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일본 경제의 피해는 1995년 한신 대지진의 피해 규모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진도가 9.0에 이른데다 대규모 쓰나미까지 동반하면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이미 2만 명을 넘어섰다. 피해 규모 역시 적게는 5조엔, 많게는 26조 엔에 이를 것이란 분석1
이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진 대비 인프라를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 이러한 천문학적 수준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기업의 생존 전략 중의 하나인 영업연속성관리(BCM·Business Continuity Management)2
전략의 실효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BCM은 1960년대 일부 IT 데이터에 대한 백업에서부터 실무에 도입되기 시작해 2001년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그 결과 대체업무시설, IT 백업센터, 핵심업무복구계획, 기업휴지보험 등을 도입하고 BCM 문화를 일상적인 경영활동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정기적인 훈련이나 교육을 실시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실제로 현대의 고도화되고 글로벌화된 경제 환경 하에서 기업의 업무 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Meta Group의 연구 결과3
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핵심 업무가 중단됐을 경우 시간당 약 140만 달러(약 17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업무 중단 시 심각한 재무적 손실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허용 가능한 복구 시간 내에 일상적인 업무활동으로 복귀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BCM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물리적 인프라 확보 위주의 BCM 전략의 한계
기업들이 BCM 전략을 도입하고 각종 대체 시설, 인적 대응체계, 관련 매뉴얼 등으로 대변되는 외형적 인프라를 확충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실행력 부족과 관련한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BCM 전략에 대한 논의가 재무적 손실 규모를 축소·통제할 수 있는 내외부의 물리적 인프라(대체업무시설 확보, IT 백업센터 구축, 공급망(Supply Chain)의 안정성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 인프라 확보는 기업 BCM 전략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실행력 있는 BCM 체제를 확보하려면 물리적인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휴먼 리질리언스(Human Resilience)를 확보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휴먼 리질리언스는 심리적인 안전성을 바탕으로 인적 자원 측면에서 BCM 전략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업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무리 완벽한 인프라와 영업 연속성 전략 및 계획을 보유하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BCM 전략 도입 시 인적자원 측면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에서는 인력의 1차적인 안전 및 대체업무인력 확보, BCM 계획에 대한 교육 등이 형식적인 부분에 편중되고 있다.
실제로 한 인적자원 관리 전문 연구기관4
이 BCM을 도입한 기업의 HR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중 18%만이 BCM 구축 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답했다. 또 Forrester5
가 북미와 유럽의 BCM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BCM 체계를 도입한 기업 중 25%만이 인적 측면에서의 BCM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응답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BCM 전략이 그동안 외부적 규제 준수나 일시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타율적으로 추진되면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BCM을 구동시키기 위한 핵심 요소인 인적자원 영역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최근 BCM을 도입한 국내 금융기관에서도 인적 자원 부분에 대한 BCM 전략은 내부적인 일방향 의사소통(위기상황전파위주), 대체업무시설로의 인력 이동, 파업 전략, 대체업무인력 확보 등의 ‘물리적’인 측면에 집중돼 진행됐다.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 조사된 통계자료6
에 따르면 BCM 도입 후 운영을 위해서 관련 조직을 별도로 구성하거나(24%) 기존 리스크 관리 조직(25%) 또는 IT 조직(26%)에서 BCM을 운영한다. 더욱이 여기서 HR 부서와의 유기적인 협조 관계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BCM 전략 도입 시 HR 부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도입 이후 운영 시에도 BCM 관리는 HR 조직과는 별개로(Silo) 관리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실행력 확보를 위한 인적자원 측면에서의 복구 전략이 전사적인 BCM 전략과 융합되지 못하고 있다.
BCM 관점에서 기업은 생명체다. 기업의 연속성 전략은 내외부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실행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의 영업연속성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은 물리적 인프라와 휴먼 리질리언스다. 두 요소 간 불균형이 생기면 그만큼 대응력이 낮아진다.
심리학적인 접근: “휴먼 리질리언스를 확보하라”
그렇다면 그동안의 BCM 전략에서 인적 자원 부분에 대한 균형된 관점을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BCM 구현 단계에서 기업 복구능력(Cor-porate Resilience)의 대상을 물리적 측면만이 아닌 심리적(Psychological) 측면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비상 상황에서 모든 직원이 동요하지 않고 일관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치의식을 가질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또 위기 상황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다. 비상 상황 하에서 사전에 계획된 바대로 맡은 바 임무를 일관성 있게 완수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으로 가정한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가치있다고 여기고, 모든 일의 우선 순위도 나와 동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는 오산이다. 특히 다양한 인격체가 모여 있는 기업 집단에서는 평상 시 영업 활동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심리적 다양성이 내부적으로 일관된 행동 양식이 필요한 위급 상황에서는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7
의 동기부여이론에서 인간의 욕구는 기본욕구(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에서부터 상위욕구(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까지 5단계로 이뤄져 있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다음 단계의 상위욕구를 채우려 하므로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안정성이 상위 욕구 달성을 위한 기본적인 동인을 제공한다.
BCM 전략에서도 비상 상황 시 임직원들은 본인과 주변인들의 1차적인 안전이 기본적으로 확보되지 않아 심리적인 안정성을 가지지 못하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에 상관 없이 사전에 약속됐던 행동 양식이나 계획을 따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비상시 일관성 있는 효율적 대응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본적인 욕구(개인과 가족의 안전)를 바탕으로 하는 심리학적인 안전망(Psychological Safety Net)을 확보하지 않으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BCM의 실행력을 논하는 것은 사상누각과 다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 직원 개인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관련이 있는 가족, 지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 전략을 BCM 구현 시 반영해야 한다. 또 급여, 위험 수당 등의 지속적인 지급을 통해 비상 상황에서 동기부여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BCM 전략 구축 이후 운영 시에는 구축 시 고려했던 심리적 안전망에 대한 교육/훈련, 양방향 의사 소통을 통한 운영 상의 개선, 비상 상황에서의 리더십(Contingency Leadership) 확보 등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