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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Study

철의 여인이 쓴 ‘가치혁명’ 드라마

백기복 | 128호 (2013년 5월 Issue 1)

 

 

한 리더의 두 결말

 

대처는 116개월간 수상에 재직하는 동안 영국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 핵심에는가치혁명이 있었다. 나눠 먹기식 사회주의 가치관을 타파하고 각 개인이 스스로를 주도하는 자본주의 가치관을 회복시켰다. 국가와 사회의 이념이 바뀌고 제도가 혁파됐을 뿐 아니라 영국민 개인의 삶의 기준과 방식에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노조의 바위틈에서중산층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기업이 힘을 얻고 국가는 강해졌다.

 

하지만 혁명은 항상 저항을 부른다. 경제는 좋아졌지만 실업이 증가했다. 노조는 분쇄됐지만 대처 카리스마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다. 영국은 강해졌지만 북아일랜드 독립주의자들의 테러는 강도를 더해갔다.

 

그녀의 죽음은 혁명과 반혁명의 가치충돌을 재현했다. 한쪽에서는 그녀의 종말을 깊이 애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환호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채웠다. 2002년 영국 의회는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살아 있는 주인공 대처의 동상을 세웠다. 의회가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준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전례 없는 찬사였다. 하지만 5개월 후 대처 동상의 머리는 무참히 부셔졌다. 전례가 없는 혐오였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연상케 하는한 리더의 두 결말이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기록된 그녀의 서거에 대한 글들도 가치 충돌을 보여준다. 역사가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대처는 영국을 강하고 자랑스러우며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가수이자 사회활동가인 톰 로빈슨(Tom Robinson)나는 그녀가 국민의 고통에 무자비할 정도로 무관심했던 것을 개탄한다.… 그녀는 인간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를 더 우위에 뒀다고 평했다.

 

마거릿 대처의 일생을 조망하면서 20세기 아랍 독립을 위해 싸운 영국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의 일대기를 읽는 착각에 빠졌다. 불가능할 것 같은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해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얻어내는 초인적 열정이 너무도 닮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아랍민족들을 통합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는 로렌스의 여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 드라마다.

 

대처의 여정도 한 편의 혁명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쌍둥이 엄마 대처가금녀의 집이나 다름없던 영국의회에 처음 진출했을 때 그녀가 보수당을 이끄는 당수가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수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수상이 된 후에도 막강한 노조위원장 아서 스카길(Arthur Scargill)을 제압해 탄광노조를 굴복시키며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노회한 민주당의 정적들을 상대로 3선 연임까지 가리라고 내다봤던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해냈다.

 

비록 대처 드라마가 정치를 소재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주도한가치혁명의 과정과 내용은 오늘날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나 관리자들에게도 큰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각본-연출-연기-대단원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구조를 빌려 대처리더십의가치혁명을 감상해보자.

 

마거릿 힐다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여남작 대처(Baroness Thatcher) 2013 48일 런던의 리츠호텔(The Ritz Hotel)에서 심장마비로 서거했다. 1975 2월 야당인 보수당 당수에 올랐다가 19795월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영국 수상에 오른 후 1990 1128일까지 내리 3선을 하며 영국의 가치혁명을 이끈철의 여인(the Iron Lady)’이었다. 1925 1013일생으로 향년 87. 옥스퍼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세무 전문 변호사 자격증도 땄다. 1959년 핀치리(Finchley) 선거구에서 보수당(토리당, Tory) 후보로 처음 하원에 진출한 후, 1961(36)부터 3년간 연금 및 국민보험부 차관을 지냈으며 1970∼1974년 에드워드 히스(Edward Heath) 내각에서 교육과학부 장관을 맡았다. 야당과의 선거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수로 있는 당의 내부 투표에 의해 수상직을 박탈당한 영국 역사상 최초의 수상이기도 하다. 사진은 1989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 참가한 대처 당시 총리가 환호하는 청중을 향해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가 64세로 그녀의 전성기였다.

 

담대한 각본: “가치관이 달라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대처 드라마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영국 사회를 알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약 30년 동안 영국은 사회주의 국가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져줬다. 사회주의의 개념논리는 <그림 1>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국가는 의료, 교육, 일자리, 주택, 공공서비스, 전기/가스 유틸리티 등 개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무료로, 또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 이들의 공급을 확실히 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필요한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면서 가격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래도 재원이 더 필요하므로 개인 소득으로부터 최고 83%까지 세금으로 거둬들인다. 국민 모두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보장하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직접 돈을 지급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와 노동조합 간의 합의에 의해서 모든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사회주의는 잘만 돌아간다면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고국민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국가에 요구하며노동조합이 국정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고공기업들은 채산성 악화로 계속 적자를 내도 종업원들을 해고하거나 정리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성장은 정체됐고 노동조합이 법을 어기고 파업을 해도 정부는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정치인들은 문제해결에 나섰다가 번번이 노동자들의 표를 잃어 정권을 빼앗기곤 했다. 급기야 1976년 영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다.

 

대처 드라마의 각본은 이 사회주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담대한 것이었다. 1979년 파업에 의한 조업중단 건수 4583(한국 2011년 약 60), 근로손실 일수 2900만 일(한국 2011년 약 41만 일)에 이르렀다. 대처가 선거를 치르기 직전인 1979 1월은 소위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22일에는 1926년 이래 최대의 전국적 파업이 시작됐다. 런던 시내는 쓰레기가 쌓여 냄새가 진동하고 쥐들의 놀이터가 됐다. 심지어 무덤 파는 사람들(gravediggers)의 불법 파업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묻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앰뷸런스가 멈췄고, 응급실 운영이 중단됐으며, 철도도 멈췄다. 영국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처 드라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담대하고 새로운 각본을 제시했다. 그녀가 주창한 시스템은

①사회보장을 줄이고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해 서로 경쟁하게 하며국민 개인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장을 찾도록 하고세금을 줄여 개인의 수익을 높여주며노동조합 세력을 분쇄함으로써 국가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림 2) 정부가 모든 것을 돌봐주는 사회주의 시스템은 개인으로 하여금 정부에 의존케 하는 가치관을 갖게 했으며 기업은 높은 생산성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경쟁력을 높이려 하기보다는 국가의 고용의무를 다하느라고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처의 가치혁명은 이것을 180도 뒤집는 것이었다. 개인에게는 부()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고 기업에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해 소위영국병(英國病)’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겠다는 처방이었다.

 

물론 대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윌슨(Wilson)이나 히스(Heath)와 같은 전임 총리들도 이런 사상을 가지고 노동조합에 도전했다. 하지만 모두 정권을 빼앗기든가 노동자들과 타협하며 물러섬으로써 실패했다.

 

대처의 다른 점은 새로운 자본주의 각본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의 욕망과 경쟁이 나라를 살린다는 새로운 가치관은 현상의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해법을 추구하게 했다. 영국 사회의 근본을 바꾸는 큰 그림, 혁신적 해법이었다. 그녀가 사회주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면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수당 내에도 타협주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처는 누구에게도 정치적 빚이 없는아웃사이더였기에 가치혁명이 가능했다.

 

대처의 리더십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외계인이라야 큰 그림, 근본적 변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내집단(In-Group) 구성원에 의한 경영혁신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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