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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

‘친일매국 대신’ 김홍집? 사그라드는 국운 안고 ‘할 일’한 비운의 리더십

김준태 | 198호 (2016년 4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초대 총리대신 김홍집은 망국을 향해 치닫던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최선을 다해 재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때로는명성황후 시해의 주범 중 하나로 몰리기도 하고친일매국대신으로 몰려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그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홍집이 활동하던 조선은 무능한 보스, 비전의 상실, 팽배한 보신주의, 인재 이탈, 파벌싸움, 변화에 대한 저항, 전시행정 남발 등 망국의 징조로 가득했다. 오늘날 망하는 기업의 특징도 이와 다르지 않을 텐데 이때 2인자는 신속하고도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충언하며 그런 상황과 싸우든지, 아니면 미련 없이 자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다. 어떻게든 조직의 생명을 유지하며 시간을 버는 것. 자리를 지키며 일상의 행정업무들을 처리하는 것. 조직과 구성원들을 위해 누군가는 해줘야 할 일이다. 이리되면 그 역시 나라를 망하게 하고 기업을 쓰러트렸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사람들은 그의 고뇌를 이해해줄 것이다.

 

 

편집자주

기업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CEO를 보좌해줄 최고경영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집니다. 리더의 올바른 판단과 경영을 도와주고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는 2인자의 존재는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명재상들 역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군주를 보좌하며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조선시대 왕과 재상들의 삶과 리더십에 정통한 김준태 작가가조선 명재상을 통해 본 2인자 경영학을 연재합니다.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211일 오전 7, 국왕과 왕태자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기 위해 비밀리에 궁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여자들이 쓰는 덮개가 달린 가마에 탔기 때문에 궁궐 수비병들의 주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계획을 함께 짠 러시아 대리공사 드 스페이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제물포에 정박한 전함에서 100여 명의 병사와 대포 1문을 공사관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중략) 211일 오후, 경찰에 체포되었던 내각 총리대신 김홍집과 농상공부대신 정병하가 감옥문 앞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이들의 시체는 길에 끌려 다니면서 백성들에 의해 처참하게 절단되었습니다. 다음날 내려진 국왕의 칙유에 따르면 문제의 두 대신은 법에 따라 재판 받기 위해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민중들의 손에 잡아 채여 살해되었다고 합니다.1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물어본 모든 조선인들은 이들이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시신도 경찰에 의해 민중의 손에 넘겨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2

 

1896 215, 주조선 프랑스공사 G. 르페브르가 프랑스 외무부장관에게 발송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211일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고, 총리대신이었던 김홍집(金弘集, 1842∼1896)이 피살되는 등 조선에 정변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이른바아관파천(俄館播遷)’에 대한 보고다.

 

아관파천은 을미사변 이후 강해진 고종의 반일감정이 친러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이뤄진 것으로 이 사건으로 기존의 친일 내각은 붕괴된다.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3 에 따르면 고종의 파천 소식이 전해지자 신변의 안전을 우려한 주변 사람들이 김홍집에게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죽었으면 죽었지 어찌 박영효처럼 역적이란 이름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4 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종을 알현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다 고종의 처형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온 경무관에게 체포됐고, 곧바로 살해됐다고 한다. 그를 죽인 것이 경찰이냐, 군중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데 이 사건을 상세히 기록한 <매천야록>과 프랑스 공사관, 일본 공사관의 문서를 종합해볼 때 김홍집은 경찰에 의해 먼저 살해된 후 그 시신이 백성들에게 공격당한 것으로 보인다.

 

<매천야록>경찰이 이 두 사람을 살해한 후 그 시체를 길거리에 널어놓자 도성 사람들은 단발령을 주장한 김홍집을 원망하며 돌과 기와 조각을 그 시체에 던져 살이 터지고 찢어졌으며, 그 시체를 베어 그대로 먹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일본 공사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가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를 보면김 총리가 러시아 공사관에 가서 고종을 알현하려고 했으나 경무청에서 파견된 순검이 총리를 압송하여 경무청에 구인했습니다. 또한 순검 수십 명이 정 농상공부의 저택으로 가서 그를 붙잡아 경무청에 구인했습니다. 이후 경관들은 김 총리를 경무청 문 앞으로 끌어낸 다음 발로 차서 쓰러뜨리고 수명이 일제히 가슴과 등을 칼로 찔렀습니다. 이어 정 농상공부를 끌어내 한칼에 참살하고 두 시체의 다리 부분을 거친 새끼줄로 결박해서 종로로 끌고 와대역무도(大逆無道) 김홍집 정병하라고 크게 써 붙여놓았습니다. 그러자 길 위에 가득 차 있던 보부상들이 각기 시체를 향해서 큰 돌을 던지기도 하고, 또 발로 짓이겨서 시체를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번 사변에서 특히 김홍집과 정병하 두 사람이 학살을 당한 것은 작년 왕비가 폐위됐을 때(을미사변으로 왕비가 시해된 직후 빈으로 강등됐던 것을 말함) 두 사람이 이를 주도했기 때문이라 합니다5 라고 돼 있다.

 

요컨대 김홍집을 살해한 것은 국가기관인 경찰이고 이는 고종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김홍집에게 백성들의 분노가 쏟아진 이유는 그가 을미사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단발령등 백성의 반발을 산 을미개혁을 주도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이 전부였을까? 도대체 그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같은 비극을 당하게 됐을까? 그는 이처럼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고종은 거듭된 그의 사직상소를 반려했고, 때론 밤을 새워 강권하며 그에게 총리대신을 맡겼던 것일까?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초대 총리대신 김홍집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김홍집은 1842(헌종8) 숙종의 장인 김주신의 5대손이자 참판 김영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7(고종 4) 과거에 급제한 그는 승정원과 승문원, 훈련도감 등에서 초창기 관직생활을 보냈는데, 특히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承文院)의 박사를 오래 겸직한다. 이후 외교 분야에서 나타난 그의 독보적인 커리어의 출발점이다. 또한 이 시기에 김홍집은 개화사상의 거목인 박규수(朴珪壽, 1807∼1876)의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홍영식, 김윤식, 박정양 등 훗날 개화파의 주역들과 교유했다.

 

 

 

 

그러던 1880년 예조참의 시절, 강화도조약6 의 세부 이행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그의 이름은 조야에 널리 알려졌다. 일본에서 귀국한 김홍집은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한 일본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때 고종이화란(和蘭, 네덜란드)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어떤 나라인가?”라고 묻자 김홍집은서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로서 영토가 우리나라의 4분지 1에 불과합니다라고 답했고, 고종이 다시나라가 그처럼 작은데 무슨 방법으로 강국이 되었는가?”라 묻자 김홍집은국력이 강한 것은 영토가 크건 작건 관계없이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실제(實際)에 힘쓰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7  약소국인 조선도 노력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부강해질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홍집은 주일 청나라 공사관의 황준헌으로부터 받아온 <조선책략(朝鮮策略)>을 고종에게 올렸는데 이 책이 커다란 후폭풍을 가져오게 된다.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은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친중국 결일본 연미국(親中國結日本聯美國)’의 외교정책을 통해 세력 균형을 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는 것은 조선으로 하여금 본격적인 개방에 나서라는 촉구였는데, 당시 보수 유학자들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조선책략>을 가져온 김홍집에 대해서도 나라를 오랑캐에게 팔아먹으려 한다는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김홍집이 주한 일본공사 하나부사와 협상을 벌여 인천 개항의 시기를 20개월 늦추는 등의 성과를 올렸지만 보수파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는 일시적으로 조정에서 퇴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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