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비만약 시장 ‘데이터 플랫폼’ 경쟁
K바이오, 위탁생산·제형 개발 등 공략을
Article at a Glance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단순한 다이어트 약을 넘어 만성질환을 장기 관리하는 필수 의약품으로 격상되면서 제약 비즈니스 생태계에 300조 원 규모의 거대한 ‘평생 구독형’ 시장이 개막했다. 투약을 중단하면 원래 체중으로 돌아간다는 의학적 한계가 도리어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강력한 ‘록인(Lock-in) 효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전례 없는 영토를 두고 100년간 축적된 인슐린 주사제 인프라와 압도적 임상 데이터로 시장을 선점한 노보노디스크와 500억 달러 규모의 선제적 제조 설비 투자 및 이중 작용제로 판을 엎은 후발 주자 일라이릴리 간의 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이 전쟁의 본질이 단순한 신약 품질 경쟁을 뛰어넘어 무균 충전 등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요구되는 ‘산업 인프라 및 플랫폼 경쟁’인 만큼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정면 승부보다는 CDMO(위탁개발생산) 낙수효과, 경구제(먹는 약) 제형 변경, 장기 지속형 전달 기술 등 글로벌 밸류 체인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끊으면 살이 다시 찐다. 맞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약을 끊으면 체중뿐 아니라 혈압, 혈당, 중성지방 같은 심혈관 위험 지표들도 기준선을 향해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약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비만이 만성질환이라는 증거에 가깝다. 비만은 체중만의 문제가 아니라 2형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 여러 대사질환과 연결된 만성질환이다. 이 같은 인식 변화가 GLP-1을 다이어트 약에서 장기 치료제로 격상시켰다. 뇌와 지방 조직은 자신의 설정값을 생물학적으로 방어한다. 약이 그 설정값을 억누르는 동안에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약이 사라지면 몸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약을 끊으면 몸이 원래 상태로 회귀하려는 이 현상은 자칫 신약의 치명적인 한계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혈압약을 끊으면 혈압이 오른다. 고지혈증약 ‘스타틴’을 끊으면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저밀도 지단백(LDL) 수치가 오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혈압약이나 고지혈증약을 두고 “요요가 온다”고 푸념하지는 않는다. 비만 신약도 같은 논리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약이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도구라면 장기 사용은 결함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 된다. 약을 중단하면 체중과 대사 지표가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환자에게는 부담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 번 진입한 고객이 이탈하기 어려운 ‘평생 사용 치료제’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구독형 신약’이 탄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