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AI는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데이터, 클라우드, 반도체, 전력, 법·정책, 국가 안보가 얽힌 거대한 권력 인프라다.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들은 AI가 인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된 데이터와 설계자의 목적, 감시 체계, 군사·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세계를 분류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미지넷 룰렛’은 데이터셋의 편향과 차별을, ‘사이트 머신’은 인간의 예술적·정서적 맥락이 기계적 분류로 삭제되는 과정을, ‘궤도반사경’은 기술의 성패가 제도와 규제 환경에 얼마나 깊이 종속돼 있는지를, ‘자율성 큐브’는 데이터 주권과 감시 인프라의 문제를, ‘이 영광스러운 시대를 보라!’는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동의·저작권 문제를 시각화한다. 이 작품들은 AI 도입을 기능 개선이나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시사점을 경영자들에게 주며 예술가의 비판적 시선은 바로 그런 균열을 조기에 포착하게 해준다.
생성형 AI는 흔히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생산성 도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AI를 둘러싼 데이터 편향, 반도체 공급망, 전력 인프라 등의 구조를 뜯어보면 이 기술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특히 광고 카피를 쓰는 거대언어모델(LLM)이 군사·안보에도 활용되듯 AI는 콘텐츠 도구인 동시에 국제정치의 자산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대다수 경영자는 AI를 생산성과 숫자라는 내부 효율의 언어로만 바라본다. 반면 예술가는 시스템 바깥에서 “무엇이 정상으로 간주되고, 무엇이 은폐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짜 위험은 시스템이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이면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비판적 시각을 읽을 줄 아는 경영자만이 AI가 초래할 시스템의 균열과 리스크를 남들보다 앞서 입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AI 시대의 균열을 먼저 감지한 사람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LG는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로 AI 기술의 시선에 질문을 던져온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지리학자인 트레버 페글렌을 선정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LG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맺은 ‘LG 구겐하임 아트 & 테크 파트너십(LG Guggenheim Art and Technology Initiative)’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어워드의 국제 심사단은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아티스트 등으로 매년 새롭게 구성되며 LG의 관여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심사단은 트레버 페글렌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관해 “기술을 둘러싼 권력 구조와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질문해 온 트레버 페글렌은 특히 LLM과 현대 AI 시스템의 등장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를 확장해 왔다”며 “기술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공적 책임, 윤리적 가치를 일깨우며 지속적으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기에 우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AI가 전쟁에 투입되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구독형 모델을 통해 가정과 직장 등 일상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한편 AI 저작권 분쟁과 관련한 법적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AI를 단순한 생산성 향상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은 기술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는 협소한 시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AI 기술에 내재된 권력 구조와 감시 체계를 사진, 영상, 조형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화해 온 페글렌의 수상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페글렌은 “이미지와 알고리즘, 기술 인프라는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 역사를 형성하는 능동적 행위자”라고 강조한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담긴 명징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성찰하게 만든다. 이는 AI를 경영 전반에 도입하려는 기업에도 기술을 균형 있게 바라볼 시각을 제공한다. 또 동시대 기술 담론에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
페글렌의 작품 세계와 성장 배경 페글렌은 AI 편향, 국가 기밀, 감시 사회 등 디지털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구조와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며 지배적인 권력 서사에 저항하는 작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우리가 살면서 당연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 거대 시스템의 뿌리를 마치 저널리스트처럼 치밀하게 추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시각화해 그 이면을 폭로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AI가 수학적으로는 정교할지라도 인간의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논리로 세상을 해석하며 아주 미세한 입력값의 변형만으로도 쉽게 교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품 세계의 면모는 작가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페글렌은 1974년 미국 메릴랜드주의 군사 기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군 안과 의사였던 까닭에 어린 시절 대부분을 미국과 독일의 군사 기지들을 돌며 보냈다.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종교학 학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학 석사, 버클리대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지리학자이자 사진작가로 입지를 다지며 망원경에 카메라를 연결해 기밀 군사 시설, 드론 기지, 심해 광케이블, 비밀 인공위성을 촬영한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페글렌의 작품들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해 파리 퐁피두 센터,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미술관, 텍사스 댈러스 미술관, 케르크 FRAC 노르파드칼레, 보스턴 현대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경영자의 시선으로 보면 페글렌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방법론이다. 종교학, 미술, 지리학을 가로지르는 그의 학문적 배경은 기술을 단일한 렌즈가 아니라 복수의 시선으로 읽는 능력을 키웠다. 이 다중적 관점이야말로 전문 기술 인력이 종종 놓치는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가 먼저 포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1. 이미지넷 룰렛
저명한 AI 연구자인 케이트 크로포드는 저서 『AI 지도(Atlas of AI)』(2021)에서 AI를 혁신 서사의 중심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입체적으로 기술의 명암을 통찰하면서 지구 자원, 인간 노동, 데이터 문화, 국가 권력, 환경 비용의 얽힘 속에서 AI를 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페글렌은 크로포드와 함께 2019년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에서 ‘인간을 훈련시키기(Training Humans)’ 전시를 기획해 개최했다. AI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이 모아놓은 엄청난 양의 이미지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전시는 AI 학습의 재료가 된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그런 이미지들이 어떤 기준과 시선으로 수집되고 분류돼 왔는지를 해부하듯이 보여준다. 크로포드와 페글렌은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AI와 컴퓨터 비전 기술이 인간을 인식하기 위해 어떤 이미지들을 사용해 왔는지 추적했다. 크로퍼드는 이 전시가 AI의 ‘물질성’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한다.
이 전시에서 페글렌과 크로포드가 공동 제작한 작품 ‘이미지넷 룰렛(ImageNet Roulette)’은 AI가 세상을 바라보고 분류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당시 대표적인 AI 학습용 데이터셋인 이미지넷(ImageNet)에 내재된 인종·성별 편향과 차별적 분류 체계를 폭로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대 컴퓨터 비전 기술의 기반이 된 이미지넷은 방대한 인물 사진을 수집·분류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성별,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흡수했다. 작품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면 AI는 이미지넷의 분류 기준에 따라 해당 인물에 라벨을 부여한다. 문제는 AI가 사람을 단순한 개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셋에 내재된 편향을 따라 ‘낙오자’ ‘부도덕한 인물’ ‘범죄자’와 같은 왜곡된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페글렌은 이 작품을 통해 AI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술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알고리즘 역시 인간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학습하고 재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프로젝트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이미지넷 연구진이 사람 관련 데이터 120만여 장 가운데 절반 이상을 삭제하는 계기가 됐다. AI의 편향성과 데이터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직접적이다. 지금 우리 기업이 사용하는 AI 모델은 어떤 데이터로 훈련됐는가. 그 데이터는 우리 고객의 다양성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AI의 판단 결과가 특정 집단에 불리하게 작동할 경우 우리 기업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가. ‘이미지넷 룰렛’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기술 결함이 아니라 데이터 설계의 윤리적 실패가 어떻게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지는지다. 그리고 그 파장은 법적 리스크와 브랜드 신뢰의 훼손으로 직결될 수 있다.
2. 사이트 머신 영상과 퍼포먼스 작품인 ‘사이트 머신(Sight Machine)’에서는 실제 현악 사중주단이 연주하는 동안 AI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그들을 어떻게 보고 분별하는지를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투사한다. 여기서 사용된 알고리즘은 자율주행 자동차, 안면 인식 보안 시스템, 군사 타격용 드론 등에 실제로 사용되는 것들이다. 기계는 연주자의 얼굴 위로 표정의 감정 상태를 수치화하고, 인종과 성별을 분류하며, 악기의 윤곽을 기하학적 선으로 추출한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기술이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AI의 시각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가 설정한 목적과 학습된 데이터셋의 한계 안에서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연주자의 깊은 몰입 상태나 복잡한 예술 행위를 AI는 30대 남성의 슬픔이나 무표정과 같이 인간의 고유성을 삭제한 단순한 맥락으로 분류한다. 이를 통해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적 맥락이 기술에 의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사이트 머신’이 경영자에게 제기하는 물음은 이것이다. AI가 우리 조직의 성과를 평가하거나 직원을 모니터링하거나 고객을 분류하는 데 쓰인다면 그 알고리즘은 어떤 인간적 맥락을 ‘보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는가. 숫자로 환원되는 데이터가 놓치는 인간적 뉘앙스와 맥락은 무엇인가. 그 공백이 조직 내 어떤 오판과 불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AI가 HR, 채용, 고객 서비스에 확대 적용될수록 이 질문들은 법적 분쟁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주자의 예술적 몰입을 ‘무표정’으로 읽는 기계는 뛰어난 직원의 번아웃 신호를 ‘저성과’로 읽을 수도 있다. 3. 궤도반사경
전쟁에는 인공위성이 사용된다. 위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며 우리를 감시하기에 군사적 권력을 지니며 상업적 용도를 띠기도 한다. 또한 위성은 우주 과학 탐사와 연구를 위한 목적성을 지닌다. 그런데 페글렌은 이와 반대 개념으로 오직 순수한 예술적 목적만을 위해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프로젝트 ‘궤도반사경(Orbital Reflector)’을 진행했다. 위성 본체는 소형 큐브위성(CubeSat) 형태지만 궤도 안착 시 내부에서 이산화티타늄이 코팅된 필름 재질의 거대한 다이아몬드형 풍선이 약 30m 길이로 펼쳐지도록 설계됐다. 이는 햇빛을 강하게 반사하기 때문에 지상의 사람들은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북두칠성만큼 밝은 빛의 점을 관찰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는 미완의 성공으로 남았다. 2018년 12월 위성이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사 직후 지상 관제소와의 통신이 불안정해지며 위성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2019년 초 발생한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사태였다. 위성의 풍선을 부풀리기 위해서는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최종 승인이 필수적이었으나 정부 기능이 정지되면서 담당 공무원들과 연락이 두절돼 승인 절차가 무기한 지연됐다. 결국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위성의 고도가 점차 낮아졌고, 풍선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대기권으로 진입해 마찰열에 의해 완전히 소멸했다. 이로써 밤하늘에 거대한 빛의 조각을 띄우려던 작가의 야심 찬 계획은 비록 발사에는 성공했으나 최종적인 예술적 구현에는 실패하며 끝을 맺었다.
그러나 우주라는 공간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의 전시장으로 바라본 예술가의 창의적 시선은 눈길을 끈다. 페글렌의 위성은 그 어떠한 실용적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 무해하고 쓸모없는 사물로서 우주에 존재했다. 어찌 보면 예술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그 무용한 가치는 사유와 감성을 지닌 인간의 질적인 삶을 위해 필요하며 예술의 가치는 그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페글렌은 기술 그 자체를 심미적 성찰의 대상으로 전환하며 예술적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 나아가 특정 국가나 거대 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우주 인프라를 대상으로 우주는 누구의 소유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궤도반사경’의 실패 과정은 경영자에게 또 다른 층위의 통찰을 준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프로젝트도 규제 기관의 승인 지연 하나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 이는 AI 도입 전략에서 규제와 정책 환경을 선행 변수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셧다운이 위성을 태워버린 것처럼 예측하지 못한 정책 변수는 기업의 AI 투자를 한순간에 무력화할 수 있다.
4. 자율성 큐브
‘자율성 큐브(Autonomy Cube)’는 2015년 제작된 가로, 세로, 높이 약 50㎝(19.6인치) 크기의 투명한 아크릴 큐브로 내부에 복잡한 컴퓨터 부품들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설계됐다. 페글렌은 이 조각을 통해 미술관을 단순한 감상의 공간에서 탈피시켜 국가와 기업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물리적 자유 구역으로 재설정한다.
이 조각은 실제로 관객이 사용하는 조각이다. 작품 내부에 탑재된 인터넷 연결 컴퓨터는 설치된 장소 어디서든 ‘Autonomy Cube’라는 이름의 개방형 와이파이(Wi-Fi) 핫스폿을 생성하며, 누구나 이 네트워크에 접속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터넷 연결을 제공하지 않는다. 자율성 큐브는 모든 와이파이 트래픽을 토르(Tor)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토르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릴레이 서버를 거쳐 데이터의 익명성을 보장하도록 설계된 글로벌 네트워크다. 작품이 생성하는 와이파이에 접속하는 순간, 사용자의 데이터는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의 서버를 불규칙하게 경유하며 추적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특히 조각 자체가 토르 네트워크의 노드로 작동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작품이 설치된 미술관이 전 세계 누군가의 익명성을 지켜주는 든든한 안보 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술 기관이 기술 권력에 저항하는 능동적인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결국 자율성 큐브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의 편리함과 맞바꾼 데이터 주권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현대인의 모든 디지털 활동이 정부와 기업의 감시망 안에 있는 감시 기본값의 시대에 페글렌은 예술을 통해 일시적인 탈출구를 제공한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이용하면서 자신이 일상적으로 맺어온 데이터 계약의 실체를 자각하게 된다. 작가는 ‘예술이 단순히 현상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대안적인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실현하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본다.
이 작품이 경영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데이터 거버넌스의 핵심과 직결된다. 우리 기업이 수집하고 처리하는 고객 데이터는 어떤 투명성의 원칙 아래 관리되고 있는가. 직원과 고객은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실질적으로 알고 동의한 것인가. 데이터 주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는 지금,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기업은 규제 리스크를 넘어 신뢰의 위기를 맞게 된다.
5. 이 영광스러운 시대를 보라
영상 설치 작품 ‘이 영광스러운 시대를 보라!(Behold These Glorious Times!)’는 AI가 세상을 학습하는 과정을 압도적인 이미지의 흐름으로 시각화한다. 수천 장의 사진과 영상이 빠른 속도로 교차하며 등장하는데 이는 AI가 인간의 얼굴과 사물, 풍경 등을 학습하기 위해 처리하는 방대한 데이터와 신경망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AI가 ‘보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처리 과정 위에 구축된 체계임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페글렌은 이를 통해 우리가 인터넷에 남긴 사진과 기록, 디지털 흔적이 어떻게 AI 학습의 재료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개별 삶의 순간들은 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 제공자의 동의와 권리는 종종 배제된다. 작품은 AI 기술 뒤에 존재하는 감시와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며 데이터 활용과 저작권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이 왜 계속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경영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이 AI를 통해 활용하는 데이터는 어디서 왔는가. 그 데이터를 만든 사람들의 동의는 충분히 확보됐는가. 그리고 우리가 ‘효율’이라고 부르는 가치 뒤에는 누구의 데이터와 노동이 보상 없이 사용되고 있는가. 이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AI 저작권 분쟁과 데이터 활용 논란의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예술의 경고가 현실이 된 날 페글렌이 오래전부터 작품을 통해 경고해 온 문제들은 이제 현실의 경영 이슈가 되고 있다. AI는 더 이상 생산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국가 안보와 지정학, 공급망, 클라우드 인프라가 얽힌 전략 자산이 됐다.
최근 미국에서는 AI 기업 앤스로픽이 국방부와의 갈등 끝에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되며 정부 계약망에서 배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시기 중동에서는 지정학적 긴장으로 AWS의 일부 데이터센터 운영에 차질이 발생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두 사례는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AI가 이제 국가 정책과 안보, 국제 분쟁의 영향을 직접 받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오픈AI와 앤스로픽의 사례는 AI 기업이 국가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업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디지털 인프라를 구성하는 핵심 행위자가 되고 있다.
페글렌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AI 인프라의 정치성, 데이터 권력, 감시 체계의 확장은 더 이상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기업의 공급망, 사업 연속성, 경영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리스크가 됐다. 예술가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 아니라 현실이 마침내 예술가의 경고를 따라잡은 것이다.
예술의 언어를 경영의 실무로 번역하기 경영자는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뿐 아니라 ‘AI는 무엇 위에서 작동하는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어떤 클라우드와 AI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가. 학습 데이터와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관리되는가. 특정 공급업체가 규제나 지정학적 갈등에 휘말릴 경우 사업에는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가. 이제 이러한 질문은 법무나 IT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페글렌의 작품들은 일종의 경영 체크리스트로 읽힌다. ‘이미지넷 룰렛’은 데이터 편향과 윤리 문제를, ‘사이트 머신’은 AI 의사결정의 설명 가능성과 책임 문제를, ‘이 영광스러운 시대를 보라!’는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저작권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은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AI는 무엇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위험과 비용이 가려져 있는가.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을 남들보다 빨리 도입하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기회와 위험을 남들보다 먼저 읽어내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페글렌의 작업이 경영자에게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기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와 비용,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시스템의 균열을 먼저 보여준다. AI가 사회와 경제, 국가 안보까지 재편하고 있는 지금,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낙관이나 공포가 아니라 그 이면을 읽어내는 통찰이다. 예술은 바로 그 통찰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