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신뢰

조직제도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응급환자가 근처의 병원을 믿듯…

149호 (2014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HR

 

조직 신뢰(organizational trust)의 필요성

: 조직 신뢰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과 큰 부담 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무형의 신임장(credential)을 제공

고신뢰(high-trust) 조직과 저신뢰(low-trust) 조직의 특징

: 고신뢰 조직 - 솔직한 커뮤니케이션과 협력. 활기와 에너지. 생산적 긴장

: 저신뢰 조직 - 방어적/폐쇄적 문화. 진실 은폐/왜곡. 비생산적 긴장

제도 기반 신뢰(institution-based trust) 확립의 중요성

: 회사에서 이전에는 일면식이 없던 사람과도 처음 몇 분간의 인사와 통성명 후 곧바로 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이유는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를 신뢰하기 때문. 신뢰성 있는 제도를 통해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제도 기반 신뢰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중요

 

 

신뢰(trust)는 우리가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상 용어이면서 학술적으로도 활발히 연구되는 개념이다. 기업들은 조직 내 신뢰를 강조하고 또 증진 방안을 강구해 왔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실 신뢰는 조직 관리에 있어 경영자가 자칫 오해하거나 착각하기 쉬운 측면이다. 일상 용어로서의 신뢰가그 자체로서 바람직하고 좋은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따라서 당위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신뢰에 대한 오해는 중장기적으로 조직의 근간을 약화시킨다. 이 글에서는 신뢰의 실용 영역과 이론 영역을 연결시켜 보고자 한다. 이론과 실용의 접목이 경영 현장의 조직 신뢰 구축 노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신뢰의 필요성

 

① 생산성을 높인다

 

조직 신뢰(organizational trust)는 조직 내 구성원 간 신뢰와 조직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를 말한다. 기업조직일 경우 동료 간 신뢰, 상하 간 신뢰, 회사(또는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포함한다.

 

조직 신뢰의 필요성은 일견 자명해 보인다. “조직에서 신뢰가 왜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의 일반적인 반응은 아마도신뢰가 없으면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정도의 반문일 것이다. 이는 역으로신뢰가 있으면 같이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질문해 보자. 신뢰가 어떤 기능을 하길래 조직 내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까? 조직 신뢰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과 큰 부담 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단서(clue), 또는 무형의 신임장(credential)을 제공한다. Coase Williamson 같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회사 안에서의 협력은 시장에서의 계약에 비해 정보 탐색이나 신용 확인에 수반되는 거래 비용이 더 낮고 효율적이다. , 조직 신뢰는 회사의 효율성, 혹은 생산성을 담보해 주는 윤활유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고신뢰 조직(high-trust organization)은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이 활성화됨에 따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구성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일하며 혹시 긴장할 경우라도 그것은 생산적 긴장, , 이견에 대한 솔직한 논쟁이나 시장 상황에 대한 적응 때문에 일어나는 긴장이다. 반면 저신뢰 조직(low-trust organization)은 실수의 원인을 찾아내 고치기보다는 실수한 사람이 누구인지 색출하는 데 관심이 더 많다. 구성원들 간 또는 구성원과 회사 간 관계에서 서로가 매우 방어적이어서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나 협력이 잘 안 된다. 두려움이나 좌절이 빈번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회사 생활을 대과(大過) 없이 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고신뢰 조직에서는 정보를 나눌수록 영향력이 높아지지만 저신뢰 조직에서는 정보를 숨겨둘수록 권력이 커진다.두 조직의 특징을 대비해 보면 신뢰가 얼마나 큰 생산성 차이를 가져다 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 1)

 

② 혁신 성과 창출을 돕는다

 

근자에 와서 신뢰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이유는 혁신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신뢰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혁신과 창의성을 결정하는 것은 대개 시간, 리스크, 보상, 도전, 논쟁, 자유와 같은 요인들이다.1  이들은 하나같이 신뢰와 불가분의 관계여서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충분히 제공될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 시간 요인의 경우 혁신적 성과를 내려면 출퇴근 유연성(flexibility)이나 실험 시간에 대한 재량권 등이 필요한데 구성원들이 이러한 자율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없이는 회사가 이를 제공하기 어렵다.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위험 감수는 혁신에 반드시 필요하나 실패해도 회사가 용인해 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면 조직원들 입장에선 무리해서 리스크를 지려 하지 않을 게 뻔하다. 이렇듯 신뢰는 혁신 성과 결정 요인들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혁신 성과를 갈구하는 기업으로서는 조직 신뢰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신뢰가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준다고 했지만 혁신에서도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혁신 조직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은 생산성이 지상과제인 조직의 그것과는 구별된다. 첫째, 혁신 조직의 경우 자연발생성(spontaneity)이 높다. 프로세스가 확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빈번해 상황적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협력한다. 둘째, 효율성이 낮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이 더 들고 최적의 협력 방식을 찾는 데도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한다. 셋째, 범위가 넓다. 보유하고 있는 지식 이상을 탐색해야 하기 때문에 부서 내 커뮤니케이션이나 협력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종종 회사 경계도 넘어서는 시도가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의 차이로 인해 요구되는 신뢰도 달라진다. 혁신 성과 창출에 필요한 신뢰는 쌍방향이고, 수평적이며, 게다가 요구사항이 많다(demanding). 혁신을 도모하는 기업이라면 신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③ 신뢰의 기타 기능들

 

신뢰는 효율과 혁신성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전체적인 회사 분위기를 밝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높은 신뢰는 관리감독(supervision)을 대체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 업무 관련 의사소통이 많아지고 위계의 압박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조도 가벼워지고 생산적이 된다. 이를 신뢰의 사회성 증가(increase in sociability) 기능이라고 한다.2  신뢰는 자신의 직무 반경을 넘어서서 도움을 제공하는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자연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결 쉽게 해 준다.

 

마치 정반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신뢰가 가지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조직의 권위를 존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회사 신뢰 또는 최고경영진 신뢰가 높을 경우 굳이 위계나 감독 없이도 구성원들은 회사가 허용하는 범위와 불허하는 행동을 정확히 구분, 허용 범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준법감시(compliance)에 대한 수시 점검 없이도 직원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글로벌 경영에서 특히 유용한데 법 준수 수준과 상()관행이 천차만별인 국가들에서 사업하면서 다양한 환경을 모두 관리로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혁신에 필요한 신뢰는 이전에 비해 쌍방향이고 수평적이며 요구사항이 많다.

기업들은 혁신형 신뢰를 수용하기 위한 조직 운영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2. 신뢰는 움직인다 - 신뢰 다이내믹스

 

① 신뢰의 형성

 

흔히 우리는 신뢰가 처음에 낮은 상태에서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점차 강화 발전돼가는 것이라는 가정을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특히 정치학이나 비교문화 연구자들에 따르면 신뢰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공동체 내 혹은 공동체 간 거래 방식을 통해 형성되는습관3 이나사회적 자본4 이다.

 

거시적 분석이라면 이 가정이 맞을 수 있으나 실생활에서 우리는 이에 반하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 이력 확인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거래를 하거나 협력하는 경우다. 협력할 때의 마음가짐도 그렇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거래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신임한 상태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거래하고 협력한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높은 초기 신뢰(initial trust) 패러독스5 라고 부른다. 이 용어에 깔린 가정은 처음에 낮은 상태에서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신뢰 관계를 높여가는 게 정상이고 처음부터 높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게 모순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이런 현상이 패러독스라고 불릴 만큼 역설적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내로 외출했는데 길에서 넘어져 찰과상을 입었다고 하자. 그러면 소독과 응급치료를 받기 위해 눈에 가장 먼저 띄는 병원에 들어갈 것이다. 전혀 모르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 특별히 불안해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회사에서 우리는 이전에 한 번도 일해보지 않은 타 사업부 소속 직원과 TF를 구성하고 일을 한다. 물론 이 사람을 알 만한 사람에게 비공식적인 신상 조회를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런 절차를 건너뛸 때도 많다. 새로 입사한 직원과도 아무 거리낌이나 불안 없이 처음 몇 분간의 인사와 통성명 후 곧바로 협업에 착수한다. 이렇게 어떤 특정 관계에서 높은 초기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간단한 이유에서다. 의사나 간호사의 경우 우리가 우리나라의 의료인력 양성과 배출 과정을 신뢰하기 때문이고 회사 내 신규 입사자의 경우는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를 제도기반 신뢰(institution-based trust)라고 부른다.

 

제도 기반 신뢰는 기업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창업기 기업은 물론이고 기존 기업들도 신뢰성 있는 제도를 통해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도 기반 신뢰는 현재의 변화무쌍한 사업 환경하에서 인력의 유입/유출 및 이동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과업이 수시로 바뀌면서 팀의 이합집산이 빈번하고, M&A나 전략적 제휴로 인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경우에 매우 유용하다. 새롭게 제도를 구축하는 비용이 크다고 생각되면 외부 기관의 인증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증기관을 거친다는 사실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신규 입사자들에게 제도기반 신뢰를 보내게끔 할 것이다. 구글은 반대로 고비용 채용 프로세스를 유지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조직 내 거래 비용 절감분이 채용 프로세스 비용을 상각하고도 남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구글 인사관리는 일견 자유방임처럼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엄정한 채용 프로세스 및 데이터 기반 관리가 공존한다. 그중 채용 프로세스는 구글다움(Googleness) 유지의 핵심 기제다. 구글은 서류심사를 통과한 지원자를 최소 3차에 걸쳐 6∼20명의 인터뷰어가 면접한 후 최종적으로 개인별 5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첨부해 CEO의 승인까지 거치는 까다로운 채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채용 인터뷰의 성패를 결정하는 구글다움 요소(Googleness Factor)는 어디에도 명문화돼 있지 않지만 인터뷰어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여 판단하는 부분이다.

 

구글은 채용에 많은 돈과 시간을 쓰고 있으나 이러한비싼프로세스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 프로세스를 거치고 들어온 입사자들은구글다움을 보유하고 있어 기존 인력과의 융화와 협력,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구글 입사자들은 여느 IT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체류기간을 5년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적응과 근무기간 중 협력 최적화는 회사와 개인 양자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② 신뢰의 변신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회사 신뢰 약화에 당혹스러워 하면서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한다. 실제로 신뢰가 하락했는지는 별개의 이슈겠으나 신뢰 하락을 초래할 만한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보다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신세대 구성원의 대거 유입, 성과주의 적용으로 인한 제도 투명성에 대한 관심 증가, 기업의 사회 공헌과 평판의 중요성 증가 등이 회사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을 수 있다. 물론 해당 기업의 경쟁력이 하락해 직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보편적으로, 사업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조직운영 패러다임이 신뢰의 주요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대개의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관리 중심의 위계조직으로 운영돼 왔다. ‘좋은기업들은 그 패러다임 안에서 직원들의 복리후생 혜택이나 고충 처리 같은 공정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크게 바뀌어 많은 기업들이 혁신 전략과 글로벌 경영 패러다임을 채택하고 있다. 사업적으로는 이러한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조직은 여전히 대단히 위계적이고 상명하복 중심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조직 전략에서 말하는 소위 부정합성(incongruence)6 이 발생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혁신에 필요한 신뢰는 이전에 비해 쌍방향이고 수평적이며 요구사항이 많다. 기업들은 혁신형 신뢰를 수용하기 위한 조직 운영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여기서 1990년대 위기 이후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신뢰 변신(transformation)에 성공한 IBM 사례를 살펴보자.

 

1911년 창업 이래 오랜 기간 미국의 대표 기업이자 컴퓨터 산업의 지배자였던 IBM 1980년대 이후 실적 하락 징후를 보이기 시작, 급기야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전체 컴퓨터 산업에서 IBM이 차지한 매출 비중이 40%, 이익 비중이 70%라는 독보적 위치에서 1993년 미국 기업사()에 전례 없는 230억 달러의 구조조정 비용을 감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와 함께 IBM은 창사 이래 유지해 왔던무해고 정책(no lay-off policy)’을 포기하고 1994 18만 명에 육박하는 인력에 대한 대량해고를 단행했다. 회사가 회생단계로 들어선 이후에도 IBM은 과거의 평생직장으로 회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전의회사신뢰에서신뢰로 이행하는 쪽을 선택했다. IBM의 조직 전략 선회의 이면에는 몰입도(commitment)가 높은 사람만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데 회사에 대해 높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IBM은 물론이고 미국 전역에서 팀제가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팀이 신뢰의 새로운 대상으로 정해지면서 회사 차원의 획일적 제도나 이벤트보다는 팀장 리더십, 직무의 재미와 도전 가치, 팀성과에 대한 보상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특히 CEO 루 거스너는 팀 성과 창출의 리더 개인의 역량이자 책임임을 분명히 했다. 회사와 구성원 간 심리적 계약을 다시 쓴 것이라 하겠다.

 

IBM은 위의 과정을 통해 훨씬 수평적인 조직으로 이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변화는 물론 사업 위기에서 촉발됐지만 변화 방향의 설정과 이행은 다분히 전략적이었다고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IBM의 문화 역시 환경과 비즈니스 모델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촉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변화했는데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 2>와 같다.

 

 

③ 신뢰의 복구

 

신뢰 복구(trust repair)는 조직 수준의 실패(organization-level failure), , 전사에 파급 효과를 미칠 정도의 실패로 인해 조직 신뢰가 손상됐을 때의 대응 노력이다. 앞에서 다룬 IBM도 대규모 감원 후 조직 신뢰 회복을 추진했지만 변화가 광범위하고 근원적이었다는 점에서 복구라기보다는 신뢰 특성의 변신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신뢰의 변신이 새로운 사업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과의 조응을 추구한다면 신뢰의 복구는 실패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조직 수준 실패는 스캔들과 산업 사고다. 조직 수준 실패가 조직 내에서 초래할 수 있는 결과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개인 차는 있겠지만 본인의 노력과 미래 전망을 투자한 회사가 신용을 잃었다는 사실은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준다. 배신감도 있을 것이며 상황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도 느낀다. 신뢰에 기반한 협력이나 커뮤니케이션이 덜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되며 조직 활력도 감소한다. 심할 경우 업무 수행을 거부하는 사보타주(sabotage)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고 조직 안에서 진행되던 다양한 협상들이 중단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7  이러한 진행을 신속하게 차단하고 내외부 이해당사자들의 신뢰를 재구축하는 것은 당면 과제일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10년간의 주요 신뢰 복구 사례를 정리한 연구8 에 의하면 기업의 신뢰 복구 노력은 크게즉각대응진단개혁평가 4 단계로 나눠진다. 이 단계들을 거치면서 회사는 조직 내 불신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신뢰성을 입증해 간다. (그림 1)

 

그렇다면 실제 일어났던 기업 스캔들 사례를 통해 이 4단계 프로세스가 어떻게 신뢰 복구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자. 2006 9월 독일 지멘스(Siemens)에 대한 준법조사 과정에서 지멘스가 허위 컨설팅 계약서와 각종 영수증, 유령 회사에로의 지급 등을 통해 확보한 돈을 입찰과 계약 시 뇌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곧바로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주요 뉴스로 알려졌다. 수십만 지멘스 종업원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잠재적 범법행위가 회사 내부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돼 왔다는 점이다.

 

1단계 즉각 대응에서 지멘스는 효과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많은 기업이 이렇게 대응하지만 지멘스도잘못을 인정하지만 규모가 수백만 유로 정도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CEO로 피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클라인펠트는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실제 유용 규모가 42000만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 졌다. 다행히 지멘스의 ‘2단계 진단대응은 1단계에 비해 훨씬 개선됐다. 타 기업의 모범이 될 정도로 비윤리 및 위법적 행동 예방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전사 차원의 내부 조직 진단을 실시했다. 동시에 미국 유수의 법률회사에 이 진단의 전 프로세스를 독립적으로 감독하게 했다. 철저한 내부 진단으로 검찰 조사 이상의 수치스러운 결과가 드러났지만 지멘스는 이러한 결과를 내외부에 알리면서 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3단계 개혁에서 지멘스는 예방, 탐지, 대응으로 연결되는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진수시켰으며 여기서 탐지 부분을 담당하는 신설 조사 조직 책임자로 인터폴 고위책임자를 영입했다. 최고경영진의 교체가 단행돼 CEO와 이사회 의장이 해임됐고, 전 글로벌 임직원들에게 윤리와 반부패 교육을 실시했으며, 사업 전략도 변경해 입찰에 뇌물공여가 보편적인 특정 시장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마지막 ‘4단계 평가에서 지멘스의 신뢰복구 노력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이 스캔들로 지멘스는 25억 유로(벌금 20억 유로 포함)의 비용을 부담했지만 이후의 철저한 대응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윤리 위반이 불가능하게 됐음을 내부 임직원과 외부 거래자에게도 인정받게 됐고 결국가장 청결한 조직으로 거듭났다. 신뢰 복구 노력 자체가 구성원들의 회사 신뢰를 이전보다 더 높은 단계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3. 제언: 신뢰는 높일 수 있다

 

조직 내 신뢰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경영자와 관리자가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신뢰(trust)는 신뢰성(trustworthiness)이 높아질 때 따라서 높아지는 것이라는 기본 전제다. 신뢰는믿겠다는 행동이고 신뢰성은믿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다. 최근 영국 철학자 오노라 오닐은 TED에 출연해9  “신뢰를 높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라며 신뢰받을 자격도 없으면서 신뢰해 달라고 요구하는 비합리를 비판했다. 신뢰성을 쌓을 방법을 병행하지 않는다면신뢰를 높이자” “회사를 믿고, 상사를 믿고, 동료를 믿자라는 외침은 공언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공언 이상의 부작용도 가능한데 만약 신뢰성이 없는데 무턱대고 신뢰해 버리면 그것은 애초에 안 믿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듯이 신뢰성을 통하면 신뢰는 초기에 형성될 수 있고, 조직 목표에 맞게 변신할 수 있으며, 또 복구될 수도 있다. 신뢰 구축을 고민한다면 반드시 자기 조직과 구성원에 맞는 신뢰성 구축 방법부터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뢰를 분석하자

 

연구자들은 신뢰가 크게 능력(ability), 선의(benevolence), 신의성실(integrity)로 구성된다고 본다.10  이는 다시 말해 상대방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과 선의를 신뢰하는 것, 신의성실을 신뢰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기업에 대한 조직 진단을 실시해 보면회사가 직원과 진정으로 의사소통하려 한다(신의성실 측면)”는 문항의 점수가 낮게 나왔음에도우리 경영진은 회사를 잘 이끌어 나갈 능력을 가지고 있다(능력 측면)”는 문항의 점수는 높은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결과는 조직원들이 한 명의 상대에게 신뢰를 보낼 때도 최고경영진의 능력과 신의성실을 구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면 이 회사는 다른 점보다도 경영진의 커뮤니케이션 자세를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경영자들이 조직의 신뢰 수준을 걱정한다. “신뢰가 바닥이에요” “신세대들은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아요. 개인중심으로 길러져서 그런지 조직을 생각하지 않아요” “직원들이 냉소적이에요. 회사에 대해서도 그렇고 상사에 대해서도 그래요. 앞에서는 드러내놓고 안 그러지만 뒤에선 진정성을 안 믿어요”… 하지만 막연한 걱정보다는를 분석해야 한다. 신뢰의 3가지 구성 요소 중 어떤 부분에서 미진한 것인지를 면밀하게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뢰를 분석하기 시작하면 회사와 상사, 직원이 해야 할 일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우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wuran.kang@samsung.com

필자는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에서 학사 학위(심리학/정치학 전공),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노사관계와 조직행동 전공)를 받았다. 관심 분야는 혁신 조직과 글로벌 경영이다. 저서로 <혁신의 리더들(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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