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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사업 철수

과수원의 가지치기를 배워라, 출구전략이 보인다

| 105호 (2012년 5월 Issue 2)
 

과수원을 가꾸는 농부들이 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가지치기’다. 말 그대로 과일나무에서 가지를 잘라내는 일이다. 성장이 더디거나 혹은 이미 말라 죽어버린 가지들이 잘려 나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경험 많은 농부들은 단지 죽은 가지를 쳐내는 데 그치지 않고 멀쩡하게 잘 자란 싱싱한 가지들까지 망설임 없이 베어 버린다. 심지어 수확철이 다가오면 최상 등급으로 판매하기에 전혀 부족함 없어 보이는 열매들까지도 가차없이 따서 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왜 싱싱한 가지와 잘 자란 열매까지 잘라내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게 각 과일나무로부터의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길임을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지가 너무 무성하게 자라면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방해한다. 가지 몇 개, 열매 몇 개 더 가져보려고 욕심 부리다가 훨씬 더 많은 걸 잃게 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각화된 기업을 이끄는 CEO들에게 ‘과수원의 농부’ 이야기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나깨나 고민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올리버와이먼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지 않은 CEO들은 ‘신(
)성장 동력’, 즉 미래 승부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데 본인이 가진 대부분의 자원을 쏟아붓는 반면 기존 사업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그림1) 물론 기업이 지속적 성장(sustainable growth)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다. 보유 자원이 전부 소진돼 버린 상태에서는 아무리 매력적인 사업을 발견해도 추진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자사(自社) 입장에서 전략적 의미와 가치가 다한 사업은 (설령 현재 안정적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어떠한 신사업을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 못지 않게 어떤 사업을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이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내려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고에서는 적시 적절한 사업 철수를 통해 전체 기업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및 조정’의 최종 책임자인 CEO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전략적 사업 철수의 목적
우선 사업 철수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많은 CEO들은 ‘사업 철수’라는 표현을 접하면 자연스럽게 BCG 매트릭스상의 ‘dog(개)’ 혹은 제품수명주기(PLC·Product Life Cycle)상의 ‘쇠퇴기’를 떠올리곤 한다. BCG매트릭스를 구성하는 양 축의 정의에 따르면 시장 매력도(수익성) 및 자사의 시장 경쟁력(시장 점유율)이 모두 낮은 사업들이 ‘dog’ 사분면에 속한다. 또한 제품수명주기상 쇠퇴기에 접어든 사업은 소위 이미 ‘한물간’ 사업들이다. 이처럼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은 마치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뇌사 상태의 환자와 비슷하기 때문에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의미 없는 자원의 소모만 눈덩이처럼 커질 위험이 높다. 따라서 신속한 결단을 통해 손실 규모를 최소화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서두의 과수원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미 말라 죽어버린’ 가지를 쳐내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와 같이 ‘사업 철수=실패’라는 등식이 대한민국 경영자들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물론 이것이 100%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100% 맞는 얘기라고 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안정적 사업 성과를 창출하는 사업, 심지어 자사의 모태가 된 창업 사업이라 할지라도 자사의 비전 및 중장기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매각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둘러 저수익 한계사업을 정리할 때와는 달리 자산가치에 프리미엄까지 적용된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매각하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기존 핵심 주력사업 및 미래 신수종 사업을 키우는 데 투자할 수 있다. 보다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추구함으로써 현재보다 우월한 사업구조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저수익 한계사업을 불가피하게 정리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선제적이고 전략적으로 기존사업을 정리·매각하는 것을 ‘전략적 사업 철수(Strategic Business Exit)’라 부른다.(그림2) 전략적 사업 철수는 자사 입장에서 ‘(매각 대상 사업의) 보유가치보다 매각가치가 더 큰 경우에 한해’ 자사보다 우월한 보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매자에게 사업을 이양하는 것이므로 거래 양 당사자에게 이득이 되는 ‘win-win 거래’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및 고용 승계 등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내부 직원의 반발 및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작다.
기존과는 달리 새 주인이 되는 회사에서는 주력사업으로 집중 육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전략적 사업 철수’는 사회적 관점에서 전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순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사업 철수의 유형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유형의 사업 철수 방안을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1) 저수익 한계사업 정리
우선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저수익 한계 사업은 ‘청산(liquidation)’이 유일한 대안일 때가 대부분이다. 청산은 기업의 존속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기존 보유 자산을 매각해 채권자 및 주주에게 분배한 뒤 회사를 완전히 해체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청산과 유사한 제도로 ‘파산(insolvency)’이 있다. 청산은 당사자 기업의 주도하에 자산 매각 및 채무 변제를 거친 뒤 스스로 회사를 정리하는 방식인 반면 파산은 파산법에 의거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 절차가 진행된다. 부채 규모가 자산매각가치를 상회해 채무를 모두 변제하는 게 불가능한 경우 법원이 해당 채무 기업의 자산가치를 현가(現價)로 산정한 후 파산법 기준에 의거해 채권자들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2) 전략적 사업 철수
①전략적 철수 영역 선정 (where?)
앞서 설명한 ‘전략적 사업 철수’의 경우 당연히 청산 혹은 파산과는 다른 방식이 사용된다. 우선 매각 대상 사업이 선정됐다면 ‘매각 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해당 사업에서 자사가 영위해온 사업영역 전체를 매각할 것인지, 아니면 그중 일부만을 분리해 매각할 것인지가 주요 의사결정 포인트다. 예를 들어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 걸쳐 사업을 수행해 온 경우에는 특정 가치사슬만을 매각 대상으로 내놓을 수 있다. 만약 다양한 지역시장에 진출해 있다면 특정 지역(권역)을 떼내어 팔 수도 있다. 이동통신 사업 영역 전반을 커버하던 SK텔레콤이 단말(휴대폰) 제조 자회사인 SK텔레텍을 팬택앤큐리텔에 매각한 것은 주력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가치사슬상 비핵심 영역을 정리한 사례다. 비록 전략적 사업 철수가 아닌 파산 사례이기는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는 지역 단위 매각의 좋은 사례다. 당시 리먼브러더스의 북미 사업은 영국 바클레이스가, 아시아 사업은 일본 노무라증권이 부분 인수했다. 일반적으로 사업 영역 전체를 매각하는 게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체 매각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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