 따르면 음식 관광은 문화 관광의 일부로 이해돼야 한다. 음식에 대한 연구,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새롭게 발견하고 즐기는 과정으로서 음식 관광은 음식이 단순한 끼니를 넘어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지역의 관점에서도 현지 음식 산업의 수익을 증대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등 경제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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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음식 관광은 크게 푸드 투어, 쿠킹 클래스, 와인 테이스팅, 브루어리 투어, 시장 투어, 산지 방문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음식 관광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푸드 투어와 쿠킹 클래스라 할 수 있는데 관광의 성격에 따라 푸드 투어 안에 산지 방문이 포함되거나 쿠킹 클래스가 시장 투어와 결합될 수도 있다. 그만큼 음식 관광의 유형이 명확히 구분된다기보다 음식 관광의 설계 과정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조합 가능한 것으로 존재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쿠킹 클래스에 비해 관광의 성격에 조금 더 부합하는 푸드 투어는 이국적이고 민속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푸드 투어에서 음식은 그 자체로 주제이자 매개인 동시에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존재 양식을 탐구하면서 일상과 구별된 특별한 맥락에서 차이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현대 관광에서 중요시되는 경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푸드 투어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우선 경험 차원에서 음식이 다층적인 의미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음식 경험은 네 가지 축에 의해 네 가지의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가로축의 기준으로 개인에게 어떤 음식은 ‘먹을 수 있는/맛있는’ 것이거나 반대로 ‘먹을 수 없는/맛없는’ 것이 된다. 세로축을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음식은 개인에게 ‘이국적인’ 것이거나 ‘친숙한’ 무언가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이 도식은 음식 경험의 고정불변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경험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처음 맛본 음식이 이국적이고 맛없는 경험을 선사했더라도 경험의 반복 등을 통해 친숙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경험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아울러 음식 경험은 개별적인 입맛이나 맛에 대한 탐색 욕구, 음식 자체에 대한 열망과 같은 개인적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질 뿐 아니라 좀 더 넓은 지역적 차원이나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음식 경험의 유동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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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 경험이 되는 미식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 경험을 통한 경제적 가치를 모색하는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관점에서도 푸드 투어와 같은 특정한 형태의 음식 경험은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 ‘경험경제 유럽센터(The European Centre for the Experience Economy)’를 이끌고 있는 알버트 보스윅과 동료들에 따르면 경험경제 내에서 경험이 나름의 의미를 획득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 감각에 대한 고도의 집중이 있을 것

•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움직이는 경험이 있을 것

• 날것의, 진짜라는 느낌을 줄 것

• 놀이처럼 즐거울 것

• 상황이 충분히 통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것

• 도전 정신과 능력치 간의 균형을 맞출 것

푸드 투어는 앞서 살펴본 ‘음식 경험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충분히 경험 경제의 요건에도 부합할 가능성이 있다. 푸드 투어의 요체가 음식을 통해 기존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유사한 경험에 대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추동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던 푸드 투어를 반추해 보더라도 비슷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2015년 스페인 빌바오, 2018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각각 자전거 푸드 투어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구겐하임미술관 외에도 복합 문화 공간 아즈쿠나센터(Azkuna Zentroa), 바스크 정부 보건부(Edificio Sede De Osakidetza), 에스칼두나 국제회의장 겸 음악당(Palacio de Congresos y de la Musica Euskalduna)과 같은 건축물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였던 빌바오를 흥미로운 건축 도시로 만들기 충분했는데 빌바오의 푸드 투어도 건축물과 음식 문화 간의 조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전거로 4시간 남짓 도시를 구경하면서 골목 곳곳에 숨은 바스크식 스낵인 핀초스(pintxos)를 맛보는 가운데 도시의 정취에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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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의 고급 상업지구인 폴란코(Polanco)에서 시작된 자전거 푸드 투어는 자연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지역을 둘러볼 수 있게끔 설계됐다. 투어 중 도시 안의 유명 타케리아(taquería, 타코 식당) 여러 곳에 들러 식당의 역사와 조리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대표 메뉴를 맛보는 시간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면적이 넓고 수도라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었던 만큼 특색 있는 음식과 함께 도시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푸드 투어에 참여하면서 개인 소비자의 관점에서 푸드 투어가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음식 경험에 입체성을 덧입힌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낯설고 이국적인 것을 자연스러운 일상의 맥락에서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얼마든 다시 맛보고 싶은 친숙한 음식이 될 수 있다. 또한 푸드 투어는 음식을 개인 차원의 경험에 머물도록 놔두지 않는다. 투어 가이드, 현지인, 투어 참가자들이 함께 음식, 도시 공간과 문화를 만끽하면서 집단적인 경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트립어드바이저나 에어비앤비를 살펴보더라도 한국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푸드 투어가 눈에 띈다. 광장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동대문시장 등 서울의 대표적인 시장을 둘러보며 음식을 맛보거나 호떡이나 떡볶이 같은 길거리 음식을 선보인다. 한옥에서 막걸리와 같은 전통 술을 시음하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다. 비건 여행자들을 위한 비건 레스토랑 및 카페 투어도 잠재적인 시장성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비건 인구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메뉴 선택에 큰 혼란을 겪지 않고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행자들을 위한 두 대표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한국에서의 푸드 투어는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지만 전주나 부산 등 서울과는 다른 매력들이 많은 도시에서도 그곳만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역 고유의 문화와 사람들을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접하고 싶어 하는 수요층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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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OECD와 한국 정부가 함께 발간한 보고서 ‘음식과 관광 경험(Food and the Tourism Experience)’은 한걸음 더 나아가 푸드 투어와 같은 음식 관광이 개인 소비자의 경험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제언한다. 일례로 보고서는 음식 관광의 발전 방향을 논하며 음식과 지역 문화의 결합을 뜻하는 일종의 ‘푸드스케이프(foodscape)’를 형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개별적인 음식 경험이 어떻게 조합돼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보는 것이다.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험의 개념이 개개인으로 분화된 것에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경험의 가치가 한데 모여 네트워크를 이룰 때 비로소 경험의 의미뿐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도 진일보할 수 있다. 실제 경험이 생산하는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절정경험이나 경험경제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좀 더 집합적인 차원에서 공동 창작 또는 공동체와 같은 형태로 경험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음식은 가장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이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매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한 음식은 먹는다는 가장 보편적인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지역별, 문화권별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는 특수성을 띠기도 한다. 이처럼 양가적이고 유동적인 음식의 경험적 특성은 경험경제의 관점에서 음식 관광이 내포하는 가능성을 키운다. 혀끝에서 시작된 작은 경험을 전방위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면 음식은 얼마든지 관광의 모든 요소를 포섭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강보라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필자는 미디어문화연구자다. 맛있는 걸 먹기만 해서는 치솟는 엥겔지수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겨 음식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디지털 미디어 소비와 젠더』 『AI와 더불어 살기』 등을 함께 썼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간하는 『한류백서』에서 ‘음식한류’를 2019년부터 지금까지 담당하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다.
    b-hind@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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