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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패러다임 전환

사람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다

양혁승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세계적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 위기로 전이되면서 여기저기서 감원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 절감이 절실한 상황에서 감원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감원 카드가 해고 대상자에게는 물론 해당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루즈-루즈(lose-lose)게임’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불황기에 인력 운영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인력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위기를 곧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는 인력 운영의 패러다임과 인사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호기(好機)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을 무기로 향후 무한경쟁의 전장(戰場)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누릴 것이다.
 
기업의 핵심 자원은 사람
종전의 인력 운영 패러다임은 사람을 비용(cost)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로 가동률을 줄여야 할 상황이 오면 일차적으로 인력과 교육훈련비를 축소, 비용을 절감하는 데 주력했다. 사실 비용 절감의 효과 측면에서 보면 인건비가 변동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므로 인건비를 줄이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인력 규모와 교육훈련에 드는 비용을 줄이더라도 경기 침체기 동안에는 당장 눈에 띄는 부작용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대대적으로 감원을 단행할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부터 조직이 곪아 들어간다. 갑작스런 감원에 따른 업무 공백은 말할 것도 없으며, 대대적인 정리 해고의 칼바람을 피해 회사에 남게 된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저하된다. 그들 사이에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떨어짐에 따라 회사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향후 상황이 어려워지면 회사가 언제라도 자신들을 내칠 것이라는 불신이 커져 자기보신(自己保身)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갑작스럽게 늘어난 업무 과부하로 직원들의 에너지와 노동력은 빠르게 마모된다. 또 직원들의 역량 계발 부족으로 인해 급변하는 기술 및 지식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해당 기업이 시장경쟁에서 낙오하는 사태도 올 수 있다.
 
반면 새로운 인력 운영 패러다임은 사람을 자산(asset)으로 인식한다.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경쟁력의 원천은 뛰어난 역량과 일에 대한 열정 및 회사에 대한 헌신으로 무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원기반이론(resource-based view)을 정리한 제이 바니 교수는 무한경쟁시대에 지속 가능한 비교경쟁우위의 원천은 희소성, 가치 창출성, 비대체성, 비모방성 등의 특성을 갖춘 조직 내부 자원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인적자원이야말로 가장 주목해야 할 전략적 자산이라고 언급했다.
 
사람을 자산으로 여기는 기업들은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훈련 투자에 적극적이며, 직원들의 마음에 헌신과 열정의 불을 붙이는 데 높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기업들은 경기 침체기에도 인력 구조조정을 1차적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기업이 해고 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에서도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고헌신(高獻身) 인사시스템을 채택해 자발적으로 무해고 정책(no layoff policy)을 실천하고 있다.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회사의 귀중한 자산을 잃고, 남아 있는 직원들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공동으로 투자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NUMMI라는 자동차 회사는 노사 협력을 근간으로 뛰어난 생산성과 품질을 확보한 성공적인 경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가 위협을 받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정리 해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정리 해고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면 반드시 외주 계약을 우선적으로 철회하고 고위 경영진의 연봉을 삭감하는 조치를 먼저 실시한다. 이후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에 정리 해고를 고려할 수 있다고 노사협약서에 명시하고 있다.
 
불황기는 여유 인력의 역량 키울 기회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들은 불황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새로운 인력 운영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기업은 통상 무해고 정책을 고수하면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유급 휴가, 업무 재배치 등을 통해 인력 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더욱 적극적으로는 업무 수행과 역량 계발 간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평생학습 체제 구축, 특별 혁신 과제 추진팀 운용 등으로 조직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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