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IBS Case Study

과감한 변신, 윈윈 전략으로 中소설 <두라라...> 마케팅 신화가 되다

126호 (2013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의 케이스스터디 ‘A Story of Lala’s Promotion’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진선(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두라라의 탄생

2006년경, 중국 출판시장에서는 비즈니스 전쟁을 묘사하는 소설들이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베이징부키 출판사의 왕용은 이런 트렌드를 이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사무직 종사자들을 공략하는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여러 전문 작가들과 접촉했지만 그들의 작품 중 어느 것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006년 여름, 왕은 사무실에서 우연히 ‘Hexun’이라는 블로그에 올라온 약 2000단어짜리 단편소설을 발견했다. 가벼운 톤으로 쓰여졌지만 날카로우면서도 생생한 스타일을 갖춘 글이었다. 왕은 그 작가가 지금껏 기다려왔던 사람이라고 느꼈다. 작가 또한 글이 출판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편집자인 차이밍페이(Cai Mingfei)에게 작가 리케(Li ke)를 만나게 하고 소설을 쓰겠다는 약속 또한 받아냈다. 리케는 포춘 500대 기업 중 한 곳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그의 이야기는 스스로와 친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아직은 이야기의 일부만이 블로그에 공개된 상태였다.

 

타깃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주인공의 원래 이름인두차오양은 더 세련된 이름인두라라로 바꿨다. 제목은일상을 벗어나’ ‘중산층이 아닌등 수십 개의 후보 중에서 <두라라 승진기>로 정해졌다. 아직 중국에는 비즈니스 커리어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으므로 차이는 할리우드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이미지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그해 개봉했다. <두라라 승진기> 역시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한 패션 소설로 포지셔닝됐다. 표지도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포스터와 꽤 닮아 있었다.

 

20079, 드디어 책이 출판됐지만 곧 비슷비슷한 패션 소설들의 물결에 묻히고 말았다. 게다가 무명 작가 리케는내 삶이 아니라 나의 시각만을 공유하길 원해요라며 책의 홍보 행사에 나오지 않으려 했다. 중국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다는 10월이 왔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그래도 왕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은 점점 더 상업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 소설은 할아버지 세대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현대 사회를 다룬 몇 안 되는 소설들마저도 스토리의 중심은 로맨스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사무직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면서 커리어를 다룬 소설에 대한 거대한 시장이 생길 것이다. 라라의 승진기는 간단하고, 긍정적이고, 교훈적이고 용기를 북돋는다. 바로 현대 중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빠른 방향전환

당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서점이었던 아마존 중국어 사이트(Amazon.cn)당당닷컴(Dangdang.com)’에는 <두라라 승진기>에 대한 많은 남성 독자들의 불평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에서 섹시한 표지의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베이징부키는 <두라라 승진기>의 타깃 독자를 사무직 종사자가 아닌 여성 독자로 잡은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0 10월 중반, 왕은 팔리지 않은 책을 모두 수거하고 표지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새롭고 더 단순한 표지에는 붉은색 띠 위에두라라의 이야기는 빌 게이츠의 이야기보다 더욱 고무적이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새롭게 디자인된 소설은 직장생활에 관한 자기계발 소설로 포지셔닝됐다. (그림1)

 

 

 

마침내 2007 11, 리뉴얼돼 출판된 <두라라 승진기>의 판매량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당닷컴과 아마존 중국어 사이트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찼다. 베이징부키는 판촉 전략을 수정했다. 이 두 온라인 서점을 책을 홍보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두라라 승진기>는 온라인 서점의 홈페이지와 카테고리 페이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초판 15000부는 한 달 만에 팔려나갔고 12월에는 당당닷컴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다. 2007년 말까지 10 만 부가 넘는 책이 판매됐고 2008 1월에는 아마존 중국어 사이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독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라라의 이야기에 끌렸다. 한 조사에 따르면(복수응답) 응답자의 67.3%는 이 책을 직장생활과 커리어 안내서로 생각했다. 50.2%는 라라의 독립심에 감동받았다고 답했으며, 38.8%는 자신도 라라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2007년 말, 상하이미디어그룹(Shanghai Media Group·SMG) <두라라 승진기> TV 시리즈 판권을 사들였다. 2008 4, 중국국영라디오(China National Radio) 또한 오디오 드라마 제작의 판권을 구입했고 같은 해 11월 상하이드라마예술센터(Shanghai Drama Art Center·SDAC)는 뮤지컬 판권을 사들였다. 60만 권이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던 2008년 말, 장이바이(Zhang Yibai)와 수징레이(Xu Jinglei)로 구성된 영화 제작팀은 영화 판권을 사들였다. 그러는 동안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연속 80주 이상 <두라라 승진기>는 당당닷컴과 아마존 중국사이트에서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뮤지컬의 성공

상하이드라마예술센터는 두라라 뮤지컬의 판권을 사면서 고작 다섯 자리 금액(위안화 기준)만 지불했지만 대신 티켓 판매에서 나오는 이익을 베이징부키와 나누기로 합의했다. 뮤지컬의 공동제작자인 중국비즈니스네트워크(China business Network)는 유명 기업 다섯 곳의 CEO를 뮤지컬의 감수자로 초청했다. 그 결과 상업적 후원자들의 관심이 곧바로 이어졌다.

 

뮤지컬의 제작을 맡은 제작자 왕더순(Wang Deshun)은 상하이드라마예술센터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제작자였다. 감독인 허녠(He Nian) 또한 언론으로부터박스오피스의 허니라고 불리는 촉망받는 감독이었다. 유명한 여배우인 야오천(Yao Chen)이 두라라 역을 맡기로 했다.

 

제작팀은 시나리오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가 치밀하지 않고 내용도 교육적이기 때문이었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배우들은 캐릭터와 뮤지컬의 줄거리를 만들기 위해 원작소설에 자신들의 경험을 집어넣었다. 감독이 최종 각본을 승인한 것은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기 겨우 한 주 전이었다.

 

뮤지컬 공연을 위해 소설 <두라라 승진기>가 어느 정도 윤색됐더라도 두라라의 성공을 향한 고군분투 스토리가 여전히 중심이었다. 두라라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얻고,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뒤 직장을 뛰쳐나오고, 새로운 직장을 찾고, 승진을 위해 경쟁자를 이기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음악과 춤은 장면이 바뀌는 사이를 채워줬다.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감독은 뮤지컬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그것은 두라라가 사랑을 위해 고난을 겪으며 쟁취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이는 뮤지컬이 관객들에게 직장에서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사무직 근로자들을 타깃 소비자층으로 둔 많은 회사들이 이 뮤지컬을 이용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무대 구석구석에 로위(Roewe) 자동차, 시티은행, 애플, 그리고 루이비통과 같은 고급 브랜드 제품들이 배치됐다. 이는 중국의 무대예술 장르에서 PPL(product placement)이 도입된 첫 사례다.

 

2009년 중국 뮤지컬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두라라는 성공적이었다. 상하이에서 초연되기도 전에 베이징과 항저우의 에이전트는 공연 일정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 티켓은 종종 빠르게 매진됐고 2009 48일부터 19일까지는 10번의 뮤지컬이 상하이미기대극원(Shanghai Majestic Theatre)에 올려졌다. 13000장의 티켓이 팔렸고 암표 가격은 최고 3000위안( 53만 원)까지 올라갔다.1 소설책도 30만 부가 더 팔렸다. 2009 5월까지 총 100만 부가 넘는 책이 팔렸다. <두라라 승진기>의 속편인 <두라라2, 빛나는 날들> 또한 50만 부가 판매됐다.

 

2009년 말, 뮤지컬은 10개 도시에서 60회 공연됐다. 배우들의 명성은 치솟았다. 주연 배우인 야오천은 중국의 토니상(Tony awards)으로 불리는 Modern Drama Valley One Drama Awards에서 2010년의 최고여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와 두라라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두라라의 경험은 많은 젊은이들과 공유되죠. 50%의 기회, 30%의 노력, 그리고 20%의 좋은 성격으로 성공을 이루니까요. 동시대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같은 고민을 경험하고 있어요. 저는 이러한 점이 관객들과 제가 뮤지컬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3라운드를 마친 공연은 박스오피스 매출 3000만 위안( 53억 원)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2010 1월 기사에서 중국 시장에서 두라라의 인기에 대해 보도하며 젊은 중국 여인이 마초적인 기업 사회의 유리 천장을 뚫었다. 라라는관시로 불리는 중국 특유의 인간관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학력과 노력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의미를 두었다.

 

영화두라라 승진기

2008 12, 영화 제작자인 장이바이는 20만 위안( 3500만 원)에 베이징부키로부터 영화 제작을 위한 판권을 사들였다. 영화 제작자이자 영화사 대표였던 그는 여류감독 수징레이(Xu Jinglei)를 불러들였다. “두라라는 이미 책 시장에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동시에 수는 유명하고 능력 있는 여 감독이고, 영화계의 흥행 보증 수표였습니다. 이 두 브랜드가 완벽하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금을 모으기 시작할 때까지도 대본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 감독과 두라라라는 브랜드 파워를 이용해 큰손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부키는 소설 <두라라 승진기>의 영화 제작과 관련한 많은 제안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비교적 낮은 가격을 제시했던 장이바이를 선택했다. 그가 소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와 함께하는 수징레이 감독의 명성,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소설과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 산업은 크게 제작과 배급으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중국의 영화사들은 제작에는 크게 투자하고 배급에는 투자를 아꼈다. 그렇기에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제작사와 배급사는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장이바이는 이번 영화를 예외적인 프로젝트로 봤다. 그는 탄탄하고 반복 가능한 영화 제작과 배급 모델을 개발하기를 원했다. 극본을 작업하는 동시에 그와 수징레이 감독은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영화 투자자들은 도시생활과 로맨스를 중심으로 한 영화의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2009 4, 장이바이는 영화 산업이 광고, PR, 뉴미디어 등 다른 산업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분야들은 영화 산업에 더 통찰력 있는 투자 아이디어, 많은 재원, 그리고 플랫폼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이바이는 영화의 판권과 지적재산권, 그리고 관련된 요소들이 투자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것은 효과적인 투자모델이었다. 투자액이 계속 모이면서 영화의 지적재산권 가치 평가액이 높아졌다.

 

그는 또한 전통적으로 영화 산업에서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저작권 가치를 낮게 평가합니다. 극본의 가격을 높이면 투자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영화에서 가장 수익성 있는 부분은 극본입니다.”

 

2009 6, 중국영화그룹(China Film Group Corporation·CFGC)과 디엠지엔터테인먼트(DMG Entertainment)는 영화의 높은 시장 가능성에 수긍하며 투자를 결정했다. 이것은 영화의 투자자금 조달 프로젝트의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 결과, 전통적인 영화 제작 모델은 투자자, 제작자, 배급자가 이익과 리스크를 공유하는 이해집단이 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지적재산권은 투자 지분으로 평가돼 제작자 역시 투자자 그룹의 일원이 되도록 만들었다.2 제작 담당 직원들은 투명성과 철저한 예산 관리, 높은 이익률을 위해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상세히 공개해야 했다. 수징레이 감독 역시 계약금을 적게 받는 대신 티켓 판매 수입의 일부를 받기로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회사 입장에서 본다면 과거 중국의 영화 제작 모델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익공유가 되지않으므로 누구도 영화의 흥행실적에 관심을 쏟거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래 계획대로 직장 내 정치와 로맨스에 집중하는 것 대신에 제작팀은두라라 승진기를 패션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90분의 상영시간 내에 복잡한 직장 내 인간관계를 그려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출연진은 중국, 대만, 홍콩에서 유명한 스타들이었다. 감독이자 배우인 수징레이가 주인공인 두라라를 맡고 대만의 유명한 가수인 스탠리 황(Stanley Huang)이 상대 역을 연기했다. 홍콩을 무대로 활동하는 가수 겸 배우인 모원웨이(Karen Mok)가 주인공과 대립관계에 있는 여자 배역을 맡았다. 조연으로는 대만 슈퍼모델인 오패자(Pace Wu)와 중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TV에서 유명스타였던 이애(Li Ai)가 연기했다.

 

할리우드 패션 전문가이자 독특한 의상 스타일로 각광받는 패트리샤 필드(Patricia Field)가 영화 의상에 대한 조언을 맡았다. 주인공인 두라라 혼자서만도 50벌의 의상을 입었다. 영화 속에서 2분에 한 번꼴로 옷을 갈아입는 격이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주요 인물들도 유명 브랜드의 의상을 착용했다. 영화 속 직장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포춘 500에 오른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는 13명의 HR 임원들이 명예 편집장 역할을 맡았다. 수 감독은 영화를 커리어 가이드북이 아닌 패션 잡지처럼 만들겠다고 얘기했다. 그 결과, 영화는 제작이 완료되기도 전에 패션잡지 엘르(Elle)올해의 패션 영화로 선정됐다.

 

 

간접광고(PPL)에 영화를 맞춤 제작하다

영화두라라 승진기의 제작에는 1500만 위안( 26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영화는 33개의 스폰서를 가지고 있었고 23개 브랜드가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로 들어왔다. 이는 중국 내 최고 수준이었다. 이러한 간접광고는 약 2000만 위안( 35억 원)의 광고 수입을 가져왔다. 구찌, 샤넬, 발렌티노 같은 국제적인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몇몇 브랜드들도 홍보됐다. 예를 들어, 두라라 역할을 맡은 수징레이가 착용한 액세서리는 자신이 설립한 브랜드인 카이라(Kai LA)의 제품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부터의 경험을 이용해 제작 스태프들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브랜드와 제품 분류에 따라 세밀한 간접광고 계획을 만들었다. 이미 완성된 극본에 맞춰 제품을 채워 넣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영화에 삽입되기에 적절하지 않은 제품들을 포기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제품 배치가 영화의 줄거리와 얼마나 적합했냐라는 설문에서 영화두라라 승진기 43%의 응답을 이끌어 냈다. 같은 설문에서 다른 영화들이 10%에서 20%대의 응답을 받은 것과 비교해 높은 수치였다.

 

간접광고에 참여한 회사들은 광고비를 지불했을 뿐 아니라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 효과도 가져다줬다. 예를 들어, 마쯔다의 광고는 4000만 위안( 70억 원)에서 5000만 위안( 88억 원)만큼의 홍보 가치가 있었다. 존슨앤존슨사는 간접광고에 나온 자사 제품을 위해 4500만 위안( 79억 원) TV광고와 다른 종류의 광고를 집행해 영화를 홍보했다. 스포츠의류 업체 Lotto는 두라라에게 맞춤 제작된 제품들을 출시했다. 태국 관광청은 영화의 뮤직비디오와 예고편을 태국을 드나드는 비행기 기내에 상영하도록 했다. 두라라가 일하는 사무실 또한 베이징의 중앙 비즈니스 지구의 빌딩 중 한 곳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보통 중국 영화들은 개봉 한두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홍보한다. 하지만두라라 승진기는 제작 초기부터 세련된 사무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완전한 마케팅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영화의 마케팅 투자액이 제작 투자액을 웃돌았다.

 

마케팅팀은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부터 영화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감독 수징레이가 각본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포춘 500 기업의 경영진을 인터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국영화그룹 마케팅회사의 매니저인 장더푸(Jiang Defu)는 이렇게 언급했다. “제작을 시작한 2009년부터 개봉 전까지 우리는 매달 하나 혹은 두 개의 주제에 대한 뜨거운 토론을 유도하며 사람들의 눈이 우리의 영화를 향하게끔 만들었어요.”

 

개봉을 앞둔 주말,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4명의 주연진은 38개 패션 잡지의 커버사진에 등장했고 30개가 넘는 미디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봉 한 달 전부터 영화 광고는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제작팀은 CCTV6와 전략적 제휴에 합의하고 베이징TV, 드래곤TV, 선전TV를 포함한 여러 TV 채널과 개봉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영화는 2010 415일 목요일, 개봉 당일에만 870만 위안( 15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고 개봉 둘째 주까지 1억 위안( 177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다. 최종적으로 12000만 위안( 212억 원)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13회 상하이국제영화축제에서 최고작품상도 수상했다.3

 

TV 시리즈의 성공과 두라라 열풍

두라라 스토리의 TV 버전은 판권이 가장 먼저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과 영화 보다 늦게 제작됐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TV 드라마인 <달팽이껍질>

의 제작자인 쉬샤오어우(Xu Xiao Ou)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두라라의 스토리를 TV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다룬 유명한 미국과 홍콩 드라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작가들 중 90%가 사무직에 종사자해본 경험이 없었고 심지어 마케팅 책임자와 영업 책임자의 차이도 몰랐습니다. 게다가 이건 3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많은 개작이 필요했습니다.”

 

쉬샤오어우가 드라마작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거의 1년이 걸렸다. TV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야 했다. 원작 소설에 강한 정서적인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드라마작가는 중년 시청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부모와 자식 관계를 덧붙였다.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또한 강조됐다. 그것이 TV 드라마를 더욱 감성적이고 전문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TV 버전은 그들의 직장 내 고군분투, 도시의 삶, 가장 중요한 로맨스 등을 다루며 아이돌 드라마를 표방하며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009 10, TV 드라마의 촬영이 시작됐다. 많은 회사들이 제품 협찬에 대해 문의해 왔다. 제작진은 오직 포춘 500대 기업과만 파트너십을 맺고 쇼에 등장하는 제품의 수를 제한했다. 드라마의 광고 수입은 1800만 위안( 31억 원)을 넘어섰다. 일류 일본 패션 브랜드의 후원을 받으면서 드라마의 의상실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브랜드 옷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카메오로 출연하는 배우조차도 30벌 정도의 의상을 가지고 있었다.

 

쇼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쉬샤오어우는 베이징, 상하이, 그리고 다른 큰 도시들에서 여러 대기업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 역시 일본 시즈오카에서 촬영되는 에피소드의 현장을 보기 위해 초대됐다.

 

2010 420, 32개의 에피소드들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난징과 항저우를 포함한 8개의 도시의 지역 TV 채널에서 방송됐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이에 따라 6월 말, 드라마는 전국 채널에서 방송되기 시작했고 BTV와 드래곤TV에서는 시청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두라라는 온라인 시청자들도 사로잡으며 신기록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8월 초, 소후TV에서 드라마의 클릭 수가 1000만 회를 넘어섰고 14일 동안의 클릭 수가 1억 회에 달했다. 드라마의 이익 마진은 50%를 넘겼다. 상하이미디어그룹은 <두라라 2, 빛나는 나날들>의 드라마 제작 판권 또한 사들였다.

 

인터넷상에는 두라라 관련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급증했다. 타오바오닷컴(taobao.com)에서두라라라는 키워드는 25000개의 검색 결과를 보여줬고두라라 옷이라는 키워드로는 7000개의 결과가 나왔다. 베이징의 몇몇 가게들은두라라 드레스를 보러 오세요라는 입간판을 세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두라라 열기를 이용해 돈을 벌고 싶어 했다. 영화 감독인 수징레이가 만든 액세서리 브랜드카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던 날 티몰닷컴(Tmall.com)에 숍을 열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매하면 무료 영화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2010 429, 텐센트의 e커머스 플랫폼인 파이파이닷컴(Paipai.com)은 영화 제작사와 합의한 후에두라라의 옷장이라는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그들은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입었던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판매했다. 프로모션은 시작 당일 40만 클릭을 기록했다. 인기가 가장 좋았던 한 드레스는 1만 번이 넘도록 클릭되기도 했다. 두라라 브랜드를 딴 의류, 액세서리, 제화, 가방은 웹사이트 평소 매출의 4배를 기록했다. 또 선미디어그룹(Sun Media Group)과 상하이미디어그룹 등이 합작 제작한현실 속의 라라를 찾아서라는 리얼리티쇼도 위성TV를 통해 방송됐다.

 

콘텐츠 산업의 새 시대를 열다

원작의 출판사인 베이징부키는 마케팅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두라라 브랜드의 다른 파생 제품을 파는 회사들과 밀접하게 교류했다. 책의 재판을 찍을 때 표지를 업데이트해서 미디어와 독자의 리뷰를 반영하고 영화와 TV드라마도 홍보했다. 베이징부키는 또 책의 판매량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판촉활동에도 참가했다. 예를 들어, 소설 <두라라 3>의 출판은 영화 시사회가 시작할 때까지 의도적으로 연기됐고 여배우인 수징레이의 사진을 당당닷컴과 아마존 중국어 사이트와 같은 온라인 서점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베이징부키는 판권의 판매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뮤지컬, 영화, TV 드라마의 인기가 책 판매에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다. 또한두라라 1’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TV드라마의 성공에 힘 입어 후속 시리즈인두라라 2’두라라 3’의 판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두라라 1’의 영화와 TV드라마 판권 가격은 각각 20만 위안( 3500만 원)이었지만두라라 2’의 영화 판권은 수백만 위안에 거래됐다.두라라 3’의 영화 판권 또한 일곱 자리(위안화 기준) 금액에 팔렸다. 두라라 시리즈의 편집자인 차이밍페이는 이렇게 말했다. “두라라 시리즈의 판권 판매는 출판 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판권을 팔아버리는 것 대신에 우리는 이익을 극대화할 기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두라라 2’부터는 판권의 구매자와 이익을 나누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중국 역사상 어떠한 책도 두라라 시리즈만큼 다양한 플랫폼의 파생제품과 많은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했다. 두라라 시리즈는 오직 책만 판매해왔던 문화산업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초석을 쌓았다. 책의 저작권이 기초가 돼 영화, TV 프로그램, 장난감 등 여러 분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베이징부키는 두라라 시리즈의 속편들을 끝없이 출판할 생각은 없었다. 작가인 리케 또한 독자들이 지루해하기 전에 멈추고 싶었다.

 

2011 2, 두라라 상표의 여성 구두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해 유통을 시작했다. 8월에는 두라라 소설 총 판매량이 5백만 권을 돌파했고, 10, 4편인 <너의 마음과 꿈을 따라가라>의 출판과 함께 완간됐다.

 

 

왕가오·장뤼

왕가오(Wang Gao)는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이며 장뤼(Zhang Rui)는 같은 학교의 연구원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