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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트레바리’의 실험과 성장 전략

“돈 내는 독서모임, 그게 장사가 돼?”
‘취향에 맞는 관계 맺음’ 삼매경에 빠지다

고승연 | 280호 (2019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그런 게 돈이 되나?’라고 거의 모든 이가 되묻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예상을 깨고 4년 만에 가입자 수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독서클럽 트레바리 얘기다. 거창한 기획과 전략 수립이 아닌 가설 설정 후 곧바로 실행하고 실험해 ‘살아남은 것’들로 비즈니스가 발전했다. 실패한 건 ‘잘 배웠다’ 생각하고 곧바로 접었다.
‘힙’하고 멋지지만 막상 실제로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귀찮은 과정이 많은 독서클럽의 특성을 인식하고 불편함을 해결했으며 ‘결심은 항상 하지만 막상 하려면 잘 안 되는’ 독서의 특성을 파악해 강제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명사 클럽장 도입과 취향 필터링 등을 통해 ‘관계’를 팔았다. 실용재에서 쾌락재와 경험재를 너머 상징재 소비로 넘어가는 시대에, 트레바리가 기업들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와 오주현(숙명여대 글로벌협력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독서는 언제나 ‘힙’했다. 최소한 근대 이후에는 항상 그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저서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근대의 서막을 여는 현상의 대표적 장면 중 하나로 ‘독서 대중(reading public)’이 처음으로 살롱이나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독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꼽는다. 여기에는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물론 교육받은 하인들도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가장 첨단에 있던 문화 현상이자 사회변화의 중심에 있던 ‘힙한 문화’가 곧 독서클럽이었다는 얘기다. 1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서클럽’이 선망의 대상인 이유는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일이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고 그런 ‘시간’과 ‘노력할 의지’를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개개인이 투자해야 할 것이 많은 취미에 추가 비용을 더 내도록 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 한 권씩 책을 읽고 모여서 독후감을 제출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데, 내 돈 내고 책 사면서 가입비도 따로 내야 한다. 그것도 1만∼2만 원이 아니다. ‘클럽장’이라는 리더가 있는 클럽의 경우 한 시즌, 즉 넉 달간 네 번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약 30만 원을 내야 한다. 한 회당 7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리더가 따로 없는 모임도 약 20만 원으로 회당 5만 원 가까운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것도 목돈을 한꺼번에 내는 방식이다. 모임 이틀 전까지는 반드시 400자 이상의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데 이것을 제출하지 않으면 그날의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도 없고 당연히 환불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가며 꾸역꾸역 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동안 없었다. 혹자는 ‘봉이 김선달급 비즈니스’라고 불렀다. 일부 마니아층에게는 어필할 수 있겠지만 확장성은 약한 사업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윤수영 대표가 창업한 유료 독서클럽 트레바리 2 는 바로 이 ‘말이 안 될 것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지난 4년간 급속히 성장해왔다. 2015년 9월 4개 클럽, 80명의 멤버로 시즌제를 처음 시작한 이래 2019년 7월 말 현재 멤버 3 수 5600여 명에 자유 주제, 경영경제, 대중문화·예술 등을 비롯한 총 8개 카테고리 4 344개 클럽이 운영 중이다. (그림 1) 이 중에서 23%를 차지하는 약 80개 정도의 클럽이 ‘클럽장이 있는 클럽’, 즉 약 30만 원 멤버십 비용을 받는 ‘비싼’ 클럽이다. 장소도 압구정동에 있는 건물의 공간 하나를 빌려 시작한 이후 현재 안국, 성수, 강남을 포함해 네 곳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5 이 네 개 ‘아지트’의 모임공간을 모두 합치면 총 35개다. 지금까지의 누적 멤버 수는 사업자 등록을 한 2015년 9∼12월 첫 시즌부터 총 2만4730명이고, 누적된 독후감 수는 6만4600여 편이다. 누적 독서모임은 7301개다.



처음부터 크게 투자를 받아서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익이 꾸준히 늘어났기에 차차 직원 수를 늘렸다. 특히 본격적인 비즈니스 확장을 앞두고 2019년 2월 중순 소프트뱅크 벤처스와 패스트인베스트먼트가 각각 45억 원과 5억 원, 총 50억 원을 투자한 뒤 작년까지 10여 명이던 직원도 30명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게 돈이 돼?’라고 모두가 되묻던 비즈니스였다. 그런데 4년 만에 5600여 명의 회원과 50억 투자 유치까지 만들어냈다. 트레바리의 실험정신과 실행력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DBR이 집중 분석했다.


전략과 기획? 실험과 실행!
1.창업: ‘즉흥성’과 ‘빠른 포기’ 속에서 탄생한 트레바리
몇몇 언론이 ‘밀레니얼 봉이 김선달’로 이름 붙이기도 했던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31)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치밀하게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고 트레바리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고 전략을 짰을 것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혀 아니었다. 창업부터 그랬다. 윤 대표는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마지막 신입 공채 사원이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보통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스스로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윤 대표도 그때까진 평범한 대한민국 밀레니얼세대 젊은이었다. 다음 입사 직후 터진 세월호 참사,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 같은 사건을 보며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저런 일에 뭐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 이때부터 싹텄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어렵게 입사한 ‘좋은 회사’를 그냥 나올 리는 만무했다. 다른 충격 하나가 그를 더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그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다음이 당시 가장 핫한 모바일 기반 기업이었던 카카오와 합병된 것. 윤 대표는 “콘텐츠 기획자로 나름 핫한 일을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합병 직후 더 작은 기업이었던 카카오 출신 임직원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걸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며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IT, DT 기업들이 엄청나게 많이 탄생하고 생태계를 만들어 거대한 기업으로 커가는 걸 보며 ‘나는 이런 시대에 뭘 하며 평생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거대한 변화의 파도는 계속 몰아쳐 올 텐데 그 파도를 어떻게 타고 넘어 살아남을 것인지 깊게 생각해봤다”며 “‘일단 정글로 나가 정말 제대로 구르면서 뭔가를 배워보자, 사람들이 어디에 돈을 쓰고, 나는 거기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때가 우리 나이로 28살이었다. 윤 대표는 “사실 창업한다고 나와서 굴러보다 도저히 안 되면 어디든 다시 입사해볼 만한 나이기도 했기에 과감하게 퇴사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그에게 창업의 길은 즉흥적이면서도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는 있었다. 또 급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파도를 제대로 타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비장한 각오와 대단한 비전을 갖고 창업에 뛰어든 건 아니라는 뜻이다.

2014년 1월부터 다닌 회사를 딱 1년 만인 2015년 1월에 나와 그동안 이래저래 모아놓은 돈으로 ‘윤리적 패션’ 비즈니스를 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윤 대표에 따르면, 4년 전 기준으로도 전 세계 10억 명 인구가 종사하는 산업이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다. 또한 고질적인 노동문제, 환경문제가 제기되는 영역이기도 한데 좀 더 친환경, 친노동적으로 예쁜 옷을 만들어 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모아놓은 약간의 돈을 그나마 다 쓰고 아무것도 못한 채 끝났다. 개인이 창업해서 뭔가를 해봤자 사업성이 생길 수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두 달도 안 돼 포기했다.



그다음에 ‘통근 버스 비즈니스’를 기획했다. 통근 시간이 길수록 사람들은 불행해진다는 얘기에 공감해 모닝커피가 제공되고 여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구상해봤다. 하지만 규제가 복잡해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역시나 ‘빠른 포기’가 잇따랐다.

그렇게 4월이 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한마디 던졌다. “너는 독서모임 만들어서 이끄는 걸 제일 좋아하잖아. 그리고 꽤 잘 어울린다. 그걸 해.”

윤 대표가 중학교 동창들을 모아 대학교 2∼3학년 시절부터 졸업 후까지 꾸준히 해온 독서 모임에 대한 얘기였다. (DBR minibox Ⅰ ‘트레바리의 모태가 된 독서모임’ 참고.)

그 말을 들으니 ‘맞다’ 싶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평소 철학에도 맞는 듯했다. 역시나 다소 즉흥적으로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DBR mini box I: 트레바리의 모태가 된 독서모임
윤수영 대표는 고려대 경영대 재학 시절인 2010년부터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 역시 대단한 비전이나 목표를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자주 만나 술 마시고 놀던 친구들끼리 ‘술 먹고 놀기 전에 책 한 권 정해서 미리 읽고 와서 토론하고 그러면 좀 더 멋지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친구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아지자 ‘독후감을 써와야 한다’는 강제조항을 넣었다. 안 그러면 아예 모임 참가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 인터넷에 커뮤니티도 만들고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동창의 지인, 고등학교 동창과 그 지인 등 100여 명이 거쳐간, 소소하다면 소소하지만, 크다면 큰 온·오프라인 공동체가 됐다. 취향에 따라 떨어져 나가 자기들만의 독서클럽을 만드는 경우도 생겼다. 트레바리의 기본적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방식 아이디어는 사실 이 모임에서 거의 다 나온 셈이다. 윤 대표가 계속 이끌고 있던 독서모임은 자연스레 현 트레바리의 클럽 중 하나로 들어와 계속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표는 또한 ‘교회 모임’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밝혔다. 본인이 외부인으로서 관찰한 교회의 성경 읽기 모임, 봉사 모임 등은 신입 멤버를 따뜻하게 환영해주고, 공통의 목표를 갖고 배려하며 움직인다. 특히 교회는 내부에서 직책이 많아지고 이른바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돈을 더 많이 쓰고 봉사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구조인데,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지인들에게 곧바로 “1인당 1회 3만 원씩 내고 참여하는 독서클럽을 해볼 생각이다. 관심 있으면 함께하자. 단 3만 원은 뒤풀이 비용이 아니고 내 수고비다”라고 알렸다. 다른 중요한 조건도 있었다. 그전에 독서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실제 고객들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독서모임을 운영해주는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객관적으로 테스트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다들 트레바리, 독서클럽이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장소만 잠깐 빌리면 되고 전혀 돈이 안 드는 일이라 그냥 한번 해봤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돈 내서 경험해보고 ‘별로다’라고 하면 접으면 그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최초의 ‘유료 독서모임’을 진행한 뒤에 참가자들에게 ‘다음 달에도 같은 방식의 독서모임을 개최하면 똑같은 멤버십 비용을 내고 참여할 것인지’를 물었다. 10명의 참가자 전원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2015년 5월16일의 일이다. 이 역사적인 날에 다뤘던 첫 책은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찬양하는 내용이었다고 윤 대표는 회고한다. 그다음 달에는 10명을 더 모아서 두 개의 모임을 운영했고, 7월에는 추가로 10명을 더 모아 총 3개의 모임을 운영했다. 역시나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비즈니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 하나는 밥벌이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즌제’를 생각해봤다. 엄청난 계산과 고민을 통해 나온 것도 아니었다. 6개월은 너무 길어 지루하고, 뭔가 커뮤니티를 형성해 적당히 친해지기에는 4개월은 해서 4번은 만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일단 한번 실험해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4개월짜리 시즌제가 만들어졌고 2015년 9월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그해 12월까지 진행하는 첫 시즌을 시작했다. 테스트 삼아 진행하던 모임대로 회당 3만 원으로 계산해 참가자 1인당 12만 원을 받았다.

2.시즌제, 클럽장 그리고 파트너
시즌제 구상부터 실제 시즌의 개월 수 선정과 가격 책정 자체가 빠른 실험이자 실행이었던 상황. 이렇게 첫 시즌이 한창 진행될 무렵부터 윤수영 대표는 새로운 구상을 시작한다. 역시나 대단한 기획이나 전략을 통해 나온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모여서 책 읽고 그냥 결론 내리기에는 어려운 좀 전문적인 분야는 유명한 사람이 와서 리드해주고 설명도 해주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셀러브러티(유명인)나‘이름난 전문가’가 ‘클럽장’을 맡아 독서모임을 리드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윤 대표는 “‘클럽장 시스템을 도입하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어차피 모임이 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대 말고 할 일이 없으니 이것저것 구상해서 바로바로 시도해봤고, 그중에 가장 집요하게 노력해서 성공을 거둔 게 클럽장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온갖 인맥을 동원해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등 과학계, 비즈니스계, 예술계를 비롯한 각계 명사들을 찾아가 조르고 또 졸랐다. 10회 가까이 찾아가 졸랐던 사람도 있다. 그렇게 명사들이 한두 명씩 트레바리 클럽장으로 섭외됐고, 그들을 보고 10만 원이 더 비싼 클럽에도 흔쾌히 돈을 내고 가입해 활동하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그런 면에서 사실은 치밀하게 기획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클럽장 시스템이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2017년 9월 시즌에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까지 클럽장이 됐다.



클럽장은 자신을 보고 찾아온 멤버 1명당 10만 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돈은 사실 ‘셀럽’이나 비즈니스계의 잘나가는 클럽장들에게는 전혀 큰돈이 아니지만 특정 영역의 전문가들에게는 또한 굉장히 큰 ‘당근’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책을 읽는 클럽의 경우 비트겐슈타인 전공 철학자가 트레바리 클럽장으로 활동하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최대 인원인 20명을 꽉 채우는 순간 세금 등을 빼고 나면 144만 원이 된다. 한 시즌에 두 개만 운영해도 월수입 약 70만 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정규 교원이 아닌 시간강사라면 열성적인 학습자들과 만나 함께 토론하고 리드하며 ‘쏠쏠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나쁠 게 없다. 또 애초에 비즈니스계의 명사이거나 돈을 잘 버는 유명인이었더라도 ‘독서토론’이라는 수평적 소통이 주는 매력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소통과정에서 본인도 얻어갈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다는 걸 직접 깨닫게 되면 한 시즌만 할 생각으로 왔다가 계속 클럽을 운영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이 같은 소문이 나니 전문가들이 트레바리에 직접 기획안을 들고 제안해오는 경우도 늘었다. 또 분야별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잠재고객들이 점점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전문가나 명사 클럽장이 독서클럽을 개설하는 걸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트레바리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이들은 이후 기꺼이 30만 원 가까운 멤버십 비용을 지불하며 멤버가 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이런 선순환 시스템은 앞서도 말했든 윤수영 대표나 트레바리 임직원들이 머리를 굴려 기획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실험하고 실행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온 시스템이 어느 순간 힘을 발휘한 결과다.

2016년 5월 시즌부터 시작한 파트너 제도도 마찬가지다. 파트너는 클럽장이 있는 클럽이든, 없는 클럽이든 반드시 한 명이 배치되는데 일종의 토론 진행자이자 퍼실리테이터다. 또 모임 후 회식이나 ‘번개’ 등 클럽에 속한 멤버들이 친해지고 허심탄회하게 책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리드하고 돕는 존재다. 주로 기존 트레바리 멤버 중에서 신청을 받아 임명이 되는데, 독후감이 제때 올라오는지 점검하고 마감시한을 상기시켜주며, 당일 모임 참석자를 확정하는 등 ‘꼭 필요한 잡일’ ‘궂은일’을 도맡는다. 클럽에 문제가 생기면 1차적으로 수습하면서 트레바리 직원들에게 이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클럽장이 있는 클럽에서 흥행과 클럽의 질을 결정하는 게 클럽장이라면 클럽 운영을 매끄럽게 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건 바로 이들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클럽장 있는 클럽에서는 클럽장이 교수, 파트너가 조교이며, 클럽장이 없는 클럽에서는 스터디 모임의 총무 내지 간사 역할을 하게 된다. 클럽 회비 면제 혜택에 더해 상황에 따라 약간 유동적이지만 약 40만 원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시즌 중 최소 1, 2회는 파트너들을 별도로 모아 좋은 사례도 공유하고 고민도 나누고 트레바리 차원에서의 운영 교육도 한다. 이들의 활동은 자발적 신청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면서 실질적으로 클럽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트레바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성공 역시 치밀한 기획과 전략 수립에 따라 이뤄진 것은 물론 아니다. 윤 대표는 “지금 트레바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비즈니스와 아이템은 멋지게 기획하고 전략을 세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해보고 실패한 수백 가지를 빼고 남은 몇 가지, 살아남아 유지된 몇 가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업이익이 100억 원 정도는 되는 기업이라야 비로소 전략을 기획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을 하는 게 의미 있지 않나”며 “우리같이 작은 스타트업은 그저 가설 세워서 실험해서 결과를 보는 방식으로 작은 실행을 계속해나가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트레바리의 모든 성공적인 시스템과 ‘히트 아이템’은 빠른 실행과 실험, 빠른 포기와 또 다른 실험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윤 대표는 앞서도 언급했듯 대단한 전략이나 기획을 세우는 건 작은 스타트업이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또 굳이 어떤 사업이, 어떤 아이템이나 시스템이 왜 성공했는지조차 분석하지 않는다. ‘인과관계의 늪’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성공이 있을 때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욕심에 원인과 결과를 자의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하나의 ‘프레임’이 생겨버리고, 그러면 성공에 실제 영향을 끼친 수많은 디테일을 놓치게 되는 까닭이다. 그는 오직 실행 이후 나타나는 데이터와 성과만 본다. 그게 좋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그의 표현대로 ‘생각보다 별로 거나 구리면’ 그냥 접는다. 굳이 인과관계의 늪에서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대책 없고 계획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유연하고 스피디한 경영을 하고 있다.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트레바리 참여 자체가 어떻게 소비되고 공유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아예 일정 기간 동안 트레바리 해시태그가 된 게시물들을 일제히 출력해 아예 두꺼운 책으로 제본을 떠서 대표부터 직원까지 함께 보며 어떤 이미지로 고객들 사이에 트레바리가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윤 대표는 “얼핏 들으면 굉장히 무식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다 출력해서 전체를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게 있고 여기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DBR mini box II: 덤벨 이코노미와 트레바리
최근 대한민국의 소비 패턴이 크게 변화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밀레니얼세대가 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세대가 피트니스센터에 대거 등록해 저녁에 직장동료들과 술자리를 갖는 대신 자기 계발과 운동에 투자하고 있다. 이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덤벨 이코노미’라 불렀다. 트레바리도 넓게 보면 바로 ‘나를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이러한 ‘덤벨 이코노미’ 현상의 일부분이라 볼 수도 있다.

윤수영 대표는 이와 관련해 ‘인스타그램 효과’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모습 그 자체는 ‘좋아요’가 눌릴 수밖에 없는,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며 이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는 순간 가장 ‘힙’해 보인다는 것. 트레바리 역시 운동만큼이나 힙한 활동인 ‘독서’를 매개로 한 모임이기에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활동이 된다는 얘기다. 윤 대표는 “밀레니얼세대, Z세대의 소비는 인스타그램의 왼쪽에 뜨는 남들의 활동, 즉 팔로어가 많은 SNS 셀럽들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하는지가 좌우한다”며 “그런 ‘힙한 활동’의 일환으로 비치도록 가치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8




트레바리는 무엇을 파는가?
1.강제성 부여와 ‘불편’의 해결
최근 ‘버핏 서울’이라는 온·오프라인 그룹 운동 플랫폼이 등장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게 돕는 게 핵심인데, 남자 8명, 여자 8명씩 성비를 맞추고 운동 지역과 목적을 고려해 조를 구성한다고 한다. 6 트레이너도 각 조에 2명씩 배치돼 오프라인 모임에서 운동을 지도하고, 모임이 없는 날은 각자 소화해야 할 운동량이 지정돼 이를 확인받는 형태다. 총 6주 코스로 구성돼 있고 35만 원을 내야 한다. 7

이 운동모임 얘기를 듣다 보면 역시나 트레바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떠오른다. 사실상 같은 메커니즘이다. 윤 대표는 늘 자신의 비즈니스를 ‘헬스장 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도 책 읽는 걸 구리다거나 ‘힙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하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헬스장을 끊고 비싼 돈 내고 PT를 받는다. 트레바리도 스스로를 강제하기 위해 가입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DBR minibox Ⅱ ‘덤벨 이코노미와 트레바리’ 참고.)

이러한 강제성 부여, 동기부여 이외에도 트레바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이를 주도할 때 겪게 되는 ‘치명적 불편’을 해소해준다. 다음은 트레바리에 대해 다룬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래텀’ 기사에서 기자가 쓴 자신의 경험담이다. 9


“개인적으로 독서모임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 도서 선정부터 장소 섭외, 날짜 투표, 공지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고, 모임 삼십 분 전에 ‘사정으로 인해 불참하겠다’는 메시지를 받고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독서모임은 좋은데, 그 모임이 성사되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은 번잡스럽다.”


이렇듯 독서모임은 많은 이들이 하고 싶어 하고 또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임이다. 하지만 막상 용기를 내서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가입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세세한 귀찮음’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한 명이 ‘앓느니 죽는’ 심정으로 큰 희생을 해 모임을 이끌게 되고 그마저도 안 되면 금방 동력을 잃는다.

트레바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 ‘귀찮음과 불편의 해결’이다. 윤 대표도 “‘독서클럽을 운영한다’고 하면 밖에서 보기엔 굉장히 우아한 일일 수 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우아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며 “진상도 많고 리스크도 있지만 그런 것도 해결하는 게 트레바리 직원들의 업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회원 중 한 명이 모임 중간에 성희롱성 발언을 한다든가, 민폐를 끼칠 때에는 파트너나 회원들의 신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파트너나 클럽장이 ‘사고’를 치면 이 역시 신속하게 나서 수습해야 한다. 골치 아픈 일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말을 섞다 보면 분명 ‘이상한 사람’도 나타나기 마련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기에 항상 긴장하고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트레바리는 ‘힙함’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선망의 대상이 되고 ‘힙함’이 사라진 독서클럽은 평범한 사교클럽이나 스터디 모임 이상 이하도 아니다.

2.경험과 취향, 필터링: ‘관계’ 그 자체를 판다

2030 밀레니얼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성장하기 시작한 트레바리는 최근 Z세대가 합류하면서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10 밀레니얼세대부터 시작된 ‘취향 중심’ 소비와 ‘경험 소비’는 Z세대에 이르면 더욱 강화되는데 다만 이들은 예전처럼 과거 인연에 엮인 ‘동창회’류의 모임이나 업무적으로 엮인 불편한 모임보다 느슨하고 부담 없이 취향을 공유하며 현재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하지만 서로의 깊은 사생활까지는 침해하지 않는 관계를 원한다. 11

취향에 따라 경험을 소비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취향 저격’ 넷플릭스의 드라마도 좋은 선택지이고 좀 더 활발하게 밖으로 나가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트레바리도 괜찮은 선택지가 된다. 트레바리가 카테고리별로 클럽을 나누고 다양성을 확보할수록 고객과 잠재고객들은 자신의 취향과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놀러 가기’라는 서비스 역시 이를 돕기 위한 장치다. 다른 클럽에 속해 있지만 자신이 가입하지 않은 클럽과 멤버들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을 때 2만∼3만 원(클럽장 있는 클럽은 3만 원, 없는 클럽은 2만 원)을 내고 똑같이 해당 회 차 모임에 선정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 참가할 수 있다. 만약 정원이 거의 꽉 차 있는 경우라면 양질의 독후감을 빨리 써내야 선택받을 수 있다. 이런 트레바리의 모든 장치를 윤 대표는 ‘필터링’이라고 명명한다.

트레바리는 ‘책’을 매개로 한 소통과 교류, 그리고 경험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기왕이면 나와 맞는 사람, 어느 정도 검증이 되고 나와 취향이 겹치는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서비스다. 그걸 위해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에서 한 번 공통점을 찾은 사람들로 서로 필터링된 이후에 만나고, 그 이후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적극적으로 교류에 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다시 필터링해서 최종적으로 만나게 해준다는 뜻이다.

윤 대표는 이러한 ‘필터링’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트레바리에 위기가 오는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즉 지금까지 만들어 둔 필터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 고객들은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그는 ‘필터링에 익숙해지고 식상함을 느끼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주시하고 해법 찾기에 골몰하는 중이다. 물론 트레바리답게, 엄밀한 분석을 통해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빠르게 실행해보고 테스트해보려 한다. 간단한 테스트를 도입해 취향을 더 맞춰준다든지 하는 것 등 다양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결국 트레바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또한 중요한 부분, 즉 트레바리가 판매하는 것은 책을 매개로 한 ‘모임 상품’이며 이 ‘취향 공유모임과 경험’은 ‘관계 맺음‘으로 연결된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트레바리의 미션에서 ‘지적으로’는 ‘책’과 ‘독서’라는 매개를, ‘친하게’는 네트워킹과 관계를 의미한다. 클럽장이 있는 클럽의 경우 10만 원을 더 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는 관계를 판다고 볼 수 있다.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과 같은 명사나 전문가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지식을 배우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공간은 트레바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취향에 맞는 관계 맺음’, 더 나아가 ‘내가 만나고 싶은 명사나 전문가와의 관계’가 트레바리가 궁극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3.비즈니스의 확장 실험: 이벤트와 콘퍼런스
트레바리는 앞서 언급했듯 독서라는 ‘힙한 활동’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독서모임에 수반되는 ‘귀찮음’을 해결하며 취향에 맞는 사람들과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관계’를 판매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윤 대표는 “플랫폼이 되고 싶지만 아직은 제조업”이라고 말한다. 클럽을 외주 형식으로 고객들이 요청하고 기획해서 만들었든, 직접 제조해서 팔든 12 , 클럽장 있는 클럽처럼 더 큰 부가가치를 얹고 브랜딩을 해서 팔든 결국 ‘클럽’을 파는 게 핵심이라는 뜻이다. 물론 거듭 강조했듯 그 ‘클럽’이 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관계’다. 앞으로 트레바리가 그냥 플랫폼 사용료만 받고 특별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세팅이 되면, 그렇게 사용료만 받을 수 있다면 그때부턴 진정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된다는 게 윤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일단 그 어떤 관심사가 있든 ‘트레바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모일 수 있게 다양한 콘텐츠와 경험을 만들어 판다는 생각이다. 계속 만들어 팔다가 사람들이 ‘취향에 맞춰 네트워킹하고 공부하거나 경험을 얻고 싶으면 트레바리로 가면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레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되던 2016년 1월부터 트레바리는 ‘이벤트’를 시작했는데 이 역시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하기 위한 철저한 계획’은 전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의 확장, 제품·서비스군의 확장으로 보인다.

이 ‘이벤트’는 다시 강연 이벤트와 체험 이벤트로 나뉘는데 강연 이벤트는 유명한 책의 저자 혹은 전문가나 명사를 초청해 트레바리 회원에게는 할인 혜택을 주고, 아닌 경우에는 좀 더 비싸게 돈을 받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체험 이벤트는 ‘달리기’부터 보드게임 배우기, 위스키나 사케 시음하기 등 각양각색이다. (그림 2) 위스키는 윤수영 대표가 가장 즐기는 술인데 실제로 도수나 음용 행태를 생각하면 비싼 술도 아닌데 지나치게 ‘어렵고 비싼 술’로 인식돼 있는 게 안타까워 시음회를 시작했고, 다른 이벤트도 직원들의 자유로운 아이디어 속에서 나온다. 이벤트 하나하나뿐 아니라 트레바리가 시도하는 모든 건 ‘해보고 잘 안 되면 접는다. 실패를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철학에 기반한 것이기에 호응이 안 좋으면 사라지는 이벤트와 강연도 무수히 많다.



윤 대표는 “강연 이벤트의 경우 ‘탐색의 필요’를 줄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멤버들에게 싸게 제공하기에 ‘멤버십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즌제 클럽은 한 번 기회를 놓치면 4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와중에 잠재고객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강연 서비스를 구매하고 체험 이벤트를 구매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선택의 폭을 줄이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뿐 아니라 ‘강연 한 번’이나 ‘체험 한두 번’이 훨씬 효율적인 주제나 소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이벤트’에 배치하고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2018년 4월부터는 ‘콘퍼런스’를 시즌마다 1회씩 개최하기 시작했다. 짧은 강연 하나를 저녁때 이벤트성으로 여는 게 아니라 관통하는 주제로 다양한 명사와 전문가를 모아 거의 하루 종일 진행하는 것으로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기업이나 단체와의 ‘컬래버레이션’이 진행됐고 때론 북 콘서트 형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표 1)

점차 ‘클럽’을 만들어 팔며 ‘관계’를 제공하는 제조업에서 모든 경험과 취향이 공유되고 상호 교류되며 네트워킹이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벤트든, 콘퍼런스든 지속적으로 시도해보고 확장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치밀한 의도와 계산이 깔려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트레바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레바리의 미래

지금까지 계속 강조해왔듯 트레바리는, 그리고 창업자인 윤수영 대표는 세밀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전략을 짜고 기획해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 아티클 초반에도 언급했듯 때론 즉흥적이고, 때론 무모할 정도로 빠르게 ‘될 것 같다’ 싶은 걸 실험해보고 실행한 뒤에 성과를 보고 폐기하거나 지속한다. 지금 돌아가는 모든 아이템과 장치, 판매되는 모든 서비스는 그렇게 살아남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션은 앞서 언급한 바 있듯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다. 윤 대표가 창업을 꿈꿀 때 ‘내가 파는 게 많이 팔릴수록 세상도 좋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트레바리를 통해 물론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기여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는다. 비즈니스 아이템을 고민하고 키울 때의 원칙도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말대로 ‘10년 뒤에 뭐가 뜰지’를 고민하기보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자 한다.

윤 대표가 생각하는 대로 트레바리를 제조업에서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시키려면 안정적인 오프라인 공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트레바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관계 형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가 성장할수록 ‘아지트’를 늘려갈 수밖에 없고 ‘힙한 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장소도 핫플레이스에 위치해야 한다.

처음 압구정동에서 시작해 13 계속적으로 확장해 나간 아지트의 위치가 안국역, 성수역, 강남역인 것은 직장인들이 쉽게 접근 가능하면서도 ‘이미지가 후진 동네’여서는 안 된다는 트레바리의 ‘지역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남역의 경우 위워크 공간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건물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 동네 자체를 떠나지는 않을 예정이다.



‘트레바리 아지트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힙한 동네가 되는 건 궁극적으로 가능할 수는 있으나 당장에 실현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결국 고정비용으로서의 부동산 임대료는 장기적으로 ‘인프라를 제공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서의 트레바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윤 대표도 “결국에는 SPC(특수목적법인)을 세워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에는 당장 멤버를 늘리고 좋은 이벤트와 클럽을 늘려가는 것에만 신경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일단 눈앞의 목표로 ‘멤버 2만 명이 활동하는 트레바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 매출액이 100억 원에 이르게 된다. 현재 활동 멤버가 5600명이고 50%에 육박하는 재등록률,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꽤 가까운 미래에 달성될 수도 있는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30대 중후반 이후의 세대도 사로잡아야 한다. 트레바리가 페이스북 마케팅을 주로 전개하면서 처음에 할 수 있는 마케팅을 빠르게 실행하다 보니 주로 2030 젊은이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거나 토론하는 모습을 많이 올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30대 후반 이후, 40대와 50대 직장인들에게는 ‘한 번쯤 참여해 보고 싶으나 젊은 사람들 모이는 데 껴들면 민폐일 것 같아서’ 꺼리는 모임이 됐다. 이미지가 ‘밀레니얼세대의 교류 공간’으로 형성돼 버린 셈이다. 아마도 현재 트레바리가 힘을 쏟는 각종 강연 이벤트는 그 부분에서 4050세대의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트레바리는 아직 창업한 지 4년밖에 안 된, 그리고 꾸준히 성장해 온 스타트업이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윤 대표가 꿈꾸는 대로 진정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힙한 경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로컬 오프라인 공간에 기반해 근대 이후 항상 ‘힙한 활동’으로 여겨져 왔던 ‘독서모임’을 비즈니스로 제대로 성공시킨 사례가 될 것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DBR mini box II: “책 좀 읽어야겠는데 혼자선 잘 안 돼” Lock In 효과도

트레바리는 스타트업으로서 빠른 시간 내 성장했고 회사의 현재 규모에 비해 높은 미디어 노출과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케이스 스터디 대상으로서의 트레바리의 가치는 가파른 성장세보다도 ‘상징재 소비 욕구’를 간파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초기 사례 중 하나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트레바리의 성공 요인을 소비자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성과, 정체성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성, 기존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서비스의 가치를 포착한 지속가능성의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성공 요인 분석
1. 유용성의 측면에서(Practical Level of Analysis) 불편의 해결과 강제성의 부과
트레바리는 독서모임은 하고 싶지만 모임 운영이라는 행정적 일을 하기 싫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책은 읽어야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는 사람들에게 강제 장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트레바리의 성공 배경은 사람들이 퍼스널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동네 한 바퀴 뛰는 것도, 저렴한 요가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도 운동은 된다. 그럼에도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개인 필라테스나 PT를 끊는 이유는 그 운동을 좋아하거나 일대일 코칭이라는 서비스 품질이 훌륭한 점도 있겠지만 ‘비싼 돈을 냈으니 안 갈 수 없지’ 하고 스스로를 매어두는 효과(록인 효과·Lock In Effect)를 걸어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이다. 책은 읽어야겠는데 혼자서는 안 읽게 되니 모임에 들어가고, 그 모임은 내가 싫어하는 약속 잡기, 연락하기 등의 행정 업무는 다 처리해주고 독후감을 써야 참석할 수 있도록 강제성도 부과한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은 계속 생겨나는데 다시 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고 혼자 배우긴 버겁다. 정규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닌 특정 주제나 문화와 같이 세부적인 관심사여서 마땅히 공부할 교육 기관을 찾기도 힘들던 차다. 이런 틈새시장을 트레바리가 공략했다. ‘클래스 101’과 ‘하비풀’과 같이 취미나 관심사를 경험하도록 하는 스타트업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트레바리는 혼자가 아닌 모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점, 오프라인에서의 전통적 만남의 형태를 고수한다는 점이 이들과의 차이다. 한편 ‘모임’과 ‘오프라인’이라는 속성을 공유한 SOMOIM(소모임)이라는 명칭의 앱 기반 스타트업도 존재하지만 이 SOMOIM은 함께 모여 액티비티나 취미생활을 같이하는 등 경험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트레바리와 다르다. 많은 종류의 소모임 중 트레바리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고 모여 토론한다는 기조의 ‘지적 공동체 형성’이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때의 공동체는 장기간이 아닌 4개월 단위로 구분돼 참석자들에게 결속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 느슨한 연합체(weak tie)다.


일치와 다양성의 혼합: 취향은 일치하되 배경은 다양하게
기존의 연구 결과들은 다양성이 클 때 창의적인 의견이 많이 도출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일 기업, 동일 직군, 거주 지역, 같은 학교 출신 등 대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주로 접한다. 한편, 획일화된 집단에 속해 있다고 나와 생각의 결이 같은 사람, 이른바 취향이 같은 사람을 그 안에서 찾기란 또 쉽지 않다. 살아온 배경은 다르나 관심 주제는 같은 사람을 노력하지 않고 만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질적 배경의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사고를 확장하고 창의성과 새로움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 다양한 배경의 사람과의 만남들은 그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오는지 알 수 없어 본질적으로 위험의 요소를 내포한다. 트레바리의 멤버십 서비스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첫째, 내 주위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 누가 나타날지 몰라 기대되는 좋은 긴장감은 주되 공부할 주제나 관심사는 같아 일정 부분 취향이 공유된 사람들을 모은다.

둘째, 넉 달에 29만 원(클럽장이 있는 클럽), 19만 원(클럽장이 없는 클럽)을 지불하고 자비로 책을 사고 독후감을 선제출한 사람으로 구성원을 제한한다. 비계획성과 다양성이 극대화된 클럽에 내포된 위험 요인을 독서 토론에 대한 진정성, 열정과 책임의식을 증명하는 장치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다.

트레바리 상품의 핵심 편익(core product)은 지적 공동체다. 돈을 내고 선택할 만큼 가치가 있으며 개인의 주도성을 반영해 주제에 대한 선택도 가능하다. 넉 달마다 교체되는 ‘느슨한 결속’을 통해 밀레니얼세대로 대표되는 현시대 소비자들의 공동체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와 공동체의 간섭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 둘 다를 충족시킨다.


2. 상징성의 측면에서(Symbolic Level of Analysis) 시간에 대한 상징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on Time)
소비심리학자 러셀 벨크(R. Belk)는 ‘그가 소유한 것이 그 자신의 한 부분(Possessions as Extended Self)’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장, 변형, 보존한다는 것이다.

소비문화는 실용재에서 쾌락재로, 경험재와 상징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소비의 형태가 확대되고 소비 욕구의 양상이 다변화됐다. 느슨한 정의를 적용해 각각을 설명해 보자면 실용재는 청소기나 세탁기와 같이 소비자가 인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매하는 제품이다. 쾌락재는 향수나 초콜릿과 같이 특정한 문제 해결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는 재화를 말한다. 경험재는 급류 타기나 록페스티발과 같이 소비자가 고도로 몰입하고 감각적 자극을 경험하게 되는 재화를 주로 지칭한다. 상징재는 문신이나 럭셔리 시계처럼 나의 정체성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혹은 결혼반지 선물처럼 관계에 대한 의미가 내포된 소비재를 일컫는다. 물론 한 가지 제품이 동시에 여러 형태의 분류에 포함되거나 하나의 재화가 복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

트레바리를 살펴보자. 트레바리는 무엇을 파는가? 일견 독서클럽을 위한 장소 제공을 포함, 참여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독서클럽 운영을 위한 필수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트레바리는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쓰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나는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가?’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가늠해보거나 나타낼 때 상징으로 사용한다. 소비자들은 트레바리에 가입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를 나타낼 수 있다.

지위 신호로서의 공동체(Status Signaling of Affiliation)
내가 어울리는 사람의 격이 높으면 나도 높아지는 것 같고, 내가 시간을 의미 있게 쓰면 나 자신의 격이 높아지는 것 같다. 유료 멤버십 독서클럽 ‘트레바리’는 바로 이러한 점을 잘 포착했다. 혼자 책을 읽거나 친구와 독서클럽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트레바리에 가입해 명사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여유로운 시간에, 혹은 시간을 일부러 내어, 지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 소비자들에게 상징적인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재화인 것이다. 조금 더 세밀히 살펴보자면 트레바리는 읽어야 할 책을 미루는 습관을 끊어주는 실제적 효용을 제공하고(실용재로서의 가치, utilitarian product) 나 자신이 성장한다는 기쁨을 주고(쾌락재로서의 가치, hedonic product) 다양한 배경의 흥미로운 사람들과의 토론과 즐거운 뒤풀이(경험재로서의 가치, experiential product), 나는 이런 멋진 활동에 돈을 지불하는 지적인 사람이라는 상징성에 대한 욕구까지(상징재로서의 가치 symbolic product) 모두 충족시키는 제품인 것이다.

트레바리의 급속한 성장의 원인이 이렇다 보니 위험 또한 여기에 존재한다. ‘트레바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또 다른 성장의 제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한 번쯤 참여해 보고 싶으나 젊은 사람들 모이는 데 끼어들면 민폐일 것 같아서”라고 응답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40대 이상의 소비자들은 트레바리를 자신을 위한 지적 공동체라고 연상하기 어려워함을 알 수 있다. 트레바리가 단순히 ‘독서 토론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이상의 특정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규모가 커질수록 ‘짝짓기를 위한 모임, ‘트레듀오’ 혹은 ‘듀오바리’가 아니냐’(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이름을 활용한 농담) 하는 식의 빈정거림이 SNS와 기사 댓글에 등장한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면 트레바리가 나타내는 상징성까지 같이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신규 모객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시대의 기업들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앞으로의 소비자들은 더욱 상징 소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해주는 상징 소비를 추구한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구현하고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소비재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라. 이를 제공하면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어 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


3.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Sustainable Level of Analysis) 하기 싫거나, 할 수 없거나,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가치 설정 (Well Targeted for Willingness to Pay)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제품이 성공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제품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수익을 내왔고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 받고 재등록률도 50% 이상이다. 이 정도면 성공한 스타트업 아닌가. 무엇보다 기존에 시장에 없었던 서비스인 만큼 소비자가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은 기존에 충족되지 않았던 욕구를 구매 가능할 만한 상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트레바리의 성공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제품이 비싼 값에 이렇게 많이 팔리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 트레바리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일까?

제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술이나 컨설팅, 강의와 같은 전문성을 파는 것도 아니고 청소나 배달과 같은 단순 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아니다. 굳이 명명하자면 행정 서비스를 판매했다. 기존의 소비자들이 스스로 하던 행동 중에 ‘하기 싫은 귀찮은 부분’을 포착했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전혀 연고가 없는 유명 연사와의 독서 토론이라는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포착했다. 마지막으로,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데, 인문·철학 도서를 읽고는 싶은데 ‘미루던 것을 하라’고 강제했다. 즉,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 중에 소비자가 하기 싫거나, 할 수 없거나, 해야 하는 서비스를 포착해 상품화했다. 독서 모임과 뒤풀이 과정 중에 멤버들이 손수 꺼내 마시는 맥주, 음료 등의 판매 수익도 있고, 단기 이벤트 개최도 수익원이다. 그러나 트레바리의 업의 본질이자 핵심은 독서클럽이기에 이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트레바리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은 가치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비싸 보여도, 기존에 무상으로 하던 일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했다. 존재하지 않던 비즈니스이기에 가격 결정 기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가격 설정의 기준은 전통적 방식의 생산비용에 이윤을 더하는 방식이나 경쟁자들의 가격을 벤치마킹한 후 자사의 포지셔닝에 따라 비슷하게 설정하거나, 비슷한 품질의 서비스를 조금 더 싸게 팔아 가성비 중심의 포지셔닝을 전달하거나, 조금 더 비싸게 설정한 후 그 가격을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음을 설득하는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트레바리는 순수 인건비를 중심으로 책정했다. 트레바리는 가치 중심의 가격 정책을 사용했다. 소비자가 값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찾고 이에 대해 값을 매겼다. 그러나 독보적인 행정 서비스, 모두가 느끼던 불편함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일종의 게이트 키퍼와 포털의 역할을 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시간과 돈을 지불할 만큼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을 만큼 통제된 집단들을 모아뒀기 때문에 일종의 집적 효과도 있어 쉽게 취향이 같은 ‘지적 공동체’를 찾을 수 있게 했다.

경험의 통제와 재현(Quality Control and Reproduction of Experience)
파트너와 클럽장은 트레바리의 주요 구성원이다. 자발적 신청으로 모집되는 파트너는 실질적인 클럽의 운영을 담당한다. 클럽장은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유명 인사들로 책 선정과 기획을 담당하는 등 트레바리 모객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일종의 프로모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레바리의 직원이 아닌 파트너와 클럽장이 독서 토론 공동체의 경험을 창출하고 정체성과 의미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업의 본질의 중요 요소를 아웃소싱으로 처리한 셈인데 필요에 따라 프리랜서를 고용해 일을 맡기는 ‘긱 이코노미’ 시대의 특징을 충분히 활용해 다수의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부담과 훈련비용을 최소화한 방식이다. 이렇게 외부인을 활용하는 시스템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쉽게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의 정체성과 서비스를 균등하게 유지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긴다. 특히 서비스 재화는 품질의 가변성이 높다. 독서 토론 경험은 비가시적인데다 참석자의 수준과 구성, 역학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매번 달라진다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트레바리는 멤버들이 경험하는 독서클럽의 질을 통제하고 동일 수준의 경험을 재현할 수 있도록 묘수를 썼다. 창업자 본인의 발언을 빌리자면 ‘집착에 가까운 수준’의 매뉴얼을 작성해 감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각 클럽에서 본문을 발제할 사람, 발언할 사람, 독점을 막도록 시간을 배정하고 발언 분량을 조절하고, 참석자들의 토론이 지지부진해졌을 때 활성화하는 방법 등 매우 구체적으로 파트너의 역할을 가르치고 관리하고 있다. 참여자가 의미 생산에 기여하는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 경험의 품질 저하를 매뉴얼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통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구현해나가고 일정하게 유지해갔다. 멤버의 기대치와 성향에 따라 독서클럽 경험을 100%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불만족으로까지 흐르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와도 같다. 서비스 기업의 성패는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서비스 재화의 특징을 어떻게 통제해 동일한 품질의 경험을 반복 재현할 수 있겠는가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매뉴얼을 작성하고 고수하고자 하는 트레바리의 방침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트레바리 케이스 스터디가 다른 기업에 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른 기업에 주는 시사점
1. 손대지 않은 불편함을 찾으라. 하고 싶은, 하기 싫은, 해야 하는 일을 팔아라. (Unnecessary Task for Neccessary Work)
불편, 불안, 낭비는 소비자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키워드다. 가치만 있다면 소비자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서비스, 불안함을 해결하는 기업, 낭비를 줄여주는 제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설사 이전에 상업화된 적이 없고, 돈을 주고 사용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재화라도 말이다.


2. 전통적 소비재의 범주를 벗어나라. 상징 소비에 주목하라. (Symbolic Consumption)
소비자들은 실용재 소비, 쾌락재와 경험재, 상징재 소구로 소비문화를 계속 발전시켜 가고 있다. 그중에는 내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가치 있을까, 나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의미 있는 것일까, 나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는 기분, 성장하는 즐거움, 나 자신을 계발하는 기쁨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품은 소비자들도 있다. 이에 답하는 기업이 시장의 선두에 서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 공간을 깨끗이 청소할까’에서, ‘어떤 음악으로 이 공간을 채울까’를 넘어, ‘여기서 무엇을 할까’ ‘어떤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까’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소비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필자소개 송수진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songsj@korea.ac.kr
송수진 교수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P&G에서 부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하며 신규 브랜드 출시 및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KDI 대학원에서 경제정책 석사 학위, 미국 시몬스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립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 분야는 브랜드-소비자 심리 및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다. Journal of Advertising,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등 국내외 유력 학술지에 다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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