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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쾌속질주 ‘K배터리’

한국 3개사, 전기차 배터리 50% 점유
기술력-가격경쟁력으로 시장 이끌어

최정수,김남일 | 383호 (2023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국의 배터리 산업은 우수한 기술력과 안정적인 공급 능력,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오늘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는 사이 K배터리도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언제가 됐든 전기차로의 전환은 당연한 만큼 고삐를 늦추지 말고 다가올 시장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먼저 공급망을 다변화함으로써 국제 정세 변화와 공급 과잉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성을 높여 내실을 다져야 한다. 이에 더해 꾸준한 기술 혁신을 통해 후발 주자와의 거리를 확실히 벌려야만 치열한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승자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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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의 개막과 함께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이끌어온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올해 다양한 내·외부 요건이 맞물리면서 더욱 약진했다. 올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주요 이차전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은 점유율 기준 모두 톱 5 안에 들며 시장을 이끌었다.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액 기준 점유율로 LG에너지솔루션이 약 16%, SK온이 8%, 삼성SDI가 7%로 각각 2,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배타적인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K배터리의 위상은 더 높아 3사의 글로벌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수주 잔고로 봐도 올해 K배터리가 일궈낸 성과는 대단했다. 2023년 K배터리 3사의 수주 잔량은 1000조 원을 훌쩍 넘겼고 3사 모두 앞으로 15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국내 산업에서 1000조 원 이상의 수주 잔고를 기록한 상품은 전기차 배터리가 유일한데 이미 K배터리가 한국의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간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후속 주자로서 해외 선도 기업들을 추격하기 위해 노력해 온 데 비해 K배터리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며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는 등 한국 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1. K배터리 성공 요인

한국이 배터리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기차 시대를 예상하고 오래전부터 이차전지 산업에 꾸준히 투자해온 기업의 선구안 덕분이다. LG의 이차전지 사업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회장이던 고 구본무 전 회장은 영국 출장길에 충전해서 여러 차례 쓸 수 있는 이차전지를 접하고 LG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구 전 회장은 이차전지 샘플을 구해와 럭키금속(현 LG화학)에 이차전지 연구를 지시했다. 1998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양산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전기차용 배터리를 개발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대형 배터리인 전기차용 배터리는 소형 배터리와는 완전히 다른 제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차이가 큰 데다 2000년대 초반 전기차의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중대형 전기차 배터리의 개발은 과실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 끊임없이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LG화학 시절 2005년 한 해에만 이차전지 사업에서 20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면서 사업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뚝심 있게 사업을 지속해 나간 끝에 지금의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들었다.

삼성과 SK도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중대형 배터리 개발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이렇듯 시장을 내다보고 경쟁력을 키워온 기업의 노력을 바탕으로 K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특히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공급 안정성은 K배터리의 주요한 성공 요인이다.

기술력

지난 10월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대규모 장기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2025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제조 공장인 미국 켄터키 도요타 공장에서 조립될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계약 금액이 30조 원대로 추정돼 단일 수주 계약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점도 놀라운 소식이지만 무엇보다도 일본 자동차의 상징과도 같은 도요타가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을 제치고 한국 배터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일본은 1991년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전지를 양산한 배터리 종주국이다. 하지만 오늘날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기술력에 있어서는 한국이 앞서가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기술력과 우수한 배터리 품질은 K배터리의 현재 위상을 만들어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한 번 충전으로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배터리, 차량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더 가벼운 배터리, 화재 사고 등으로부터 안전한 배터리를 원한다.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배터리 성능을 개선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특히 국내 배터리사의 주요 생산품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중국 제조사의 주요 제품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한 번 충전으로 훨씬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어 성능 측면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K배터리의 우수한 기술력은 기업이 보유한 특허 수를 비교해 보면 더 명백히 드러난다. 국내 3사가 보유한 배터리 관련 특허 수는 누적 6만 건이 넘는데 이 중 LG에너지솔루션이 2만8000여 건, 삼성SDI가 약 2만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일본 내 배터리 1위 기업인 파나소닉도 삼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2만 건가량의 특허를 가지고 있지만 소형 배터리를 포함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허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배터리만으로는 K배터리 기업의 위신이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 배타적인 중국 내수시장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점유율에서 1위인 CATL의 특허 수는 5000건 수준으로 국내 배터리 기업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공급 안정성

자동차 제조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하나 있다면 아마 어떤 이유에서든 라인이 멈추는 경우일 것이다. 전기차를 기껏 만들어 놓아도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채워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공장 가동이 잇따라 중단되는 아픔을 겪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인 공급망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직접 배터리 생산 라인에 투자하고, 배터리 업체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공급망을 확보하려 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K배터리 3사는 시장 초기부터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타깃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해외에 공급망을 확보해 왔다. 이는 특히 배타적인 중국 내수시장에 의존해 성장해온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제조공장 90%가 중국에 위치한 반면 K배터리 3사의 제조 시설은 유럽, 북미를 비롯한 해외에 80% 이상 포진해 있다. 제조 라인 가까이에서 완성차 업체와 긴밀히 협력하며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장점이다.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어 EU의 배터리 탄소배출 규제 등에도 유리하다.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기업들이 미리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증설해 온 것도 주효했다. 글로벌 시장에 중소 배터리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엄청난 수주 물량을 문제없이 생산해낼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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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경쟁력

K배터리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수준의 원가경쟁력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핵심 광물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오랫동안 광물 확보에 공을 들여왔으며 스마트 팩토리 등 생산 공정의 효율화를 통해 생산 비용도 절감하고 있다. 물론 중국산 배터리에 비해서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리튬이나 니켈, 망간과 같은 원자재는 배터리 원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중국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세계 각지의 주요 원자재 광산을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광물의 1차 제련 역시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지는데 그런 만큼 중국 업체보다는 원가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자동차의 성능뿐 아니라 안전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품질이 전제돼야만 가격경쟁도 의미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경쟁사인 일본의 파나소닉과 비교했을 때 K배터리 3사의 원가경쟁력은 확실한 우위에 있다.

2. 위기와 기회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섭게 치솟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가 최근 들어 주춤하면서 배터리 산업에 위기가 온 것은 아닌지 걱정 어린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전기차 수요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하자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투자 계획을 수정하거나 아예 연기하면서 배터리 위기설을 증폭시켰다. 반면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 공세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

최근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예상을 밑돌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전 세계적인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비해 고가인 전기차 구매를 꺼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도 점차 줄고 있어 소비자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거나 화재 위험성에 대한 불안 등도 급성장하던 전기차 수요를 주춤하게 만든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파르던 성장세가 한풀 꺾이면서 전기차 시장과 이에 뒤따르는 배터리 산업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전기차는 이제 겨우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가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다만 그때가 조금 미뤄지거나 완급 조절을 겪을 수는 있다. 실제 베인을 비롯한 IHS, JP모건, UBS 등 글로벌 주요 리서치 기관의 2030~2035년의 장기적 측면에서 전기차 침투율 예상치는 여전히 40% 수준으로 전기차 위기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동차 업계 역시 최근 수요 둔화는 일시적인 정체일 뿐 1~2년 내로 수요가 회복되며 장기적으로는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경쟁 심화와 공급 과잉

너도나도 앞다퉈 배터리 산업에 뛰어들면서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과잉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세계 각국이 모두 발 벗고 나서 배터리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고 완성차 제조사들도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추려 직접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급 과잉’이 아니라 ‘공급 능력이 과잉’일 뿐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완성형 제품만이 시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나 안전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까다로운 글로벌 OEM 업체들이 사용할 리 만무하다. 충분히 검증된 트랙 레코드를 보유해 믿을 수 있는 배터리 성능을 가진 업체여야 하고,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 적합한 배터리 제조사는 국내 배터리 3사와 중국의 CATL, BYD, 일본의 파나소닉 정도다. 따라서 실제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의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적정 업체(eligible player)’로 범위를 좁히면 오히려 공급 물량이 빠듯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관련한 제품 기술이 범용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비용 절감과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신규 업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돼 시장이 무르익은 이후 경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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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배터리의 저가 공세도 매섭다. 그동안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급성장하는 중국 내수시장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LFP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된 것도 경쟁을 부추긴다. 하지만 중국산 배터리의 글로벌 시장 침투 가능성은 주로 저가형 전기차에만 국한돼 여전히 우월한 기술력을 가진 K배터리 3사엔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LFP 배터리 양산을 준비 중에 있고 기존의 하이니켈 배터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지만 LFP 배터리보다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춘 미드니켈 배터리를 내놓는 등 다양한 기술 개발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더 없는 기회가 될 수 있다. IRA의 골자는 배터리를 이루는 부품과 원자재 모두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 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 전략의 일환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낸다면 IRA는 향후 잠재적으로 유럽, 중국과 함께 3대 전기차 시장 중 하나로 성장할 미국의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와 직접적인 경쟁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될 수 있다.

일찍이 미국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공급망을 확보한 국내 배터리 업체가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중국 업체는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많은 부분 중국에 의존적이었던 공급망의 다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한국 기업에는 분명한 기회가 될 수 있다. IRA가 단순히 배터리의 최종 생산지를 국한하지 않고 배터리의 부품과 사용되는 핵심 광물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지정학적 기회 요인에는 반대로 불확실성의 리스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IRA 기준이 변할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IRA 관련 혜택이 불시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완성차 제조사와의 장기 계약 체결을 맺거나 조인트벤처(JV) 등 공동 투자를 통해 안정적 수요처를 사전에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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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기회, 폐배터리 시장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은 약속된 기회의 땅이다. 전기차 보급에 불을 지핀 테슬라의 모델 S가 나온 지도 올해로 11년이 됐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을 7~10년 정도로 본다면 시장 초기 상용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수명이 도래하는 2025년을 기점으로 전기차 폐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전기차용으로 사용 수명이 다한다고 해도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다른 분야에서 얼마든지 재사용할 수 있다. 또 배터리에 들어 있는 핵심 광물을 회수해 재활용할 수 있어 도시광산이나 다름없다. 너무나 확실한 시장이 눈앞에 있지만 누가 승기를 가져갈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재활용 배터리 산업은 구체적으로 4R로 나눌 수 있다. 사용 후 배터리를 수거해 분해, 파쇄 후 핵심 광물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 시장과 전기차용 배터리를 ESS 등 다른 용도로 쓰는 재사용(Reuse), 사용 후 배터리를 모듈 단위로 분해하고 재조립해 새로운 배터리를 제조하는 재제조(Remanufacturing), 사용 후 배터리의 잔존 가치를 평가해 수리해서 다시 사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정비(Repair)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은 폐배터리 물량이 제한적인 데다 기술적 한계에 따라 리사이클링 산업 위주로 성장하면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향후 사용 후 배터리 물량이 급증하고 시장이 본격화되면 자원 재순환 전반에 초점을 맞춰 재사용, 재제조, 정비 사업도 점차 중요해질 전망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누가 이 시장을 이끌고 갈지에 대해서는 무주공산으로 모두가 확실한 시장 성장을 예측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배터리 생태계 내외의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폐배터리 시장을 노리고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강국으로서 한국이 폐배터리 시장까지 주도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에코시스템을 엔드투엔드로 엮어 완결적 순환체계(closed loop)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경쟁자보다 높은 수준의 부가가치를 확보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3. 도약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 국내 배터리 산업이 양적 성장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질적 성장을 고려해야 할 시기다.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성을 증대함으로써 내실을 다지고, 기술 혁신을 통해 전기차 후방 산업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공급망 다변화

여전히 배터리 원자재 및 부품 조달 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높다. 특히 광물 가공 분야는 중국이 사실상 독점적인 시장 지위를 갖고 있을 정도다. 공급망을 다변화함으로써 IRA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에 대응하는 한편 다양한 공급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원자재 및 부품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리튬과 같은 주요 광물 및 소재를 중국 밖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서둘러 북미와 호주 등지의 광물업체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중국 밖의 공급망을 찾는 데는 비용이 높아지는 만큼 원가경쟁력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 IRA와 같이 특정 국가의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 공급망 전략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국제 정세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오늘은 중국을 디리스킹해야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시장을 경계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미 외 어느 시장에도 대응 가능한 탄력적인 공급망을 수립하는 것이 근본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수익성 증대

수익성 증대를 위한 원가관리는 기본이다. 배터리 원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재료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원자재 도입에서부터 주요 재료의 소싱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체를 빈틈없이 관리해야 한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해외의 핵심 광물 광산과 제련업체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좋은 예이다. 리튬 채취 및 가공 사업은 배터리 밸류체인에서도 세전 영업이익(EBIT) 마진이 35~50%에 달하는 가장 고수익 사업이기 때문이다. 가공비 관리도 중요한데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해 단순히 인건비를 절감하는 데서 나아가 높은 수준의 수율(생산 제품 중 정상 제품 비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 시간을 단축해 전반적인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가공비 절감을 꾀해야 한다.

또 공급 과잉에 대비해 전방 사업자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거나 공동 투자를 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혁신 기술 개발

차별적 경쟁력을 갖추고 후발 주자들과의 차이를 벌릴 수 있는 혁신 기술 개발도 중요하다. 작은 용량으로도 1000㎞ 이상의 주행 거리를 구현할 수 있는 데다 안전성이 높아 ‘꿈의 배터리’라고 부르는 전고체 배터리는 혁신 기술의 대표적 예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오래전부터 착수해 각각 2027년, 2028년부터는 양산하겠다는 목표다. 이는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가 언젠가 상용화되더라도 기술적, 가격적 장벽이 높은 만큼 극소수의 프리미엄 전기차용으로만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리튬이온전지는 여전히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관련 기술을 고도화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지원

K배터리는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산업인 만큼 지속가능한 K배터리의 성장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IRA 등 규제 영향이 큰 데다 국가 간 지정학적 이슈가 결부돼 있기에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국내 기업들에 금융 지원 측면의 투자 혜택을 주는 간접적 방식으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지원해 왔다면 이제는 지경을 넓혀 국가와 국가 간의 비즈니스적 협의를 통해 해외에서 국내 기업의 사업 활동을 적극 지원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역량만으로 한계가 있는 핵심 자원 확보를 위해 광물 보유 국가의 수요에 부합하는 공급망 협력 외교가 필요하며 해당 국가와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한 시점이다. 자원이 부족한 국내 사업 환경 속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는 배터리 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배터리 제조사만의 숙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5년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이 선도 지위를 굳건히 하며 초격차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대형 장치산업으로 기술적 장벽이 높은 데도 시장이 커지면서 여러 신생 업체가 뛰어들고 있고, 각국의 정부와 후발 기업들은 차이를 따라잡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벌리지 못하게 되면 계속해서 어려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선도 주자로서 기술적, 규모적 이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격차를 벌릴 수 있다면 K배터리는 글로벌 1위라는 명예를 계속 이어가며 미래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 산업으로 더욱 발돋움할 것이다.
  • 최정수 |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오피스 파트너

    최정수 파트너는 서울대 재료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 IBM연구소와 MIT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2007년 베인앤드컴퍼니에 입사, 현재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오피스의 산업재 분야(정유/화학, 소재, 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 등) 프랙티스 리더로 근무 중이며 관련 국내외 굴지의 대기업들의 포트폴리오 전략, 신사업, M&A/JV/PMI, 원가절감, transformation, 조직, R&D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jeongsoo.choi@b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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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일 |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오피스 이사

    김남일 이사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0년 베인앤드컴퍼니 입사 후 화학, EV 배터리, 의료기기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와 금융, IT 서비스 및 클라우드 분야에서 사업개발 전략, 중장기 전략, 생산성 혁신, M&A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namil.kim@b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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