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창의적 獨병정 1명, 佛철벽에 구멍뚫다

103호 (2012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1940년 독일군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기갑부대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프랑스의 방어선을 일거에 돌파하고 단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는 20세기 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승리였고 독일군을 ‘공포의 군대’로 만든 개가였다. 하지만 이 전격전은 너무나 대담한 모험이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당시 독일군의 전격전은 무모한 계획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거나 프랑스군 지휘부의 경직성과 판단 착오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될 정도다. 그러나 다시 반대로 생각하면 독일군의 놀라운 작전과 선전이 프랑스군의 두뇌를 혼돈에 빠뜨린 원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프랑스군이 국력을 기울여 설치한 요새들과 방어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붕괴되고 돌파됐기 때문에 프랑스의 대응은 더더욱 무능해 보였다.
 
1940년 독일군의 스당 돌파
그 속전속결의 대표적 사례가 1940년 5월에 감행된 스당(Sedan) 돌파였다. 프랑스군의 예상을 깨고 아르덴(Ardennes) 숲을 통과한 독일군은 신속하게 스당을 돌파해야만 전격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었다. 스당 돌파가 저지되면 전 지역에서 진군이 저지돼 전격전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당 돌파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1870년 보불전쟁 때 프랑스군 주력 10만이 붕괴하고 독일에 항복했던 장소가 스당이었다. 프랑스에는 치욕과 동의어가 된 곳이라 프랑스군은 이곳을 요새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독일이 스당을 공격하려면 뫼즈강(Meuse)을 건너야 했는데 프랑스군은 건너편 산지에 콘크리트 요새를 구축, 도하 지점을 빈틈없이 감제했다.
 
독일군은 뫼즈강을 건너기는커녕 강까지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강까지 이르는 길은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800m 폭의 개활지였다. 스당 돌파를 맡은 독일군 부대는 1기갑사단과 10기갑사단이었는데 개활지 통과는 10기갑사단의 임무였다. 그러나 탱크도 소용없었다. 프랑스군 요새에 거치한 중포는 독일군 탱크를 가볍게 파괴할 수 있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독일군은 여러 사정으로 포병 지원이 지체돼 충분한 사전 포격과 포격 지원이 불가능했다. 공군도 다른 지역 전투에 동원됐다. 물론 공군 지원이 있다고 해도 별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폭격은 놀랄 정도로 부정확했고 요새를 파괴할 파워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독일군은 중폭격기가 없어서 몇 발 떨어뜨리지도 못했다. 유일한 효과는 한 15분 정도 병사들을 공황상태로 멍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요새 안에 있는 병사들은 그 정도로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단 15분 만에 개활지를 지나 강폭 70m의 강을 도하할 수는 없었다. 독일군에게 남은 유일한 전술은 살과 뼈의 전투, 즉 보병의 육탄공격이었다. 소대 단위로 공병 특공부대를 편성하고 콘크리트 요새를 파괴하는 훈련을 했다.
 
도강(渡江)에 성공한 유일한 특공부대
공격이 개시됐다. 특공부대는 오늘날 해병대 훈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그대로 분대별로 사각형의 소형 고무보트를 들고 개활지를 달렸다. 프랑스군이 그걸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공격 1파는 강가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인해전술과 다름없이 2파, 3파 공세를 계속한 끝에 간신히 몇 개 분대가 강가에 도착했다. 그들이 강으로 뛰어들자 중기관총이 수면을 쓸었다. 1척에 3명이 타게 돼 있는 고무보트는 방탄이 전혀 되지 않았고 총알을 막을 차폐물도 전혀 없었다. 살아서 강을 건넌 사람은 루바르트 중사팀뿐이었다.
 
루바르트는 보트에서 병사 한 명의 어깨에 기관총을 걸치고 프랑스군의 사격진지에 기총소사를 퍼부어 사격을 제압하면서 도하에 성공했다. 그리고 주변의 보루 1개를 소탕함으로써 간신히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그 덕에 일부 병사들이 살아서 강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도 도강에 성공한 병사들의 총 인원은 10명밖에 되지 않았다. 루바르트 중사는 처참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접근 가능한 벙커를 찾았다. 소대는 원래 폭파조인 공병과 엄호를 위한 보병조로 구성됐는데 생존자들을 적당히 반으로 나눈 후 목표를 향해 포복전진을 시작했다.
 
첫 번 벙커에 접근, 폭약으로 벙커의 벽에 구멍을 낸 후 뚫린 구멍 속으로 수류탄을 던져 넣어 벙커를 소탕했다. 성공은 했지만 더 이상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적었다. 루바르트는 힘들게 강 건너로 연락을 해 벙커 파괴로 생긴 사각을 이용해 지원 병력이 건너오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무사히 건너온 사람은 공병 4명뿐이었다.
 
정석을 비껴간 대담한 공격
루바르트를 포함한 15명의 독일 병사들은 처음 계획했던 작전계획을 무시한다. 그리고 철길, 둑 등 은폐 가능한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해 재빨리 움직이며 접근 가능한 벙커는 무조건 공격하기로 했다. 정석대로라면 1선의 벙커들을 모두 폭파한 후 2선의 벙커를 순차적으로 파괴해야 했다. 그러나 루바르트는 1선, 2선 벙커 상관없이 일단 사각지대를 찾아낸 후 그 사각을 이용해 무조건 벙커로 접근했다. 그러다 보니 2선의 벙커 2개를 탈취하게 됐고 자기 부대의 작전구역이 아닌 측방의 1기갑 사단의 구역으로까지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루바르트 일행은 하루 동안 무려 7개의 벙커를 파괴했다. 루바르트 중사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이 임무를 수행해 냈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지만 루바르트 일행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그가 파괴한 벙커들은 하나같이 독일군의 진격을 가로막고 있던 결정적 위치에 있었다. 결국 그가 뚫어놓은 사각을 이용해 10기갑사단은 돌파점을 찾아 도강에 성공했다.
 
1기갑사단은 더 큰 덕을 봤다. 1기갑사단은 10기갑사단보다 쉽게 뫼즈강을 건넜지만 선두의 2개 기갑대대가 프랑스군 요새에 막혀 진격이 완전히 저지됐다. 작전 실패라고 좌절할 때쯤 눈앞에서 난데없이 프랑스 벙커가 날아가 버렸다. 루바르트 중사팀의 무작위 벙커 공격 덕택이었다. 전차대대는 즉시 진격을 재개해 프랑스군의 2선 방어선을 창으로 찌르듯이 돌파하고 스당 방어군의 후미로 돌아 들어갔다. 몇 군데 도하와 돌파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잘 싸우고 사기도 드높았던 스당 방어군은 독일군 탱크들이 후방에서 나타나자 기겁을 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독일군은 계획보다 더 빨리 스당을 돌파했고 독일군 스스로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던 전격전이 궤도에 오르게 됐다. 스당 돌파에 기여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루바르트 중사는 이후 일명 ‘블루 맥스’라고 불리는 독일군 최고 훈장인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고 소위로 특진했다.
 
임무형 전술의 본질
루바르트의 성공은 독일군의 독특한 조직운영법인 임무형 전술의 개가였다. 오늘날 독일병정이라고 하면 기계처럼 정해진 규칙을 융통성 없이 수행하는 병사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하지만 이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낸 과장이다. 실제 독일군은 일반인들의 통념과는 정반대로 융통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확보한 군대였다. 그리고 이것이 열세의 병력으로 전 세계 강대국과 일전을 벌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임무형 전술이란 부대마다 맡은 바 목표만을 지정하고 수단과 방법은 자율에 맡기는 방법이다. 너무나 탐스럽게 열렸지만 독이 든 과실이라고 할까?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큰 조직에서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방법이기도 하다.누구나 금방 임무한계와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전체의 조직력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 것이다.
 
하지만 상하 간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이나 하급지휘관의 과잉 행동에 따른 전체 전략의 차질 등의 문제는 사실 경험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독일군이 그랬다. 그들은 사전 각본이나 시나리오 없이 훈련을 시행했다. 사고의 우려가 높은 방법이지만 이를 통해 임무형 전술의 운영법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숙달, 결국 실전에서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여기에 개인보다는 전체 조직을 생각하는 충성심,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한꺼번에 제압하기 위해선 몇 배의 효율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절박감, 그리고 임무형 전술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믿음에 기초해 자칫 발생할 수도 있는 여러 위험과 단점들을 극복해 냈다.
 
엘리트를 허용하는 문화
임무형 전술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엘리트를 허용하는 것이다. 전쟁은 예기치 못한 상황의 연속이다. 공격선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황이 만들어 내는 천재, 상황과 적성에 맞는 누군가가 몇 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주변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일수록 누군가의 튀는 행동이 조직의 단결을 저해하고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판단한다. 이건 큰 오류다. 10명이 모여 10명의 힘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조직이 아니다. 몇 배의 힘을 내도록 하는 게 조직력의 본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적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한 순간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조직력을 엄밀하고 기계적인 규율로 달성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하향평준화일 뿐이다.
 
인사관리, 조직관리의 성공비결은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업무와는 무관한 인위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판별하고, 설사 적절한 인재를 찾았다고 해도 배치만 해서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특정 순간,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돼야 하며 구성원들이 그것을 도와주는 여건이 함께 조성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엘리트주의에 심한 거부감이 있다. 그것은 엘리트를 특권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과거 역사가 그런 오류를 범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엘리트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엘리트의 진정한 가치와 활용법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구성원 간 위화감도 교육과 계몽을 통해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모든 면에 뛰어난 엘리트는 없다. 적성과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히려 엘리트를 허용하는 조직문화와 활동방식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자신이 엘리트가 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열어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하향 평준화보다는 엘리트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조직문화를 선호한다. 그것이 임무형 전술의 본질이자 최대 장점이다. 루바르트가 미리 짜여진 사전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였다면 단 1개의 벙커도 파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4호 세계관의 세계 2021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