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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UX전략

10년 전 함께 웃으며 비전 밝혔는데… UX전략, 소니와 애플 확실히 갈랐다

최준호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지금으로부터 10 전인 2001, 소니와 애플이 나란히 디지털-콘텐츠-서비스의 융합 플랫폼화를 예측했다. 당시 회사의 전망과 비전은 비슷한 지점에 맞닿아 있었지만 오늘날 애플은 명실상부 글로벌 톱으로 부상한 반면 소니는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린 오래다. 회사의 명암은 융합 플랫폼의 UX 얼마나 매끄럽게 구축했느냐에서 엇갈렸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콘텐츠를 보유했더라도 소비자가 접점에서 느끼는 UX 구성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얻기 어렵다.

 

 

2001년 두 회사의 비전 선포와 그 10년 후

인터넷 생태계 등장이 가져온 혁신적인 변화에 어리둥절했던 닷컴 버블 시기가 지나고 IT산업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되던 2001, 소니(Sony) CEO 안도 구니다케는 미래의 브로드밴드 네트워킹은 더 고도화할 것이다. 우리는 기기와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된 오늘날 되돌아봤을 때 10여 년 전 이미 IT산업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안도 구니다케가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과 자사의 경영전략 비전을 발표한 같은 해, 애플(Apple) CEO 스티브 잡스는 이른바 디지털 허브 전략을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컴퓨터는 생산성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시대로 가고 있다. 맥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허브가 될 것이다.” 용어는 서로 달랐지만 두 CEO의 일성은 사실상 같은 의미였다. 디바이스-콘텐츠-서비스의 융합 플랫폼화다. 다시 말해 고도로 발달하는 기기들이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나 서비스와 사실상 하나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포부였다는 것이다.

 

2001년 당시 두 회사 CEO의 말만 듣고 소니와 애플의 미래를 예견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소니가 더 나을 것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당시 애플은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상대적으로 높았을지 모르나 보유제품의 시장점유율이 턱없이 낮은 회사였다. 컴퓨터 제품과 맥 OS, 몇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애플이 가진 전부였다. (굳이 더 꼽자면 스티브 잡스라는 독특한 개성의 CEO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소니는 음악과 영화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고 TV PC, 게임기, 휴대폰에 이르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컴퓨터가 디지털 허브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던 반면 안도 회장은 소니가 가진 제품 및 서비스들을 연결하겠다는 말만으로도 자사 전략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 후 양사의 실적은 극적으로 갈린다. 10년 후 애플이 세계 1위 시가총액 회사로 발돋움한 반면 소니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몰락했다. 2001년 이후 애플은 컴퓨터(아이맥), 노트북(아이북), MP3플레이어(아이팟), 휴대전화(아이폰), 태블릿PC(아이패드), TV셋톱(애플TV)에 이르는 기기 포트폴리오와 음악-영상(아이튠즈), 애플리케이션(앱스토어), 출판(아이북스), 클라우드 서비스(iCloud)를 아우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융합 플랫폼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소니는 주력 제품이었던 TV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넘겨줬고, 스스로 창출한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서는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두 회사 모두 비전 있는 경영자, 기술적 혁신 능력, 디자인 능력,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경쟁 전략상의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과 10년 사이에 실적이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콘텐츠 UX 경영 전략의 의미가 있다. 2005년 안도 회장이 사임하고 최초의 외국인 회장을 맡은 하워드 스트링어는 소니의 몰락 원인을 폐쇄적인 조직 구조, 자사 기술에 대한 집착, 지나치게 광범위한 제품군과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에 분산된 역량, 제품 간 호환성 미흡과 플랫폼화의 실패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내외부에서 이미 인식하고 있던 노출된 문제였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소니의 핵심 문제는 그동안 플랫폼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소홀히 하고 놓쳐버린 부분이 따로 있었다는 데 있다.

 

소니는 왜 몰락했나

소니가 몰락한 핵심 원인, 그것은 바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된 접점 구축과 관련이 있다. 소니의 제품들은 기능과 제품 디자인 측면에서 우월했지만 사용자 만족도 면에서 경쟁사에 뒤처졌다. 소니는 스스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하는 기업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경험하는 통로, 즉 실제 환경에서 콘텐츠와 디바이스, 서비스가 통합되는 접점을 매끄럽게 구축하는 데 소홀했다. 자사 음반에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디지털 음원 사용이 일반화된 시점인 2005년에도 불법복제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무려 2200만 장에 달하는 자사 음반에 DRM 코드를 삽입해 사용자들 PC에 있던 개인정보를 사전고지 없이 전송받았다. 이 와중에 사용자 PC가 의도치 않게 악성코드에 노출됐다. 그런데도 사용자가 스스로 제거할 수도 없게 만들어 음원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했고 디지털 음악시장에서 소니의 브랜드 가치는 형편없이 망가져버렸다.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이란?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 디자인은 1970년대 업무용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의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이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최대한 만족스러운 경험을 갖게 하기 위한 사용성, 심미성, 감성, 유용성 등을 하위 구성요소로 하며 이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 디자인, 마케팅 활동을 포괄한다.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은 직관적이며 감성적인 인터페이스 적용을 통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UX 시장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필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스마트TV IT 분야는 물론 자동차, 의료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콘텐츠 플랫폼화를 위해 채택했던 Xross Media Bar(XMB)라는 통합 인터페이스는 보기 좋은 메뉴 구성과 시각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실제 기기 간 통합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게임 콘솔, HDTV, 카메라, 노트북에 획일적인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사용자 관점에서 매끄러운 통합적 콘텐츠 사용 경험을 유도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예컨대 사용자가 소니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소니 HDTV로 가족과 함께 보려면 여러 단계의 복잡한 설정 메뉴를 한참 뒤적이다가 결국 포기해야 했다. 그저 기기들을 한데 모아 통합 인터페이스로 포장했을 뿐 각 기기가 지닌 특성과 기능을 면밀히 파악해 사용자 입장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반면 애플은 사용자와 콘텐츠가 만나는 접점의 고도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기울였고 이를 경쟁 우위 요소로 사용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음원 콘텐츠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자동 동기화가 대표적이다. 아이팟을 PC에 연결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동기화가 시작된다. 사용자는 따로 메뉴를 읽어보거나 사용법을 배우지 않아도 쉽고 빠르게 곡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수많은 곡들을 빨리,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버튼들을 제거하고 (심지어 전원 버튼까지도) (wheel) 인터페이스 기술을 도입하는 등 아이튠스와 아이팟의 모든 기능과 디자인 요소들을 콘텐츠 사용자 입장에서 통합적으로 기획했다. 직관적인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와 접근이 용이한 앱스토어, 심플한 디자인 등은 모바일 컴퓨팅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위한 아이폰을 개발하는 데 효율적으로 결합됐다. 다시 말해 갖고 있는 고유의 콘텐츠, 첨단 기술과 플랫폼들을 단순히 보기 좋게 포장해서 내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를 꼼꼼히 분석해 가장 단순하면서도 편리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애플이 만들어낸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는 쉽게 결정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기술팀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첨단 기능이 사용자에게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이유로 빠지기도 했으며 디자이너들은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교한 작업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기획과 디자인, 개발 업무는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두고 사용자의 시각에서 조율됐다. 애플이 단순 기기 제조사에서 콘텐츠와 서비스를 망라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애플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음악, 영상, 출판, 게임, 애플리케이션 콘텐츠는 이제 전 세계 콘텐츠의 유통과 마케팅은 물론 콘텐츠 자체 크리에이션 과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니는 공급자 관점에서만 혁신을 해석하고 디자인적 완성도를 추구했던 회사였다. 공급망(supply chain)은 잘 갖췄지만 사용자 접점 구축에는 미흡했다. 이는 공급자 주도의 시장에서 급성장한 과거의 성공 경험과 2000년 이후 물량 공급(supply push) 위주의 경쟁 전략이 소비자 주도의 수요 중심(demand push)으로 전환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소니는 이런 문제를 인식한 후 2011년에서야 ‘One Sony’를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고, 통합 UX 부서와 CXO(Chief Experience Officer) 직책을 신설했다. 소니의 몰락은 수요자 주도 시장, 플랫폼 환경에서의 경영 전략의 요체가 기술 혁신이나 디자인 혁신이 아닌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사용자 경험의 혁신이라는 점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다. 그렇다면 사용자 경험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국내 콘텐츠 관련 기업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스마트 TV는 망했다?

스마트 TV는 이미 영상가전 시장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D TV 이후 새로운 미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며 시작했던 혁신 선도 제품이었다. 당시 소니와 같은 기존 경쟁사와 중국의 후발주자들이 초고화질, 대화면, 가격차별화 등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술과 공정 효율화 전략만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넘어 시장 선도적인 혁신 제품 기획에 나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11 LG전자의 제품 소개문을 보자. “영상을 보는 기기라는 단순 기능에서 탈피해 다양한 정보를 감상할 수 있는 미래의 스마트 TV는 본격적인 인터랙티브 기능이 추가돼 TV를 통해 인터넷을 하고, 다른 TV 사용자와 혹은 스마트폰 사용자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고… TV 자체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독서,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디바이스로서 스마트 TV는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2009 LED TV 200만 대 파는 데는 8개월이 걸렸지만 2011년 스마트 TV 4개월 만에 200만 대를 팔았다. 2배나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스마트 TV는 비참한 실패였다. 2013년 방송통신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 TV 이용시간 중 기존 방송프로그램 시청 외에 VOD, , SNS, 앱을 이용하는 비중은 1% 미만이었다. 스마트 TV 사용의 기본 조건인 인터넷 연결도 5%를 넘지 못했다. 스마트 TV 1대당 설치된 앱은 평균 1개 이하였다.

 

선도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왜 하드웨어-콘텐츠-서비스를 연결하는 영상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일까?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회사 모두 UX 조직을 확장하고 인재를 영입해 내부 역량을 강화해왔다. LG전자의 매직모션 리모콘은 레드닷 어워드와 IF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 감성과 인간공학적 사용성을 인정받았다. 삼성전자의 스마트 리모콘도 동작 인식, 음성 인식, 안면 인식 등 자연스러운 인터랙션(Natural User Interface·NUI)을 위해 최고 수준의 인터페이스 혁신 기술을 투입했다. 하지만 TV시청자들은 숫자키가 있는 익숙한 구식 리모콘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스마트 리모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 TV의 콘셉트는 왜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넷플릭스는 DVD 대여사업자로 출발했지만 고객의 참여를 유도해 콘텐츠를 기획·제작했다. 또한 이를 매끄럽게 구성된 웹사이트를 통해 정확한 추천 또는 몰아보기 서비스로 연결해 콘텐츠 소비 경험을 새롭게 창출했다. 크롬캐스트는 단 35달러의 가격으로 스마트TV의 핵심 기능을 서비스하며 기존 구글의 콘텐츠 및 서비스와 매끄럽게 연동해준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단지 콘텐츠 수급의 어려움이나 스마트폰이 지닌 대체성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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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준호

    - (현)연세대 정보대학원 디지털문호콘텐츠/UX 트랙전공교수
    - (현)한국HCI학회 부회장
    - (현)다음커뮤니케이션 사외이사
    -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e(RP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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