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CVC·분사 통한 빠른 사업화가 관건
정부는 투자 규제 풀고 첫 고객으로 나서야
Article at a Glance
원천기술 중심의 ‘딥테크(Deep-tech)’가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은 대기업의 전략적 벤처 투자(CVC)와 적극적인 분사 창업(Spin-off)을 엔진 삼아 미래 산업 생태계 장악에 나섰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인프라와 인재를 갖추고도 실험실의 지식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회로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CVC 규제와 경직된 회수 시장, 핵심 기술 분사를 기술 유출로 간주하는 조직문화 등이 주요 걸림돌이다. 다가올 시대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CVC 규제를 완화하고 장기 자본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기업은 전주기적 기술사업화 지원 체계를 구축해 신사업을 키우고, 정부는 단순 보조금 지급자를 넘어 초기 시장의 ‘첫 번째 위험 인수자(First-risk taker)’로 나서는 등 기업·자본·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딥테크 생태계 전환이 시급하다.
2023년 7월, 도쿄에 작은 AI 스타트업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사카나(Sakana)AI’. 사카나는 일본어로 물고기라는 뜻이다. 거대한 단일 모델이 아닌 물고기 떼처럼 여러 개의 단순한 모델이 협력하는 집단지성형 AI를 만들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구글 브레인 출신의 데이비드 하, 거대언어모델(LLM)의 기반이 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를 처음 제시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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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공저자인 라이언 존스, 외교관 출신으로 글로벌 스타트업 경력을 가진 이토 렌(伊藤錬)이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모델 병합(Merge)’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기술력이 주목받으며 창업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엔비디아(NVIDIA)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유니콘이 됐다. 지난해 11월 시리즈B에서는 1억3500만 달러(약 1930억 원)를 유치했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26억5000만 달러(약 3조8000억 원)로 일본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비상장 스타트업이 됐다.
사카나AI는 일본 딥테크 생태계에 큰 자극을 주며 변곡점을 만든 사례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은 글로벌 AI 연구에서 존재감이 미미했고, 인재는 실리콘밸리로 빠져나갔으며, 스타트업 생태계는 보수적 기업 문화에 눌려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카나AI 등장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에 주목하고, 글로벌 AI 인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제너럴애틀랜틱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가 일본 스타트업에 첫 투자를 단행했고, 자율주행 스타트업 튜링(Turing)이 덴소 등으로부터 1억 달러를 유치하는 등 일본 딥테크 전반에 온기가 확산되고 있다. 과학적 발견과 원천기술에 뿌리를 둔 ‘딥테크(Deep-tech)’ 창업이 생태계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