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중국 정부는 2020년대 들어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육성을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격상했다. 미국의 제재로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 차단을 우려해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를 시급한 과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대기업 위주의 지원에서 벗어나 세분화된 특정 시장에서의 전문 기술 및 제품 경쟁력과 혁신성을 보유한 중소기업, 즉 ‘전정특신(專精特新)’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스마트 제조 및 디지털 전환 등 전정특신 기업의 니즈가 있는 분야에서 협업하거나 전정특신 기업의 글로벌 진출 수요와 한국 기업의 품질 경쟁력이 맞물리는 영역에서 제3국 공동 진출을 노려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선전이 혁신 도시가 된 비결,중국 중앙정부의 ‘저고도 경제’ 전략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왔다. 애니메이션 제목이 아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핸드폰 앱을 켜고 주문하면 머잖아 음식이 담긴 가방을 드론이 독수리처럼 들고 하늘에서 날아온다. 드론은 배달시설 지붕 위에 내려앉아 음식이 담긴 가방을 놓고, 사용자는 앱을 통해 주문자 인증을 완료한 후 음식을 수령한다. 주문한 지 1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이 모든 일이 이뤄진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선전시는 ‘드론의 수도’라고도 불린다. 2024년 4월부터 시작된 선전의 드론 배송은 많은 이용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공원뿐 아니라 도서관, 사무단지, 병원, 대학 등까지 배송 지역이 확장된 결과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대표 물류회사인 순펑은 200㎏까지 가능한 드론 물류 배송을 추진 중이다. 순펑의 ‘펑저우90’은 지난해 10월 주하이에서 짐을 싣고 선전 츠완터미널에 안착하며 100만 번째 배송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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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에서 드론 배송이 일상화될 수 있었던 건 도시 곳곳에 구축된 인프라 덕분이다. 선전시 난산구에는 32곳의 저고도 이착륙장이 설치돼 드론을 활용한 여객 운송, 물류 배송, 의료 물자 운송 등이 가능하고 바오안구에도 35곳의 거점과 132개의 드론 항로가 개설돼 운용 중이다. 게다가 2025년 말까지는 1000여 개의 저고도 항공기 이착륙 플랫폼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하니 어디서든 드론 배송이 가능한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인다.
선전시를 들여다보면 중국의 산업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중앙정부의 제도적 뒷받침과 선전시의 혁신적 규제 완화, 민간기업들의 기술 투자와 적극적인 운영이 어우러져 드론 배송이 일상화된 혁신 도시를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은 ‘저고도 경제’라는 산업 전략을 통해 관련 산업을 육성해왔다. ‘저고도 경제’란 일반적으로 고도 1000m 이하의 저공역에서 벌어지는 유·무인 항공기의 비행 활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 생태계를 의미한다. 관련 산업의 융복합 발전에 초점이 맞춰진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드론(무인기), eVTOL(전기 수직이착륙기), 헬리콥터 등 다양한 항공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중국 정부는 2021년 국가 종합교통망 계획에 ‘저고도 경제’를 처음 포함한 후 2023년 말 국가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명시했고 2024년에는 정부 업무보고에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하늘에서 생산력을 찾는다’는 슬로건 아래 약 30개 성에서 관련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부품 제작부터 응용 분야까지 관련 산업 전반을 포괄하기 때문에 부품 수급이 원활하고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도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 주도의 계획일지라도 혁신은 언제나 민간의 참여로 실행되고 완성된다. 중국 ‘저고도 경제’ 전략 역시 강점은 민간기업,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의 활발한 참여에서 나온다. 중국에는 DJI, 이항(EHang) 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 드론 제조사, 소프트웨어 기업, 서비스 스타트업이 커다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정부는 조달을 통해 자국 드론을 대량 도입하고 농업이나 물류 등의 현장에서 민간 드론 서비스 활용을 독려해 내수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도 드론·UAM(도심항공모빌리티) 분야는 인기 높은 투자처다. 연 100억 위안 이상의 투자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다. 풍부한 자금과 기회 속에 2020년대 들어 중국에서는 수십 개 이상의 eVTOL 신생 기업과 물류 드론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특히 배달 물류 분야에서는 알리바바, 메이투안 등 거대 IT 기업들도 드론 배송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자체 드론팀을 운용하는 등 민간 주도 혁신이 활발하다.
혁신기업 육성하는 ‘전정특신’ 정책중국 혁신기업의 성장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산업군 육성을 위한 산업 전략에 더해 전방위적 혁신기업을 육성하는 중국의 정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대 들어 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육성을 국가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격상했다. 그 배경에는 미·중 기술 갈등이 놓여 있다. 미국의 제재로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 차단을 우려한 중국은 핵심 부품·소재 국산화를 시급한 과제로 인식했고 산업정책의 기조를 ‘안보와 자립’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과거 대기업 위주의 지원에서 벗어나 혁신 역량이 높은 중소기업, 즉 ‘전정특신(專精特新)’ 기업을 적극 육성하기 시작했다.
‘전정특신’은 ‘전문화(專)·정밀화(精)·특색화(特)·혁신화(新)’의 약자로 세분화된 특정 시장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혁신성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는 전정특신 기업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세 가지 육성 기업 유형을 정의했다. 혁신형 중소기업, 전정특신 중소기업,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이다. ‘혁신형 중소기업’은 전문화 수준과 혁신 능력이 높고 성장 잠재력이 큰 중소기업으로 중국 전역에서 약 100만 개 육성이 목표다. ‘전정특신 중소기업’은 전문화·정밀화·특색화를 달성하고 혁신 능력이 탁월하며 수익성이 양호한 기업으로 중견기업 역할을 담당한다. 10만 개 내외 육성을 목표로 하며 주로 중국 지방정부가 인증 및 지원한다.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은 산업의 기초가 되는 핵심 분야나 필수 공급망 분야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세분화된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중소기업을 뜻한다. 1만여 개 육성을 목표로 하며 중국 중앙정부가 선정하는 국가급 중소기업 챔피언에 해당한다. 중국 중소기업들은 혁신형 기업에서 시작해 전정특신 중소기업으로, 다시 전정특신 작은 거인으로 단계별 승격될 수 있다. 전정특신으로 선정된 기업들에는 기술 개발부터 자금 조달까지 전방위적인 특전이 주어져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DBR mini box Ⅰ ‘전정특신 기업 지원 정책’ 참고.)
BR mini box I: 전정특신 기업 지원 정책
혁신기업에 R&D 보조금 파격 지원… 대기업 연계해 산업 생태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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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지원
중국 정부는 2021∼2025년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에 최소 100억 위안(한화 약 1조9000억 원)의 직접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된 기업에는 R&D 보조금은 물론 설비투자 보조금이 지급되고 경우에 따라 수천만 위안 규모의 국가 과제 수행 기회도 주어진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의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경우 전정특신 작은 거인에 선발된 기업에 600만 위안(한화 약 12억 원)의 보조금을 3년에 걸쳐 지급한다. 이처럼 중앙과 지방의 재정을 함께 투입해 혁신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금융 지원
전정특신 기업은 국유 은행과 정책 금융의 대출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이들 기업에 수백억 위안의 대출이 집행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의 지분투자펀드를 통해 지분 투자도 이뤄진다. 2022년 기준 중국의 정부 출자 산업 펀드를 통해 누적 약 11조 위안 규모의 중소기업 투자가 이뤄졌으며 중국의 민간 벤처캐피털 역시 전정특신 기업에 적극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증시 상장 제도도 중요한 지원 수단이다. 2021년 개설된 베이징증권거래소는 전정특신 중소기업의 전용 상장 플랫폼을 표방하며 주식 및 채권시장을 통해 중소기업들이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
기술 혁신 지원
전정특신 선정 기업들은 연구개발 프로젝트와 산학연 협력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의 대부분은 국가 중점 연구개발계획 과제를 수행하며 정부 지원 연구 자금을 받고 대학-공공연구소와의 매칭을 통해 인력과 기술 자원을 지원받는다. 최근에는 디지털 전환 역량 제고를 위해 스마트 제조, 정보화 솔루션 도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대기업 연계 및 판로 지원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소 기업의 공동 발전’이다. 이를 위해 전정특신 중소기업과 대형 국유 및 민간기업 간의 공급망 협력을 적극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2024년 전정특신 중소기업 발전대회 개막식에서 중국전자기술통신그룹, 항공우주공업그룹 등 대형 국유 기업의 핵심 계열사들이 전정특신 기업들과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 공동 개발 및 구매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한편 정부 조달 측면에서도 전정특신 기업 제품을 우대해 판로를 보장하고 해외 진출의 경우 무역 촉진 및 전시회 참가 지원 등 수출 육성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히 금융 및 재정 지원만이 아닌 수요 연계를 통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인재 및 기타 지원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은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중소기업이 기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재 영입 지원과 교육 훈련도 전정특신 지원 정책에 포함돼 있다. 중국 정부는 전정특신 기업에 대해 해외 인재 영입 시 거주 비자와 정착 지원, 자국 내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재정 인센티브 등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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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가 하늘에서 드론이 날아다니며 음식을 나르는 혁신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긴밀한 산업정책 간의 연계가 있었다. 저고도 경제 전략과 전정특신 중소기업 육성 정책이 서로 보완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선전시는 베이징 다음으로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이 많은 도시다. 2023년 기준 756개사가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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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특신 정책이 저고도 경제 전략에 필요한 기술, 부품, 인재를 제공하고, 저고도 경제 전략으로 전정특신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얻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일례로 드론과 eVTOL은 인공지능(AI), 배터리, 자율 비행 소프트웨어, 경량 소재 등 다양한 첨단기술이 결집된 결과물이다. 전정특신 정책으로 배터리 관리 시스템, 항법 센서, 드론용 AI 비전 등 세부 기술 영역별로 전정특신 기업들이 지정돼 연구개발(R&D) 지원을 받고 이들 기술이 모여 완제품의 성능이 향상되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었다.
전정특신 정책은 산업 밸류체인 내 국산 공급망 구축에도 기여했다. 드론 한 대를 생산하려면 모터, 통신 모듈, 카메라 짐벌 등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과거 중국 드론 제조사들은 핵심 부품 일부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광둥성 등 드론 산업 중심지에서는 상류 부품업체만 3만 개에 달할 정도로 국내 공급망이 활발하다. 일례로 중국의 대표 드론업체 이항은 자체적인 완제품 조립과 소프트웨어에 주력하지만 배터리, 제어 시스템, 추진 모터 등 핵심 부품은 다수의 전문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한다. 부품 공급업체 상당수는 전정특신 기업으로 육성되며 규모를 키운 기업들이다. 국산 공급망을 통해 핵심 부품을 효율적으로 조달받은 결과, 이황은 세계 최초의 유인 드론을 상용화한 흑자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정특신 기업들이 드론 산업의 모듈·부품 공급망을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국산 공급망을 통해 대외 변수나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안정적으로 드론 생산이 가능한 체계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전정특신 정책도 이면이 존재한다. 정부 주도 성장 전략의 단점인 중복 투자로 인한 비효율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산업 정책으로 인한 중복 투자는 중앙정부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지방정부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다. 지방정부 간 경쟁이 단기 성과를 추구하게 되고 이는 과잉 생산 능력이나 비효율적인 중복 건설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고도 경제 전략 발표 이후 중국 내 소형 민간 공항이 449개나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23년 한 해에만 29개 성급 지역에서 앞다퉈 항공 산업 단지와 드론 시험 시설을 조성한 결과다. 중국 민간 항공국 통계에 따르면 이들 공항의 활용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정부 주도 산업 육성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 지방정부 간 과열 경쟁을 야기해 중복 투자를 피하기 어렵다. 또한 단기적인 성과를 창출하려는 조급함 탓에 무리한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해 양질의 기업을 육성하지 못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기업들이 혁신 촉진이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기보다 보조금 수익을 추구하게 돼 산업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으며 중국 당국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원 기업 선정 제도 개편, 성과 평가 체계 강화, 퇴출 메커니즘 구축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전정특신 기업의 핵심 성장 전략미래 산업 육성의 중심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기업의 전략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다. 전문화와 정밀화, 특색화 및 혁신성을 특징으로 하는 전정특신 기업들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특유의 성장 전략을 구가하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한 틈새를 공략하거나 외국 기업이 독점하던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이뤄내는 전략이 그것이다. 또한 핵심기술에 특화된 시장을 공략하고 과감한 R&D 투자는 물론 필요할 경우 글로벌 기술도 적극적으로 확보한다. 전정특신 기업의 핵심 성장 전략과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핵심기술 역량 집중: 리더드라이브리더드라이브(LeaderDrive, 绿的谐波传动科技)는 산업용 로봇 등에 쓰이는 정밀 감속기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다. 2003년부터 로봇용 하모닉 감속기(strain wave harmonic reducer) 기술을 자력으로 연구개발해 일본 업체가 장악했던 시장을 개척했고 2011년 정식 법인 설립 후 본격적인 제품화에 돌입했다. 2013년 중국 기업 최초로 수입 대체에 성공하며 일본 기업 독점 체제를 깨뜨리고 자국 시장 점유율 확보에 성공했다. 특히 고하중·고정밀의 수명 테스트에서는 일본 기업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글로벌 수준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더드라이브의 혁신 기술 개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전정특신 기업답게 하모닉 감속기라는 특정 세분 기술에 전문화해 독자적인 핵심기술을 확보했다. 규모는 중소기업이지만 기술력 확보에 대한 지향점은 여느 대기업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전문화를 위해서는 기술의 밑바탕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모닉 감속기의 원천기술이나 기초 기술까지 파고들어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짧은 시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생존이 가능한 일반 중소기업과 리더드라이브와 같은 전정특신 기업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일반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검증된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거나 기존 제품 개선에 그치는 기술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리더드라이브는 하모닉 감속기라는 핵심기술 확보 후 해당 기술을 중심으로 수직 확장 전략을 펼쳤다. 감속기 기술과 관련된 서보모터3
및 드라이브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최근에는 감속기-서보모터-구동 제어 일체형 모듈을 출시했다. 이를 통해 로봇 신제품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하고 반도체 제조, 레이저 가공, 공작 기계 등 다양한 분야로의 응용 가능성을 넓혔다. 다양한 분야 고객사에 완성도 높은 솔루션을 제공함과 동시에 회사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노력은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리더드라이브의 매출은 2021년 한 해 동안 2억1700만 위안에서 4억4300만 위안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고용도 2019년 말 570명에서 2022년 920명으로 크게 늘었다. 또한 높아진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일본, 한국, 동남아, 북미, 유럽 지역에 해외영업팀을 구축해 해외 매출 확대를 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스마트 제조를 통한 기술 경쟁력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감속기 제품 대량생산이 가능한 지능형 공장과 협동로봇 도입을 통해 생산 효율과 품질 수준을 높이고 있다.
2. 과감한 R&D와 글로벌 기술 확보: 에스툰전정특신 기업들의 공통된 성공 전략 중 하나는 지속적인 R&D를 통한 기술 경쟁력 유지다. 이들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부 기업은 그 비중이 글로벌 대기업보다도 높다. 신제품 개발과 기술 업그레이드에 집중한 결과 전정특신 기업들은 다수의 핵심 특허를 확보해 특정 세부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일부 기업은 내부 개발뿐 아니라 인수합병을 통해 외부 기술을 도입하며 혁신을 가속화한다.
산업용 로봇 및 자동화 솔루션 기업 에스툰(Estun)이 대표적이다. 에스툰은 1993년 소규모 CNC 제어장치 회사로 출발한 후 2010년 중국의 로봇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봇 제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전정특신 기업과 마찬가지로 R&D 투자를 늘렸지만 동시에 글로벌 기술 인수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매출액의 5∼6%를 기본적으로 R&D 투자에 할당하며 로봇 제어기, 감속기 등 핵심기술의 상당 부분을 자체 개발했다. 한편 해외 로봇 기업들을 연달아 인수해 AI 비전, 모션 제어 등 첨단기술을 흡수하며 제품 경쟁력을 높여왔다. 2017년 모션 컨트롤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영국 트리오(TRIO)사를 인수하면서 다축 모션 제어 기술을 도입했고, 미국 배럿(Barrett)에 투자해 협동 로봇 기술을, 독일의 MAI를 인수해 3D 비전 검사 기술을 확보했다. 2020년에는 독일 용접 로봇 기업 클루스(CLoos)의 지분 인수를 통해 선진 용접 로봇 기술과 글로벌 고객망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략적 M&A를 통해 에스툰은 단기간에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해 선진 기술을 내재화했고 유럽을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기술력과 사업 확장 노력을 인정받아 2022년 에스툰은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에 선정됐다. 당시 매출은 약 35억 위안으로 3분의 2는 내수, 3분의 1은 유럽 시장에서 발생할 정도로 해외에서 입지를 키웠다. 현재는 약 60종에 달하는 산업용 로봇 제품 라인업을 완성해 자동차, 전자, 물류 등 여러 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중국 로봇업계의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글로벌 판매망을 확보한 에스툰은 40여 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기술 및 생산 인력을 중심으로 고용을 늘린 에스툰은 2019년 기준 인력 약 2000명 규모로 몸집을 키웠고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30%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전정특신 기업들의 R&D는 투자 강도에 있어 일반 중소기업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 Ministry of Industry and Information Technolog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에 따르면 이들 중소기업의 R&D 비중은 매출액 대비 5∼15%에 달한다. 중국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의 평균 R&D 투자 강도는 10.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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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중국 제조업 전체 평균인 1.54%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전정특신 기업들이 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정특신 기업은 R&D의 목적 역시 차별화된다. 이들의 모든 결정은 혁신 분야에서의 장기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 중소기업은 주로 현재 당면한 문제 해결 혹은 단기적 성과를 위해 R&D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다. 생산 공정 개선, 단기적 비용 절감, 제품 일부 개선 등 점진적 개선에 주력하며 실용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에서 R&D 투자를 결정한다. 반면 전정특신 기업은 중장기적으로 세분화된 분야에서 선도적 지위를 갖기 위해 R&D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에 따라 핵심기술 확보와 신제품 개발, 시장 내 독보적 기술력 구축에 집중하면서 R&D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3. 인재 육성으로 도메인 특화 역량 개발: 쌍항밸브쌍항밸브(Shanghai Shuangheng Valve, 双恒阀门)는 중국의 산업용 밸브 제조기업으로 전통적인 제조 분야에서 기술 특화로 성공한 전정특신 기업이다. 2010년 창립 이래로 도메인 전문성 중심의 내부 인력 양성과 산업 현장 경험이 있는 인재 확보에 초점을 맞춰 성장한 사례다. 창업자인 천신양 본인이 고급 엔지니어 지위를 가진 전문가이며 실제 해당 분야에서 20여 년의 경험이 있다 보니 관련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해 함께 기술 개발을 이뤄낼 수 있었다. 현재 쌍항밸브의 기술력은 중국 내 최고 수준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제품도 상당수다.
특정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한 관련 전문가 확보를 바탕으로 쌍항밸브는 도제식 인재 양성 제도를 운영하며 기업의 제품 경쟁력을 계속해서 높여가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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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사했다. 이처럼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은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쌍항밸브의 인재 육성은 사내 연구소와 테스트 시설을 갖춰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해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이뤄졌다. 연구개발팀과 생산팀이 구분되지 않고 함께 시제품을 제작 및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하면서 팀 경계를 넘어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도제식 육성 정책에 초점을 맞췄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은 사내 기술 매뉴얼로 정리돼 조직의 집단지식화를 추구했다. 이는 곧 숙련 기술자들이 신입 기술자들의 멘토가 돼 지도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또한 쌍항밸브는 모든 인력을 채용하고 육성할 수 없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새로운 지식 습득을 위해서는 학계의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내 세미나 초청을 통해 배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중앙정부나 시정부 지원 프로젝트에 쌍항밸브 직원들이 대학 연구진과 함께 참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중소기업 스스로 어려운 학습 분야를 끊임없이 보완했다.
한편 외부의 전문 인력을 채용할 때는 정부 지원도 적극 활용했다. 중국 상하이시는 전정특신 중소기업을 긴급 인재 영입 기관 명단에 포함해 이들 기업이 해외 우수 인재나 고급 인력을 채용할 경우 거주권 허가, 직함 심사 등에 패스트트랙을 지원한다. 이런 지원 정책 덕분에 쌍항밸브는 외부 전문 인력을 상하이로 채용해 데려오는 과정에서 취업 허가와 호적 취득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회사가 유치한 해외 유학파 인재에 대해 ‘고급 직함 직행(直通车)’ 정책을 적용받아 귀국 인재가 별도의 긴 심사 없이도 상하이시에서 고급 기술직으로 인정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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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정부 지원을 적극 활용한 인재 확보는 쌍항밸브가 도메인 특화 역량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산업 전략으로 완성하는 범위·규모의 균형대국은 언제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는다. 경제학자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엔리코 스폴라오레는 저서 『국가의 규모』에서 국가의 규모와 범위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균형을 설명한다. 규모가 크면 규모의 경제라는 형태로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는 반면 범위가 지나치게 다양하면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일관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경제학자는 규모와 범위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두 상반된 힘 사이에 최적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국이 규모와 범위의 균형을 찾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로마제국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상반된 힘 사이의 균형을 찾기보다 규모 혹은 범위의 장점을 누리기 위해 다른 힘을 크게 희생시켰다. 중국은 범위를 축소해 규모를 확장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유럽은 규모보다 범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중국 베이징 태생의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인 야성 황은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는 다른 방식으로 규모와 범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한다고 설명한다. 독재는 강압, 정보통제, 이념적 세뇌, 가치관 주입을 통해 범위 확장을 억제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서 완벽한 합의를 도출해 규모와 범위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전제정치는 전 세계 어느 전제정치보다 급격하게 범위를 희생시키면서 규모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다르다. 저고도 경제와 전정특신 전략을 살펴보면 중국의 산업 전략은 규모와 범위의 갈등이 해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중국의 산업 전략은 대기업 육성에 치우쳐 범위로 표현되는 다양한 차원의 이질성을 통제했지만 미·중 기술 갈등 이후의 산업정책은 범위를 통한 규모 확장이 선순환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산업정책의 기조가 ‘안보와 자립’으로 변경되며 혁신 역량이 높은 중소기업 중심의 육성 전략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다양성을 중시하는 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기술과 공급망 측면에서 혁신 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이 든든하게 기반을 형성하니 이들을 수요로 하는 대기업의 경쟁력이 수입의존도가 높았던 시기보다 빠르게 커지며 산업 전반의 자립성과 내재적 성장 동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중국 혁신기업 육성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중국 전정특신 중소기업은 중국 정부 정책과 조화를 이루며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와 막대한 인력 및 시장 규모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로봇과 반도체, 배터리, AI 등 혁신 분야의 중소기업 육성을 바탕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혁신형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과의 선순환을 지향하며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하나의 분야가 다른 분야에 활용되면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중국의 혁신기업 육성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1. 명확한 목적과 생태계 중심 지원 정책한국에도 중국의 전정특신 정책과 비슷한 수많은 정책이 있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 구축과 연계되는 지원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둔 지원 정책인지 불분명한 탓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지원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산발적으로 개별 기업이 당장 직면한 단기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쓰일 뿐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혁신과 중소기업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섞일 수 없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반면 중국은 일사불란하다. ‘안보와 자립’ 관점에서 자국 공급망 확보를 목적으로 대기업 중심의 지원 체계를 중소기업으로 전환해 산업 전략과 연계하고 있다. 한국도 지원 정책의 명확한 목적과 방향성이 필요하다. 이런 방향성이 명확할 때 민간기업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위험과 노력,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낼 수 있다. 이런 구분이 결국 중소기업의 시야를 하루하루의 생존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중소기업만을 염두에 둔 지원이 아닌 전체 산업 생태계의 성장을 고려한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지원의 목적이 중소기업의 생존 자체에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의 생존을 정부가 고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 중심의 탄탄한 공급망 없이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기업의 성과가 높아질 수 없다. 모든 일을 전부 혼자 할 수 있는 주체는 없는 까닭이다. 중국 전정특신 지원 정책 역시 ‘대기업과의 연계 지원’을 강조한다.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에 중점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로 곧바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 결과다.
결국 대기업과 연계된 중소기업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산업 전반이 회복될 수 있다. 산업 생태계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정된 예산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지출이 아닌 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 지출이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투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방향성과 함께 산업 육성이라는 생태계 중심의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불균형 모두 이런 생태계 관점의 산업 전략이 부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 틈새 공략해 협력 기회 창출한국 기업들은 전정특신 기업을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저렴한 공급망’으로서 중국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들의 혁신성을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핵심은 중국의 전략을 고려한 협력이다. 전정특신 기업들은 철저히 중국의 산업 전략 아래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체계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방향성을 읽고 양국 기업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정특신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와 중국 자국 기업만으론 역부족인 분야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먼저 전정특신 기업의 빈틈을 공략해야 한다. 중국의 산업전략은 ‘안보와 자립’을 바탕으로 공급망 국산화를 통한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규모와 범위 면에서 빠르게 확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기술 국산화가 단시간 내에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다. 특정 핵심기술의 국산화를 위해 어떤 기술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디지털 전환 분야의 경우 단일 산업을 고려할 때 중국 내 기술 발전 불균형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지역별, 산업별, 기업 규모별 차이를 들여다보면 불균형을 체감할 수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 통계에 따르면 저장성, 장쑤성, 상하이 등 동부 지역의 산업 디지털화 수준이 평균적으로 내륙 지역보다 약 30% 이상 높은 반면 구이저우성이나 닝샤 등 서부 내륙 지역은 아직 전통 제조 공정에 머물러 있으며 디지털 인프라 투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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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국 내에서도 첨단산업과 전통 제조업 간의 디지털 전환 격차가 큰 편이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이미 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활발히 도입해 생산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반면 섬유, 전통 기계, 중소 제조업 등은 디지털 전환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2023년 중국 CAICT(중국정보통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활용률은 자동차, ICT 등 첨단 분야가 약 60∼70%에 이르지만 전통 제조업 분야는 평균 15% 미만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마트 공장, 스마트 물류, 플랫폼 서비스 등 서비스 융합형 디지털 기술은 불균형이 더욱 심해 ICT 기업이나 전자산업에 비해 중소 제조업은 서비스와의 융합 자체가 초기 단계인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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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모 면에서도 격차가 크다. 2022년 중국 중소기업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성공률이 대기업은 80% 이상인 반면 중소기업은 25%에 불과하다. 특히 서비스형 제조(MaaS, Manufacturing as a Service), 클라우드 기반 제조 플랫폼 등 고급 서비스 융합형 디지털 전환은 대부분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CATL 등 대기업이 주도하며 중소 제조업체는 자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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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특화된 세부 기술 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전정특신 기업일지라도 스마트 제조 및 디지털 전환 니즈가 있고 이를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이 채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협업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 윤보라 KOTRA 중국 선전무역관 차장은 KDI 글로벌비즈니스리포트를 통해 “한국의 자동화 솔루션 등 소프트웨어 관련 제품을 (중국에) 공급할 여지가 있다”며 “선전에서 만난 한 전정특신 작은 거인 기업은 스마트 공장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데 한국산 솔루션에 대한 신뢰가 있다며 향후 한국 기업과의 협업 의향을 밝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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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중국 산업 전략과 전정특신 기업의 전략 방향성을 읽고 협업할 수 있는 틈새를 찾는다면 이들 기업을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시너지를 창출할 전략적 파트너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3. ‘윈윈’ 전략 통한 제3국 진출중국의 전정특신 정책은 공급망 국산화를 통한 글로벌 기술 우위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방대한 자국 시장을 가진 중국도 종국적으로는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높은 점유율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한국과의 협업 가능성도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중국 내수 시장을 타깃으로 할 때보다 훨씬 더 신뢰도 높은 기술 협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정특신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제3국 진출을 노려볼 만하다. 한국 제품의 품질과 신뢰성은 글로벌 수준인 데다 가격 역시 합리적인 편이다. 특정 분야에서는 한국 제품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일례로 전자빔 경화 장비를 취급하는 한 전정특신 기업은 유럽 시장을 타깃으로 잡았는데 까다로운 유럽 기준에 맞추기 위해 높은 품질의 소재 및 부품을 원했고 가격과 품질 면에서 모두 뛰어난 한국산 제품 수입 의향을 밝힌 바 있다.11
이처럼 전정특신 기업의 글로벌 진출 수요와 한국 기업의 품질 경쟁력이 맞물리는 영역을 선제적으로 공략한다면 양국 기업 모두 ‘윈윈’하며 세계 시장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한편 국제 인증이나 글로벌 규제를 극복하는 데도 서로가 기여할 수 있다. 유럽의 CE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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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미국 FDA 승인의 경우 한국 기업에 축적된 국제 규격에 맞춘 신뢰성과 관련 경험을 중국 전정특신 기업의 혁신적인 제품 개발 속도, 시제품 생산 역량과 결합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인증 프로세스는 한국이 진행하고 시제품은 중국이 생산하는 역할 분담을 고려해볼 만하다.
결국 윈윈 전략의 핵심은 상호보완적인 강점의 결합이다. 중국 전정특신 기업은 가격 경쟁력, 대량생산, 방대한 내수 시장 중심으로 강점을 형성하고, 한국 기업들은 고품질 제조, 첨단 기술력, 글로벌 브랜드 신뢰도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가진다. 이렇게 서로의 강점이 결합될 경우 시너지 창출이 용이하다. 양국 간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 한국이 가진 셀 기술 경쟁력과 원료의 안정적 공급 및 규모의 경제로 대표되는 중국의 강점을 결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한 R&D 성과가 공유된다면 배터리 분야 혁신 주기 단축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배터리를 사용하는 로봇, 드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혁신도 가속화할 수 있다.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중견·중소기업 간 연계를 모두 고려한 다층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 주도적 사업 운영, 글로벌 신용도를 바탕으로 전체 프로젝트를 이끌고, 중견기업은 특정 부품이나 부분품 생산을 전문화해 공급망을 담당하거나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분업이 가능하다. 여기에 중소 및 스타트업은 드론의 세부 센서 기술, 로봇의 AI 소프트웨어 등 혁신 기술 개발 영역에 참여해 틈새 기술을 제공하고 현지 시장 맞춤형 제품을 생산한다면 양국 모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중국의 전정특신 기업들은 대기업에 없는 틈새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고, 한국의 유망 중소기업들 역시 독자적인 첨단 부품과 솔루션을 보유한 곳이 많다. 양국의 대기업은 이런 중소 파트너들의 역량을 결집해 협력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각 기업의 기여도를 조율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가령 한중 합작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드론 배송 사업을 추진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 대기업이 통합 플랫폼 구축과 서비스 운영을 총괄하고, 중국의 전문 중소기업이 드론 기체를 공급하며, 한국 스타트업이 물류 관리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협업 구조가 유효할 수 있다. 이처럼 다층적인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강점을 살리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윈윈’ 협력의 핵심이다. 물론 미중 기술 패권 전쟁으로 인한 중국 제재,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양국 협력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윈윈’ 전략을 기반으로 제3국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