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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심리학’과 전략적 마케팅

심리적 허기를 달래는 짜릿한 일탈
페스티벌에서 ‘고객의 심리’를 읽어라

이장주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페스티벌에 한 번 참여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돈이 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티켓 전쟁을 벌여가면서까지 다양한 페스티벌에 참여하고자 한다. 단지 유명인의 공연을 보거나 지인들과의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만은 아니다. 페스티벌은 요즘 사람들에게 ‘짜릿한 일탈’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도 새로운 공간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기회다. 기업 역시 이러한 페스티벌 심리학을 응용해 소비 심리를 비즈니스와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수 있다. 소비자가 페스티벌에 동참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거나 페스티벌과 일상을 잇는 매개체를 만드는 방법 등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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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개최되는 다양한 페스티벌에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코로나가 선물해 준 비대면 기술의 비약적 발달과 문화 덕분에 이제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도 충분히 소통하고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에 상응하는 가치가 내재돼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심리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가치를 비즈니스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살펴보기로 한다.

짜릿한 일탈로서 페스티벌

동서고금, 현대와 원시 문화를 막론하고 페스티벌 혹은 축제가 없는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페스티벌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양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보편성은 어원이나 형식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영어권에서 ‘페스티벌(Festival)’의 어원은 라틴어로 ‘성스러운 날(Festivalis)’이란 의미에서 유래했다. 중세 시기 종교적 휴일이나 교회 축제일의 의미로 사용되던 페스티벌은 현대에 들어서 종교적인 의미가 희미해지고 축제나 휴일이라는 의미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의 용어인 축제(祝祭) 역시 ‘제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근원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명절’도 우리 문화의 전통적인 페스티벌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페스티벌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갈라(gala)는 아랍어의 ‘멋진 의상’이란 의미의 단어 ‘Khil’a’에서 유래되었다. 갈라는 축제 때 입는 옷을 의미하다가 축제라는 의미로 안착됐다.

페스티벌이 문화보편적인 만큼 참여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용도 보편적이다. 우선 페스티벌은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적인 성격이 있다. 일상적으로 먹고, 입고, 행하지 못하던 것들을 행할 수 있는 아주 드문 해방감을 맛보는 계기다. 일탈 행동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런 일탈을 정기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를 인류 문화는 왜 만들었을까, 가장 일탈하고 싶었던 분야는 무엇일까는 페스티벌 심리학을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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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음주가무를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일탈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일상적인 허기, 즉 생존을 위협하는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곡식으로 만든 술은 신에게 바치는 귀한 음식이었다. 또한 고기와 떡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함께 먹으며 신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술이 주는 알딸딸함과 고기와 떡이 주는 비일상적인 포만감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경험은 이후 찾아올 고통스러운 배고픔의 시기를 집단적으로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견디기를 성공한 이들은 함께 모여 축하를 하고 배고픔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포만의 경험은 다시 다가올 배고픔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페스티벌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는 카니발(Carnival)은 라틴어 ‘고기를 먹어 치워버린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로마 가톨릭 국가에서 행해지는 전통 축제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의 사순절이 시작되면 40일간 고기와 좋아하는 음식을 멀리한다. 그렇기에 그전에 고기와 음식을 실컷 먹어 치워 버리는 풍습이 카니발이다. 금식과 금욕을 앞두고 일상의 도덕과 질서에서 벗어난 행위는 긴장과 이완의 반복된 일상이 유지되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이 지속된다는 의미 속에는 일탈의 기회도 함께 제공된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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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는 또 다른 영역은 바로 사회적 제약이다. 특히 신분제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여된 신분으로 활동이 제약된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페스티벌은 이런 사회적 억압을 완충해줘 사회적 안정성을 부여한 제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유럽의 중세시대에 행해졌던 ‘바보들의 축제(The Feast of Fools)’에는 억압을 받던 민중들이 이상한 옷과 가면으로 치장한 채 참가했다. 민중들은 이를 통해 지배 계층인 권력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풍자하고 조롱함으로써 해방감을 맛봤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나라 탈놀이의 경우 사회적으로 고귀한 신분의 양반이나 승려에 대한 조롱이 허용된다. 일상적으로 페스티벌에서 등장하는 음악과 연극과 같은 퍼포먼스의 주제는 대체로 자신들이 속한 세상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축제 기간 동안의 풍자와 조롱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사회적 위계질서가 있지만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동등한 인간이라는 체험을 페스티벌이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점은 현대의 집회나 시위, 저녁 술자리에서 상사 뒷담화와 같은 행위들도 페스티벌의 일종 혹은 변형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억울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를 성토하는 것은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억울한 사람들의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그 압력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듣기 거북하거나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해서 이를 권력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질서 정연한 것과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페스티벌이 큰 비용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왜 역사적으로 존속됐는지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면서 집회, 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되는 민주사회가 왜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안정적이고 우월한지를 보여준다.

일탈의 욕구 저변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운 해방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불안과 두려움은 생명체들이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방어 체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려 애쓸수록 힘만 더 들 뿐 소용이 없다. 벗어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을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다면 방어를 위한 에너지를 삶의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핼러윈 축제다. 핼러윈 축제는 누구나 잘 알 듯 ‘귀신’을 주제로 한다. 영미권에서 10월 31일에는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난다고 믿어 귀신들에게 육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유령이나 해골, 마녀, 괴물 등의 복장을 입고 돌아다닌다. 사람이 귀신인 척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축제의 백미다. 무시무시한 복장을 한 아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사탕을 달라고 요구한다. 잭오랜턴이라 불리는 호박을 도려 유령 얼굴 모양의 등불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사실 육신이 없는 귀신은 두려운 존재이며,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런 대상의 역할을 하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나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짜릿한 일탈을 함께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가까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 축제나 눈 축제, 얼음 축제, 불의 축제도 이와 유사하다. 이런 자연현상은 인간의 안전을 때때로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흔히 경외(敬畏), 즉 두려워해 우러러보는 대상이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이를 상기시키는 것이 대부분의 축제가 공유하는 맥락들이다. 이런 맥락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나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참여자에게 제공하며, 이런 안도감은 집단의 동질감 또는 연대감의 공유로 이어진다. 결국 어떤 축제를 함께 즐기는가는 그들이 어떤 집단인가를 말해주는 또 다른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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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또한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축제들은 통상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과거의 그날로 함께 돌아가 그날을 기억하는 계기가 된다. 예를 들면, 광복절이나 삼일절과 같은 국가기념일은 그날 행사를 통해 과거 나라를 잃고 핍박을 받았던 끔찍한 수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장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기념일도 고귀한 희생과 부활 같은 주제들이라는 점에서 국가기념일과 일맥상통한다. 과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나은 현재가 존재할 수 있다면 미래는 더욱 번영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

축제의 핵심이 일상의 일탈이라면, 그 일탈의 중심에는 늘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이 피하고 싶은 혹은 두려워하는 대상들은 축제의 아주 좋은 테마가 되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이러한 두려움과 어울리는 행위는 평소 즐기지 못하는 잊기 어려운 흥분과 짜릿함을 선사하게 된다. 놀이동산의 무시무시한 어트랙션들이 인기가 높다는 공통점과 일맥상통한다. 전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은 축제를 하기 딱 좋은 판을 벌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 판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축제의 심리사회적 기능


축제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다. 비용이 많이 들며, 또한 많은 사람이 모이기에 갖가지 사고가 빈발하기도 한다.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면 전 세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축제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축제가 담당하는 숨은 기능은 무엇일까?

숨을 참아보면 공기의 기능을 금방 깨닫듯 축제가 없는 삶을 상상하면 그 기능이 뚜렷하게 보인다. 바로 지루한 삶에서 활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루한 삶의 다른 표현은 위험이 없는 안전하고 안락한 삶이다. 그런데 이런 안전하고 안락함의 연속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음이 여러 연구와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안전과 안락함이 지나친 나머지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준이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 추구 행동이 증가한다.1

오랫동안 동물원 생활을 한 동물들이 흔히 보이는 증상 중 하나가 정형 행동(stereotypic behavior)이다.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움직이거나, 자신의 배설물을 먹는 이상행동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사실 동물원 동물들은 천적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를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소를 갖춘 먹이와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받는다. 일류 호텔 서비스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은 것은 비싼 법이다. 동물원 동물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대신 자율성과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바로 정형 행동이다.

세상이 좋아지는데 왜 우울한 사람이 많은지, 그리고 상식 밖의 행동과 사고가 발생하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사례와 연구들이다. 안전하고 안락한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함께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축제를 통해서 경험하는 ‘혼란’은 그래서 위험하기보다는 정신 건강에 기여하게 된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서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축제는 응급처치와 다를 바 없으리라.

축제는 새로운 서비스와 제도를 미리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종교학자이자 목사인 하비 콕스 하버드대 박사는 축제를 ‘억압되고 간과됐던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라고 봤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일상적인 사고와 감정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면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고 문화의 발달을 가져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인간을 ‘축제하는 존재’로 파악했다. 일하는 인간인 ‘호모파베르’와 놀이하는 인간인 ‘호모루덴스’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는 인간과 사회의 건강한 성장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축제는 이러한 호모루덴스들이 활약하는 공간이자 기회다.

『호모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의 속성을 ‘매직 서클(The Magic Circle)’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놀이를 할 때 경험하는, ‘현실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가상적 시공간’을 매직서클이라 명명한 것이다. 마법이 마법일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의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신이 돼 세상을 창조하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준다. 혼란스러움은 새로운 창조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이유이며 난장을 경험할 수 있는 축제가 왜 새로운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를 방증해준다.

축제를 통해서 그렸던 마법 같은 일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라는 것도 과거 신분제 사회 조상들의 눈으로 본다면 마법 같은 일이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는다고 한다면 조상들이 과연 믿겠는가 말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집으로 바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들도 마찬가지다. 옛날 축제에서 상연된 공연 속에서나 등장했던 루돌프 사슴이나 요정이 했던 일을 지금은 택배 서비스가 담당하고 있다. 저 멀리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 마법의 수정구는 모든 사람의 주머니 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 말이다.

이런 점에서 축제는 기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산업 전시회는 축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자동차, 가전, 게임, 영화와 같은 콘텐츠 등 첨단 기술 전시회는 이전과 다른 혁신적인 진보를 참가자들에게 기대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런 전시회가 매년 혹은 격년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개최되면서 산업 종사자들도 지속적인 혁신의 압력을 받는다. 또한 축제가 공동체 기반의 자생적 행사가 아닌 서비스 산업으로 바뀐 것이다. 축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쇼핑이나 영화, 스포츠 관람을 축제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공상과학 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 작가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나오는 혁신 기술, 예를 들면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과 이와 결합한 자율주행 또는 로봇 기술은 마법 수준이다. 기술이 세상을 축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축제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 속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멀미를 느낀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들이 넘쳐난다. 이런 욕구들은 복고풍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듯한 주제들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트로트 열풍이나 레트로 제품들의 인기는 빠르기만 한 현실 속도를 잠시 과거로 되돌리는 마법 같은 경험이리라.


페스티벌에서 경험하는 것들

일상에서 벗어난 페스티벌의 체험은 심리학적으로 ‘의식 전환’이라는 주제로 접근할 수 있다. 의식 전환은 꿈을 꾸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다른 의식을 경험하는 것이나 지루한 주제를 접할 때 딴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페스티벌에서 경험하는 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새로운 의식 경험이다. 이렇게 새로운 의식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자.

페스티벌은 혼자 즐기는 개별적 활동이라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집단 행위다. 이렇게 여럿인 집단에 들어가면 혼자 있을 때 하지 못하는 의식들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함께 노래를 부르는 합창을 할 때나 파도타기 응원을 할 때, 거대한 대열에 동참해 행진을 할 때 사람들은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힘과 소름 돋는 듯한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경험의 핵심은 같은 동작을 함께하는 동기화된 움직임(synchronized movement)에 있다.2 동기화된 움직임으로서 음악은 뇌에서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도르핀과 같은 고통을 줄이고 노력을 증가시키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에르고제닉 효과(ergogenic effect)가 나타난다.3 나를 넘어서는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느낌은 희열과 함께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좀 더 나은 행동을 위한 전환(예를 들면, 함께 참여한 주변 사람 돕기)이 촉진된다.

페스티벌의 참여는 기본적으로 자발적이다.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융통성이 보장된다. 당연히 즐겁다. 이런 속성은 놀이의 속성과 일치한다. 몰입(flow)은 놀이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몰입은 완전한 몰두 상태로 특정한 보상이 없더라도 활동 그 자체가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 그 활동에 자신을 일체화하게 됨으로써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의 은유적 표현이다.4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몰입은 새로운 세상을 접촉할 때 쉽게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포츠 경기, 콘서트, 종교 행사,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일상에서 스포츠, 콘서트, 교회 등은 흔히 체험하는 일상적인 페스티벌의 일종이다.

어떤 장소는 다른 장소보다 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흔히 이런 곳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나 회사에서 기대되는 업무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휴식과 즐거움, 활력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집과 회사 이외의 장소라는 의미다. 딱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것과 일치하는 속성들이다. 이런 장소로서 서점, 카페, 술집, 커뮤니티센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분 전환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지금 있는 일상의 장소에서 일상 밖의 장소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장소는 일상과 다른 독특한 조명과 향기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지막으로, 의식 전환을 위해서는 매개가 있어야 한다. 휴일에 쉬다가 다시 출근하는 월요일 업무를 위한 출근에서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사원증 목걸이다. 마찬가지다. 성스러움을 느끼고자 교회를 간다면 성경책을 챙겨야 할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의 응원을 간다면 유니폼을 챙겨야 한다. 핼러윈 축제를 즐길 요량이라면 마녀 모자나 지팡이 정도는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도구를 바꾸면 쉽게 마음이 전환될 수 있다.


비즈니스 응용을 위한 페스티벌의 심리학

이러한 속성을 가진 페스티벌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전략에 대해 살펴보자. 일단 기존의 페스티벌과 연계하는 전략과 페스티벌 심리학을 응용해 자체 페스티벌을 꾸리는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기존 페스티벌과 연계하는 전략은 참여자들의 긍정적인 소비 심리를 비즈니스와 연계시키는 방식이다. 축제 패키지를 만들거나 축제에 참여한 이들에게 할인 행사와 같은 전략을 쓰면서 함께 동참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전략은 월드컵처럼 충성도가 높은 유명 축제에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유명 게임대회나 마라톤대회와 같은 마니아적 행사에 전후해 타깃 마케팅을 벌인다면 해당 브랜드와 축제 참가자들이 좀 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때 기업 대표나 점주가 같은 편을 응원하거나 같은 문화를 즐기는 팬으로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페스티벌 심리학 응용 전략에서 활용할 요소는 바로 ‘고객의 두려움’이다. 수험생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불합격이다.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합격자보다 불합격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합격’ ‘성공’같은 단어만 내세우는 상황에서 그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재수’ ‘실패’와 같은 단어를 밖으로 꺼내어 힘듦을 위로한다면 의외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지난해 경남 사천의 바다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사찰의 현수막이 화제가 됐다. ‘부처님 위로 케이블카 타는 자는 평생 재수 없다’라는 문구였다. 그런데 당시 의외로 수험생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이를 ‘재수하지 말라’는 덕담으로 해석하고 공유하며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두려움을 언급하자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이처럼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무조건 ‘합격’ ‘성공’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패나 불합격처럼 두려움 섞인 단어들도 적절히 활용한다면 또 다른 결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고객이 세계관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로써 페스티벌을 고려하라. 많은 기업이 캐릭터와 세계관 설정을 통해 고객과 접점을 이어가고 있다. 주력 제품을 넘어 연계되는 서비스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는 형태다. 고객들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드러낼 수 있는 페스티벌은 고객의 충성도 제고는 물론 고객 간의 유대를 맺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브랜드가 여는 페스티벌은 브랜드나 기업의 다양한 모습들이 소비자를 통해 어떻게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현재보다 미래를 더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기획된 페스티벌은 세계관 마케팅에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할리데이비스 오너 축제 ‘호그랠리’에서는 할리데이비스가 아니라 할리데이비스를 탄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페스티벌 기획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좋은 사람들, 품위 있는 사람들의 활동과 함께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보여주고 체감하는 일보다 더 효과적인 프로모션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페스티벌로 이끄는 도구를 제공하라. 수영장에 입수하기 전에 수영모와 물안경을 쓰고 가슴에 물을 묻히는 것은 이제 곧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신호가 된다. 이제부터 페스티벌로 들어간다는 준비 신호로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같은 원리다. 이런 도구가 꼭 물건이나 제품일 필요는 없다. 음악, 종소리와 같은 신호음, 입구의 색다른 카펫, 조명, 혹은 특정 장소에서만 통용되는 닉네임과 같은 것들도 훌륭한 도구가 된다. 페스티벌과 일상을 오가는 열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이장주 |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심리학 박사

    필자는 중앙대에서 문화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명지대와 중앙대 비전임교수를 지냈다. 새로 등장하는 문화 현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관련 연구, 강연 및 글쓰기를 하고 있다.
    zzazan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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