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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동원의 신사업 확장 ‘체인 이노베이션’ 전략

참치 캔 연구하다 배터리 캔 시장 진출
본업 파고들며 ‘혁신의 사슬’을 엮다

염희진,박영렬 | 371호 (2023년 0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동원이 본업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사업을 확장해 ‘체인 이노베이션(Chain innovation)’을 이룬 배경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본업을 파고들어 혁신의 고리를 찾아냈다. 포장재 사업에 필요한 알루미늄에 주목해 관련 기술을 연구하다 보니 이차전지 양극 박과 셀 파우치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참치 캔 제조 기술을 확장하다 원통형 배터리 캔 시장에 진출했다.

2. 인수합병은 큰 그림을 맞추기 위한 퍼즐 조각을 찾는 과정이었다. 단순한 몸집 키우기가 아닌 신사업의 밑그림을 먼저 그린 후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회사를 집요하게 찾아 나섰다. 가격보다 사업의 본질,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집중해 인수합병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3. 기업 인수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 피인수기업의 임직원을 동원의 지붕 아래 포용하고 융합하는 ‘그로스 투게더(Growth Together) 문화’를 통해 인수합병 후 조직 문화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원이라는 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참치다. 바다를 누비며 참치를 잡던 김재철 명예회장은 1969년 4월 자본금 1000만 원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이후 동원은 1982년 국내 최초로 참치 통조림 제품인 ‘동원참치’를 출시하며 종합 식품회사로 발돋움했다. 동원참치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내 시장점유율 80%가 넘는 장수 브랜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50년간 동원은 1차 산업인 수산업에서 시작해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으로 끊임없이 업(業)을 확장했다. 그 결과 수산, 식품, 포장재, 물류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또 세계 최대 참치 캔 브랜드 스타키스트(Starkist)를 비롯해 베트남 포장재 회사(TTP), 아프리카 세네갈 수산 캔 회사(SNCDS) 등을 계열사로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동원그룹의 전체 매출은 창사 이래 최대(9조263억 원)를 기록했다.

동원은 반세기 넘게 일군 사업군을 바탕으로 또 한번 도약의 닻을 올린다. 참치를 잡던 동원산업은 ‘잡는 어업’에 이어 ‘기르는 어업’에 도전한다. 참치를 이을 수산물을 연어로 정하고 강원 양양군에 스마트 연어 양식 단지를 조성한다. 종합 물류 계열사인 동원로엑스는 100% 무인 자동화 기술로 이뤄진 스마트 항만 사업을 미래 사업으로 낙점했다. 현재 부산항 신항에 스마트 항만을 구축 중이며 올해 하반기 개장이 목표다. 참치 캔과 각종 포장재를 만들던 동원시스템즈는 이차전지 양극 박 소재 사업을 통해 첨단 소재 전문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차전지 소재, 연어 양식, 스마트 항만 등 동원이 선택한 미래 먹거리의 공통점은 본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동원은 이러한 과정을 ‘체인 이노베이션(Chain innovation)’이라 명명하고 신사업 확장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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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이노베이션은 본업을 파고들어 혁신 고리를 발견하고, 이를 마치 사슬 엮듯이 미래 신사업과 연결 짓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원은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기술이나 역량이 보이면 관련 기업을 발굴해 인수합병하고 동원의 DNA를 이식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동원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체인 이노베이션을 통한 성장을 일궜는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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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이노베이션’ 사례 분석

1. 포장재 만들다 뛰어든 알루미늄박 사업

서울 서초구 마방로의 동원 본사 3층에는 종합 포장재 회사 동원시스템즈의 이차전지 연구개발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연구진 40여 명이 이차전지 소재 테스트부터 제품 개발, 시제품 생산까지 맡고 있다. 경영진은 작년까지 사무 공간으로 쓰였던 이곳을 이차전지의 첨단 연구 기지로 개조했다. 조점근 동원시스템즈 이차전지 부문 대표이사는 “강남에 위치한 연구 시설로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기업 사활을 걸고 이차전지 소재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고 말했다.

동원시스템즈는 이제 막 뛰어든 이차전지 사업 매출을 2030년까지 1조4000억 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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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 소재 분야의 ‘게임체인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원시스템즈는 참치 캔을 비롯해 과자와 음식을 담는 연포장재 등을 주로 만드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가 어떻게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를 꿈꾸게 됐을까. 동원의 체인 이노베이션은 본업인 포장재 사업에서 알루미늄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시작됐다. 조 대표의 설명을 토대로 동원시스템즈가 포장재 회사에서 첨단 소재 전문 기업으로 혁신한 과정을 재구성했다. 조 대표는 1977년 동원시스템즈의 전신인 오리온광학에 입사해 현재 이차전지 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만들던 동원시스템즈가 포장용기 사업에 뛰어든 건 1991년. 잘 팔리는 참치와 양반김의 포장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자체 생산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첫 작품인 양반김 트레이를 시작으로 동원은 1996년 과자와 식품을 담는 연포장재 사업까지 뛰어들었다. 여러 작은 포장재 공장을 인수한 동원은 생산성과 품질을 높여 2006년 다국적 식품 기업인 네슬레와 판매 계약도 체결했다. 국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포장재 사업은 나날이 성장했다. 동시에 다음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식품 포장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알루미늄의 가능성 발견

그때부터 조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인스턴트 식품의 포장재인 레토르트 파우치였다.1

레토로트 파우치의 핵심 기술은 여러 겹의 소재를 매끄럽게 접착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플라스틱 필름과 얇게 펼친 알루미늄박을 미세한 틈 없이 붙여야 한다. 그래야 산소의 투과 및 투습을 막고 장기간 내용물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동원은 이 접착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레토르트 파우치를 연구하고 만들다 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파우치를 구성하는 5층 구조에 반드시 들어가는 소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루미늄이었다. 앞으로 간편 조리식과 펫 푸드 시장이 점점 커지면 이를 담는 레토르트 파우치와 함께 알루미늄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알루미늄의 가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산업계에서는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LG화학과 삼성SDI도 이차전지 사업을 이제 막 검토하던 시기였다. 이차전지 시장이 커지면 핵심 소재인 알루미늄 수요가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신의 한 수’ 대한은박지 인수

2011년 말 인수합병 시장에 대한은박지가 매물로 나왔다. 197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요리할 때 쓰이는 쿠킹 포일로 유명했다. 이 회사는 2007년 내부 사정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지며 2009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한은박지는 은박지뿐만 아니라 알루미늄박2 가공 기술을 보유한 알짜 회사였다. 사세가 기울기 전부터 충남 아산에 최신 공장을 짓고 광폭으로 알루미늄을 찍어낼 수 있는 생산설비를 도입했다. 그만큼 기술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이었다. 동원에는 기회였다. 알루미늄박은 레토르트 파우치와 이차전지에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 소재다. 이 회사를 인수하면 두 시장에 모두 진입하는 열쇠를 얻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2012년 대한은박지 인수 후 이차전지용 소재 분야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선 인수를 반대했던 대한은박지 직원을 하나의 조직으로 융합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오랫동안 이차전지용 양극 박3 을 만들어온 중소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후발 주자로서 동원은 어떤 전략을 펼칠지 고민이 컸다. 가격 경쟁을 벌이거나, 차별화된 기술을 내세우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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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 코팅, 초고강도로 차별화

그때 떠오른 게 연포장재를 만들면서 쌓아온 코팅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알루미늄에 물질을 덧입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 때마침 국내 모 업체로부터 알루미늄에 카본이라는 물질을 코팅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 대표의 표현처럼 동원에서는 “매일 밥 먹고 하던 (일상적인) 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2016년 첫선을 보인 동원의 ‘카본 코팅’ 알루미늄박이 들어간 이차전지는 애플과 페라리에 납품을 시작했다.

동원은 지난해 또 다른 차별화 기술인 초고강도4 알루미늄박 개발에도 성공했다. 초고강도 알루미늄박을 적용하면 배터리 용량이 늘어날 때 생기는 균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전기차 업계의 니즈와도 맞아떨어졌다. 배터리 성능을 높이려면 양극재와 음극재를 더욱 밀도 있게 주입해 패키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휘거나 끊어지지 않는 알루미늄박의 강도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동원은 최근 독일 아켄바흐사로부터 총 351억 원 규모의 최첨단 압연 설비를 추가 도입해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대비하기로 했다.

2. 참치 캔 만들다 이차전지 배터리 캔 진출


1.1982년_출시_당시_동원참치


원어(原漁) 그대로 참치를 해외에 수출하던 동원은 1982년 국내 최초로 통조림용 참치 캔인 ‘동원참치’를 출시했다. 참치가 어떤 생선인지도 잘 모르던 시기였다. 동원은 우수한 품질과 공격적 마케팅을 내세우며 이듬해 600만여 캔을 판매했다. 그야말로 돌풍이었다. 참치에 이어 꽁치까지 통조림 수요가 늘자 동원은 1988년 직접 참치 캔을 생산하기로 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원터치 뚜껑까지 국산화에 성공하며 동원은 스틸 캔 분야에서 독보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알루미늄 캔에 눈 뜨다

동원은 2010년 이후부터 수산, 식품에 이어 포장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웠다. 대한은박지(2012년), 한진피앤씨(2014년)에 이어 2014년 2500억 원을 들여 테크팩솔루션을 인수했다. 테크팩솔루션은 유리병, 캔, 페트(PET) 등 거의 모든 포장 용기를 생산하는 국내 1위 업체다. 테크팩솔루션의 인수합병을 통해 동원은 포장재 사업의 몸집을 키우고 종합 포장재 회사로 거듭났다. 당시 동원은 스틸 캔을 1분에 2000개씩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는데 알루미늄 캔 2위 기업인 테크팩 인수를 통해 스틸 캔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캔도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테크팩솔루션 인수는 음료 캔 만들던 회사가 이차전지 필수 부품인 배터리 캔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여러 소재의 캔을 빠르게 만들 수 있으니 이 기술을 배터리 캔에도 적용하는 건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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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케이씨 인수로 배터리 캔 시장 진출

기술은 확보됐는데 시간이 문제였다. 캔 제조 기술을 보유했더라도 배터리 캔 시장에 진입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배터리 기술의 경우 수년간 승인 절차가 필요하고 생산 인프라를 짓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동원은 배터리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고자 또 한 번 인수합병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0년 이후부터 전기차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차전지 관련 기술을 보유한 영세 업체도 함께 주목받았다. 이때 발견한 회사가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업체 엠케이씨(MKC)였다.

2002년 설립된 엠케이씨는 원통형 배터리 캔을 전문으로 생산해온 업체다. 금형 설계부터 드로잉과 프레스, 표면 처리까지 배터리 캔의 모든 공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생산 인프라가 열악했다. 경북 칠곡의 공장을 경영진이 찾았을 때 직원으로 고용된 마을 주민들은 배터리 캔을 플라스틱 소쿠리에 쓸어 담고 있었다. 이처럼 비록 생산설비는 열악했지만 동원의 참치 캔 제작 기술과 엠케이씨의 배터리 캔 생산 공정을 접목하면 시너지를 낼 것으로 판단했다. 동원은 엠케이씨의 창업주를 설득해 2021년, 인수에 성공했다.

원통형 이어 셀 파우치도 도전

동원은 인수 이듬해인 지난해, 경북 칠곡 공장에서 기존보다 에너지 용량을 늘린 2170 규격(지름 21㎜, 높이 70㎜) 원통형 배터리 캔을 양산했다. 이어 충남 아산에 신공장을 증설해 4680 규격(지름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 캔 생산 설비를 도입하기로 했다. 4680 배터리는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채택하기로 하면서 업체 간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동원은 현재 이차전지의 또 다른 형태인 셀 파우치5 개발도 진행 중이다. 레토르트 파우치를 만들던 기술을 이차전지 셀 파우치에 적용해 이 시장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조점근 대표는 “셀 파우치의 핵심은 재료가 되는 알루미늄 필름의 품질이다. 현재 전 세계 셀 파우치용 알루미늄 필름 시장은 일본 회사가 독점하고 있지만 동원은 고가 장비를 확보한 데다 기술력까지 갖춰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체인 이노베이션 실천 전략

1. 미래 사업의 퍼즐 맞추는 인수합병

동원이 본업을 파고들어 혁신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새로운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던 무기는 인수합병이었다. 동원그룹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외형을 키웠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20여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회사를 인수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미국 최대 참치 기업 스타키스트 인수(2008년)를 비롯해 유제품 사업 진출의 발판이 된 디엠푸드(2005년)와 해태유업(2006년) 인수, 수산에 이어 축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금천(2015년)과 세중(2021년) 인수, 포장재 경쟁력 강화와 이차전지 신사업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준 대한은박지(2012년), 한진피앤씨(2014년), 테크팩솔루션(2014년) 인수, 물류 사업 확장을 위한 동부익스프레스(2017년) 인수 등이 대표 사례다.

업계에서 동원은 비교적 큰 잡음 없이 피인수 기업을 그룹 안으로 동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BR은 지난 20년간 굵직한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며 동원이 쌓아온 전략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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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기준은 명확하게

동원은 올해 초 한국맥도날드 매각을 위한 예비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3개월간 검토 끝에 인수 작업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동원은 국내 맥도날드 독점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는 동원이 맥도날드를 인수하면 “동원참치로 만든 버거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비슷한 시기에 인수를 저울질하던 백신 및 유전체 진단 기술 개발 기업인 보령바이오파마도 협상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맥도날드 인수 철회를 둘러싸고 업계에서는 매각 가격과 로열티에 대한 이견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박문서 동원산업 지주부문 대표는 “가격 때문이라기보단 동원의 인수합병 철학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년간 동원의 굵직한 인수합병을 설계하고 실행해왔다. 그는 “기업을 사는 건 돈만 있으면 가능하다. 사고 난 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동원 품으로 데려와 한 가족처럼 동질화시킬 수 있느냐, 경영의 자율성을 가지고 피인수기업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맥도날드 인수는) 중단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인수합병 과정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했다. 매물 가격을 중요한 기준으로 보거나 외형 불리기만 생각하는 게 아닌 신사업의 밑그림을 그린 후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찾아 나서는 식이다. 그는 인수합병 시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인수기업의 인력, 부동산, 영업망, 브랜드 가치 가운데 동원이 원하는 퍼즐이 있으면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간 사업 분야는 겹치지 않게

동원의 인수합병 기본 원칙은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간 사업 분야가 겹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업 분야가 겹치지 않으면서 현재 사업과도 시너지를 내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국내 최대 포장재 기업 테크팩솔루션은 그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회사였다. 195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유리병, 알루미늄 캔, 페트(PET) 등 세 종류의 음료 포장재를 모두 제조했다. 유리병 제조 및 생산 분야에서는 독보적 1위 기업이다. 국내에서 이런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테크팩솔루션이 유일했다. 동원시스템즈도 포장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 회사와는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동원은 2014년 테크팩솔루션을 인수했다.

동원은 테크팩솔루션이 보유한 페트 제조 기술을 발판 삼아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불리는 무균 충전 음료(아셉틱, Aseptic)6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 무균 충전 음료 시장은 일본에서는 전체 음료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잠재력이 큰 분야다. 반면 국내에서는 일부 브랜드 제조사와 패키징 업체만 진출해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동원시스템즈는 2018년 강원 횡성군에 무균 충전 음료 공장을 설립하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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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은 철저히, 논리는 치밀하게

인수합병에 대한 최종 결정은 오너이자 최대 주주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과 김남정 부회장 몫이었다. 다만 인수합병 후보군을 물색하고 실무 협상을 진행하는 일은 지주회사와 계열사의 전문경영인이 맡아왔다.

이때 전문경영인은 최종 결정을 하는 오너는 물론 배드캅 역할을 하는 옆 부서장의 ‘360도 질문’에 답하면서 설득하고 돌파해야 한다. ‘이 기업을 왜 인수해야 하는지’ ‘인수 후 누가 운영할 것인지’ ‘매물의 가격은 합리적인지’ 등 오너와 경영자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박 대표는 “오너가 인수할 기업을 정하고 지시를 내리면 실무진은 할 일이 없다. 동원에서는 오너가 인수합병 기업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무진은 책임감을 갖고 오너의 끝없는 ‘질문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좋은 가격으로 인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해태유업을 인수했을 때였다. 동원은 고품질 유제품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2005년 덴마크우유를 생산하던 디엠푸드를 인수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6년, 박 대표는 해태유업 추가 인수를 건의했다. 이미 디엠푸드를 인수한 상황에서 유사 기업을 또 인수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마저 강하게 반대했다.

박 대표는 유업계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새로운 설비 투자보다 이미 생산 설비를 확보한 해태유업 인수가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치밀한 논리로 설득한 끝에 동원은 해태유업을 2006년 인수했다. 인수하자마자 동원은 수원과 강진 두 곳에 있는 공장 설비를 교체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 ‘다음 어장’ 신사업 발굴

2017년은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60주년을 맞은 해이다. 당시 동원산업은 국내 원양 업계 1위 기업이었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 해외 어장의 감소 등으로 원양 산업 규모가 과거에 비해 줄고 있었다. 본업 위기의 돌파구로 동원은 ‘수산, 식품, 포장, 물류’를 그룹의 4대 핵심 사업 이정표로 설정했다. “잘나갈 때 다음 어장을준비하라”는 김 명예회장의 평소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물류에서 스마트 항만으로

동원은 앞서 1997년 한일 합작 3자 물류 기업인 ‘레스코’에 참여하면서 물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에는 레스코를 동원으로 흡수 합병한 뒤 ‘로엑스(LOEX)’로 사명을 바꾸며 본격적인 물류 전문 기업으로 거듭났다. 2017년에는 동원이 그동안 성사시킨 인수합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4250억 원에 국내 3위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했다. 기존 3자 물류에 동부익스프레스가 영위하던 항만 물류, 창고 보관 사업, 국제 물류 등으로 사업 분야가 대폭 확대된 것이다. 양적으로는 1조 원대 매출 실현이 가능하게 됐고, 기존 물류 분야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수산 및 식품에 편중된 사업 구조 역시 다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조2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동원의 물류 사업 부문은 또 다른 미래 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부산 신항에서 시작될 ‘스마트 항만 하역 사업’을 점찍었다. 스마트 항만 하역은 컨테이너를 배에서 내리는 하역은 원격 컨트롤로, 이를 다시 야적장으로 옮기는 작업은 완전 무인 자동화로 이뤄진다. 국내 최초의 항만 완전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밤에 완전 소등 상태에서도 하역 작업이 가능한 스마트 항만을 동원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장착한 것이다.

새로운 성장 엔진 양식업

동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선단을 운용하며 글로벌 원양 업계에서 막강한 경쟁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기존의 잡는 어업을 뛰어넘을 혁신이 필요했다. 잡는 어업의 생산량이 정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2022 전 세계 어업 및 양식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90년 8400만 t이던 어획 생산량은 2020년 9000만 t으로, 30년 동안 600만 t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양식업 생산량은 같은 기간 1300만 t에서 8800만 t으로 성장률이 7배에 육박한다. FAO는 앞으로 10년 뒤인 2030년에는 전체 수산물 생산량에서 양식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획 생산량을 앞지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식업의 중요성과 성장세를 예상한 동원은 2020년 국내 최초의 육상 연어 양식 사업에 착수했다. 지속가능한 수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잡는 어업’과 동시에 ‘기르는 어업’이라는 성장 엔진을 추가한 것이다. 동원은 총 2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인 육상 연어 양식 단지 조성을 통해 2026년부터 연간 2만 t의 대서양 연어를 국내 식탁에 올릴 계획이다.

동원의 신사업 발굴 히스토리에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히 나타난다. 왜 동원이 새로운 사업으로 시야를 넓혀야 했는지, 문제의식과 해결 방법이 명확했다. 단지 사업 다각화가 목적이 아니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당면한 새로운 문제를 찾아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연쇄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3. 과감한 지배구조 개편

동원은 효율적인 경영과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과감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두 차례의 경영 구조 개편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통합하고 각 계열사를 전문화하면서 그룹 경쟁력을 높였다.

국내 두 번째로 지주사 도입

첫 번째 지배구조 개편은 외환 위기를 겪은 이후인 2000년대 초반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실제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겨낸 국내 기업들은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효율화까지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지주회사가 흔치 않던 2001년, 동원은 선제적으로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국가적 위기 이후 새롭게 펼쳐지는 경영 환경에 대비해 남들이 주저하던 길을 과감히 결정했다. 이후 금산분리법으로 금융 부문 역시 분리돼 동원금융지주(現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설립됐다.

동원은 앞선 2000년에 계열 분리를 통한 사업 부문별 전문화로 지주사 전환의 모멘텀을 확보했다. 기존 동원산업은 수산업을 담당하는 해양사업부와 식품사업부가 혼재돼 있었으나 2000년 동원F&B로 분사시킨 것이다. 이러한 계열 분리와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동원은 핵심 사업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고, 계열사별로 신뢰성 있는 책임 경영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지배구조의 투명화와 단순화를 통해 전반적인 경영의 질을 향상시켰다. 동원F&B는 분사 직전 5500억 원대 매출에서 2조 원 대(별도 기준) 회사로 거듭났다.

스피드 경영 위해 지주사 통합

동원은 지난해 말 다시 한번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코로나19,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기업 환경의 패러다임이 급변하자 내부적으로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동원그룹은 첫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수평 다각화 형태의 사업 영역 확대를 추구해왔다. 하지만 2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동원산업 산하에 스타키스트(2008년), 동부익스프레스(2017년) 등 우량 자회사가 편입됐고 지배 구조가 수직화되면서 손자회사와 증손회사까지 세부 조율하는 데 비효율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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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은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고 미래 신사업 투자에 힘을 싣기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사실상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해왔던 동원산업과 순수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합병했고, 새로운 사업 지주회사인 동원산업을 중심축으로 하는 수평적인 지배 구조로 재편했다. 지주사 합병을 통해 동원그룹은 신사업 투자를 빠르고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고, 계열사 매출을 통해 미래 먹거리에 투자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동원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 동원산업을 발판 삼아 이차전지 소재, 스마트 항만, 축산물 유통 등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체인 이노베이션의 완성, 조직 문화

실패는 ‘갑질’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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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동원의 스타키스트 인수 당시, 그룹 경영을 총괄하던 김재철 명예회장은 인수 후 남태평양에 있는 사모아 공장을 찾았다. 사모아 공장은 선장 시절 ‘캡틴 킴’이라 불렸던 김 명예회장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1960년대 스타키스트가 사모아 섬에 참치 캔 공장을 준공했을 때 참치 원어를 납품했던 사람이 바로 김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식품 품질은 직원의 손톱 끝에서 나온다”며 인수하자마자 직원 사기부터 챙겼다. 미국 본사와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공장 직원의 임금 현실화를 추진하고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지시했다. 여러 노력 끝에 수년간 적자를 기록했던 스타키스트는 동원이 인수한 지 반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단순히 회사를 합치는 물리적 결합만으로 인수합병 시너지는 나오지 않는다. 물리적 결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학적 결합이다. 동원시스템즈는 알루미늄의 가능성에 주목해 2012년 대한은박지를 인수했지만 이후 과정은 험난했다. 인수와 함께 대한은박지의 경영을 책임진 조점근 대표는 대한은박지 아산 공장을 찾았다가 인수 반대 시위에 부딪혔다. 당시 회사 노조는 동원과 매각 대금, 고용 보장 문제 등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인수 반대 파업을 두 달간 벌였다.

조 대표는 직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매주 수요일 새벽 6시에 아산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머물렀다. 아침 7시부터 공장 직원과 난상토론을 벌이는 자칭 ‘새벽시장’ 회의도 매번 가졌다. 공장에 있는 조 대표의 방에는 사장실 대신 ‘소통의 룸’이란 이름을 붙였다. 대한은박지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경영자가 직원들과 격의 없이 회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도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조 대표는 “인수자가 갑질을 할 때 인수합병은 실패한다. 인수자는 그저 가능성 있는 회사를 찾아 더 큰 회사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으로 흡수하는 ‘그로스 투게더’ 문화

동원그룹은 ‘원칙을 철저히’ ‘작은 것도 소중히’ ‘새로운 것을 과감히’라는 세 가지 행동 강령을 가지고 있다. 또 모든 경영 목표와 성과를 숫자를 통해 관리하는 숫자 경영을 강조한다. 창업주인 김 명예회장도 원칙과 신용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내부 기업 문화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원은 기업을 인수하는 즉시 전사적으로 인사, 총무, IT 시스템을 동원 내부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한편, 피인수기업 직원에 대한 교육에 나선다. 동원그룹의 문화를 설명하고 소속감을 심어주는 이른바 ‘그로스 투게더(Growth Together)’ 교육이다. 다양한 기업과 출신, 사람을 동원이라는 지붕 아래 융합해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박문서 동원산업 지주부문 대표는 “인수합병은 결국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이라며 “우리가 탄탄하고 강하지 못하면 흔들린다. 그러면 외부에서 온 사람까지 흔들릴 수 있다”며 인수 후 통합된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원은 본업에서 발견한 혁신의 고리를 신사업에 적용하는 체인 이노베이션 전략을 자사의 핵심 역량으로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 사업의 퍼즐을 맞추는 인수합병, 신성장 동력 발굴, 지배 구조 개편 등 구체적 실행 전략을 펼쳐왔다. 동원은 이차전지 소재, 연어 양식, 스마트 항만 등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사업에도 체인 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복합적 경영 환경의 위기,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동원이 찾고 있는 ‘다음 어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BR mini box I : 인수합병 성공-실패 사례

사업 확장 원칙은 ‘강한 자보다 빠른 자가 승자’

1. 스타키스트

세계 최대 참치 가공 기업인 스타키스트는 1960년대 초반 원양 어선 선장이던 김재철 명예회장이 남태평양에서 조업한 참치를 납품했던 회사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던 미국 델몬트가 스타키스트 매각을 결정했다. 동원그룹은 델몬트의 수산사업 부문 전체를 인수하는 ‘자산 인수 방식’으로 스타키스트를 3억6300만 달러(당시 약 3800억 원)에 인수했다.

동원의 스타키스트 인수는 여러 가지로 화제였다. 글로벌 식품 기업의 인수합병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는 점도 화제가 된 이유였다. 스타키스트는 현재 미국 참치 캔 브랜드 1위 업체로 미국 시장의 약 50%를 차지하며 미국과 남미 시장 180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수와 동시에 동원은 글로벌 시장 진출은 물론 세계 참치 시장을 석권했다. 동원은 스타키스트 인수 후 공정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해 적자 기업이던 회사를 반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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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천과 세중

2015년 온라인 축산물 유통 기업 금천 인수를 통해 동원은 수산뿐만 아니라 축산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금천미트’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금천은 창업 후 30년간 국내산 한우와 한돈, 수입육 등을 유통한 축산 도매 온라인몰.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다 보니 수백억 원의 매출 규모에 비해 물류와 IT 등의 인프라가 부족했다. 동원은 금천을 인수한 후 상품군을 다양화하고 당일 직배송, 물류 서비스 확대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10여 종에 불과했던 상품군이 80여 종까지 늘었다.

동원은 금천에 이어 2021년 축산물 가공 기업인 세중을 인수했다. 축산업에서 취약했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을 뚫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세중은 원료육을 수입해 가공한 후 유통하는 기업으로 급식업체, 할인점,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B2C 유통 채널을 확보했다. 금천이 가진 유통망과 물류 시스템에 세중의 가공과 유통 노하우를 접목하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 금천과 세중 두 곳을 인수해 동원홈푸드는 축산 부문에서만 지난해 7700억 원을 기록했고 2025년 매출 1조3000억 원을 목표로 세웠다.

3. 성미전자

최근 20년간 20여 건에 이르는 인수합병은 대부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한 사례도 있다. 1995년 인수한 성미전자 이야기다. 1990년대 들어 수산업, 제조업, 금융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동원은 정보통신 분야로 진출을 모색했다. 대기업이 정보통신 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동원은 1995년 7월 유무선 통신장비 전문 생산업체인 성미전자를 인수했다. 이후 1996년 수도권 무선호출사업자로 선정돼 사업권을 확보한 후 같은 해 해피텔레콤을 설립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후발 주자로 참여했던 무선호출기 사업은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휴대전화라는 새로운 기기가 새롭게 등장했다. 성미전자는 결국 사업 3년 만에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 경험을 통해 동원은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사업을 확장할 때 눈앞의 시장을 넘어 4∼5년 후를 내다봐야 한다. 안 되는 사업은 수업료를 치르더라도 과감히 철수해야 한다. 이는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강한 자보다 빠른 자가 이긴다’는 창업주 지론이기도 하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잘나갈 때 다음 어장 준비’… 신기술-신사고 융합의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 명예교수 yrpark@yonsei.ac.kr

동원그룹은 1969년 1차 수산업을 시작으로 2차 식품 제조업, 3차 첨단 소재 및 물류 사업에 이르기까지 혁신을 통한 지속 성장을 하고 있다. 1차 수산업을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식품 가공 산업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3차 첨단 소재 및 물류 사업을 경쟁력 있게 키우고 있다. 그 결과 포장재와 물류 사업의 매출 규모가 수산업을 뛰어넘었고 향후 이차전지 소재 사업, 무인 물류업, 연어 양식 등과 같은 신사업에 주력하고자 한다.

1+2+3=6차 산업을 하는 동원

동원은 세계적 참치 기업으로 각인돼 있지만 창업주인 김재철 명예회장의 표현대로 1차, 2차, 3차 산업을 모두 합한 ‘6차 산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참치 캔을 비롯한 식품의 생산 및 유통에서 축적한 물류 기술과 냉장 및 냉동식품의 콜드체인 시스템을 통해 동원은 물류업으로 진출해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알루미늄 캔과 포장재를 만들어왔던 동원시스템즈는 얇은 박을 만드는 가공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알루미늄 공급망을 확보했기 때문에 알루미늄을 활용한 원통형 배터리 캔 등 이차전지 소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동원은 식품 산업에서 ‘혁신의 히든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창업주가 제31동원호와 제33동원호 2척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해 세계적 수산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동원이 1993년부터 추진해 왔던 전사적 혁신 운동이 마중물이 됐다. 또 지속적 혁신을 위한 구성원의 노력이 동원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았다. 동원은 축적된 핵심 역량을 활용해 신규 사업에 진입했고, 신규 사업에서 축적한 새로운 핵심 역량이 또 다른 신규 사업에 활용되는 ‘혁신의 선순환’을 이뤄내고 있다.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은 파도와 함께 수산업을 정면 돌파했던 경험을 가진 창업주의 ‘잘나갈 때 다음 어장을 준비하라’라는 경영 철학이 기업 내부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1위 참치 캔 기업이 된 동원은 기업의 목표를 글로벌 최고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으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일어나면서 그룹 전체가 혁신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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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신기술과 신사고로 구성”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말했듯이 혁신은 새로운 기술(new technology)과 새로운 사고(new ways of doing things)로 구성돼 있다. 새로운 기술은 투자를 통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혁신을 이루는 것이고, 새로운 사고는 조직의 구성원이 각자의 일에 새롭게 접근해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동원은 1차 산업인 수산업을 통해 어업 및 어선, 냉동 등에 기술적으로 투자해 혁신을 꾸준히 추진했다. 또 글로벌 후발 주자로 투자를 통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수를 추진했고, 인수를 통해 보완적 기술을 습득했다. 즉, 수산업을 확장하면서 축적된 내부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사업에서의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기술을 인수를 통해 확보했다. 내부 기술의 활용과 외부 기술의 탐색이 조화롭게 이뤄지면서 동원은 새로운 사업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인수 후 통합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인수를 통한 보완적 기술의 탐색(exploration)과 습득(acquisition)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원은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08년 세계 최대 참치 캔 회사인 스타키스트(Starkist) 인수는 동원이 인수를 통한 혁신을 가속할 수 있는 기회와 자신감을 갖게 해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혁신 못지않게 동원에서 중요한 혁신의 발판은 새로운 사고다.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전사 차원에서 혁신에 힘쓰고 있다. 1994년 동원은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핵심을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보고 품질 경영 체제 확립을 통한 혁신 운동을 시작했다. 현장 중심, 신속성, 종합적 사고를 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경영 품질 개선 작업을 전사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동원은 외환위기 상황을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지속적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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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을 합쳐 ‘10차 산업’에 도전

구성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야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동원은 ‘6차 산업(1차+2차+3차 산업)’에서 혁신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다. 사실 수산업과 식품업에서 지속적 혁신을 이뤄낸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을 통한 산업의 변화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김재철 명예회장이 ‘6차 산업’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합쳐 이제 동원은 ‘10차 산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최근 주력하고 있는 이차전지 소재 사업, 무인 물류 사업 등이 ‘10차 산업’의 영역에 들어갈 것이다.

복합 위기와 4차 산업혁명의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대전환 시기에는 ‘10차 산업’의 더하기(1차+2차+3차+4차 산업=10차 산업) 접근이 아니라 곱하기(1차X2차X3차X4차=24차 산업)의 신사고를 가져야 한다. 동원은 더 높은 목표와 더 많은 위임(empowerment)을 통해 글로벌 최고의 혁신 기업이 돼야 한다.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최고경영자는 혁신에 대한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위임을 위해 경쟁을 통한 혁신을 조직에 체화시켜야 한다.

최근 지배구조를 개편한 동원은 김남정 부회장의 리더십으로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수산업 및 식품 가공 관련 다각화를 뛰어넘어 제약, 바이오, 푸드테크 등 비관련 다각화(Unrelated diversification)를 검토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다만 식품 가공 산업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성장이 기반이 돼야 한다.

동원은 이제까지 식품 가공 산업에서 이뤄내지 못한 혁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혁신에 대한 에너지, 혁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 혁신이 추구하는 위대함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인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 양성에도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 염희진 | 객원기자
    sal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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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렬 | 연세대 경영대 명예교수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국제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을 거쳐 1995년부터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한국사회과학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혁신의 시간』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가라』 등이 있다.
    yr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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