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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 일자리도 경영 전략이다.

박용 | 121호 (2013년 1월 Issue 2)

2003 7월 핀란드 헬싱키를 방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노키아 본사를 찾아 요르마 올릴라 회장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10년 만에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변신한 노키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칭찬했던 노키아는 10년이 채 못 돼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선두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주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본사 매각까지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노키아의 급격한 추락은 아무리 잘나가도 경영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곱씹게 만든다.

 

노키아의 몰락과 한국 기업의 약진에 대해서는 최근 많은 분석과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핀란드 현지의 분석이 가장 눈길을 끈다. 핀란드 경영 컨설팅회사인 레달의 컨설턴트들은 2011 10 1주일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 기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퍼 스티니우스 레달 대표는한국 기업들은 핀란드나 서구 기업보다 강력한 리더십과 장기 비전을 중시한다. 내부 토론이나 분석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며 일단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긴다”고 분석했다. 그는 핀란드와 서구 기업이 한국 기업에서 배워야 할 점으로안정적이고 장기적인 비전’ ‘성장에 대한 욕망’ ‘강력한 성과 중시 문화’ ‘기업가정신을 꼽았다.

 

남보다 멀리 내다보고 투자하며 빠르게 움직이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한국 기업의 DNA는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확실히 진가를 발휘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는 올해는 한국 기업 특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고려해야 할 정치경제적 전략 변수가 한층 더 복잡해질 것이다.

 

<로이터>의 칼럼리스트이자 <파이낸셜타임스>의 미국판 에디터로 일하는 크리스티아 프리랜드는 “2013년에는 정치의 복수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의 실패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식 경제민주화가 대중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앞으로 국가 개입의 폭이 넓어지고 기업에 대한 요구도 많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며 수동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오히려 정치적 리스크를 키우고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짙다.

 

페드로 아르볼레다 모니터그룹 파트너와 스티븐 웨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정치적 압력과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대안으로일자리를 꼽았다. 전통적으로 기업 리더들은 일자리 창출을 전략의 핵심요소로 고려하지 않았으며 일자리를 성과 지표로 삼지도 않았으나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고 일자리를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자리 경영 전략의 벤치마킹 사례로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의 녹색 경영을 꼽았다. 월마트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녹색경영의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측정지표를 마련했다. 월마트식 녹색경영은 환경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전략적 효과를 거뒀다.

 

눈치 빠른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은 월마트식 선제적 경영전략을 응용해 일자리를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경영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예를 들어, 록히드 마틴은 퇴역 군인 채용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했다. 또 주요 고객인 국방부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AMD의 반도체 자회사인 글로벌파운드리스는 미국 뉴욕주에 6500여 명을 채용하는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연방정부, 주정부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들은앞으로 수년간은 일자리를 중시하는정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근 통화정책을 실업률과 연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 길이 옳다면 남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신사업 개발, 인적자원 관리 및 구조조정, 대관 업무 등의 경영 프로세스를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전략 목표와 성과지표도 개발해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뉴 노멀 시대생존 기업은 일자리가 말해줄지 모른다.

 

필자는 동아일보 편집국 이슈부, 사회1, 경제부, 산업부와 경영전략실, 미래전략연구소 기자를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경제대 경영학 석사(EMBA) 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글로벌 서비스경영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머크웨이> <선진 교육을 벤치마킹하라> <세계 최강 미니 기업> <입사 선호 40대 한국 기업> 등의 공저와 <타이거 매니지먼트(공역)> 등의 책을 냈다.

 

박용 동아일보 논설위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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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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