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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마이클 프렌티스 셰필드대 동아시아학부 교수

“한국 조직은 ‘구별’과 ‘참여’ 사이 긴장감
초기업 이상 실현 위해 토론 활성화를”

이규열 | 376호 (2023년 0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류학자인 마이클 프렌티스 셰필드대 교수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약 1년간 한국 그룹사 HR팀에서 일하며 한국 조직을 인류학적 관점으로 연구했다. 그는 한국에서 대기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상당하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승진하는 것이 삶의 지침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대기업의 영향력이 줄어든 미국, 영국 등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는 이처럼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와 개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초기업(Supercorporate)’이라 정의했다. 아울러 한국 조직에는 실력, 성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구별과 동등한 참여를 원하는 목소리가 혼재됐다고 진단한다. HR팀에는 가시화되지 않는 수준에서 구별을 유지하면서도 탈위계를 위한 참여를 장려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2014년, 미국에서 온 한 학자가 ‘K- 직장생활’ 한복판에 몸소 뛰어들었다. 한국의 조직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마이클 프렌티스(Michael Prentice) 셰필드대 교수다. 그는 연구를 위해 한국의 대형 그룹사인 상도(가명)의 지주사 HR팀에서 실제로 근무했다. 다른 팀원들과 사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직함을 개편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실무적인 업무도 맡아 진행했다.

1년간 한국의 조직 생활을 겪은 그는 올해 책 『초기업(Supercorporate)』1 을 냈다. 프렌티스 교수는 “한국에서 대기업은 경제적 가치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며 한국의 대기업을 책의 이름인 ‘초기업’이라 정의했다. 아울러 한국의 조직은 ‘구별(Distinction)’과 ‘참여(Participation)’가 혼재돼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합당한 인정과 모두가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조직에 동시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가 어쩌다 한국 조직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가 말하는 초기업, 구별과 참여 사이의 긴장은 무슨 뜻일까. DBR이 인류학적 관점에서 한국 조직을 연구한 프렌티스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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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부 시절에는 언어인류학과 이탈리아어를 이중 전공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한국이나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의 작은 브랜딩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한국의 대형 광고 에이전시와 일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종종 그들로부터 받는 문서는 형식적으로 간결하면서 내용적으로도 완결했다.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한국인들이 만든 문서는 마치 마법처럼 보였다. 당시가 2000년대 후반이었는데 미국에서도 삼성, 현대에 주목하기 시작할 때였다. 일을 하다 인류학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국 대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반해 한국 조직의 역학에 대해서는 학계에 알려진 게 많지 않아 연구 주제로 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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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적 관점에서 조직을 연구한다는 게 흥미롭다. 경영학적 관점에서의 연구와는 어떻게 다른가?

인류학은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사회학과 함께 5대 핵심 사회과학 중 하나이다. 인류학은 전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연구한다. 주로 각 문화에서 일, 죽음, 가족, 사랑, 부, 일 등의 인간의 삶과 연관된 주요 요인을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는지 탐구한다. 전통적으로는 작은 부족이나 섬의 주민 등 독특한 문화를 가진 사회에 더 주목해왔던 학문이지만 최근에는 도시 환경, 온라인 커뮤니티 등 현대적인 그룹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모든 인류학자는 현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설문지 등 구조화된 연구 방법보다는 그 사회를 직접 보고 참여하는 참여관찰법(Participation Observation Method)을 더 선호한다.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민속지학적(Ethnographic) 접근이라고도 많이 부르는 듯한데 이는 비교적 오래된 용어이다.

따라서 한국의 조직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 내 프로젝트에도 이론이나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검증하기보다는 회사에서 1년간 HR 관리자들과 함께하며 기업 조직의 임직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는지 살펴보는 방식을 택했다.

경영학적 연구와의 공통점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례 연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회사 내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며 다양한 관점을 조망한다. 차이가 있다면 인류학적 연구는 규범적(Prescriptive) 관점보다는 기술적(Descriptive) 관점에 더 초점을 맞춘다. 즉,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인지’에 더 흥미를 갖는다. 아울러 회사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사회에서 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상도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년간 내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업이 있는지 수소문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기업에서 나 같은 외부 연구자를 기업 내로 맞아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도와의 인연은 상도의 임원인 한 동문의 소개로 시작됐고 다행히 나의 의도를 이해해줘서 가능했다.

상도는 어떤 기업인가?

미국에서 한국 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재벌’을 떠올린다. 재벌에 대한 전형(Stereotype)이 형성돼 만연하게 퍼져 있다. 나는 철강 기업인 상도에서 일하며 이 전형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상도에는 여러 역학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소위 말하는 재벌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 개인이 상도를 완전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10여 개의 계열사, 팀, 직원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각 계열사의 매출은 1조 원부터 100억 원 수준까지 천차만별이다. 나는 상도 지주회사의 HR팀 인턴으로 2014~2015년 약 1년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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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가 되면 연구의 객관성을 지키기 어렵지 않은가?

객관성은 매우 복잡한 철학적 주제이다. 소위 구체화된 ‘모델’을 객관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모델이 현실을 설명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는 내부로 깊게 파고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깊게 연관돼 있다고 해서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상도에서 일했던 인사팀 직원들은 물론 회사 안팎의 여러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데는 상도 측과 어떠한 상의도 나누지 않았다. 직접 관찰한 바를 최대한 적합한 방식으로 분석하려 노력했고, 아울러 미국인으로서 갖고 있는 편견이 없는지도 점검했다.

초기업은 무슨 개념인가?

초기업은 대기업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대기업은 기업 규모나 경영 방식에 초점을 둔 용어이다. 미국의 여러 이론 역시 조직을 다룰 때 그 기업의 규모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용어만으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는 회사에서의 삶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싶었다. 수년간 연구하면서 대기업을 논하듯 그 크기나 경영 관점만의 문제만 조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회사에서의 삶이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 대한 개인의 열망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특히 대기업에서의 삶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듯했다. 초기업은 큰 기업이 사회와 한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대기업은 개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에서 대기업의 화이트칼라 사무직은 큰 사회적 혜택을 받아왔다. 대기업에 취업하고 그 안에서 승진하는 것이 한국 중산층에서 성공의 지표이자 계층 이동의 통로로 여겨졌다.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 고위 공무원이 되는 것도 비슷한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중산층 사이에서 공무원을 선망하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러한 조직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인식되고 있다.

대기업의 사회적 의미가 한국에서 유독 큰가?

과거 미국에는 도시마다 큰 기업들이 있었고, 내 부모 세대만 해도 이러한 기업의 샐러리맨이 되는 게 중요한 삶의 목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졸업할 때가 되니 일부 컨설팅 회사를 제외하고는 지원할 만한 대형 회사가 없었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애플, 아마존 등 대형 테크 공룡들은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큰 회사들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영국에서 사람들에게 큰 기업 5개를 꼽으라 하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파산하거나 외국 회사에 팔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사회와 개인의 삶에 막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일부 학자는 한국 역시 미국처럼 대기업 중심 문화가 점차 타파될 것이라 예측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계속해서 그 이유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한국 조직에서 ‘구별’과 ‘참여’ 사이의 긴장이 흐른다고 진단했다.
무슨 의미인가?


기업은 개인에게 각자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자신을 타인과 ‘구별’할 수 있는 곳이다. 기업에서는 고과 평가, 성과급, 연봉 협상 등 HR 제도에 의해 구별이 이뤄진다. 공식적 제도에 의한 구별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구별도 존재한다. 회식이나 심부름 같은 업무와 별개로 보이는 직장 생활에도 구별 짓기가 이뤄진다. 호칭에 또한 구별의 의미가 내포됐다. 구별은 개인 사이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40층 높이 상도 사옥의 꼭대기에는 회장실과 지주회사가, 최하층엔 그룹 내 가장 규모가 작고 회사의 내부 서비스를 처리하는 계열사가 자리했다. 같은 건물 아래서도 경제적, 직무적 가치에 따른 구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동등한 ‘참여’를 강조하기도 한다. 20세기 군대식 톱다운 문화가 한국 조직에 만연했다. 이처럼 위계적인 조직은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외감을 야기하고 비인간적인 구별 짓기 행위가 조직 내에 존재했다. 업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 등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규정됐고 경쟁은 심화됐다. 노동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조직과 제도의 보호에서 배제됐다. 21세기에 이르러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탈위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 내에서도 직함 대신 이름을 부르거나 상사에 대한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360도 피드백 등 상호 소통을 내세우는 제도가 시행됐다.

그렇다고 구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은 동등한 참여와 동시에 구별을 바란다. 2014년 상도에서 1000명 이상의 사무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장 만족도 및 팀 분위기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상사의 강압적인 지시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성과급이 각자의 성과에 맞게 합리적으로 지급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른 조직원들과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면서도 개개인의 역량을 적절히 평가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HR팀에 낯선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협업도 잘되면서 개인 업무에 대한 구별도 잘 지어지는 일터를 바란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구별과 참여 사이의 긴장 또한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인가?

한국에서 관찰한 결과다. 폴란드, 아르헨티나 등등 다른 나라의 조직은 어떠하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서구 국가들의 경우 기술적 혁신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생각으로 자본주의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따라서 조직 내의 공정성이나 차별에 관한 도덕적 문제를 이해하기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조직 내 이슈에 대한 집단적 관심이 크지 않다. 누군가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실제 그러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불공정한 결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거나 갈등이 조장돼 사회적 비용이 들기도 한다.

역사학자 알렉산더 우드사이드는 그의 책 『잃어버린 근대성들(Lost Modernities)』에서 한국,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시행된 과거제와 관료제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을 일찍이 경험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국가를 위해 온 마음을 바쳐 봉사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인과 가문을 빛내는 것도 중요했던 것이다. 귀족주의적인 세습적 권력에 의해 통치됐던 유럽 사회와의 차이점이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구별과 참여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계몽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별과 참여 사이의 긴장은 해소할 수 있는 것인가?

책에서 초기업과 함께 ‘초기업의 이상’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 ‘개인의 능력 구별과 동등한 참여, 그리고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탈위계를 실현하려는 기업의 광범위한 약속’으로 규정했다. 구별과 참여 사이의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상태는 말 그대로 이상이며 도덕적 목표에 가깝다.

어느 조직에서든 구별과 참여는 공존하는 개념이며 한국의 HR 관리자들은 그 균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공정한 참여를 도모하면서 구별은 가시적이지 않은 채로 유지해야 한다. 직급을 없애거나 전사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성과급 체제를 정비하는 등이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기업이 직원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한 미국과는 다르다고 느껴졌다.

문제는 사람들이 공정과 불공정에 대해 논하는 영역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회사 내에서 직원들은 급여가 공정하게 분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블라인드 등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경쟁사에서 더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나오게 된다.

한편, 구별의 가시화를 막기 위해서는 비밀의 유지와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매년 연봉을 새로 계약할 때 이를 다른 동료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는 식이다. 일부 직원은 회사가 불공정한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구별로부터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경영적 판단이 숨어 있다.

이처럼 초기업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매우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토론이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긴장 상황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공론화하지 않는 사회도 있기 마련이다.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국 기업들 중에서는 어느 정도 구별과 참여 사이의 균형을 찾아 직원들이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곳도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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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한국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서 한국을 배우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나?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영국에서는 내가 속한 셰필드대에서 한국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독일 베를린이나 네덜란드 레이던에도 한국을 연구하는 대규모 그룹이 있다.

우리 학교는 한국의 9개 대학과 교환학생 관계를 맺고 있어 학생들이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 사회학, 인류학, 예술,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학문적 기술을 할 수 있도록 한국학을 가르친다. 그들은 꽤 훌륭한 한국어 실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한국 기업에서, 혹은 한국 기업과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아 늘 아쉽다. 한국을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을 위한 업무적, 학문적 기회가 더 주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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