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Study

철의 여인이 쓴 ‘가치혁명’ 드라마

128호 (2013년 5월 Issue 1)

 

 

한 리더의 두 결말

 

대처는 116개월간 수상에 재직하는 동안 영국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 핵심에는가치혁명이 있었다. 나눠 먹기식 사회주의 가치관을 타파하고 각 개인이 스스로를 주도하는 자본주의 가치관을 회복시켰다. 국가와 사회의 이념이 바뀌고 제도가 혁파됐을 뿐 아니라 영국민 개인의 삶의 기준과 방식에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노조의 바위틈에서중산층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기업이 힘을 얻고 국가는 강해졌다.

 

하지만 혁명은 항상 저항을 부른다. 경제는 좋아졌지만 실업이 증가했다. 노조는 분쇄됐지만 대처 카리스마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다. 영국은 강해졌지만 북아일랜드 독립주의자들의 테러는 강도를 더해갔다.

 

그녀의 죽음은 혁명과 반혁명의 가치충돌을 재현했다. 한쪽에서는 그녀의 종말을 깊이 애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환호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채웠다. 2002년 영국 의회는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살아 있는 주인공 대처의 동상을 세웠다. 의회가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준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전례 없는 찬사였다. 하지만 5개월 후 대처 동상의 머리는 무참히 부셔졌다. 전례가 없는 혐오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연상케 하는한 리더의 두 결말이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기록된 그녀의 서거에 대한 글들도 가치 충돌을 보여준다. 역사가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대처는 영국을 강하고 자랑스러우며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가수이자 사회활동가인 톰 로빈슨(Tom Robinson)나는 그녀가 국민의 고통에 무자비할 정도로 무관심했던 것을 개탄한다.… 그녀는 인간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를 더 우위에 뒀다고 평했다.

 

마거릿 대처의 일생을 조망하면서 20세기 아랍 독립을 위해 싸운 영국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의 일대기를 읽는 착각에 빠졌다. 불가능할 것 같은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해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얻어내는 초인적 열정이 너무도 닮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아랍민족들을 통합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는 로렌스의 여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 드라마다.

 

대처의 여정도 한 편의 혁명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쌍둥이 엄마 대처가금녀의 집이나 다름없던 영국의회에 처음 진출했을 때 그녀가 보수당을 이끄는 당수가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수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수상이 된 후에도 막강한 노조위원장 아서 스카길(Arthur Scargill)을 제압해 탄광노조를 굴복시키며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노회한 민주당의 정적들을 상대로 3선 연임까지 가리라고 내다봤던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해냈다.

 

비록 대처 드라마가 정치를 소재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주도한가치혁명의 과정과 내용은 오늘날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나 관리자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각본-연출-연기-대단원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구조를 빌려 대처리더십의가치혁명을 감상해보자.

 

마거릿 힐다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여남작 대처(Baroness Thatcher) 2013 48일 런던의 리츠호텔(The Ritz Hotel)에서 심장마비로 서거했다. 1975 2월 야당인 보수당 당수에 올랐다가 19795월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영국 수상에 오른 후 1990 1128일까지 내리 3선을 하며 영국의 가치혁명을 이끈철의 여인(the Iron Lady)’이었다. 1925 1013일생으로 향년 87. 옥스퍼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세무 전문 변호사 자격증도 땄다. 1959년 핀치리(Finchley) 선거구에서 보수당(토리당, Tory) 후보로 처음 하원에 진출한 후, 1961(36)부터 3년간 연금 및 국민보험부 차관을 지냈으며 1970∼1974년 에드워드 히스(Edward Heath) 내각에서 교육과학부 장관을 맡았다. 야당과의 선거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수로 있는 당의 내부 투표에 의해 수상직을 박탈당한 영국 역사상 최초의 수상이기도 하다. 사진은 1989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 참가한 대처 당시 총리가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가 64세로 그녀의 전성기였다.

 

담대한 각본: “가치관이 달라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대처 드라마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영국 사회를 알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약 30년 동안 영국은 사회주의 국가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져줬다. 사회주의의 개념논리는 <그림 1>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국가는 의료, 교육, 일자리, 주택, 공공서비스, 전기/가스 유틸리티 등 개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무료로, 또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 이들의 공급을 확실히 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필요한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면서 가격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래도 재원이 더 필요하므로 개인 소득으로부터 최고 83%까지 세금으로 거둬들인다. 국민 모두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보장하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직접 돈을 지급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와 노동조합 간의 합의에 의해서 모든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사회주의는 잘만 돌아간다면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고국민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국가에 요구하며노동조합이 국정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고공기업들은 채산성 악화로 계속 적자를 내도 종업원들을 해고하거나 정리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성장은 정체됐고 노동조합이 법을 어기고 파업을 해도 정부는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정치인들은 문제해결에 나섰다가 번번이 노동자들의 표를 잃어 정권을 빼앗기곤 했다. 급기야 1976년 영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다.

 

대처 드라마의 각본은 이 사회주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담대한 것이었다. 1979년 파업에 의한 조업중단 건수 4583(한국 2011년 약 60), 근로손실 일수 2900만 일(한국 2011년 약 41만 일)에 이르렀다. 대처가 선거를 치르기 직전인 1979 1월은 소위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22일에는 1926년 이래 최대의 전국적 파업이 시작됐다. 런던 시내는 쓰레기가 쌓여 냄새가 진동하고 쥐들의 놀이터가 됐다. 심지어 무덤 파는 사람들(gravediggers)의 불법 파업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묻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앰뷸런스가 멈췄고, 응급실 운영이 중단됐으며, 철도도 멈췄다. 영국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처 드라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담대하고 새로운 각본을 제시했다. 그녀가 주창한 시스템은

①사회보장을 줄이고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해 서로 경쟁하게 하며국민 개인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장을 찾도록 하고세금을 줄여 개인의 수익을 높여주며노동조합 세력을 분쇄함으로써 국가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림 2) 정부가 모든 것을 돌봐주는 사회주의 시스템은 개인으로 하여금 정부에 의존케 하는 가치관을 갖게 했으며 기업은 높은 생산성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경쟁력을 높이려 하기보다는 국가의 고용의무를 다하느라고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처의 가치혁명은 이것을 180도 뒤집는 것이었다. 개인에게는 부()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고 기업에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해 소위영국병(英國病)’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처방이었다.

 

물론 대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윌슨(Wilson)이나 히스(Heath)와 같은 전임 총리들도 이런 사상을 가지고 노동조합에 도전했다. 하지만 모두 정권을 빼앗기든가 노동자들과 타협하며 물러섬으로써 실패했다.

 

대처의 다른 점은 새로운 자본주의 각본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의 욕망과 경쟁이 나라를 살린다는 새로운 가치관은 현상의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해법을 추구하게 했다. 영국 사회의 근본을 바꾸는 큰 그림, 혁신적 해법이었다. 그녀가 사회주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면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수당 내에도 타협주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처는 누구에게도 정치적 빚이 없는아웃사이더였기에 가치혁명이 가능했다.

 

대처의 리더십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외계인이라야 큰 그림, 근본적 변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내집단(In-Group) 구성원에 의한 경영혁신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치밀한 연출: “치밀한 준비가 승리를 낳는다

 

각본이 좋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각본을 따라가면서도 매일 전개되는 상황을 장악할 수 있는 순발력과 치밀한 연출이 필수적이다.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연진을 선별하는 것이다. 1979 54, 보수당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 총리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처는조각이 매우 중요하다(It’s very important thing)”고 두 번씩이나 강조했다. 그로부터 17개월 후인 1980 1010, 보수당대회연설에서 대처는 뜻을 같이하는 출연진이 대처 드라마의 주제인국가경쟁력 향상개인의 자립정신 및 성취열정 회복을 충실히 구현해주고 있다고 치하한다.

 

 

재무장관 제프리 하우(Geoffrey Howe)는 규제개혁을 통해서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고양시켰다. 36억 달러의 해외 채무를 상환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이뤘고 외환규제를 철폐해 기업의 해외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고용부 장관 짐 프라이어(Jim Prior)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조합가입자만을 고용할 수 있게 한클로즈드 숍(closed shop)’제도를 제한했으며 작업장 내 피케팅(picketing)을 규제하고 파업결정 때 조합원 비밀투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산업부 장관 키스 조지프(Keith Joseph)는 민영화를 책임졌다. 그는 미국 철강회사 CEO였던 이안 맥그리거(Ian McGregor) 180만 파운드의 엄청난 연봉을 주고 국영기업 브리티시스틸(British Steel) 최고경영자로 스카우트해 민영화의 모델사례를 만들어냈다. 이를 모델로 해 대표 국영기업이었던 영국항공, 우정국, 브리티시텔레콤 등을 줄줄이 민영화한다. 한편 마이클 헤슬타인(Michael Heseltine)은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돼 공공주택의 민간분양을 추진했다.

 

이 모든 일이 대처가 수상이 된 지 17개월 만에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연출이 얼마나 주도면밀했고 템포와 압박이 얼마나 빠르고 거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대처 드라마가 표를 얻기 위해 급조된 연극이 아니라 대처와 그 동료들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준비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처의 치밀한 연출은 현재 영국 사회노동당 당수이며 1982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광부노조(NUM· National Union of Mineworkers) 위원장을 지낸 아서 스카길과 치른 광부노조파업 결전(1984∼1985)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당시 광부노조는 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석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계속 채광을 해 75%의 탄광이 적자를 내고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탄광을 폐쇄할 수도, 광부들을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스카길의 권력은킹 아서(King Arthur)’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 하늘을 찔렀다. 1981년 대처는 적자탄광 폐쇄를 시도했으나 파업에 대한 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일단 물러섰다. 대처는 이 경험을 교훈 삼아 스카길과의 일전을 위해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다.

 

1983 9, 대처는 브리티시스틸 민영화를 성공시킨 이안 맥그리거를 석탄공사 사장에 임명하면서 스카길에 선전포고를 했다. 맥그리거는 대대적인 탄광 폐쇄와 인력 구조 조정안을 발표했다. 스카길은 1984 3월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맞섰다. 대처-스카길의 운명을 건 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스카길이 전국 파업을 선언하면서 노조의 투표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불법이었다. 당시 미디어들도 이 파업을스카길의 파업이라고 규정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런떼법이 통했겠지만 대처 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울러, 철광노조와 운송노조 등도 스카길의 파업에 동조하지 않았다. 스카길의 독단적 스타일에 불만을 품은 몇몇 지역노조들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수개월째 계속되는 파업에 지친 초기의 파업참여자들도 속속 직장에 복귀하는 상태에 이르자 스카길은 파업 지원과 독려를 위한 결사대를 현장으로 내려 보낸다. 하지만 스카길에게 치명적인 사건이 터졌다. 1984 11월 두 결사대원이 다리 위에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출근하던 근로자들이 탄 택시에 큰 벽돌을 떨어뜨려 택시기사 데이비드 윌키(David Wilkie)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들끓기 시작했다. 여론이 노조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경찰과 노조 간의 극심한 대치가 계속됐다. 결국 스카길 등 핵심 노조간부들이 체포되기에 이른다. 1985 3, 스카길은 조건 없는 항복을 선언했다. 대처의 완승이었다. 2년 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승리에 이은 또 다른 승리였다.

 

대처는 스카길과의 전쟁을 치밀하게 연출했다. 탄광파업에 대비해 다량의 석탄을 발전소 야적장에 미리 비축했다. 긴급 수입 계획을 세우고 연료를 석유로 대체할 수 있는 체제도 만들어뒀다. 경찰에게는 특별 폭동진압훈련을 시켰으며 필요한 장비들도 갖추게 했다. 강성 CEO 이안 맥그리거를 석탄공사 사장에 임명한 것도 노조와의 전쟁을 위한 준비의 일부였다. 또한 대처는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설파하며 여론몰이에도 나섰다.

 

대처 드라마의 제1막이 노조세력을 굴복시키는 것이었다면 제2막은 국민을 부자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부자(富者)는 선()인가, ()인가?” 대처는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노력해 부를 이룬 것이 왜 나쁘냐는 것이다. 정부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단순한 메시지였다. 그녀에게는개인이 잘 살고 국가가 부강해 지는 것이 이상향이었다. 2막의 정책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1980년대 후반 영국의 활황은 이 정책에 기인한다. ‘국민 부자만들기프로젝트의 핵심은 효율적 정부 구축, 세금 삭감, 기업가 육성, 민영화로 대변된다. 특히 민영화(privatization)는 소위 대처리즘(Thatcherism)의 결정판이라고 평가받는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영국을 따라 민영화 대열에 동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도 대처는 치밀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우선 효율경영 전문가로 알려진 M&S(Marks & Spencer)백화점 CEO 출신의 데렉 레이너(Derek Rayner)를 효율성 고문으로 영입해 정부조직 효율화와 회의 줄이기 운동 등을 전개했다. 공공 지출을 줄여 정부 조직을 가볍게 했으며 세금을 내려 더 많은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이자를 올리고 통화를 엄격히 관리해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 창업지원프로그램들을 강화해 수많은 중소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했다. 민영화 과정에서 국민 누구나 주식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했다. 그 결과 웬만큼 돈을 가진 중산층이 급속히 증가하게 됐다. 이들이 대처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국에서는강남좌파프티브르주아(petit-bourgeois)’라고 하지만 영국에서 이 단어는 신흥 중산층을 일컫는다.

 

대처 드라마는 [+, +, +, +]로 이어지는 선순환 연쇄반응을 모태로 한다. [-, -, -, -]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치밀한 연출에 의해서 가능했다. 기업혁신에 있어서도 강한 리더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연출해 선순환 연쇄반응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강렬한 연기: “부드러움은 강인함의 토양에서 꽃 핀다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는 말은 딱딱함의 상징인 철과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여인이라는 말이 묘하게 대조를 이뤄 신선한 충격을 준다. 최근의 리더십 연구를 보면 여성이 강한 행동을 보일 때 효과가 더 높다. 이것은대조효과(contrast effect)’ 때문이다. 얌전한 사람이 크게 화를 낼 때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며 타이거 우즈 같은 완벽한 프로 골퍼가 뒤땅 치는 샷을 하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여성 정치인 대처는 드라마 속에서 항상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대조효과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새벽2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6시가 되면 기상한다. 휴가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말은 직설적이고 적을 공격할 때는 거침없이 내뱉는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관용이란 말은 그녀의 사전엔 없다. 그녀의 이런 강렬한 연기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후 병사들에 둘러싸여 손을 흔드는 사진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1981년 그녀의 새로운 정책에 저항해 폭동이 일어났을 때 마음 약한 온건파 각료들(이들을 ‘wets’라고 부른다)이 타협할 것을 건의했다. 언론도 사회주의 가치로의 U-턴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녀는 강렬한 한마디로 매듭지었다.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세요. 여자는 돌아가지 않습니다.(You turn [U-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

 

그녀의 사진들 중에는 휴가 때 찍은 사진을 찾기 힘들다. 누군가를 꾸짖듯이 연설하는 모습, 지지자들을 향해 팔을 쳐들고 있는 모습, 여권사진과 같은 증명사진들,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심각한 모습들뿐이다. 그녀는 일 중독자라고 할 만큼 일에만 묻혀 산 총리였다. 천성적으로 남성성의 강렬한 연기력을 타고났다.

 

그녀의 강렬한 연기는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IRA(북아일랜드 독립 테러조직) 지도자 보비 샌즈(Bobby Sands)의 단식사망사건에서 극에 달한다. 1981 31, 테러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이던 보비 샌즈는 일반 범죄자가 아니라 정치범 자격을 요구하면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범죄는 범죄고 범죄다(Crime is crime is crime)”라는 말로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정리했다. 샌즈는 결국 단식 66일 만에 사망했다. 아홉 명의 동료 복역자들도 연이어 단식 중 사망했다. 영국에서는 물론 전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IRA는 대처를 노렸다. 1984 1012일 새벽, 브라이튼호텔에서 보수당 전당대회 연설을 준비하고 있던 중 욕실에서 폭탄이 터졌다. 대처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다섯 명이 죽고 한 각료의 아내가 사망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날 대처는 준비한 연설을 강행했다. 목숨까지 거는 강한 이미지를 연출해내는 효과를 거뒀다.

 

대처의 강렬한 연기는 다른 한편에서 강렬한 패션을 구사함으로써 더욱 돋보였다. 어깨심을 넣은 각진 정장, 파란색 스커트, 30년 넘게 애용한 검정색 아스프레이 핸드백, 화려한 모자, 그리고 짙은 화장 등은 그녀의 연기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대처는 항상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연기에 강했다. 여성이라는 부드러움의 배경화면이 그녀의 연기를 더욱 부각시켰다. 부드러움은 강인함의 토양에서 멋진 꽃을 피워낸다. 기업혁신을 추구하는 리더도 대조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연기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대단원: “성공한 리더의 상당수는 휴브리스의 노예가 되기 쉽다

 

주인공 대처가 조연들의 반란으로 쫓겨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그녀를 몰아낸 조연들은 그녀와 함께 오랜 기간 동고동락했던 마이클 헤슬타인, 제프리 하우와 같은 충신들이었다. 특히 제프리 하우는 1979년 초대 내각에 들어와 마지막 순간까지 각료로서 대처의 드라마를 이끌어온 인물이었다. 그보다 먼저 장관직을 사직했던 헤슬타인은 대처에 맞서 당권에 도전했다. 결국 메이저(Major)가 당권을 거머쥐면서 대처의 뒤를 이어 영국수상에 취임한다. 내각제에서는 의석 수를 많이 가진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를 맡는다. 총리를 맡고 있는 여당 당수가 당수직을 빼앗기면서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된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116개월여 동안 머물렀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을 떠나면서 대처는 눈물을 흘렸다.

 

반란의 원인은 대처의 휴브리스(hubris) 때문이었다. 휴브리스란 성공한 리더의 오만과 독선을 의미한다. 휴브리스는 응징을 뜻하는 네메시스(nemesis)를 동반한다. , 휴브리스에 사로잡힌 잘난 리더는 자기보다 못난 추종자들을 심하게 나무라든가 비하하는 응징을 가하곤 한다.

 

대처도 성공을 거듭하면서 심각한 휴브리스-네메시스의 수렁에 빠졌다. 회의를 하면 대부분 혼자서 얘기했고 각료들을 비하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처가 제프리 하우를 심하게 응징한 예다. “회의 일정 하나도 제대로 못 쓰니어디 아파요?” “이렇게밖에 못할 바엔 병원에 가서 쉬세요.”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 250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유가족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직접 위로의 편지를 쓰던 대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처의 서거소식을 접한 제프리 하우는그녀는 훌륭한 리더였다. 그녀가 탁월한 성취로 기억되기보다는 말년에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강요했던 일들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며 애도했다.

 

TINA(There Is No Alternative).” 대처가 “(자기 의견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밀고 나갈 때 즐겨 썼던 표현이다. 기업 최고경영자의 태도나 말에서 대처의 신념에 찬 이미지가 연상될 때 휴브리스를 의심해 봐야 한다. ‘가치혁명드라마는같이 혁명일 때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백기복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 baik@kookmin.ac.kr

필자는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제임스메디슨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인사조직학회장, 리더십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윤리경영학회장을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