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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 인터뷰

승진은 메세지다! 실적보다 바람직한 행동에 보상하라

고승연 |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과거 ‘승진’은 조직에 대한 충성과 헌신, 성실한 근속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사람들은 ‘출세’라는 말로 승진을 표현해왔다. 이제 상황이 변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자네도 열심히 해서 승진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것에 맞춰 직원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자기계발을 하면 좋을지, 어떤 미션을 갖고 일했으면 좋을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실적과 성과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기적인 수치로만 평가하면 조직의 장기적 성과가 무너진다. ‘표준화’된 시스템과 운영방식에 집착하기보다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필요하면 ‘깜짝 영입’과 ‘파격 발탁’도 해봐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현승준(가톨릭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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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소개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 멜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컨설턴트, 대기업 임원과 CEO, 공공기관 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중소기업과 벤처, 특히 예비 창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경영의 여러 분야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가장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철학과 방법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바로 인사 분야다. 어떤 인재를 뽑아야 하나,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직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놓고 모든 사람이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누구를 승진시켜야 하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입을 다문다. 실제 승진 인사를 해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민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던 사람을 승진시켰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인격이 훌륭하고 소통이 잘되기로 자타가 공인하던 사람을 승진시켰더니 폭군이 돼 많은 이들이 이직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경영이란 게 정답이 없는 것이지만 인사, 특히 승진 문제만큼 답을 찾기 어려운 것도 없다. 기업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에, 기업이 속한 산업군마다 승진 인사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조직문화에 따라 원하는 리더상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답’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사, 특히 승진은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오답노트’를 가진 경험자로부터 얘기를 들어야 한다. DBR이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를 만난 이유다. 최 대표는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대기업 교육 서비스 분야 이사, 첨단 정보통신 대기업 상무, 콘텐츠 기업 사장, 식품 대기업 사장, 공공기관 사장 등을 지낸, 말 그대로 ‘직업이 임원이자 CEO’였던 인물이다. 젊은 시절 컨설턴트로 일할 때부터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부에 있었고, 이후 본인이 직접 기업경영의 중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실패와 성공을 맛봤다. 다음은 최 대표의 일문일답.

 

1. 승진제도,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기업의 인사에서 승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우선 과거와 달라진 부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1990년대 후반, 즉 흔히 IMF 위기라고 말하는 경제위기를 겪기 전까지 한국인들에게는 직장이 주는 의미, 직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입사를 했고 일을 했다. 인사 운영 역시 그런 문화에 맞춰져 있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도 ‘오래 있을 직원’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경험을 시키고 그렇게 조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면서 경험하고 충성하다 보면 승진이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다시피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오랜 시간 여러 단계의 승진을 거쳐 리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고, 직원들은 그게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그런 그들에게 “열심히 해서 승진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업이 완전히 발상을 바꿔야 한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것에 맞춰 직원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자기계발을 하면 좋을지, 어떤 미션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는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일단 묵묵히 열심히 해라. 내가 나중에 판단하겠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기업도 직원들이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승진을 어떤 미끼처럼 놓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승진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도로 존재해야지 출세의 상징으로 제시하는 건 의미가 없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승진제도라는 말이 흥미롭다.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예전에 임원으로 근무하던 정보통신회사는 후발주자였고 고객접점이 선발주자들에 비해 적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은행과 협력해 이벤트를 만들었다. 수천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서 그 은행의 지점마다 배치해서 가입 유도 행사를 벌였다. 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약간의 재미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지점별 가입현황을 공유했다. 물론 정규직 직원도 아니고 실적을 못 채웠다고 해고될 위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묘한 경쟁을 유발했고 상당히 많은 수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엄청난 열정을 보이면서 자기들끼리 기준 실적을 만들어놓고 미친 듯이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정말 ‘판매의 달인’ ‘설득의 달인’들처럼 보였다. 상상도 못한 실적을 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할당한 실적이 아닌데 자기들 스스로 경쟁의 재미를 느끼고 열정을 뿜어낸 상황이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눈에 띈 몇몇 ‘달인급 알바생’들을 그냥 정규직원으로 채용해버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채용이자 승진이었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이런 실적을 채워야 한다’고 강요했으면 그런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재미와 경쟁의 요소를 만들어줬고,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낼 기회라고 생각한 젊은이들이 일종의 자아실현을 한 셈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맥킨지도 좋은 사례다. 그런 시스템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파트너가 되는 것, 즉 맥킨지에서 승진을 거듭해 리더가 되는 건 ‘출세’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한 방법’이었다는 얘기다.

 

승진이 ‘자아실현의 제도’가 되려면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명확하고 투명한 원칙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맞다. 엄밀하게 말하면 ‘승진의 기준’이라기보다는 ‘평가의 기준’이 투명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 회사가 기대하는 역할과 행동, 이런 것이 잘 정립돼 있어야 한다. 조직 입장에서 승진이란 원칙적으로는 그 조직이 사람에 대해 어떤 철학과 관점을 갖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이자 제도다.

예를 들어 보자. 신사업을 시작했을 때 어떤 사람을 승진시켜놓고 짧은 기간 내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바로 페널티를 주거나 임원 승진자의 경우 바로 다음에 퇴임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그럼 당사자도 충격을 받지만 조직도 망가진다. 이런 승진과 페널티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섣불리 저렇게 시도했다가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집에 가야 하는 구나’라는 메시지다. 이러면 그 누구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의욕을 갖지 않고 조용히 살다 조용히 승진해서 조용히 오래 있는 게 최선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래서 ‘실적’과 ‘성과’를 구분해서 사고하고 이걸 중심으로 승진제도를 운영하는 게 좋다.

 

성과와 실적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 신선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실적은 말 그대로 수치로 나오는 결과다. 매출액을 얼마나 올렸느냐,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높였느냐, 이익은 얼마나 냈느냐 등을 말한다. 기업들이 보통 승진의 기초가 되는 여러 평가 기준을 여기에 많이 맞춰 놓는다. 물론 ‘똑 떨어지는’ 숫자로 나오기에 매우 객관적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승진을 위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성과’라는 개념으로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과란 ‘회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과 의사결정을 얼마나 했는가’로 평가하는 것이다. 성과를 제대로 내고 있더라도, 혹은 ‘성과를 위한 행위’를 하고 있더라도 실적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성과가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의하는 이 ‘성과’가 수치로 나타나는 ‘실적’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성과를 더 높이 평가해서 승진에 반영해야 한다. 주어진 역할에 맞춰 열심히 실적만 맞추는 게 아니라 바람직한 행동을 했는지, 회사의 철학과 맞는 행동을 했는지, 제대로 동료와 후배들을 가르치고 도왔는지를 다 봐야 한다. 실적 위주로 승진이나 인사제도를 운영하다 보면 유통업계에서는 ‘밀어내기’가 나타나고 제조업에서는 ‘협력사에 대한 갑질’이 나타나게 된다. 또 실적 위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승진해서도 아랫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기 실적의 도구로 삼아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기업은 망가진다. 단기적으로 실적은 올라가지만 장기적으로 성과는 나빠진다. 아까 ‘승진은 메시지다’라고 했는데 직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줘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말씀하신 대로 성과와 실적을 구분해 승진에 반영해본 적이 있나?

식품 대기업에서 CEO로 재직할 때 바로 그 방식으로 승진 제도를 운영했다. 그 회사는 꽤 큰 식품기업이었고 전국 영업을 하는 곳이었기에 전국에 지점들이 있었다. 보통 지점장을 ‘야전사령관’이라고 하는데 그 지점 내에서는 ‘대장’이다. 본사 직급으로 치면 부장, 좀 작은 지점의 경우 고참 차장 정도가 역할을 맡는다. 지점 아래에 여러 영업조직을 거느린다. 대부분 본사 파견이라 혼자 거처를 마련해 근무한다. ‘야전사령관’이라는 별칭에서도 드러나듯 이런 지점들은 전통적으로 거의 군대문화를 갖고 있었고, 퇴근할 집도 없는 이 지점장들은 거의 저녁 먹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영업직군에서 최소 10년 이상 최대 20년까지 있던 사람들이라 나름의 노하우는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럼 내가 CEO로서 이들에게 기대한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런 노하우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수해주고 그 노하우가 조직의 역량이 되는 것이었다. 그 역량이 현장에서 다시 접목돼 성과로 나타나는 선순환을 원했다. 그런데 지점장들 상당수는 영업 노하우를 ‘나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자기가 쥐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 10개쯤의 노하우를 알고 있다면 하나씩 하나씩 가끔 끄집어내서 가르치는 거다. 한꺼번에 다 내놓으면 자기의 존재감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거다. 물론 영업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당장의 실적은 계속 좋았다. 그런데 장기적인 조직의 역량 강화와 성과를 생각한다면 이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다. 자신의 노하우를 조직원들과 공유하고, 자신과 다른 접근을 하는 사람, 혹은 다른 방법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의 노하우를 적극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아내 지점장으로 승진시켰다. 다른 업종의 모범 사례를 적용해보려는 노력파들도 등용했다. 자신의 것은 내어주고 자신은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승진하자 영업조직, 지점들, 그리고 본사마저 분위기가 바뀌었다. ‘승진은 조직이 조직원에게 주는 최고의 메시지’라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회사의 철학에 맞춰 생각하는 인재, 장기성과에 도움 되는 인재는 어떻게 찾아내 승진시켰나?

사실 내가 정의하는 이런 ‘성과’를 중심으로 한 승진방식을 도입하려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평가지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협력대상인 대리점들에게 ‘갑질’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냈고, 얼마나 지식을 공유했는지, 얼마나 학습을 해서 다른 지점장, 다른 업종의 사례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가져왔는지를 하나하나 수치로 따져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 CEO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봐야 한다. 현장에, 영업조직과 지점에, 그리고 대리점에 직접 가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예전에 일하던 맥킨지는 신입 컨설턴트 한 명 뽑을 때에도 그렇게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서고 만나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중책 중의 중책인 지점장 인사와 승진을 할 때 책상에 앉아 숫자만 들여다보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이렇게 승진을 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정착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을 학습하고 전수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문제도 발생한다. 그건 경영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러라고 존재하는 게 CEO다.

생산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 현장에는 매우 엄격한 규범이 존재한다. 라인 책임자가 있고, 팀장이 있고, 공장장이 있으며, 그 위에 임원들이 존재한다. 분명 하위직급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아이디어, 혁신 아이디어나 개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한두 번 자기 의견을 말하다가 막히면 그 다음부터는 입을 다문다.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을 제일 잘 아는데 그들의 얘기는 위로 올라오지 않게 된다. 그런데 공장이라는 게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외부에서 충격을 줬다. 컨설팅 회사 하나와 계약해서 직원들과 현장에서 개선안을 함께 고민해 만들도록 했다. TF팀을 만드는데 공장에서 지원자/추천자를 받도록 했다. 정말 엉뚱하지만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추천을 받았고, 발탁됐다. 일종의 승진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고 그들이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컨설팅이 끝날 때에는 아주 좋은 개선안과 혁신안이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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